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의 법칙
내가 구한 사람들 때문에 미래가 틀렸다 · 2026. 10. 15.
조회수 0
셀의 법칙
급수실 문손잡이에 감긴 천이 젖었다. 문상필은 손을 떼지 못한 채 우리를 봤고, 회색 밸브는 30도쯤 돌아간 자리에서 멈춰 있었다. 본부 채널의 요청은 같은 문장을 반복했다. 셀 5 급수 저하. 보리동 저장수 우선 전환. 비협조 시 자동 전환.
"자동 전환은 아직 없습니다." 민채가 말했다. "예약 명령은 들어왔지만 마지막 물리 밸브가 여기 있어요. 대신 우리가 안 돌려도 17분 뒤에 압력 차가 커지면 자동 잠금이 걸릴 수 있어요."
"17분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임도윤이 물었다.
"수치가 아니라 지연 패턴이에요. 방금 파란 선 굵어진 뒤 우리 압력이 떨어지기까지 17분. 한 번뿐이라 확정은 아니고, 다음 변화를 보면..."
"그럼 확정처럼 말하지 마." 장유라가 잘랐다.
민채는 입술을 눌렀다가 보드에 적었다. `부하 전이 관측 지연: 17분 후보 / 반복 확인 전`. 숫자가 사람을 속이는 방식은 간단하다. 한 번 맞으면 규칙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 유혹을 이제 조금 알았다.
최명숙은 급수실 사진 옆에 물통 표를 붙였다. "보리동 필수 보유 31개. 즉시 이동 가능 8개. 상태 불명 7개. 근데 여기서 셀 5로 넘기면 화장실 제한은 더 세게 가야 해요."
체육관에서 바로 항의가 올라왔다. 906호 가족이었다. 아이 둘과 노모 한 명, 그리고 반쯤 찬 욕조 물을 가지고 있었다. 그 집은 전날 밤 단수 소문을 듣고 물을 받아 둔 몇 안 되는 집이었다. 남자는 자기 집 욕조 물은 자기 가족 몫이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닫힌 셀에서 사유와 공동은 같은 수도관을 쓴다.
장유라가 현장에 가려 하자 최명숙이 손을 들었다. "제가 갑니다. 이건 구조대가 가면 겁먹습니다."
나는 따라가려다 멈췄다. 지역 운영 회의에 참여한다는 건 중앙 해법을 내놓는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신발을 신고 기다리는 일이었다.
906호 현관 앞에는 물통 다섯 개와 젖은 수건이 놓여 있었다. 남자는 문을 절반만 열었다. 뒤에서는 노모가 작은 의자에 앉아 있었고, 아이 하나가 페트병을 끌어안고 있었다.
"뺏으러 온 거 아닙니다." 최명숙이 먼저 말했다.
"공동 표에 올리면 뺏는 거지."
"표에 안 올리면 나중에 당신 집이 제일 먼저 의심받아요. 물 숨겼다고. 그때는 내가 못 막습니다."
남자의 눈이 흔들렸다. 최명숙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욕조 물은 식수 안 됩니다. 화장실용이나 청소용. 애들 먹일 물은 따로 표시해야 해요. 지금 공동 표에 올리면 식수 배급에서 빼지 않습니다. 대신 화장실 물 내림 순서에 그 집 욕조 물을 씁니다."
"왜 우리 집 화장실을 남이 씁니까."
"안 씁니다. 물만 옮깁니다. 그리고 당신 어머니 약 시간은 빨간 표에 올립니다. 숨기면 잊힙니다."
노모가 먼저 말했다. "올려라. 나 약 끊기면 네가 더 고생한다."
아이 하나가 페트병을 더 꼭 안았다. 채소영은 무릎을 낮췄다. "그 병은 네가 들고 있어도 돼. 대신 병에 이름 말고 구역 표시만 붙이자. 잃어버리면 찾게."
남자는 결국 문을 더 열었다. 욕조 물의 양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반신욕 욕조가 아니라 플라스틱 아기 욕조 두 개와 큰 대야 하나였다. 과장된 소문이 복도에서 이미 물탱크 하나로 부풀어 있었다. 최명숙은 양을 직접 보고 표를 고쳤다. `906호 생활용수 42리터 / 식수 아님 / 공동 화장실 보조 가능`.
그 숫자 때문에 회의가 바뀌었다. 보리동은 셀 5로 물을 넘길 수 없다는 결론이 아니라, 무엇을 넘길 수 없는지 먼저 알게 됐다. 식수는 보류. 생활용수 일부는 내부 위생 보조. 급수 라인은 닫힘 유지. 셀 5에는 관측값 요청 재송신.
관리실로 돌아오자 본부 채널이 다시 열렸다. "셀 3 응답 지연. 우선 전환 명령 대기 중."
"답신합니다." 한서진이 말했다. "보리동 압력 12.9, 운영 인원 1,375, 식수 필수 보유 부족. 셀 5 병원 인원, 물탱크 잔량, 대체 수원, 전력 교환값을 요구합니다. 출처는 보리동 수동 계측과 주민 장부."
감독관이 얼굴을 굳혔다. "본부가 그 형식을 받을지 모릅니다."
"받으라고 보냅니다." 서진은 마이크를 켰다. "보리동 내부 방송입니다. 셀 5 물 요청에 대해 현재 관측값을 요구했습니다. 지금은 물을 넘기지 않습니다. 대신 물 사용 제한은 강화합니다. 욕조 물, 대야 물 등 생활용수는 식수와 구분해 층 대표에게 신고해 주세요."
복도에서 항의가 터졌다. "신고하면 뺏잖아!"
최명숙이 방송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식수는 안 뺏습니다. 생활용수는 같이 씁니다. 거짓말하면 배급표에서 맨 뒤로 갑니다. 사정 있으면 적으세요. 소리 지르면 물이 늘지 않습니다."
그녀의 말은 부드럽지 않았지만, 필요한 구멍이 있었다. 사정 있으면 적으세요. 사람들은 자기 사정을 말할 자리를 얻으면 덜 부순다.
나는 회의표 한쪽에 `12시간 자율 예산`을 썼다. 셀은 중앙 지원 없이 12시간을 버티도록 설계됐다. 그 설계는 이상적인 평균 인원과 정상 장비를 전제로 했다. 지금 보리동은 1,375명, 발견된 대피소, 수문 카운트다운, 키 B 부재, 셀 5 요청을 동시에 안고 있었다.
"12시간 예산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내가 말했다.
"그럼 왜 씁니까." 문상필이 물었다.
"기준선입니다. 실제는 계속 깎입니다. 물은 9시간대, 전력은 8시간대, 통신은 창이 열릴 때만. 셋을 따로 봐야 합니다."
장유라가 보드에 세 줄을 그었다. "물, 전력, 통신. 하나를 살리면 뭐가 죽는지 옆에."
민채가 전력 쪽에 적었다. `산소 발생기 유지 -> 냉장 전원 감소`. 최명숙은 물 쪽에 적었다. `화장실 제한 -> 감염 위험 증가`. 채소영은 통신 쪽에 적었다. `가족 확인 지연 -> 문 이동 시도 증가`. 셀의 법칙은 시스템 화면에 있지 않았다. 사람마다 포기할 수 없는 것 옆에서 드러났다.
906호 남자가 다시 내려왔다. 그는 페트병 두 개를 들고 있었다. "식수 아니고, 아까 대야 물 일부입니다. 화장실용으로."
최명숙은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표에 적고 도장을 찍었다. "906호 생활용수 6리터 공동 사용. 어머니 약 시간 13시 40분 확인."
남자는 그제야 고개를 숙였다. 감사보다 기록이 먼저였다.
민채가 단말을 봤다. "셀 5 답신 없음. 대신 병원 셀 전압이..."
화면의 셀 5 경고가 급수에서 전력으로 바뀌었다. 파란 선은 얇아졌지만, 노란 전력 표시가 아래로 떨어졌다. 우리가 물을 지킨 대가인지, 본부의 다른 전환 때문인지 아직 몰랐다. 모르면 원인으로 쓰지 않는다.
장유라는 급수실 앞에서 다시 회의를 열었다. 회의라고 해도 의자는 없었다. 문상필은 손바닥에 난 붉은 자국을 찬물 대신 물티슈로 닦았고, 교대자는 밸브 손잡이를 그대로 잡고 있었다. 최명숙은 물통 표를 든 채 서 있었고, 채소영은 체육관 무전기를 스피커로 열어 두었다. 나는 문짝에 종이를 붙였다.
"선택지는 셋입니다. 물 전환 거부, 일부 전환, 본부 자동 명령 대기."
최명숙이 바로 잘랐다. "셋째는 선택지에서 빼요. 손 놓는 걸 선택이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임도윤은 펜을 움직였다. "자동 명령 대기는 현장 선택 포기로 기록."
감독관이 얼굴을 굳혔다. "그 표현은 본부 지침을 거부하는 문장입니다."
"아니요." 채소영이 무전으로 말했다. "주민에게 할 수 있는 일을 알려 주는 문장입니다. 자동 대기는 하지 않는다고만 방송하세요. 겁먹어야 할 말은 짧게 해야 합니다."
906호 남자가 다시 손을 들었다. "우리 집 생활용수 6리터 말고 더 내면 셀 5로 보내는 겁니까?"
최명숙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건 보리동 화장실 보조. 셀 5로는 관측값 오기 전까지 식수도 생활용수도 안 갑니다. 대신 우리가 보낼 수 있는 건 형식입니다."
"형식이 물입니까?"
한서진이 낮게 답했다. "가끔은요. 저쪽이 뭘 말해야 물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면, 계속 살려 달라는 말만 보냅니다."
그 말은 차갑게 들렸지만 정확했다. 살려 달라는 말만으로는 어느 밸브를 얼마나 돌릴지 정할 수 없다. 셀의 법칙은 잔인해서가 아니라, 연결된 설비가 사람의 울음소리를 단위로 받지 않기 때문에 필요했다.
민채가 17분 후보를 다시 확인했다. 파란 선 변화 시각, 압력 하락 시각, 셀 5 전압 경고 시각. 세 숫자는 예쁘게 맞지 않았다. 17분, 11분, 23분. 그녀는 후보 칸에 `부하별 지연 다름`이라고 적었다.
"좋습니다." 내가 말했다. "단일 규칙 아님."
"칭찬처럼 말하지 마세요. 저 방금 틀린 거예요."
"틀린 후보가 줄었습니다."
민채는 펜 뚜껑을 물려다 채소영이 보는 걸 알고 멈췄다. "그럼 다음부터 부하 종류를 붙일게요. 물, 전력, 통신. 같은 17분으로 묶지 않기."
이것도 셀의 법칙이었다. 같은 화면에 뜬 선이라도 물과 전기는 같은 속도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같은 숫자도 출처가 다르면 다른 행동을 낳는다.
서진은 본부로 보낼 답신을 다시 썼다. `보리동 압력 12.9, 운영 인원 1,375, 식수 필수 보유 부족. 셀 5 병원 인원, 물탱크 잔량, 대체 수원, 전력 교환값 요구. 자동 대기하지 않음.` 문장은 공격적이지 않았지만 물러서지도 않았다.
감독관은 끝까지 서명하지 않았다. 대신 송신을 막지도 않았다. 그 회색 지대도 기록됐다.
채소영은 체육관에서 같은 내용을 아이들에게 다른 말로 바꿨다. "오늘 물은 세 가지예요. 마시는 물, 씻는 물, 아직 모르는 물. 마시는 물은 선생님들이 지킵니다. 씻는 물은 같이 아낍니다. 아직 모르는 물은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아이 하나가 손을 들었다. "아직 모르는 물은 뭐예요?"
"누가 마셔야 하는지 아직 정하지 못한 물."
어른들이 듣기에는 이상한 문장이었지만,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모르는 물. 그 말이 체육관을 지나 복도까지 퍼졌다. 사람들이 자기 물통을 들고 내려오며 "이건 마시는 물", "이건 씻는 물"이라고 말했다. 라벨이 붙자 싸움의 모양이 바뀌었다. 가진 물을 숨기는 대신 분류를 다투기 시작했다. 분류 싸움은 피곤하지만, 적어도 물통을 빼앗는 싸움보다는 느리다.
최명숙은 그 말을 자기 표에 채택했다. "좋아요. 식수, 생활용수, 미정. 미정은 내가 확인하기 전까지 아무도 못 건드립니다."
장유라는 급수실 교대자 손목을 확인했다. "5분마다 교대. 손 저리면 말하기."
"괜찮습니다." 교대자가 말했다.
"괜찮다는 말은 상태가 아닙니다. 저림, 통증, 힘 빠짐 중 하나로 말하세요."
그는 멋쩍게 손가락을 폈다. "저림."
"교대."
작은 규칙들이 늘었다. 물을 지키는 일은 밸브 하나를 붙드는 장면으로 끝나지 않았다. 손목, 라벨, 방송 문장, 이의 제기 칸, 아이의 질문까지 같은 예산 안에 들어왔다.
급수실 문 앞에는 교대표를 보러 온 사람들이 늘었다. 자기 이름이 올라가면 불려 나갈까 봐 피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름이 없으면 나중에 물을 못 받을까 봐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 최명숙은 두 반응을 같은 칸에 넣지 않았다.
"일할 수 있는 사람, 일하면 안 되는 사람 따로 써요. 허리 아픈 사람한테 밸브 맡기면 그 사람도 밸브도 망가집니다."
채소영은 보호자 없는 아이를 맡은 어른들을 제외 명단에 넣었다. "아이 옆에 있어야 하는 사람은 쉬는 게 아니라 맡은 일을 하는 겁니다."
그 문장으로 몇몇 얼굴이 풀렸다. 노동만 기여가 아니었다. 움직이지 않는 것도 셀 예산의 일부가 됐다.
나는 그 표를 보고 `자율 예산`이라는 말을 지웠다. 대신 `사람이 버틸 시간`이라고 썼다. 같은 뜻은 아니었다. 예산은 숫자를 줄이는 말이고, 버틸 시간은 누가 어떤 자세로 남아 있는지 묻는 말이었다. 보리동은 이제 그 둘을 같이 봐야 했다.
서진은 그 문장을 방송하지 않았다. 대신 "물, 전력, 통신은 따로 줄어듭니다. 각 구역 대표는 세 항목을 섞어 말하지 마십시오"라고 읽었다. 설명은 줄고 행동은 남았다. 주민 대표들은 불평하면서도 자기 종이를 세 칸으로 접었다.
세 칸으로 접힌 종이는 복도 끝까지 돌았다. 한 사람은 전력 칸에 냉장고를 쓰려다 지우고 약품이라고 다시 썼다. 욕망이 사라진 게 아니라, 이유를 달아야 하는 모양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수정 자국을 보며 처음으로 회의가 늦기만 한 절차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늦는 동안 거짓말이 줄어들 때도 있었다.
그 줄도 현재 관측이었다.
하지만 숫자는 내려가고 있었다.
물을 지킨 대가처럼, 인접 병원 셀의 전압이 급락했다.
이번 화가 재미있었나요?
좋아요와 평점은 언제든 변경할 수 있습니다.
독자 평점 아직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