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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구조된 사람을 지운다 · 2026.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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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의 팔찌가 삑 하고 또 새 주인을 골랐다.
화면에 뜬 이름은 오경민이었다. 두 번째였다.
유라는 바로 옆에 살아 서 있었다.
민간 장비 보관소는 관리국 뒤편 삼층 건물이었다. 면허 심사까지 사십육 시간. 어제 봉인한 단말은 압수되어 나갔고, 그 자리를 이 건물 회수대가 대신하고 있었다. 소유권은 아직 미결이었다. 미결이라는 것은 규칙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이거 제가 스캔한 게 아닙니다.” 경민이 말했다. 느린 존댓말이었다. “가까이 갔을 뿐입니다.”
“근접 자동 조회입니다.” 보관소 직원이 말했다. “회수 계정이 반경 안에 들어오면 미등록 물품을 자동으로 매칭합니다.”
“그럼 제가 걸어 다니면 남의 물건이 제 것이 됩니까.”
“그렇게는 안 됩니다. 등록된 물건은 주인이 있으니까요.”
“그럼 등록 안 된 물건은요.”
“그건 주인이 없는 겁니다.”
“없는 게 아니라 안 적힌 거죠.”
직원이 잠깐 멈췄다. 규정 화면을 두 번 넘겼고, 반박할 조항은 나오지 않았다.
“규정에는 주인 없는 물건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직원이 말했다.
경민이 유라를 봤다. 유라가 벽을 잡았다. 왼발로 십 분 이상 서 있으면 부목 위쪽이 붓는다고 새벽이 적어 줬고, 지금 십사 분이었다.
“의자.” 경민이 말했다. 그가 자기 짐 위에 판을 얹어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유라가 앉아서 팔찌를 찬 손목을 들어 보였다.
“여기 있는데요.”
화면은 유라를 세지 않았다. 어제 처치실 단말에 떴던 것과 같은 두 줄이었다. 원소유자 조회 실패, 무주물 전환 대기. 그 아래 확인 버튼이 파랗게 켜져 있었다.
경민은 그 버튼의 값을 알고 있었다. 팔찌 등급이면 육십만 원에서 팔십만 원. 정비 노동자 지급품 중에 상급이었다. 회수 계정에 들어온 물건은 삼십 일 뒤 처분 가능이었다.
삼십 일이면 어머니 병원 정산일이 두 번 지나갔다. 지난 정산일에 그는 짐끈 값을 아껴 냈다.
그가 짐끈을 한 번 당겨 봤다. 손에 뭐가 있으면 버튼에서 손이 멀어졌다.
“누르지 마세요.” 미래가 말했다. 카메라는 이미 켜져 있었다. “아니면, 누르시기 전에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그것도 기록입니다.”
“기록관님.”
“네.”
“제가 여덟 해 전에 이 버튼 눌렀습니다.” 경민이 말했다. “그때는 기록관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있습니다.”
경민이 확인 버튼 옆의 작은 글씨를 찾았다. 오류 신고. 글씨는 확인 버튼의 삼분의 일 크기였고, 색은 회색이었다.
그는 회색을 눌렀다.
화면이 바뀌었다. 오류 유형을 고르라고 했다. 목록에 여섯 개가 있었는데, ‘원소유자가 현장에 있음’은 없었다.
“없습니다.” 경민이 말했다.
“그럼 기타 쓰세요.” 미래가 말했다. “본문에 문장으로 적으세요. 목록에 없는 게 제일 중요한 자료입니다.”
“기타는 후순위입니다.” 직원이 말했다. 악의는 없었다.
“후순위여도 남습니다.” 미래가 말했다.
경민이 기타를 눌렀다. 본문 칸에 손가락으로 썼다. 글씨가 느렸다.
원소유자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음. 손목에 착용 중. 이름 진유라. 본인 확인 가능.
“이름 넣으시면 유라 씨 위치가 남습니다.” 미래가 말했다.
경민이 멈췄다. 그가 유라를 봤다.
“이름 넣을까요, 뺄까요.”
“왜 저한테 물으세요.”
“이건 유라 씨 물건입니다. 그리고 유라 씨 위험입니다.”
유라가 화면을 봤다. 이름 칸과 위치 칸이 나란히 있었다.
“넣어 주세요.” 그가 말했다. “이름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 어제 봤어요.”
“위험합니다.”
“그럼 위험한 쪽으로 갈게요. 제가 정해도 되죠?”
경민이 이름을 넣었다. 넣고 나서 미래에게 화면을 돌렸다. 셔터가 두 번 울렸다.
“파일명부터.” 미래가 말했다. “보관소_귀속오류_기타접수_진유라동의.”
“동의도 파일명에 넣으세요?”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게 그겁니다.”
접수 번호가 나왔다. 수익은 보류로 전환됐다. 자동 귀속 규칙이 공개 로그에 올라갔고, 그 로그에는 경민이 확인 대신 오류를 눌렀다는 기록이 남았다.
무게는 거짓말을 안 했다. 경민이 회수 목록을 셀 때 쓰는 말이었다. 이 화면은 무게 대신 이름을 셌다.
“이제 어떻게 됩니까.” 유라가 물었다.
“삼십 일 심사입니다.” 직원이 말했다. “심사 중에는 처분도 반납도 안 됩니다.”
“그럼 저는 삼십 일 동안 제 팔찌를 못 쓰는 거예요?”
“차고 계실 수는 있습니다. 기능은 정지합니다.”
“기능이 뭐였어요?” 유라가 물었다.
“위치 응답과 작업 인증입니다.”
“그럼 저 이제 어디 있었는지 증명 못 하네요.”
정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구 분 뒤, 보관소 봉인대.
경민은 자기 귀속을 완전히 취소하는 서류를 썼다. 취소하면 보류였던 수익도 사라졌다. 그는 그 칸에 서명하면서 손을 두 번 멈췄다. 두 번 다 짐끈을 만졌다.
미래는 그 두 번을 다 봤고, 찍지 않았다.
“왜 안 찍으세요.” 경민이 물었다.
“찍을 겁니다. 서명 끝나고요.” 미래가 말했다. “망설이는 건 안 찍습니다. 그건 나중에 다르게 편집됩니다.”
경민이 서명했다.
“이제 반납 시도해 봅시다.” 그가 말했다. “유라 씨, 팔찌 찬 상태로 여기 손 대세요. 빼지 마세요.”
“빼면요?”
“빼면 물건입니다. 차고 있으면 사람 손목입니다. 그 차이로 사흘은 더 버팁니다.”
유라가 손목을 봉인대 판독기에 올렸다. 판독기가 세 번 울렸다.
화면: 원소유자 없음
경민이 그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의 장부에는 원소유자 없음이라고 적힌 줄이 여덟 해 동안 열한 개 있었다.
그 아래 한 줄이 더 떴다. 처음 보는 줄이었다.
마지막 응답: 정비 8-B 구역, 번호 MJ-2208
“이거 뭡니까.” 경민이 물었다.
“팔찌가 마지막으로 통신한 상대입니다.” 직원이 말했다. “보통은 관리 서버가 뜹니다. 이건 서버가 아니라 개인 단말 번호네요.”
미래가 번호를 적었다. 오늘 새벽 압수 목록에서 본 번호는 KJ-7741이었다. 이건 달랐다.
“번호가 두 개입니다.” 미래가 말했다. “압수 목록에 하나, 여기에 하나.”
“같은 사람 겁니까.”
“모릅니다.” 미래가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확인할 방법도 없습니다. 압수 목록 원본은 관리국에 있고, 저한테는 제가 손으로 옮긴 번호만 있습니다.”
“손으로 옮긴 건 증거가 안 됩니까.”
“됩니다. 약하게요.” 미래가 수첩을 들어 보였다. “근데 약한 증거 두 개가 서로 다른 사람 손에서 나오면, 그건 강해집니다. 그래서 경민 씨 장부가 필요했습니다.”
유라의 손이 판독기에서 떨어졌다. 떨어지는 속도가 빨랐다.
그 속도를 미래가 봤다.
“유라 씨.”
“……네.”
“MJ. 이 앞 두 글자, 아세요?”
유라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창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미래가 그 침묵의 길이를 적었다. 육 초.
“정비 8-B는 제가 압니다.” 경민이 말했다. “거기 하청 팀 있었습니다. 지난달까지 여덟 명이었습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미래가 물었다.
“제가 그 사람들 장비를 운반했습니다. 한 달에 두 번요.” 경민이 장부를 넘겼다. 손으로 쓴 목록이 열 장쯤 있었다. “이름은 안 적혀 있습니다. 번호만요. 저는 물건만 세니까요.”
“번호 목록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근데 이건 회사 장부입니다. 제가 보여 드리면 제가 계약 위반입니다.”
“그럼 안 보여 주셔도 됩니다.”
“보여 드리겠습니다.” 경민이 장부를 돌렸다. “대신 기록관님이 이 페이지 찍을 때 제 이름도 같이 찍으세요. 나중에 누가 유출했냐고 물으면 답이 있어야 합니다.”
미래가 장부와 경민의 명찰을 한 프레임에 넣었다.
MJ-2208은 그 목록에 있었다. KJ-7741도 있었다. 두 번호는 같은 페이지, 다른 줄이었다.
“지난달까지요?”
“이번 달 명부에는 다섯 명입니다.”
미래가 수첩에 세 개를 나란히 적었다. 팔찌 번호 두 개, 그리고 여덟에서 다섯으로 줄어든 인원.
“유라 씨.” 그가 다시 말했다. “안 물을게요. 대신 하나만요. 그 사람,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까.”
유라가 창을 계속 봤다.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유라가 말했다.
미래가 그 문장을 그대로 적었다. 부르지 말라는 것은 그 사람이 없다는 뜻이 아니었고, 있다는 뜻도 아니었다.
경민이 팔찌 안쪽을 들여다봤다. 각인 뒷자리가 긁혀 있었고, 그 아래에 다른 각인이 겹쳐 있었다. 두 번 새긴 물건이었다.
“이 팔찌, 원래 다른 사람 겁니다.” 그가 말했다.
유라가 손목을 감쌌다.
“제가 받은 거예요.”
“누구한테요.”
대답 대신 유라가 팔찌를 안쪽으로 한 바퀴 돌렸다. 긁힌 자리가 안으로 갔다.
그 동작도 적었다. 처치실에서도 같은 동작을 봤다. 두 번 나온 동작을 미래는 습관 칸이 아니라 결정 칸에 적었고, 무엇을 결정하는지는 모른다고 그 옆에 썼다.
11시 12분. 면허 심사까지 사십 시간.
보관소 밖으로 나오면서 경민이 장부를 펼쳤다. 오늘 자 항목 아래에 손으로 한 줄을 더 적었다.
귀속 오류 1건, 수익 포기, 접수 번호 기재. 오경민.
“이건 왜 적으세요.” 미래가 물었다.
“나중에 제가 잊을까 봐요.” 경민이 말했다. “여덟 해 전엔 안 적었습니다. 그래서 여덟 해 동안 그게 없던 일이었습니다.”
유라가 두 사람보다 세 걸음 뒤에서 걸었다. 왼발 때문에 느렸고,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다.
“오경민 씨.” 유라가 불렀다.
“예.”
“그 여덟 해 전 물건요. 그거 지금 어디 있어요?”
경민이 멈췄다. 짐끈을 놓았다.
“세 점이었습니다. 하나는 팔아서 병원비로 썼습니다. 두 점은 제 창고에 있습니다.”
“돌려줄 수 있어요?”
“주인을 못 찾았습니다.”
“찾은 다음에 못 돌려준 거예요, 아니면 안 찾은 거예요?”
경민이 짐끈을 다시 잡았다.
“안 찾았습니다.” 그가 말했다. “찾으면 돌려줘야 하고, 돌려주면 하나 팔았다는 것도 말해야 합니다.”
“지금 말했잖아요.”
“지금은 기록관님이 옆에 있으니까요.”
유라가 그 말을 잠깐 생각했다.
“그럼 제가 옆에 있을게요.” 그가 말했다. “두 개는 주인 찾아 주세요. 팔린 하나는 값을 적어 두세요. 저도 제 팔찌 주인이 누군지 말해야 할 때가 올 거예요.”
경민이 장부를 다시 펼쳤다. 여덟 해 전 페이지를 찾는 손이 느렸다.
경민이 대답하지 않았다. 미래는 그 침묵을 찍지 않았다. 대신 자기 수첩에 한 줄을 적었다. 오늘 물어야 할 사람이 관리국 밖에도 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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