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문 밖에 있다
내가 구한 사람들 때문에 미래가 틀렸다 · 2026. 11. 5.
조회수 0
약은 문 밖에 있다
보냉함 온도는 8.7도였다. 인슐린 보관 기준보다 높았고, 버릴 수 있을 만큼 높지는 않았다. 최명숙은 뚜껑을 닫지 않고 손등으로 냉기를 확인했다. "열어 둔 시간 길면 더 갑니다. 빨리 정해요."
아이의 보호자는 체육관 중간 구역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이는 해열제를 먹고도 눈을 잘 뜨지 못했다. 그 옆에는 2-B에서 나온 노인 한 명이 숨을 짧게 쉬었다. 약국 주인은 그 노인의 약 봉투를 뒤지며 말했다.
"이분 항생제는 종류가 안 맞습니다. 밖 보냉함에 있는 건 아이한테는 쓸 수 있는데, 노인에게는 안 맞아요. 인슐린은 우리 안쪽 환자 둘에게 필요합니다."
"밖 사람은?" 장유라가 물었다.
"아이 하나, 노인 셋 후보. 확인 전."
후보라는 말이 이번에는 사람을 밀어냈다. 장유라는 그걸 알면서도 지우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은 사람을 확정 환자로 올리면 안쪽 환자들이 사라진다.
백현우는 문 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흰 선 너머에서 라디오를 열고 있었다. "약은 들어갔고 사람은 묶였습니다. 이게 구조입니까?"
장유라가 문틈 앞에 섰다. "의료 우선순위입니다."
"편한 말이네요."
"불편해서 공개합니다. 안쪽 인슐린 필요 환자 둘, 열성 아이 하나, 호흡 곤란 노인 하나. 밖은 아이 하나 확인, 노인 셋 후보. 약품은 해열제 가능, 항생제 부분 불일치, 인슐린 온도 경계."
그녀는 모두를 살리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숫자와 상태를 내놓았다. 선 밖에서도, 선 안에서도 사람들이 듣고 있었다.
채소영은 체육관 아이들의 줄을 더 뒤로 물렸다. 새 아이가 들어오자 보호자 없는 아이들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기 때문이다. "보러 가지 않습니다. 새로 온 친구가 쉬어야 합니다."
"왜 저 친구만 약 먹어요?" 한 아이가 물었다.
"지금 열이 더 높아서요. 네 차례가 필요하면 선생님이 부릅니다."
설명은 짧고 정확했다. 질투를 나쁜 감정으로 몰지 않았다. 아이도 자기 컵을 내려놓고 앉았다.
최명숙은 약품표가 아니라 실제 보냉함을 들었다. "이거 계속 열면 다 버립니다. 결정 안 된 약은 닫고, 쓸 약만 빼요."
"검증 끝나기 전에 닫으면..." 임도윤이 말했다.
"사진 찍었죠? 온도 찍었죠? 그럼 닫아요. 기록하다가 약 죽이면 기록이 약 먹여 줍니까?"
그녀의 말이 맞았다. 임도윤은 사진을 확인하고 뚜껑을 닫게 했다. 기록과 보존도 물성 앞에서는 속도를 맞춰야 한다.
장유라는 약국 주인과 체육관 보조 의료인, 채소영을 불렀다. "우선순위 말하세요. 제가 결정합니다."
약국 주인이 먼저 말했다. "안쪽 인슐린 환자 둘은 지연하면 위험합니다. 밖 보냉함 온도는 경계지만 아직 사용 가능. 해열제는 새 아이에게 쓰고, 밖 아이 상태 확인 뒤 나눌 수 있습니다. 항생제는 종류 확인 전 보류."
채소영이 말했다. "밖 아이를 못 들이면 안쪽 아이들이 그걸 봅니다. 문이 사람을 자르는 장면이 되면 체육관이 흔들립니다. 하지만 안쪽 환자 약을 빼면 바로 생명 위험입니다."
"결론."
"약 먼저 분배. 밖 아이는 상태 확인용 진입. 보호자는 한 명. 노인 셋은 호흡과 의식 확인 뒤 순서."
장유라는 나를 보지 않았다. 좋았다. 이 결정은 미래 기억이 아니라 의료와 대피 질서의 문제였다.
문 밖에서 백현우가 말했다. "사람은 줄이고 약만 들인다. 결국 그거군요."
"아니요." 장유라가 답했다. "약으로 살릴 수 있는 사람부터 살립니다. 사람을 못 들이는 이유도 같이 씁니다. 당신이 밖 질서를 잡고 있으면, 밖 환자 상태를 거짓 없이 넘기세요."
"내가 당신 밑으로 들어가라는 말입니까."
"아니요. 당신이 통제하는 사람들의 상태를 당신 이름으로 책임지라는 말입니다."
백현우는 라디오를 잠깐 끊었다. 흰 선 밖에서 완장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통제권을 잃지 않으려 했고, 장유라는 통제권에 책임을 붙이고 있었다. 둘 다 물러서지 않았다.
두 번째로 들어온 것은 사람보다 먼저 종이였다. 밖 아이의 체온, 의식, 호흡, 보호자 확인. 노인 셋 중 하나는 의식 명료, 하나는 보행 가능, 하나는 호흡 빠름. 백현우의 글씨는 짧고 딱딱했다. 거짓말을 줄이려는 사람의 글씨가 아니라, 책임을 남기기 싫어하는 사람의 글씨였다. 그래도 이름이 붙었다. `작성: 백현우`.
장유라는 그 종이를 보고 결정했다. "밖 아이 진입. 호흡 빠른 노인 진입. 나머지 둘은 선 밖 대기. 해열제 분할, 인슐린 안쪽 환자 우선. 항생제 보류."
보호자 하나가 소리쳤다. 자기 어머니가 왜 못 들어오느냐고 했다. 장유라는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의식 명료, 보행 가능, 현재 호흡 안정. 다음 확인 조건은 15분 뒤 체온과 호흡. 거짓이면 다음 진입권 잃습니다."
"사람을 차례표로 봐요?"
"차례표 없이 보면 힘센 사람이 먼저 들어옵니다."
그 말에 백현우가 웃음을 흘렸다. "그건 맞네요."
"웃을 일이 아닙니다."
"압니다."
그는 정말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더 싫었다. 단순한 악의가 아니라, 혼란을 본 사람이 만든 선이었다. 그러나 선은 이미 사람을 나누고 있었다.
밖 아이와 호흡 빠른 노인이 들어왔다. 장유라는 직접 들것을 잡았고, 채소영은 체육관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위치에서 손짓했다. "새로 들어온 분들은 치료 구역. 질문은 나중. 자리 지켜 주세요."
치료는 빠르게 진행됐다. 해열제가 들어갔고, 인슐린은 안쪽 환자 둘에게 먼저 갔다. 약국 주인은 빈 앰플을 바로 버리지 않고 투명 봉투에 넣었다. 누가 어떤 약을 받았는지 나중에 싸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열은 20분 뒤 38.8로 내려갔다. 노인의 호흡도 조금 길어졌다. 구체적 생존이 있었다. 대신 문 밖에서는 두 사람이 아직 기다렸다. 그 사실도 지워지지 않았다.
백현우가 세 번째 라디오를 열었다. "장유라. 당신 기준은 통했습니다. 그런데 내 선이 없었으면 약도 여기까지 못 왔습니다."
"그 선 때문에 사람도 못 왔습니다."
"둘 다 맞겠죠."
그가 처음으로 뒤를 돌아봤다. 회색 보관 상자는 여전히 차량 안에 있었다. 장유라는 그쪽을 보지 않는 척했다.
최명숙은 보냉함을 다시 열기 전에 손을 씻었다. 물을 아끼려고 소독제로만 끝내려다가, 약국 주인이 고개를 저었다. "인슐린 팩 만질 거면 물 써야 합니다."
"아까 물 아끼라고 내가 소리쳤는데."
"이번엔 써야 합니다."
그녀는 불평하지 않고 작은 대야에 손끝만 씻었다. 보리동에서 물은 감정이 아니라 절차가 됐다. 쓰면 기록하고, 안 쓰면 이유를 적는다. 그녀는 손을 털며 말했다. "손 씻은 물 300밀리. 약품 검증용. 이걸로 싸우면 나한테 와요."
검증대 주변에는 줄이 생기지 않았다. 채소영이 줄 대신 이름표를 붙였다. 안쪽 인슐린 환자 둘, 새 아이, 밖 아이 후보, 호흡 빠른 노인. 종이 네 장이 바닥에 간격을 두고 놓였고, 약은 그 사이를 오갔다. 사람들이 약병을 따라 움직이려 할 때마다 906호 남자가 몸으로 막았다.
"나도 환자 가족입니다." 누군가 말했다.
906호 남자는 대답을 잘 못했다. 그는 싸움에는 익숙했지만 기준을 말하는 데는 서툴렀다. 채소영이 대신 말했다. "환자 가족이면 약병이 아니라 환자 자리 옆에 있어야 합니다. 여기 오면 순서가 흐립니다."
그 사람은 욕을 삼키고 물러났다. 완벽한 설득이 아니었다. 그러나 문 앞이 아니라 환자 옆으로 돌아갔다. 작은 이동이 체육관 전체의 압력을 낮췄다.
장유라는 백현우와 계속 라디오를 열어 뒀다. "밖 보냉함 두 번째는 어디에 있습니까."
"내 차 옆."
"온도."
"확인 중."
"확인 중이면 보유 약품이 아닙니다."
"말 참 편하게 하네요."
"당신이 편하게 숨기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백현우는 웃지 않았다. 완장 남자에게 시켰는지, 잠시 뒤 체온계가 아니라 주방용 온도계 수치가 왔다. 10.1도. 인슐린용으로는 더 나빴고, 해열제와 일부 항생제에는 아직 쓸 여지가 있었다. 장유라는 그 값을 공개 칸에 넣었다. 백현우의 통제 아래 있던 물건이 보리동 기준표 안으로 들어왔다. 통제권이 조금씩 깎이는 소리였다.
약품을 쓰는 순서는 결정됐지만, 결정됐다고 몸이 바로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안쪽 인슐린 환자 보호자는 자기 가족 이름을 세 번 말했다. 약국 주인은 세 번 모두 대답하지 않고 앰플 눈금을 봤다. 보호자는 화를 냈다. "들었어요? 우리 아버지 이름."
"들었습니다. 이름으로 용량 안 재요."
"사람이 이름이지 숫자입니까."
"지금은 둘 다입니다."
그는 앰플을 들어 보였다. 빛에 비친 눈금이 흔들렸다. 손이 떨린 건 약국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용량을 다시 확인했고, 임도윤은 투약 시각을 적었다. 가족은 이름을 지키려 했고, 약국 주인은 몸을 지키려 했다. 둘 중 하나만 고르면 싸움이 된다. 둘을 같은 기록에 넣는 수밖에 없었다.
새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일 때는 더 오래 걸렸다. 아이가 삼키지 못해 보호자가 울먹였고, 채소영이 컵을 기울이는 각도를 잡아 줬다. "한 번에 넣지 마세요. 혀 위에 닿으면 뱉습니다. 입술에 묻히고 기다려요."
보호자는 시키는 대로 했다. 아이는 반쯤 흘리고 반쯤 삼켰다. 약국 주인이 흘린 양을 보고 보충량을 계산했다. 그 계산이 너무 세밀해 보여 누군가 뒤에서 욕했다. "애가 죽게 생겼는데 방울 세고 있네."
약국 주인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방울 안 세면 두 번째 아이 약 없습니다."
욕한 사람은 입을 닫았다. 세밀함은 차가운 게 아니라 나눠 쓰기 위한 몸부림일 때가 있다. 보리동 사람들은 그걸 보고도 쉽게 좋아할 수 없었다. 약을 받은 사람과 못 받은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이다.
백현우는 그 틈을 찔렀다. "안쪽에서 약 다 쓰면 밖 사람한테 뭐라고 합니까?"
장유라가 답했다. "사용량 공개합니다. 남은 약도 공개합니다."
"공개하면 약 생깁니까?"
"거짓 희망은 안 생깁니다."
"희망도 없애는군요."
"거짓 희망은 사람을 문으로 밀어 넣습니다."
백현우는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그는 이미 밖에서 그 압력을 막고 있었다. 희망이라는 말이 예쁘게 들릴 때도 있지만, 문 앞에서는 힘이 된다. 힘은 사람을 눌러 죽일 수 있다.
그는 반박 대신 두 번째 보냉함을 차 안쪽으로 밀어 넣으라고 지시했다. 문틈 카메라에서 흰 완장 둘이 보냉함을 들어 차량 뒷문 안으로 넣는 게 보였다. 약이 멀어졌다. 말이 아니라 물건으로 한 압박이었다.
"기준표가 마음에 안 들면 약을 숨깁니까?" 장유라가 물었다.
"숨기는 게 아니라 보관합니다. 내 선 안쪽 약입니다."
"환자 상태를 보내지 않으면 보관 약으로 기록합니다. 구조 약이 아닙니다."
백현우의 대답이 늦었다. 그는 약을 쥔 사람이었지만, 약을 구조 약으로 인정받아야 자기 선도 명분을 얻는다. 잠시 뒤 두 번째 보냉함은 다시 차 밖으로 나왔다. 대신 완장 하나가 그 옆에 섰다. 협조가 아니라 담보였다.
그때 새 아이의 보호자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밖에 있는 애는 제 조카예요. 약을 나누면..."
약국 주인이 손을 멈췄다. 모두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안쪽 인슐린 환자 보호자 둘도 몸을 세웠다. 가족이라는 말은 기준표를 찢기 쉽다.
장유라는 보호자 앞에 섰다. "조카라는 사실은 기록합니다. 우선순위는 증상으로 봅니다."
"가족인데요."
"그래서 숨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약은 가족 순서로 쓰지 않습니다."
보호자의 얼굴이 무너졌다. 채소영은 그에게 물러서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종이에 `새 아이 보호자 / 외부 아이와 친족 관계 / 결정 영향 없음`이라고 적어 보이게 붙였다. 지워지지 않는 감정도 표 안에 들어갔다. 표가 차갑기만 한 게 아니라, 차가워지려고 버티는 장치라는 걸 사람들이 조금씩 보기 시작했다.
30분 뒤 첫 결과가 나왔다. 안쪽 인슐린 환자 하나는 손 떨림이 줄었고, 다른 하나는 의식이 또렷해졌다. 새 아이의 체온은 38.6까지 내려갔다. 밖 아이는 아직 들어오지 못했지만, 백현우 쪽에서 보낸 수치로는 38.9였다. 나빠졌지만 당장 의식이 떨어진 상태는 아니었다. 그 한 줄 때문에 추가 개방은 10분 뒤로 밀렸다.
보호자는 그 사실을 듣고 벽을 쳤다. 장유라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벽 치면 아이들이 놀랍니다."
"제 조카가 밖에 있어요."
"압니다."
"알면 열어요."
"지금 열면 안쪽 노인 산소가 밀립니다. 10분 뒤 재확인합니다."
그는 주저앉았다. 누구도 그에게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괜찮지 않았다. 다만 다음 확인 시각이 있었다. 사람은 희망만으로 기다리지 못한다. 시각과 조건이 있어야 버틴다.
최명숙은 그 시간표 옆에 물 사용량을 붙였다. 해열제 투약용 120밀리, 손 씻기 300밀리, 노인 입 적심 40밀리.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묻자 그녀는 "나중에 왜 네 가족은 못 마셨냐고 물을 때 보여 주려고요"라고 답했다. 싸움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싸울 때 거짓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최명숙이 보냉함 바닥을 닦다가 손을 멈췄다. "이거 뭐예요."
인슐린 팩 아래에는 얇은 판이 깔려 있었다. 판을 들자 바닥에 파란 봉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민간 약품 상자에 있을 이유가 없는 표식이었다.
국가연속성본부 봉인이 약 상자 바닥에서 나왔다.
이번 화가 재미있었나요?
좋아요와 평점은 언제든 변경할 수 있습니다.
독자 평점 아직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