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사비네는 거울을 치우라고 했다

계약 결혼의 열세 번째 조항 · 2026.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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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네는 거울을 치우라고 했다.

“거울 앞에서 연습하면 얼굴을 봅니다.” 그녀는 대공저 응접실 중앙에 빈 의자 두 개만 남겼다. “오늘 필요한 건 얼굴이 아니라 거리입니다. 팔꿈치, 손목, 시선이 머무는 시간. 귀족들은 그걸 화목이라고 부릅니다.”

리디아는 봉인 상자 열쇠가 든 작은 주머니를 탁자 위에 두었다. 열쇠는 오늘 연회에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신문이 이미 그 위치를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 정보를 다시 노출할 이유는 없었다.

카시안은 팔을 내밀기 전에 멈췄다. “여기까지 괜찮습니까?”

그의 팔꿈치는 리디아의 손에서 반 뼘 떨어져 있었다. 리디아는 그 거리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팔꿈치 위는 잡지 않습니다. 손목을 누르지 않습니다. 제가 손가락을 두 번 두드리면 놓습니다.”

“한 번은.”

“경고입니다.”

“세 번은?”

사비네가 서류판을 내리며 말했다. “그 정도면 두 분 다 연회장 한가운데서 계약 개정 회의를 여시는 겁니다.”

리디아는 웃지 않으려 했지만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카시안은 그것을 보았는지 보지 않았는지 말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팔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리디아가 손을 얹었다. 천 너머의 근육보다, 언제든 뗄 수 있는 손가락의 위치가 먼저 느껴졌다.

“미소도 계약에 넣으실 겁니까?” 사비네가 물었다.

“필요합니까?”

“필요하지만 조항으로 만들면 너무 늦게 웃으십니다.”

사비네는 동선표를 다시 펼쳤다. “입장할 때는 세 걸음 같이 걷고, 인사 뒤에는 공녀님이 반 걸음 먼저 물러납니다. 너무 가까우면 소문을 덮는 대신 다른 소문을 만듭니다. 너무 멀면 오늘 연회의 목적을 실패합니다.”

“목적은 화목입니까, 무효 의혹 차단입니까?”

“공식 문서에는 화목, 실제 목적은 차단입니다.”

카시안이 동선표 끝을 눌렀다. “질문이 별도 침실로 오면.”

“대답은 제가 합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질문이 제게 오면.”

“제게 넘기십시오. 단, 미리 정한 호칭 안에서.”

사비네가 그 말을 표시했다. “호칭: 공녀, 대공비, 리디아 아베른. 이름 단독 사용은 사전 합의 없음.”

카시안은 그 줄을 보았다. “확인했습니다.”

왕궁 연회장은 향 냄새와 낮은 음악으로 가득했다. 베아트리체는 둘을 중앙 동선에 세웠고, 좌석 간격을 일부러 좁혔다. 리디아의 의자는 전보다 낮지 않았지만, 카시안의 의자와 너무 가까웠다. 거리가 줄어드는 방식도 권력이었다.

“두 분이 나란히 앉으니 왕실이 안정되어 보입니다.”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안정은 의자보다 회의록에서 먼저 확인됩니다.” 리디아가 답했다.

왕대비는 웃었다. “오늘은 회의록이 아니라 잔을 드는 자리입니다.”

오스윈 측 귀족 하나가 잔을 들고 다가왔다. “급한 혼인이었으나 두 분께서 뜻을 잘 맞추신다니 다행입니다. 대공저 생활도 곧 하나로 정리되겠지요?”

별도 침실을 묻는 말이었다. 리디아는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경고 신호를 보낼 만큼 가까운 위협은 아니었다.

카시안이 먼저 말했다. “리디아가 답할 겁니다.”

이름은 계획에 없었다. 공녀도, 부인도, 대공비도 아니었다. 리디아. 아주 작은 변화였고, 연회장에서는 큰 소리보다 오래 남았다.

리디아의 손가락이 그의 팔 위에서 멈췄다. 두 번 두드리면 그는 놓을 것이다. 그녀는 두드리지 않았다. 현장에서 이름을 거절하면 질문 주도권이 귀족에게 넘어갔다. 받아 주면 사후에 이유를 물을 수 있었다.

“대공저 생활은 정리 중입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문이 둘인 것은 불화의 증거가 아니라 합의한 경계입니다. 왕실과 귀족원도 문이 여러 개라고 매일 내전이 일어나지는 않지요.”

귀족은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늦게 결정했다. 주변에서 몇 사람이 작게 웃었고, 베아트리체의 부채가 한 번 접혔다.

오스윈은 멀리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는 끼어들지 않았지만, 그의 곁에 선 젊은 귀족이 다시 잔을 들었다.

“합의한 경계라면, 합의가 깨질 때도 있겠군요.”

리디아는 카시안의 팔에 얹은 손을 그대로 두었다. “깨질 수 있는 것이 합의입니다. 깨질 수 없으면 명령이지요.”

“부부 사이에 명령이 그렇게 나쁩니까?”

카시안이 이번에는 대답했다. “전장에서는 빠릅니다. 집에서는 오래 갑니다.”

그 짧은 문장에 귀족은 말을 잃었다. 리디아는 그가 자신을 대신 변호한 것이 아니라, 질문의 종류를 바꾼 것임을 알았다. 그녀는 손가락을 두드리지 않았다.

연회 중반에 춤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왕국의 안정을 위해 첫 춤을 보여 주십시오.”

리디아는 카시안의 팔에서 손을 뗐다. 이번에는 신호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카시안이 말했다. “오늘 공개 동행에는 춤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공 전하께서 북문 부상 때문에 피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둘의 결정입니다.”

리디아는 건배잔을 들었다. “대신 공동 건배는 하겠습니다. 오늘 공개할 것은 균형이지, 넘어진 뒤 붙잡는 장면이 아닙니다.”

몇몇 귀족이 실망한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그들은 화목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렬도 얻지 못했다. 리디아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건배 뒤 카시안은 잔을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났다. 사람들 눈에는 여전히 가까운 거리였지만, 리디아의 손이 닿지 않는 거리였다. 합의된 접촉이 끝났다는 신호였다.

베아트리체는 둘을 그대로 보내지 않았다. “대공비, 오늘은 왕실 가족석에서 차를 드시지요.”

가족석은 중앙보다 안쪽이었다. 가까운 자리였고, 빠져나오기 어려운 자리였다. 리디아는 잠깐 의자 간격을 보았다. 왕대비는 낮은 의자를 쓰지 않았다. 이번에는 같은 높이의 의자 두 개를 너무 가까이 놓았다.

“차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다만 오늘은 공동 건배 뒤 항구 배급 보고를 받아야 합니다. 오래 앉지는 못합니다.”

“부부의 첫 환영연보다 배급표가 먼저입니까?”

“오늘 환영받는 자리가 임시 의석 때문이라면, 그 의석의 조건이 먼저입니다.”

베아트리체의 미소는 무너지지 않았다. “실무적인 며느리군요.”

“실무적인 대표이기도 합니다.”

카시안은 그 말에 손을 내밀지 않았다. 리디아가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는 통로를 남겼다. 그 작은 비동작이 오늘 연회에서 가장 사적인 협조였다.

귀환 마차 안은 연회장보다 조용했다. 사비네는 앞마차로 옮겨 탔다. 리디아는 장갑을 벗지 않고 물었다.

“이름으로 부른 이유를 듣겠습니다.”

카시안은 변명하지 않았다. “질문을 당신에게 돌리려 했습니다. ‘부인’이라고 부르면 제 보호 아래 답하는 모양이 됩니다. ‘아베른 공녀’라고 부르면 혼인 안정 질문을 피하는 모양이 됩니다.”

“그래서 사전 합의를 바꿨습니까?”

“그렇습니다.”

“현장에서는 허용했습니다. 동의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음에는 먼저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리디아는 창밖을 보았다. 왕궁 불빛이 멀어지고 있었다. 이름 하나가 오래 남았다. 오래 남는다고 해서 곧바로 허락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신호를 보낼 시간이 없으면요?”

“그때는 하지 않습니다.”

그 답은 늦지 않았다. 리디아는 그 점을 따로 기록하지 않았다. 다만 손가락 두 번 두드리는 신호를 장갑 안에서 다시 접었다.

“오늘 이름을 받아 준 이유를 오해하지 마십시오.” 리디아가 말했다.

“오해하지 않겠습니다.”

“현장 판단이었습니다.”

“다음 현장 판단도 사후에 확인받겠습니다.”

마차 바퀴가 대공저 돌길에 들어섰다. 리디아는 창에 비친 자신의 손을 보았다. 팔짱을 끼었던 손은 멀쩡했다. 멀쩡하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합의된 접촉은 흔적을 남겼고, 그 흔적을 어떻게 부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연회장에서 손을 두 번 두드리지 않았습니다.” 카시안이 말했다.

“필요하면 했을 겁니다.”

“필요하지 않았습니까?”

리디아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이름으로 불린 순간은 필요와 불필요 사이에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쓸모가 있었고, 사적으로는 합의 밖이었다.

“현장에서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사후에는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그 차이를 기억하겠습니다.”

“기억만으로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카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공개 행사 전 호칭표를 다시 만들겠습니다.”

그 말은 우스꽝스러울 수 있었다. 이름을 표로 만들겠다는 남편은 보통 연애담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리디아는 그 방식이 지금의 그들에게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감정이 아니라 절차로 시작한 관계라면, 절차가 감정을 막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호칭표에 미소도 들어갑니까?” 리디아가 물었다.

카시안은 잠깐 생각했다. “사비네가 반대할 겁니다.”

“그건 맞습니다.”

짧은 웃음이 마차 안에 생겼다가 사라졌다. 둘 중 누구도 그 웃음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대공저 정문에 닿기 전 사비네가 탄 앞마차가 먼저 멈췄다. 리디아는 커튼 사이로 전실 불빛을 보았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연회에서 정보가 더 새었습니까?” 카시안이 물었다.

“아직 모릅니다.” 리디아는 장갑 끝을 정리했다. “하지만 새지 않았다고 믿을 이유도 없습니다.”

“신문이 나오면 같은 방 압박이 올 겁니다.”

“같은 방은 여전히 거절합니다.”

“같은 마차는.”

“상황을 보고 결정합니다. 오늘처럼 조건이 나뉘면 일부는 받을 수 있습니다.”

카시안은 그 대답을 받아 적을 것처럼 잠깐 시선을 내렸다. “전부 아니면 전무가 아니군요.”

“전부 아니면 전무는 협상보다 항복에 가깝습니다.”

마차 문이 열렸다. 카시안은 먼저 내리고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연회장 안에서는 팔을 내밀었지만, 대공저 문 앞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리디아는 그 차이를 보았다. 차이를 봤다는 사실이 또 하나의 흔적이 됐다.

대공저 전실에 도착하자 사비네가 초판 신문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제목은 굵었다.

사비네의 장갑 끝에는 잉크가 묻어 있었다. 초판을 사 온 손이 아니라, 인쇄소 사람과 종이를 두고 다툰 손이었다.

“정정 요청은 넣었습니다.” 사비네가 말했다. “하지만 내일 아침판 전에는 어렵습니다. 편집자는 ‘문이 둘’이라는 제목이 너무 잘 팔린다고 했습니다.”

“출처는요?”

“익명 제보. 다만 봉인 상자 삽화는 말로 들은 사람이 그린 수준이 아닙니다. 본 사람이거나, 본 사람의 설명을 들은 사람입니다.”

카시안은 신문을 펼쳐 삽화 아래 작은 문장을 읽었다. “연결문 열쇠는 봉인 상자 안에 있다. 이 문장은 사실입니다.”

“사실이라서 더 나쁩니다.” 리디아가 말했다. “거짓이면 반박하면 됩니다. 사실은 왜 말했는지 찾아야 합니다.”

사비네는 다음 장을 넘겼다. “기사 끝에는 혼인 무효 청구 가능성을 암시했습니다. 아직 청구는 아닙니다. 독자가 먼저 말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리디아는 연회장에서 손을 놓은 순간을 떠올렸다. 그 합의된 거리마저 누군가에게는 무효의 재료가 됐다.

“오늘 연회에서 손을 놓은 장면도 기사에 붙을 겁니다.” 사비네가 말했다.

“그럼 붙이게 두세요.” 리디아는 신문 가장자리를 눌렀다. “손을 놓을 수 있다는 사실까지 무효 증거로 쓰겠다면, 다음에는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들 겁니다.”

카시안이 낮게 말했다. “그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저도요.”

두 대답은 동시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쪽에 놓였다. 사비네는 그 짧은 침묵을 보고도 웃지 않았다. 대신 기사 아래쪽의 작은 삽화를 가리켰다.

“삽화가 문제입니다. 열쇠 위치만이 아니라 상자 모서리의 흠까지 맞습니다.”

리디아는 신문을 더 가까이 당겼다. 흠은 작았다. 동관에서 상자를 옮길 때 생긴 자국이었다. 왕실 등록본만 본 사람은 알 수 없었다.

“대공저 안쪽 눈이 필요했다는 뜻이군요.”

“네. 그리고 그 눈은 기사 작성자에게 상자를 설명할 만큼 가까웠습니다.”

카시안은 상자 삽화를 손끝으로 누르지 않았다. “전실 출입자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문이 둘인 신혼.

리디아는 신문을 펼쳤다. 기사에는 별도 침실뿐 아니라 연결문 열쇠가 봉인 상자에 있다는 정보까지 적혀 있었다. 삽화 속 상자는 실제보다 조금 작았지만, 잠금 장치 위치는 정확했다.

“정보원은 대공저 안에 있습니다.” 사비네가 말했다.

카시안은 신문을 접지 않았다. 리디아도 접지 않았다. 접지 않은 종이 위에서 봉인 상자가 너무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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