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옛 등대의 불은 밖에서 붙은 흔적이 없었다

계약 결혼의 열세 번째 조항 · 2026.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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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등대의 불은 밖에서 붙은 흔적이 없었다.

리디아는 젖은 천을 입가에 대고 검게 그을린 계단 앞에 섰다. 항구 경비와 북문군은 서로 다른 물통 줄을 만들었다. 아무도 서로의 손에서 물통을 빼앗지 않았지만, 손이 닿을 때마다 어깨가 굳었다. 불은 꺼지고 있었고, 불신은 아직 타고 있었다.

“기름 냄새가 없습니다.” 미레유가 말했다.

그녀는 머리카락 끝을 천으로 묶고 있었다. 누가 부르기도 전에 작은 배를 타고 온 얼굴이었다. 리디아는 반사적으로 왜 왔느냐고 묻고 싶었다. 대신 다른 질문을 골랐다.

“들어갈 수 있겠어?”

“동쪽 벽은 아직 뜨겁고, 계단 세 번째 칸이 비었습니다. 제가 들어가도 되는 이유는 있습니다. 안 들어가도 되는 이유도 세 개쯤 있고요.”

“선택해.”

미레유의 손이 잠깐 멈췄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갈게요. 단, 도시 기술자 둘이 같이 봐야 해요. 왕실 기술관만 있으면 또 혈통 이야기로 끝납니다.”

그 말에 왕실 기술관의 얼굴이 불편해졌다. 카시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등대 입구에서 한 걸음 비켜섰다. 비켜선 자리에 미레유와 도시 기술자들이 지나갈 길이 생겼다.

바렌은 파란 실을 감은 손으로 그을린 벽을 만지려다 멈췄다. “여기 벽에 이름이 있었습니다.”

“몇 명입니까?” 리디아가 물었다.

“스물일곱. 사고 때 죽은 조율 보조와 하역인들.”

“기록자가 있습니까.”

바렌은 뒤를 보았다. 젊은 여자가 그을린 장부를 들고 나왔다. “벽 이름은 제가 베껴 뒀습니다. 어제까지는요.”

“오늘 불로 지워진 이름은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리디아는 사비네에게 눈짓했다. “벽 이름 복원도 청문 의제로 넣으세요.”

청문은 연기 속에서 시작됐다. 누구도 의자에 앉지 못했다. 등대 앞 빈 나무상자 다섯 개가 좌석이 되었고, 한쪽에는 물통이 계속 오갔다. 상인평의회 대리인은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서 있었고, 도리안은 불길이 잦아들 때마다 병사 배치를 다시 했다. 그 모든 움직임 사이에서 미레유는 조율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왕실 수정 조율판은 반쯤 녹아 있었다. 그러나 녹은 가장자리는 불의 방향과 맞지 않았다. 미레유는 손가락을 대지 않고 작은 금속자를 세웠다.

“불이 먼저 아닙니다.”

왕실 기술관이 바로 말했다. “조율판이 열에 약해 먼저 틀어졌을 수 있습니다.”

“열이면 바깥쪽부터 휘어요. 여긴 중심 홈이 먼저 깨졌습니다. 누가 수정 받침을 안쪽에서 비틀었고, 그 뒤 불이 붙었습니다.”

“근거.”

미레유는 금속자를 들어 보였다. “받침 나사 둘은 검게 탔는데, 중심 핀은 은색이 남았습니다. 불 전에 빠졌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이 절단면, 왕실 수정 조각과 맞물린 흔적입니다.”

카시안이 가까이 오려다 멈췄다. “내가 확인해도 됩니까.”

미레유는 그를 보았다. “전하의 혈통 반응으로요?”

“아니. 눈으로.”

“눈은 괜찮습니다. 손은 안 됩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디아는 그 짧은 허락과 수락을 보았다. 미레유가 왕족에게 조건을 말했고, 왕족은 조건을 받아들였다. 오늘 이것은 기술 설명보다 더 큰 증거였다.

왕실 기술관은 입술을 다물었다. “그래도 재가동에는 왕실 수정 반응이 필요합니다.”

“필요해요.” 미레유가 말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습니다. 수정은 빛을 기억하고, 조율판은 방향을 잡아요. 방향을 잡는 건 도시 기술자의 표식입니다. 혈통만 있으면 불빛은 켜지지만, 배를 데려오지는 못합니다.”

리디아는 그 말을 바로 기록하게 했다. “켜짐과 유도는 다르다. 그렇게 쓰세요.”

“강의처럼 들립니다.” 엘리어스가 낮게 말했다.

“아니요.” 바렌이 말했다. “지금 우리는 그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어젯밤에도 불빛만 켜졌으면 선장이 들어왔다가 암초에 박았을 겁니다.”

엘리어스는 말없이 문장을 고쳤다. 도시 노동자의 입에서 나온 설명은 장면 밖 지식이 아니라 손실의 언어였다.

도리안이 등대 밖을 보며 말했다. “폭풍선이 올라옵니다.”

하늘은 낮아지고 있었다. 바다 쪽 구름은 회색보다 더 어두웠다. 마지막 곡물선 하나가 등대 밖 얕은 물길에 멈춰 있었다. 불빛이 틀어지면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있으면 폭풍을 맞는다. 항구 문을 닫은 사람들이 그 배의 가족이기도 했다.

“임시 유도는 가능합니까?” 리디아가 미레유에게 물었다.

미레유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점이 리디아를 안심시켰다. 즉시 가능하다고 말하는 기술자는 오늘 필요하지 않았다.

“왕실 수정 잔광을 쓰면 한 번은 가능해요. 다만 도시 표식이 필요합니다. 원래 조율사 셋이 해야 하는데 지금 둘은 부상, 하나는 문 안에 갇혔고, 조율판은 깨졌습니다.”

“대체안.”

“임시 유도선. 등대에서 배까지 빛을 잇는 얇은 별소금 줄을 설치해야 해요. 잔교 끝에서 던지는 방식은 위험하고, 폭풍 전에 한 번밖에 못 합니다.”

카시안이 물었다. “인력.”

“도시 기술자 둘, 항구 선원 넷, 북문 병사 둘. 그리고 조율 명령을 내릴 사람이 필요합니다. 왕실 기술관이 아니라, 오늘 청문에 이름을 올릴 사람이요.”

바렌이 바로 말했다. “리디아 아베른.”

그 이름이 등대 앞에서 부딪혔다. 지지처럼 들리지 않았다. 책임을 밀어 올리는 말이었다.

“왜 저입니까?” 리디아가 물었다.

“당신이 수정 경로를 확인하러 왔습니다. 그 길로 불이 났습니다. 그리고 당신 이름으로 항구 비용을 보증했습니다.”

“맞습니다.”

카시안의 시선이 그녀에게 왔다. 이번에는 대신 거절하려는 눈이 아니었다. 위험의 크기를 계산하는 눈이었다.

도리안이 말했다. “잔교는 부서졌습니다. 대표님이 나가면 호위 동선이 없습니다.”

“그럼 호위 동선을 만드세요.” 리디아가 말했다.

“군을 넣으면 노동자들이 물러납니다.”

“노동자와 같이 만드세요.”

도리안은 싫어하는 얼굴로도 바렌 쪽을 보았다. 바렌은 그 시선을 받았다. 둘이 서로를 좋아하게 될 필요는 없었다. 같은 줄을 잡으면 충분했다.

미레유는 조율판 조각을 작은 천 위에 올렸다. “이건 사고가 아닙니다. 중심 핀을 먼저 뺐고, 불은 증거를 태우려 붙였어요. 다만 누가 했는지는 몰라요. 항구 사람이 했을 수도 있고, 왕실 창고에서 온 사람이 했을 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어요.”

“확정하지 않습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그리고 제가 혼자 못 고쳐요.” 미레유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 말도 기록해요. 혼자 하면 망가뜨립니다.”

리디아는 동생을 보았다. 미레유가 혼자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능력을 작게 말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손을 정확히 세는 일이었다.

“기록합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도시 기술자 이름부터.”

기술자 둘이 이름을 말했다. 하나는 손등에 화상 자국이 있었고, 하나는 파란 실을 공구 손잡이에 묶고 있었다. 왕실 기술관은 마지못해 자기 이름도 말했다. 조율은 누구 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었다. 이름이 늘어날수록 책임도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숨을 곳이 줄었다.

“이름만으로는 부족해요.” 미레유가 말했다. “누가 어느 홈을 보는지 써야 합니다. 나중에 실패하면 전부 같은 책임으로 묶일 거예요.”

왕실 기술관이 얼굴을 찌푸렸다. “조율 책임은 왕실 기술관에게 있습니다.”

“등대 방향 홈을 왕실 기술관이 깎았나요?”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손등에 화상 자국이 있는 기술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라 벤. 동쪽 방향 홈과 물때 보정.”

파란 실을 감은 기술자가 뒤따랐다. “노엘 라크. 습도판과 별소금 소모량.”

미레유는 두 이름을 반복하게 했다. “이라 벤, 방향 홈. 노엘 라크, 습도와 소모량. 제가 잔광 계산을 하고, 왕실 기술관은 수정 조각을 만지지 않고 반응값만 읽습니다.”

“만지지 않는다고?” 왕실 기술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예. 중심 핀이 빠진 판에서 왕실 손이 먼저 닿으면, 나중에 누가 무엇을 망가뜨렸는지 구분 못 해요.”

바렌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 이름은 늘 마지막에 붙었습니다. 이번엔 처음부터 붙입니까.”

“처음부터 붙입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그리고 작업 범위도 같이 붙입니다.”

엘리어스는 젖은 종이에 칸을 그었다. 이름, 작업, 제한, 확인자. 칸은 삐뚤었다. 바람 때문에 종이가 밀렸고, 재가 잉크에 섞였다. 리디아는 그 지저분한 표를 보며 오히려 안심했다. 깨끗한 문서는 너무 자주 사람을 지웠다.

이라 벤은 왕실 기술관에게 작은 금속자를 내밀었다. “이걸 들고 빛의 폭만 읽으십시오. 판에는 대지 마십시오.”

왕실 기술관은 모욕당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카시안이 한 걸음 뒤에서 말했다. “조건을 들었습니다.”

그 말 한마디로 명령이 내려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왕실 사람이 왕실 기술관의 불만을 대신 들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남았다. 기술관은 금속자를 받아 들었다. 노엘 라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습도판을 옆으로 당겼다.

“여기서부터는 도시 표식입니다.” 노엘이 말했다. “왕실 기록관도 보십시오. 나중에 혈통 반응이라고 쓰면 틀립니다.”

리디아는 사비네에게 눈짓했다. 사비네는 젖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같은 문장을 두 벌로 적었다. 하나는 노동자 보관본, 하나는 공동심리 제출본. 두 종이의 첫 줄에 같은 이름들이 올라갔다.

바렌은 그 두 벌을 확인하고서야 그을린 벽 쪽을 가리켰다. “벽 이름 복원도 저 사람들 작업 옆에 넣으십시오. 조율판만 고치고 이름은 나중에 하자고 하면, 나중에는 또 안 옵니다.”

리디아는 바로 적게 했다. “등대 벽 희생자 명단 복원, 청문 계속 조건.”

미레유가 탄 벽을 보며 작게 말했다. “복원용 분필 자국이 남아 있어요.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읽을 수 있습니다.”

바렌의 어깨가 잠깐 내려갔다. 그건 안도보다 피로에 가까웠다. 이름이 남았다는 사실조차 누군가에게는 쉴 틈을 주었다. 리디아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 종이 가장자리까지 쓰게 했다.

첫 바람이 등대의 탄 재를 날렸다. 바다 쪽 곡물선에서 긴 신호가 왔다. 입항 유도 요청. 두 번째 신호는 짧았다. 폭풍 전 대기 한계.

미레유가 리디아에게 얇은 장갑 한 쌍을 내밀었다. “손에 묻으면 따갑습니다. 별소금 줄은 젖으면 더 빨리 타요.”

카시안이 말했다. “내가 나가겠습니다.”

바렌이 바로 반박했다. “전하가 나가면 왕실이 유도 명령을 가진 걸로 기록됩니다.”

카시안은 리디아를 보지 않고 말했다. “그럼 내가 줄을 잡는 사람 중 하나로만 간다. 명령자는 아베른 대표. 조율자는 미레유와 도시 기술자.”

미레유가 고개를 저었다. “전하 피가 가까우면 잔광이 튈 수 있어요. 도움이 되지만 위험해요.”

“어느 쪽이 큽니까.”

“지금은 도움. 손대지 않으면요.”

리디아는 장갑을 받았다. 바람이 더 거칠어졌다. 옛 등대의 불은 꺼졌지만, 마지막 곡물선은 아직 밖에 있었다.

도리안은 부서진 잔교 쪽을 살피고 돌아왔다. 외투 끝에서 물이 떨어졌다. “세 번째 판자가 비었습니다. 사람이 한 번에 둘 이상 올라가면 내려앉습니다.”

바렌이 바로 말했다. “그 판자는 원래 비어 있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수리 요청을 냈습니다.”

“지금은 원인이 아니라 무게가 문제입니다.”

“원인을 모르면 다음 판자도 같습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동시에 굳었다. 리디아는 둘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둘 다 필요한 말을 하고 있었다. 지금 건널 판자의 무게와, 나중에 빠질 판자의 이유. 어느 하나를 지우면 누군가 물에 빠진다.

“두 줄로 나눕니다.” 도리안이 먼저 말했다. “굵은 안전줄은 북문군이 잡고, 별소금 유도선은 항구 쪽이 잡습니다.”

바렌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군이 우리 허리를 당깁니다.”

“그럼 반대로.”

“군이 별소금 줄을 잡으면 빛이 튄다면서요.”

미레유가 끼어들었다. “별소금 줄은 도시 기술자와 선원이 잡아요. 안전줄은 북문군 한 명, 항구 선원 한 명씩 짝을 묶으면 돼요. 서로 못 믿으면 서로 넘어지는 걸 봐야죠.”

도리안은 그 말을 싫어했다. 바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둘 다 다른 대안을 바로 내지 못했다.

카시안은 리디아에게 손을 뻗지 않았다. “결정은 당신이 합니다.”

“결정은 기록된 조건 안에서 합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짝을 섞습니다. 명령권자는 없습니다. 구령은 선원이 합니다.”

바렌의 눈이 조금 움직였다. 도리안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동의라고 부르기에는 거칠었지만, 두 사람이 동시에 잔교 쪽으로 걸었다. 폭풍이 오기 전에 생긴 협력은 늘 이렇게 불편한 모양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폭풍은 항구가 청문을 끝내기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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