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자는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탑은 구조된 사람을 지운다 · 2026.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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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자는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대학 연구실 문 앞에서 미래가 먼저 물었고, 상대가 거절했다.
“제 이름은 안 씁니다.” 그가 말했다. “저는 이 대학 소속으로 여기 있는 게 아닙니다. 오늘은 개인입니다.”
“그럼 기사에 뭘 씁니까.” 미래가 물었다.
“확인 시각과 방법을 씁니다.” 그가 말했다.
미래가 그 조건을 적었다. 어제까지 미래가 원한 것은 신원이었다. 신원이 있으면 기사가 방패를 얻었고, 방패가 있으면 기사를 받는 쪽이 통과시켰다.
오늘 아침에도 그쪽 담당자가 물었다. 검증자 실명이 없으면 이건 기사가 아니라 주장이라고.
미래가 한 대답은 짧았다. 주장이면 주장으로 내겠습니다.
그 문장을 말한 뒤에 그는 자기 이름이 기사 하단에 어떻게 찍히는지 생각했다. 실명 검증자가 없으면 남는 실명은 자기 것 하나였다.
오전 10시. 유라는 오지 않았다. 어젯밤부터 8층 서쪽 환기실 격자 옆에 앉아 있었고, 그 자리를 비우지 않겠다고 했다.
도현의 문자가 아침에 왔다. 두드림 간격 이십칠 초 유지. 늘지 않음.
마준이 말한 영층 주소의 마지막 숫자는 아직 없었다. 파형 사본에는 진동만 남아 있었다.
파형 사본이 가방에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허용표에서 마준 항목은 조건부였고, 조건부는 물어보고 정하는 칸이었다. 오늘 물어볼 사람은 격자 옆에 있었다.
책상에는 세 가지가 놓였다.
첫째, 어제 마준이 밀어 올린 명단 세 장. 젖어서 마른 뒤라 아래쪽 두 줄이 번져 있었다.
둘째, 16화 인쇄 장부 사진 중 물리 카드에 남은 네 장. 삭제된 여섯 중 넷이 그 카드에 있었다.
셋째, 은채가 손으로 적은 해시 목록.
“원본이 넷입니까.” 검증자가 물었다.
“여섯이었습니다.” 미래가 말했다. “둘은 손으로 적은 해시만 남았습니다. 231쪽 절취면 근접과 402쪽 전체입니다.”
“그 두 장이 이 사건의 핵입니까.”
“예.”
검증자가 목록을 봤다. 그리고 순서를 정했다.
“해시부터 봅니다.” 그가 말했다. “사진을 먼저 보면 제가 사진에 맞춰 해시를 읽습니다.”
그가 종이의 열여섯 자리를 먼저 읽고, 카드의 파일에서 해시를 계산했다. 넷 다 일치했다.
“여기까지는 대원님들 자료가 대원님들 말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가 말했다. “아직 아무것도 증명 안 됐습니다.”
“그럼 뭐가 증명됩니까.”
“지금부터요.” 그가 장부 사진과 명단을 나란히 놓았다.
두 자료의 출처는 달랐다. 하나는 3년 전 관리국 인쇄본, 하나는 나흘 전 하청 노동자의 손 명단이었다.
“같은 내용이 아니라 같은 형태를 찾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가 찾은 것은 세 개였다.
첫째, 총원 숫자와 이름 개수의 차이. 카드에 남은 넷은 6과 5, 11과 10, 5와 4, 그리고 총원 8에 이름 7이었다. 명단은 8과 5였다.
“명단은 차이가 셋입니다.” 미래가 말했다. “인쇄본은 다 하나입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검증자가 말했다. “인쇄본은 확정된 기록이고 명단은 현장 종이입니다. 현장에서 셋이 번호로 남았는데 확정 기록에서는 하나만 사라집니다.”
“그럼 둘은 어디로 갔습니까.”
“모릅니다. 확정 단계에서 셋이 하나로 줄어드는 과정이 있다는 것만 압니다.”
둘째, 칸이었다. 인쇄본 넷은 보상 지급 칸이 비어 있었다. 명단에는 보상 칸이 없고 일당 칸이 있었다. 번호만 남은 셋의 일당 칸은 채워져 있었다.
“일당은 나갔습니다. 보상은 안 나갔습니다.”
“그 차이가 뭡니까.”
“일당은 노동 대가고 보상은 재난 피해 대가입니다. 일한 값은 줬는데 다친 값은 안 줬습니다.”
미래가 적다가 손을 멈췄다. 일당을 줬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날 거기 있었다는 것을 회사가 인정했다는 뜻이었다.
“그럼 존재는 인정된 겁니까.”
“고용 기록에서는요. 재난 기록에서는 아닙니다. 두 장부가 서로 다른 사람을 세고 있습니다.”
셋째를 그가 마지막에 뒀다.
“연필입니다.” 그가 말했다.
카드에 남은 두 쪽, 이름이 하나 빠진 쪽들의 줄 왼쪽 여백에 짧은 사선이 있었다. 인쇄물에 연필로 그은 것이었다.
미래가 명단 세 장을 봤다. 번호만 있는 셋의 줄 왼쪽에 같은 사선이 있었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검증자가 물었다.
“모릅니다.”
“저도 모릅니다. 그런데 위치가 맞습니다. 줄 왼쪽 여백, 같은 간격, 같은 기울기요. 손으로 그리는 표시는 배우지 않으면 위치가 안 맞습니다.”
“같은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같은 절차를 배운 사람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여럿일 수 있습니다. 이건 관측이고, 매뉴얼이 있다는 건 추측입니다. 저는 관측만 확인서에 씁니다.”
미래가 두 단어를 나눠 적었다. 관측과 추측. 도현이 쓰는 구분과 같았다.
“도현 씨하고 아십니까.”
“아니요.”
그 대답을 미래가 두 번 확인했다.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같은 구분을 쓴다는 것은, 그 구분이 두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이 일을 하려면 필요한 절차라는 뜻이었다.
검증자가 그때 손을 멈추고 해시 목록으로 돌아갔다.
“한 가지 남습니다.” 그가 말했다. “사라진 여섯 중에 사진으로 남은 넷은 이름 한 줄이 빈 쪽들입니다. 남지 않은 둘은 잘린 자리 근접과 402쪽 전체입니다.”
“그게 관측입니까.”
“예. 삭제된 것 중에서 잘린 자리만 사진이 없다는 사실은 관측입니다.” 그가 말했다. “누가 골랐다는 건 추측입니다. 저는 앞만 씁니다.”
미래가 손가락으로 셌다. 인쇄본 넷, 유족 모임 상주자의 어머니 하나. 다섯이었다. 도현은 여섯 번째가 나오면 관측을 판정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이 명단이 여섯 번째입니까.”
“아닙니다. 형태는 같고 장부가 다릅니다. 인쇄본 다섯은 재난 기록이고 이건 노동 기록입니다. 같은 줄에 세면 저쪽이 그걸 제일 먼저 지적합니다.”
“그럼 이건 뭡니까.”
“다른 장부에서도 같은 형태가 나온다는 첫 번째입니다. 여섯 번째보다 이게 더 무섭습니다. 한 부서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니까요.”
오전 11시 40분. 검증자가 확인서를 썼다.
해시 일치 넷, 이종 출처 형태 일치 세 개, 미확인 둘. 미확인에는 사선의 의미와 셋이 하나로 줄어드는 과정이 들어갔다.
서명 칸에 그가 이름을 쓰지 않았다.
확인자: 익명. 확인 시각: 8월 17일 11시 40분. 방법: 해시 선행 대조, 이종 출처 형태 비교.
“이러면 약합니다.” 미래가 말했다.
“약합니다.” 그가 말했다. “그런데 제 이름을 쓰면 저는 다음 확인을 못 합니다. 오늘 강해지고 내일 없어지는 것보다 오늘 약하고 내일 또 하는 게 낫습니다.”
그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이 확인을 나중에 철회하지 않겠다는 문장이었다.
“철회 안 하는 걸 어떻게 증명합니까.”
“못 합니다. 대신 이 시각 뒤에 이 자료가 지워지면, 지운 게 제가 아니라는 건 남습니다.”
오전 11시 55분에 은채가 왔다. 확인서를 두 번 읽었다. 한 번은 위에서 아래로, 한 번은 서명 칸부터 거꾸로.
“익명 확인서는 기록상으로는 확인자 미상입니다.” 그가 말했다.
“그럼 못 씁니까.”
“씁니다. 대신 옆에 사람 이름이 하나 있어야 합니다.” 은채가 안경을 벗었다. “입회 책임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 있었고 이 방법으로 확인된 걸 봤습니다. 그 문장에 제 이름을 씁니다.”
“은채 씨한테 감사가 세 번째가 됩니다.”
“두 번은 반출이었고 이건 입회입니다. 항목이 다릅니다.”
“정지되면 유라 씨 서류를 은채 씨가 못 냅니다.”
“못 내면 다른 사람이 냅니다.” 은채가 말했다. “대신 오늘 이 확인이 없으면 낼 서류가 없습니다. 순서는 이쪽이 먼저입니다.”
미래가 기사 하단을 다시 짰다. 어제 초안에는 ‘외부 전문가 검증’이라는 줄이 있었다. 그 줄을 지우고 이름 둘을 적었다. 박미래, 조은채. 검증자의 자리에는 이름 대신 방법이 들어갔다.
“이 자료 어디까지 나갑니까.” 검증자가 물었다.
“당사자 허용표대로요.”
“그 표를 제가 볼 수 있습니까.”
미래가 멈췄다. 표는 유라의 것이었다.
“못 보여 드립니다. 당사자한테 물어야 합니다.”
“물어보시고 알려 주십시오. 제가 확인한 게 어디까지 나가는지 알아야 다음 확인을 정합니다.”
통화는 이 분이었다. 뒤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두 번 섞였다.
유라의 답은 항목별이었다. 확인서 전문 공개, 확인 방법 공개, 검증자 신원 불가. 파형은 보류. 그리고 하나를 추가했다.
“파형은 왜 보류입니까.” 미래가 물었다.
“마준이 아직 안에 있어요.” 유라가 말했다. “목소리가 나가면 저쪽이 저 애가 뭘 갖고 있는지 알아요.”
미래가 그 항목을 조건부에서 불가로 옮겼다. 옮긴 사람 이름과 시각을 옆에 적었다.
“그분한테 제 이름 알려 주세요.”
“그건 표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정하는 거예요.” 유라가 말했다. “저는 이름 모르는 사람한테 제 자료를 맡기는 거예요. 그쪽은 제 이름을 알아야 공평해요.”
미래가 그것을 전했다. 검증자가 잠깐 멈췄다.
“그건 저한테 위험합니다. 이름을 알면 제가 그 사람을 아는 사람이 됩니다.”
“그럼 안 들으시면 됩니다.”
“듣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위험한 쪽이 공평합니다.”
오후 1시 20분. 미래가 연구실을 나왔다.
단말에 은채의 문자가 있었다. 연구실 노드 운영자 탑 출입 자격 정지. 사유 미기재. 오늘 09시 40분.
검증이 시작된 시각은 10시였다. 정지가 먼저였다.
두 번째 문자는 나머지 두 후보의 철회였다. 세 번째에는 이름이 없었다.
원본 보관자 남은 후보: 없음.
미래가 4층 창문을 올려다봤다. 안에 누가 서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답을 세 문장으로 적었다. 확인서는 오늘 11시 40분 자로 존재합니다. 확인자 신원은 기사에 없습니다. 남은 보관자가 없으면 우리가 보관자가 됩니다.
보내기 전에 한 줄을 지웠다. 자격이 정지된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 가는 표현이었다.
지운 종이는 버리지 않았다. 14화에 따로 보관한 종이와 같은 봉투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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