이번 소문의 주인공
하렘 소문은 재난으로 분류됩니다 · 2026.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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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도진과 세라가 아니었다.
지하철 직원 스물세 명이 서로의 사내 연애 상대가 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중 열아홉 명이 서로 처음 본다는 점이었다.
더 큰 문제는 연애 기념일이 오늘로 같다는 점이었다.
강은하는 기념일보다 열일곱 시간 연속 근무부터 기록했다.
새벽 여섯 시, 동부순환선 운행센터 개찰구는 직원들을 커플 단위로만 통과시켰다. 붉은 사번표 둘이 가까워지면 문이 열렸고, 한 사람이 혼자 들어가면 ‘연인 방치’ 경고음이 울렸다. 기관은 임시 대응이라며 스물세 명을 직원 휴게실에 모아 놓았다. 의자는 열여섯 개였다.
은하는 서 있는 사람 일곱 명의 종아리부터 봤다. 부종 셋. 떨림 둘. 무릎 통증 하나. 멀쩡한 척 웃는 사람 하나.
“아픈 쪽부터 말해요.”
스물세 명이 입을 다물었다. 천장 감시 카메라 아래에는 특별관찰부서 팀7의 면담이 실시간 감사된다는 붉은 문구가 떠 있었다.
센터장이 대신 답했다. “다들 근무 가능합니다. 사내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할 뿐입니다.”
은하는 센터장이 아니라 직원들을 봤다. “근무 가능 여부는 한 명씩 묻겠습니다. 지금 녹음 중이고, 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맨 뒤의 직원이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명찰은 검은 테이프로 가려져 있었다. 기관이 아니라 본인이 붙인 테이프였다.
“이름 안 나가죠?”
“우리가 정하기 전에 안 나갑니다.”
“얼굴은요?”
“같이 정합니다.”
“교대표는요? 그걸 보면 누군지 알아요.”
은하는 대답하기 전에 팀7 임시헌장을 열었다. 공개 동의가 없으면 저장·송출을 멈춘다는 분석 중지권. 치료 동의와 휴식이 위험선이면 작전을 멈춘다는 의료 중지권. 가결된 지 열두 시간도 안 된 문장이 처음으로 새 사건 앞에 놓였다.
“이름, 얼굴, 관계 역할, 교대표를 따로 나눌게요. 각각 공개·팀 내부·비공개 중에 고릅니다. 나중에 항목별로 삭제할 수도 있어요.”
직원은 천장 카메라를 올려다봤다. “조정국 감사실도 봅니까?”
현주가 휴게실 문 옆에서 답했다. “감사 기록에는 접근하지만, 동의 범위를 넘는 재공개는 못 합니다. 그렇게 하려 하면 제가 중지합니다.”
“중지하면 진짜 멈춰요?”
“어제 제 인사평가와 승인권이 멈췄습니다.”
현주는 손해를 신뢰 증서처럼 내밀지 않았다. 그저 결과를 말했다.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이름 비공개. 얼굴 비공개. 역할 문구는 팀만. 교대표는 시간 간격만 쓰고 노선은 빼 주세요.”
“녹음은?” 임다원이 물었다.
소문재난 전문 기자는 카메라를 켜지 않은 채 수첩만 들고 있었다. 그녀가 묻자 직원의 어깨가 다시 굳었다.
“안 합니다.”
다원은 녹음기를 주머니 더 깊이 넣었다. “인용은요?”
“오늘은 안 돼요.”
“알겠습니다. 그 문장은 기사보다 위험하니까 쓰지 않겠습니다.”
센터장이 인상을 썼다. “언론까지 불러 놓고 비공개면 이 사태를 어떻게 해명합니까? 유명 승무원 한 분이 실명 인터뷰에 동의했습니다. 그쪽부터 공개하면 여론이—”
휴게실 반대편에서 방송 성우로 유명한 승무원이 손을 흔들었다. 이미 메이크업까지 끝난 얼굴이었다. 그의 단말에는 생방송 대기자 8만 명이 떠 있었다.
도진은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그는 검은 테이프 명찰 앞에 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고, 직원보다 낮게 앉았다.
“확인부터 하죠.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역할 문구를 읽어도 됩니까?”
유명 승무원의 매니저가 외쳤다. “저희는 지금 가능합니다!”
도진은 돌아보지 않았다. “이분 답이 먼저입니다.”
익명 직원이 한참 뒤 단말을 내밀었다.
사내 연애 상대의 안전 운행을 위해 본인 교대와 휴식을 자발적으로 양도한다.
상대 이름 칸에는 그가 처음 보는 차량정비 직원의 사번이 들어 있었다. 아래에는 연애 기념일이 찍혀 있었다. 7월 17일. 오늘이었다.
“휴식을 양도한 적 있습니까?” 은하가 물었다.
“거부했어요. 그랬더니 개찰구가 안 열렸습니다. 야간 근무 끝나고 여섯 시간 기다렸어요.”
“지금까지 근무 시간은?”
“열일곱 시간.”
“근무 중지.”
센터장이 끼어들었다. “대체 인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멈춥니다. 연애 역할이 휴식권을 대신 결제하고 있어요.”
은하는 직원에게 선택지를 두 개만 줬다. 지금 수면실로 이동하거나, 검사 뒤 귀가 차량을 기다리기. 어느 쪽도 다시 선로로 보내는 선택지는 아니었다.
“수면실이요. 그런데 저 정비 직원도 들어가야 문이 열린대요.”
은하는 의료 중지권을 개찰구에 전송했다. 환자 이송은 관계 역할과 분리한다. 화면이 한 번 거부하자 현주가 특별관찰 로그에 이의를 남겼고, 미나는 익명 직원의 사번 대신 일회용 의료 표식을 만들었다. 두 번째 시도에서 문이 열렸다.
직원은 혼자 수면실 쪽으로 세 걸음 갔다. 네 번째 걸음에서 무릎이 꺾였다. 은하가 겨드랑이를 받치자 그는 미안하다는 말부터 했다.
“사과 말고 어지러운 쪽.”
“왼쪽으로 돌아요.”
“혼자 걸을까요, 부축받을까요?”
“부축이요. 관계 역할 없는 사람한테.”
은하는 자기 이름을 말했다. 연인도 구원자도 아닌 응급치유사 강은하. 직원은 그 직능에만 동의하고 수면실로 이동했다. 그의 교대표는 8시간 휴식으로 잠겼다.
정비 직원이 멀찍이서 손을 들었다. “저도 저분 처음 봅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보자 휴게실 전광판이 축하 문구를 띄웠다.
사내 연애 1일 차. 서로의 교대를 책임지세요.
정비 직원의 남은 휴식 시간이 익명 직원에게 옮겨 갔고, 익명 직원의 연장근무 수당은 정비 직원 급여 명세에 붙었다. 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임금과 피로만 연애를 시작했다.
“호감이 생겼습니까?” 다원이 물었다가 곧 수첩에 선을 그었다. “질문 취소. 역할이 감정을 만들었다는 전제를 깔았습니다.”
정비 직원이 헛웃음을 냈다. “저분한테 화난 것도 아닌데, 내 월급이 저쪽으로 가니까 누구한테 화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은하는 그 말을 의료 기록에 넣지 않았다. 임금 분쟁과 감정은 환자 차트의 증상이 아니었다.
센터 밖 운행 현황판에서 세 개 노선이 노랗게 바뀌었다. 직원들이 지정 상대의 교대를 대신하느라 관제·정비·승무 위치가 섞였다. 2호선 정비사가 5호선 안내 방송을 맡고, 휴무 기관사가 신입 관제사의 야간 좌석에 묶였다. 열차 간격이 4분에서 11분으로 늘었다.
미나는 도진을 부르지 않고 자기 대시보드를 열었다.
“이름 분리. 사번 해시 처리. 노선은 구간 코드로 낮춤. 원문 문장만 비교.”
현주가 물었다. “비교 기준을 먼저 기록하세요.”
“주어 자리, 관계 역할 자리, 희생 의무 자리, 자발성 문구, 기념일. 다섯 칸.”
미나는 구룡역 비밀 연인 문구와 지금 사내 연애 문구를 겹쳤다. 등장인물과 장소는 달랐다. 문장 뼈대는 같았다.
당사자 A는 당사자 B의 비밀 관계자다.
따라서 A는 B를 위해 직업상 의무 하나를 자발적으로 포기한다.
포기 거부 시 관계 배신으로 분류한다.
첫 사건에서는 세라의 지휘권과 승진이 들어갔다. 이번에는 교대, 휴식, 연장수당이 들어갔다. ‘자발적으로’라는 단어 뒤에 거부하면 받는 벌이 붙는 순서도 같았다. 쉼표 위치까지 같았다.
“우연 일치 확률?” 현주가 물었다.
“문장 다섯 칸과 구두점까지면 낮아요. 숫자는 표본 더 받고.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동일 템플릿 의심.”
“좋습니다. 의심으로 기록.”
도진은 익명 직원에게 정정안을 보여 줬다. “사내 연애 문구를 전부 지우면 교대표가 원상 복구될 수 있습니다. 대신 다른 스물두 명에게 역할이 역류할 가능성이 있어요. 지금은 실행하지 않겠습니다.”
“왜 나한테 먼저 왔어요?”
도진은 유명 승무원의 생방송 화면을 한번 봤다. 대기자는 12만 명으로 늘어 있었다.
“저쪽은 말할 준비가 됐고, 당신은 말하지 않을 준비부터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럼 나 때문에 기사도 늦어져요?”
다원이 답했다. “제가 늦추는 겁니다. 취재원에게 마감 책임을 배송하지 않습니다.”
태호가 문밖에서 고개만 내밀었다. “배송 용어 사용료.”
“청구는 기사 나온 뒤.” 다원이 받아쳤다.
익명 직원의 입가가 아주 조금 풀렸다. 은하는 그걸 호감이나 신뢰로 진단하지 않았다. 맥박이 112에서 104로 내려간 것만 적었다.
직원별 조사표가 만들어졌다. 이름, 얼굴, 역할 문구, 교대표, 임금, 의료 기록. 여섯 항목마다 공개 범위와 삭제권이 따로 붙었다. 스물세 명 중 열한 명은 전부 비공개, 여섯 명은 문구만 공개, 다섯 명은 교대 시간 간격 공개, 유명 승무원 한 명은 실명 공개를 골랐다.
미나는 공개 가능한 열두 개 문장 뼈대만 추렸다. 같은 쉼표. 같은 ‘자발적으로’. 같은 배신 분류. 기념일은 전부 7월 17일이었다.
“게시 시각도 볼게.”
첫 직원의 문구는 새벽 5시 40분에 생성됐다. 다음은 5시 50분, 그다음은 6시 정각. 십 분 간격이었다. 조정국 홍보 일정표에는 같은 시각마다 ‘출근길 안전 캠페인’ 예약 게시가 잡혀 있었다.
미나가 처음 발견된 압류서 결재 시각을 불러왔다. 공동서명 줄에 찍힌 시각도 5시 40분이었다.
“일치.”
은하는 숫자보다 휴게실을 먼저 봤다. 홍보 카드가 뜬 순간마다 직원들의 맥박 경고가 두세 명씩 늘었다. 5시 40분 문구를 받은 직원은 손떨림이 가장 심했고, 6시 문구를 받은 관제사는 열차 간격 경고와 동시에 과호흡을 시작했다. 같은 시각대는 서버 단서이면서 몸에 찍힌 교대 순서였다.
“의료 기록에는 역할 생성 시각과 증상 시작 시각만 묶을게요. 원인은 미확정.”
현주가 즉시 잘랐다. “인과는 아닙니다.”
“알아요. 게시 예약, 역할 생성, 압류 결재가 같은 시각대. 세 묶음만 보존.”
공식 계정이 새 홍보물을 올렸다.
사랑하는 동료를 위해 한 번 더 확인하세요.
휴게실의 스물세 단말이 동시에 울렸다. 익명 직원과 정비 직원의 화면에는 같은 축하 카드가 떴다.
두 사람은 카드를 읽고 서로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오늘 처음 봤죠?” 익명 직원이 물었다.
“네. 그런데 여기엔 1주년이라고 뜹니다.”
옆자리 직원도 말했다.
“저도 1주년인데.”
미나가 공개 동의를 받은 문장들만 확인했다.
서로 처음 본 직원 둘이 같은 연애 기념일을 말했다.
그 시각은 조정국의 다음 홍보 예약과 정확히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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