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흰 선 안쪽

내가 구한 사람들 때문에 미래가 틀렸다 · 2026.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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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선 안쪽

흰 선은 페인트가 아니었다. 보리동 서쪽 외곽 도로 위에 석회 가루와 흰 테이프, 편의점 진열대에서 떼어 온 플라스틱 칸막이가 겹쳐 있었다. 그 뒤에 민간 경비 차량 두 대가 비스듬히 서 있었고, 차 사이에는 약품 보냉함을 든 사람들과 아이 하나가 앉아 있었다.

장유라는 무전기를 내리고 직접 나갔다. 내가 따라가려 하자 그녀는 헬멧 끈을 조이며 말했다. "조건만 주세요."

"우리 쪽 압력 12.9. 문 완전 해제 불가. A키 보유, B키 미확인. 외부 인원 후보 14, 약품 후보. 흰 완장 둘 이상. 백현우 추정 인물 확인 전."

"좋아요. 현장 판단은 제가 합니다."

그녀는 구조대원 둘과 채소영이 보낸 보호자 확인 담당 한 명만 데리고 갔다. 최명숙은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장유라가 막았다. "관리소장님은 안쪽 배급표를 잡아야 합니다. 밖에서 약을 보면 안쪽 물이 흔들립니다."

"그럼 밖에서 무슨 일이 나는지 누가 봐요."

"제가 봅니다. 그리고 숨기지 않습니다."

외곽문은 완전히 열리지 않았다. A키로 내부 점검문만 열고, 사람 하나가 몸을 비틀어 나갈 만큼의 틈을 만들었다. 문 틈으로 찬 바람과 소독약 냄새, 젖은 먼지가 들어왔다. 보리동 사람들은 문을 보고 한 걸음씩 밀렸다. 채소영의 방송이 뒤에서 붙잡았다.

"문으로 이동하지 않습니다. 가족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문 앞 인원은 현장팀뿐입니다."

흰 선 앞 남자는 검은 경비 점퍼를 입고 있었다. 왼팔에 흰 완장이 묶여 있었는데, 새 천처럼 깨끗했다. 재난 뒤 급히 찢은 천이 아니었다. 그는 약품 보냉함을 든 여자를 자기 뒤에 세우고, 아이를 선 안쪽에 앉혔다. 사람과 물건을 분리한 배치였다.

"장유라 구조대장." 그가 먼저 말했다. "이름은 압니다."

"당신 이름부터."

"백현우. 이 구역 정리 중입니다."

"정리 권한은 누가 줬습니까."

"바닥이 줬죠. 선 없으면 사람들이 밀고, 밀면 아이부터 깔립니다."

그는 손짓했다. 흰 선 뒤쪽에는 실제로 질서가 있었다. 약품을 든 사람들은 한 줄로 앉아 있었고, 부상자 둘은 차량 그늘에 눕혀져 있었다. 완장 남자 하나가 물을 나눠 줬고, 다른 하나는 들어오려는 사람을 막았다. 폭력만 있는 선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장유라는 선 앞에서 멈췄다. "약품 목록."

백현우는 종이를 내밀지 않았다. 보냉함 뚜껑을 열어 멀리서 보여 줬다. "해열제, 항생제, 인슐린. 이름은 안 넘깁니다. 안쪽에서 약만 가져가고 사람 버릴 수 있으니까."

"사람도 약도 검증해야 합니다."

"검증하다가 이 애 열이 더 오르면요?"

그는 아이의 이마에 손등을 댔다. 아이는 힘없이 앉아 있었지만 의식은 있었다. 감정으로 순서를 뒤집기 좋게 배치된 장면이었다. 장유라는 아이에게 달려가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체온."

백현우가 옆 사람을 봤다. "39.2. 귀 체온계. 세 번 잼."

"호흡."

"빠른데 막히진 않습니다."

"보냉함 온도."

이번에는 백현우가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는 약품을 보호한다면서 온도표를 보지 않았다. 장유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사람과 약을 구분한다면서 약 상태는 안 봤네요."

백현우의 얼굴이 굳었다. "우리 쪽엔 의료인이 없습니다."

"그러면 통제권을 줄이세요."

"줄이면 밟힙니다."

둘은 같은 아이를 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선을 봤고, 한 사람은 호흡을 봤다. 나는 문 안쪽에서 무전을 들으며 손에 쥔 노트 모서리를 접었다. 끼어들고 싶었다. 그러나 이 충돌은 내 계산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채소영의 담당자가 문 틈으로 작은 판을 밀어 보냈다. `아이 의식 있음 / 체온 39.2 / 약품 온도 미확인 / 동행자 수 14 후보`. 장유라는 그 판을 들어 백현우에게 보였다.

"이 기준으로 들입니다. 먼저 약품 검증자 하나, 아이와 보호자 하나, 증상 있는 노인 하나. 나머지는 선 밖 대기. 당신 인력은 문 안으로 못 들어옵니다."

백현우가 웃었다. 웃음보다 턱이 먼저 굳었다. "내 사람을 못 들이면, 내 질서는 밖에 남습니다."

"맞습니다."

"그럼 안쪽 질서가 밖 사람을 먹겠네요."

"아니요. 안쪽 기준이 밖으로 나갑니다. 검증자는 당신이 보는 앞에서 약을 확인하고, 사람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들입니다."

그는 잠깐 침묵했다.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어서 더 오래 걸렸다. 그 사이 흰 완장 하나가 아이 쪽으로 물병을 내밀었다. 아이는 받지 못했다. 손에 힘이 없었다. 장유라가 한 발 앞으로 갔다.

백현우가 손을 들었다. 완장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빠르고 훈련된 움직임이었다. 이 조직은 즉흥 군중이 아니었다. 사전에 나눠 준 완장, 역할이 정해진 차, 막는 사람과 나눠 주는 사람이 분리된 배치. 질서가 있었다. 그 질서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아직 별개였다.

"선 넘지 마세요." 백현우가 말했다.

"아이 호흡이 변했습니다."

"우리도 봅니다."

"보는 걸로 안 됩니다. 해열 조치 시작합니다."

장유라는 선을 넘지 않고 무릎을 낮췄다. 구급 가방에서 냉각 패드와 체온계를 꺼내 바닥 위로 밀었다. "당신 쪽 사람이 붙이세요. 위치 말해 줍니다."

백현우는 거절하지 않았다. 완장 남자가 패드를 붙였고, 장유라는 손가락으로 위치를 지시했다. 아이 호흡이 조금 느려졌다. 흰 선은 그대로였지만, 선 너머로 처치가 지나갔다.

"성과는 있네요." 백현우가 말했다.

"그러니까 문을 여세요."

"문 열면 더 들어옵니다."

"그래서 범위를 정했습니다."

"범위를 정하면 버려지는 사람도 정해집니다."

"네." 장유라는 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기록합니다. 숨기지 않고."

무전 너머 체육관이 조용해졌다. 모두를 구한다는 말은 쉬웠다. 버려지는 사람을 기록하겠다는 말은 어렵다. 그러나 장유라는 그 어려운 쪽을 택했다.

백현우는 보냉함 하나를 들어 흰 선 가까이 가져왔다. "약 먼저. 사람은 그다음."

"아이와 보호자 같이."

"보호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셋입니다."

채소영의 담당자가 바로 질문지를 내밀었다. 마지막 식사, 아이가 부르는 호칭, 복용 약, 신발 색. 감정이 아니라 확인 가능한 생활 질문. 세 사람 중 한 명만 대답을 이어 갔다. 그는 아이의 왼쪽 신발 끈이 늘 풀린다고 말했다.

아이는 힘없이 발을 움직였다. 왼쪽 끈이 두 번 묶여 있었다.

"보호자 후보 1명." 담당자가 말했다.

백현우의 눈이 조금 달라졌다. 안쪽 절차가 사람을 빼앗는 장치만은 아니라는 걸 본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세 명 먼저. 약품 검증자, 아이, 보호자." 장유라가 말했다.

"노인은?"

"두 번째 회차. 체온과 호흡 확인 뒤."

백현우는 자기 쪽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흰 선 일부가 열렸다. 아이와 보호자가 먼저 움직였고, 보냉함을 든 여자가 뒤따랐다. 완장 남자 하나가 같이 들어오려 하자 장유라가 팔로 막았다.

"여기까지."

완장 남자는 백현우를 봤다. 백현우는 고개를 아주 작게 저었다. 질서가 실제로 작동했다. 그래서 그가 더 위험한 중간 보스였다. 주먹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문 안쪽에서 최명숙이 보냉함을 받았다. "온도부터."

채소영은 아이와 보호자를 체육관 가장자리로 보내지 않고 중간 구역에 앉혔다. "새로 들어온 사람은 보이는 곳. 구경거리가 아니라 놓치지 않으려고요."

아이의 체온은 39.4였다. 해열제는 실제였다. 항생제 종류는 맞지 않는 것도 섞여 있었다. 인슐린 보냉함 온도는 경계선이었다. 약은 들어왔고, 사람은 일부만 들어왔다. 승리와 폭력이 같은 문틈에 있었다.

장유라는 보냉함을 넘긴 여자에게 바로 돌아가라고 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면 온도 유지 못 합니다. 검증 끝날 때까지 문 안쪽 보이는 자리.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백현우 쪽을 봤다. 허락을 기다리는 눈이었다. 장유라는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여기서는 당신이 말합니다. 누가 줬고, 어디서 받았고, 얼마나 열었습니까."

"백 팀장님이..."

"당신 손에 든 약입니다."

여자는 보냉함 손잡이를 더 세게 잡았다. "남부병원 앞 편의점 냉장고에서 옮겼어요. 처음엔 전기 있었고, 11시쯤 꺼졌습니다. 얼음팩은 세 개였는데 하나는 밖 아이한테 썼어요."

약국 주인이 뚜껑을 다시 열지 않고 적었다. "인슐린 사용 가능성 낮아짐. 해열제 우선. 항생제는 출처 확인 전 보류."

백현우의 라디오가 날카로워졌다. "그 여자를 취조합니까?"

"약을 살리는 중입니다." 최명숙이 먼저 답했다. "사람 겁주는 말 그만하고, 밖 남은 얼음팩 있으면 갯수 말해요."

밖에서 짧은 소란이 났다. 백현우가 누군가를 막는 소리, 완장 남자가 줄을 뒤로 물리는 소리, 아이 보호자가 기침하는 소리가 겹쳤다. 무질서가 아니라 통제된 소란이었다. 백현우는 밖 사람들을 눌렀고, 눌린 사람들은 그의 선을 욕하면서도 선을 넘지 못했다. 그것도 능력이었다. 그 능력이 우리 문으로 들어오면 안 됐다.

채소영은 새로 들어온 아이 곁에 앉아 보호자에게 낮게 물었다. "아이 이름 크게 부르지 마세요. 다른 아이들이 반응합니다. 손 잡고, 물은 한 모금만."

"우리 애 살 수 있습니까?"

"지금 해열 반응을 봅니다. 살 수 있다고 약속하지 않고,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그 문장에 보호자가 울음을 삼키려다 실패했다. 채소영은 등을 두드리지 않았다. 울음이 커지면 아이들이 움직인다. 그녀는 대신 컵을 보호자 손에 쥐여 주고, 아이의 손을 그 컵에 닿게 했다. 체온계 숫자가 39.1로 내려갔다.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체육관 안쪽 사람들이 그 숫자를 들었다.

한서진은 방송 문장을 고쳤다. "외부 진입 아이 해열 반응 확인. 진입 인원은 현재 세 명. 추가 진입 조건은 별도 공지합니다."

"좋은 소식만 말하면 밖에서 밀립니다." 내가 말했다.

"그래서 뒤에 붙일 겁니다." 서진이 마이크를 다시 켰다. "문 밖 대기자 다수. 미진입자는 버려진 사람이 아니라 다음 확인 대상입니다. 누구도 문 앞에 모이지 않습니다."

백현우가 라디오로 낮게 말했다. "말은 그럴듯하네요."

"당신도 말 말고 숫자 주세요." 서진이 답했다. "밖 아이 둘째 체온, 노인 호흡, 남은 약품."

침묵 뒤에 숫자가 왔다. 백현우는 협조하지 않는 척하면서 정보를 줬다. 선을 지키려면 안쪽 기준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모순을 기록했다. `백현우: 통제권 유지 목적 / 정보 제공 시작 / 신뢰 아님`.

숫자가 들어오자 체육관 안쪽 반응도 갈렸다. 누군가는 "그럼 더 들여야지"라고 했고, 누군가는 "밖 숫자 때문에 우리 애 약 줄어든다"고 했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더 험했다. 채소영은 두 목소리를 싸움으로 두지 않고 같은 종이에 적었다. `추가 진입 요구 / 내부 자원 감소 우려`. 글자가 붙자 목소리는 조금 낮아졌다. 사라진 게 아니라 보이는 곳으로 옮겨 간 것이다.

최명숙은 그 종이를 보고 새 칸을 만들었다. "추가 진입 이야기하려면 물도 같이 써요. 사람 하나 들어오면 마실 물, 씻을 물, 화장실 물까지 붙습니다."

"사람을 물통으로 계산해요?" 새 아이 보호자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최명숙이 그에게 몸을 돌렸다. "아니요. 물통 계산 안 하면 사람을 못 살려요. 당신 아이도 방금 물 한 모금으로 약 삼켰습니다."

보호자는 더 말하지 못했다. 잔인한 말처럼 들렸지만, 최명숙은 아이를 깎아내리지 않았다. 살린 일을 유지하려고 필요한 숫자를 붙였다. 그 차이를 모두가 좋아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숨길 수는 없었다.

장유라는 문 밖을 향해 말했다. "백현우. 다음 진입 논의 전, 밖 물 보유량과 기저질환 후보를 보냅니다."

"내가 왜 안쪽 표 채우는 사람입니까."

"당신 선 안쪽 사람을 당신이 잡고 있으니까요."

"그럼 내 선을 인정하는 겁니까."

"존재를 인정합니다. 정당성은 별개입니다."

백현우는 이 대답을 싫어했다. 그러나 끊지 않았다. 곧 물 보유량이 왔다. 500밀리 병 네 개, 절반 남은 통 하나, 얼음팩 두 개. 숫자는 초라했다. 흰 선이 질서처럼 보였지만, 선 안쪽 자원은 오래 버틸 양이 아니었다. 그의 질서도 시간에 물렸다.

임도윤은 문틈 사진을 세 장만 찍었다. 더 찍으면 밖 사람 얼굴이 들어간다. 그는 파일 이름을 `white_line_entry_031`로 붙이고, 개인 식별 사진은 따로 잠갔다. 기록도 무기가 된다. 잘못 공개하면 백현우보다 우리가 먼저 사람을 줄 세우게 된다.

장유라가 라디오를 다시 열었다. "키 B 호송대는 왜 늦었습니까."

백현우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밖에서 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가 움직였다는 뜻이었다.

"그 차, 그냥 지나가면 뒤에 있던 사람들이 매달렸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래서 세웠고, 약부터 내렸고, 사람을 줄 세웠습니다."

"호송 지연 사유가 당신 통제입니까."

"지연이 아니라 선별입니다."

"같은 말 아닙니까."

"아니죠. 지연은 못 간 거고, 선별은 보낸 순서가 있는 겁니다."

그 말은 변명이면서 사실이었다. 키 B가 늦은 이유는 도로가 막혀서만이 아니었다. 백현우가 호송대 일부를 자기 선 안에 붙잡고, 약과 사람과 열쇠를 따로 세웠기 때문이다. 질서가 시간을 먹었다.

그때 장유라의 무전이 낮아졌다. "한이겸 씨. 백현우 뒤 차량, 회색 상자 확인."

민채가 카메라 화면을 확대하지 않고 밝기만 낮췄다. 차량 뒷좌석에 금속 보관 상자가 있었다. 본부 호송대에서 쓰는 봉인 형태와 같았다. 상자 손잡이에는 작은 표식이 붙어 있었다.

B-KEY / HAEUL AUX GATE.

백현우가 키 B 보관 상자를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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