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동 봉쇄
내가 구한 사람들 때문에 미래가 틀렸다 · 2026.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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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동 봉쇄
체육관 바닥이 낮게 울렸다. 농구 코트 중앙에 붙은 테이프가 떨리고, 아이들이 앉아 있던 매트의 모서리가 한쪽으로 말렸다. 전광판의 방벽 그림은 이미 닫혀 있었지만,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는 늦게 도착했다. 건물이 먼저 알고, 사람은 나중에 들었다.
"줄, 다시 세웁니다. 앉은 사람부터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자 목소리가 체육관 반대편에서 곧게 나왔다. 채소영은 노란 비상 조끼를 입지 않았다. 교사 명찰이 달린 회색 카디건 차림이었다. 대신 손에는 출석부와 절연 테이프, 목에는 오래된 호루라기가 걸려 있었다. 무장 요원 하나가 명단을 내밀라고 손을 뻗자, 그녀는 출석부를 등 뒤로 뺐다.
"아이 이름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건 위치와 보호자 연락 가능 여부입니다."
"지금은 국가 비상..."
"그래서 더 안 줍니다. 아이 이름을 문 밖에 붙이면 보호자가 한꺼번에 몰립니다."
요원은 대답을 찾지 못했다. 나는 관리실에서 내려온 지 7분째였고, 손에는 아직 외부 지원 불가 문구가 찍힌 종이가 있었다. 원래 시간선의 보리초 지하 체육관은 임시 대피소로 쓰이지 않았다. 학교는 정전 뒤 열리지 못했고, 주민들은 주상복합 로비와 지하 주차장으로 몰렸다. 그 기억의 신뢰도는 이제 C도 아까웠다. 지금 눈앞에는 아이 186명, 보호자 없는 노인 23명, 젖은 운동화 냄새, 그리고 체육관 한쪽 벽을 타고 내려온 가는 균열이 있었다.
"균열 위치." 내가 말했다.
채소영이 나를 보았다. "먼저 명단입니다."
"벽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지하 체육관이면 침수 때..."
"명단이 없으면 벽이 멀쩡해도 사람이 빠집니다."
장유라가 내 옆에서 바로 끼어들었다. "둘 다 합니다. 한이겸 씨, 균열은 사진만. 채 선생님, 명단은 위치 기준으로."
채소영은 망설이지 않았다. "반별 명단은 접습니다. 현재 구역 명단으로 바꿉니다. 무지개 매트, 농구대 아래, 무대 옆, 출입문 앞. 보호자 없는 아이는 손등에 파란 점. 약 먹는 아이는 빨간 점. 이름은 제 장부와 층 대표 장부에만 남깁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말했다. 어렵지 않은 단어, 한 문장 뒤 이유 하나. "움직이면 찾기 어려워져요. 선생님이 부르면 손만 들어요." 울던 아이 하나가 손을 내리려다 다시 들었다. 명령이 아니라 놀이 규칙처럼 들린 모양이었다.
나는 균열 쪽으로 갔다. 페인트가 세로로 갈라진 자리는 손톱이 들어갈 만큼 얇았다. 물이 새지는 않았고, 벽 안쪽에서 바람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바닥 가까운 몰딩에 주황빛 가루가 묻어 있었다. 장갑으로 문지르자 거칠게 갈렸다.
오경태에게 사진을 보냈다. 병원 내선은 세 번 끊긴 뒤 연결됐다.
"색만 보고 겁먹지 말아요." 오 반장의 숨이 거칠었다. "그거 환기축 먼지일 수도 있고, 방벽 보강재일 수도 있어요. 건드리지 말고 표식만 붙여. 애들 가까이 못 오게 하고."
"방벽 보강재면?"
"그 말을 지금 방송하지 마. 확인 전에는 먼지야. 먼지지만 못 밟게 해."
나는 테이프로 반원을 그었다. 설명은 하지 않았다. 설명하면 사람들은 벽을 본다. 지금 필요한 건 벽을 피해서 줄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채소영은 체육관 바닥에 다른 선을 그리고 있었다. 중앙선을 기준으로 왼쪽은 가족 동반, 오른쪽은 보호자 확인 대기. 무대 아래는 약품과 보냉함. 출입문 옆은 이동 가능자. 그녀는 한 손으로 테이프를 뜯고, 다른 손으로 출석부 모서리를 눌렀다. 손끝이 조금 젖어 있었다. 땀인지, 바닥 물기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교실에서 내려온 인원만입니까?" 내가 물었다.
"아니요. 학원차에서 내린 애들, 운동장 지나가던 주민, 3동 경로당 분들 섞였습니다."
"공식 대피 명단에는 학교 인원만 있습니다."
"그래서 공식 명단이 틀렸습니다."
짧은 문장이었다. 최명숙 관리소장이 했던 말과 같은 방향이었다. 미래 기억만 틀리는 게 아니었다. 현재의 공식 문서도, 업데이트가 끊기면 곧 거짓말이 된다.
체육관 입구에서 보호자들이 몰렸다. 자기 아이 이름부터 확인해 달라는 소리가 겹쳤다. 요원이 다시 나섰지만, 총보다 명단이 더 위험했다. 채소영은 호루라기를 한 번 짧게 불었다. 날카로운 소리가 천장에 부딪혀 돌아왔다.
"보호자 확인은 층별 대표를 통해 합니다. 여기서 이름을 소리치면 아이들이 움직입니다. 움직이면 잃어버립니다."
"내 애가 안 보인다잖아요!"
"그럼 더 크게 부르면 안 됩니다." 그녀는 보호자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옷 색, 마지막 위치, 같이 있던 사람을 말하세요. 이름은 제 귀에만."
보호자는 입을 벌렸다 닫았다. 장유라가 곁에서 손짓했다. "이쪽. 한 명씩."
줄이 만들어졌다. 완전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새치기를 했고, 누군가는 요원에게 따졌다. 그래도 앞뒤가 생겼다. 앞뒤가 생기면 압사 위험은 줄어든다. 대피소의 첫 구조는 들것이 아니라 줄이었다.
민채가 체육관 입구에 작은 단말을 세웠다. "오프라인 시계 동기화. 현실 10:31. 네트워크 02:17 고정. 체육관 온도 19도. 배터리 41퍼센트."
"온도는 왜?" 채소영이 물었다.
"보냉함, 아이 저체온, 체육관 문 개방 시간 때문에요. 제가 다 아는 건 아니고... 일단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좋아요. 온도 담당은 민채 학생. 직접 못 하면 적을 사람 붙이세요."
민채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학생이라고 낮춘 말이 아니었다. 담당이라고 올린 말이었다. 그녀는 바로 주머니에서 색펜을 꺼냈다. "온도표는 무대 옆에 붙일게요. 손전등 있는 분 두 명 필요해요."
한서진의 방송이 체육관 스피커로 들어왔다. "보리동 셀 3 내부 안내입니다. 외곽문으로 이동하지 마십시오. 학교 지하 체육관은 현재 임시 대피소로 운영됩니다. 명단은 이름 공개가 아니라 위치 확인 방식으로 관리합니다. 보호자 확인은 층별 대표와 교사에게만."
스피커 잡음이 길게 끌렸다. 채소영은 방송이 끝나기 전에 손을 들었다. "화장실."
"뭐요?" 내가 물었다.
"화장실 줄이요. 물 사용 제한이면 여기서 싸움 납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체육관 뒤쪽 화장실 앞에는 이미 아이들 몇 명이 줄을 섰고,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은 채 벽에 기대 있었다. 나는 방벽 수문과 외부 통신만 보고 있었다. 대피소는 물 한 번 내리는 일에서 무너질 수도 있었다.
"사용 횟수 제한해야 합니다." 내가 말했다.
채소영이 바로 반박했다. "횟수보다 순서입니다. 아이, 노약자, 의료 필요자 먼저. 물 내림은 관리자가 합니다. 손 씻기는 물티슈. 남자 화장실 한 칸은 물통 보관으로 닫습니다."
"주민들이 싫어할 겁니다."
"그래서 이유를 붙입니다. 수압 지키려고요."
그녀는 이미 종이에 쓰고 있었다. 큰 글씨, 짧은 문장. `화장실은 줄서기. 물 내림은 담당자만. 수압을 지키기 위해서.` 교실 문장 같았다. 그러나 지금 이 문장은 수문 명령만큼 중요했다.
나는 보드에 `체육관 운영권: 채소영`이라고 썼다. 손이 한 번 멈췄다. 운영권이라는 단어가 나를 밀어냈다. 하지만 밀려나는 게 맞았다. 나는 이 체육관에서 아이 이름을 모른다. 화장실 줄도 모른다. 벽의 균열은 볼 수 있지만, 사람의 움직임은 채소영이 더 빨리 읽었다.
"채 선생님." 내가 말했다. "체육관 대피소 운영은 선생님이 맡으세요. 저는 자원표와 외부 위험만 공유합니다."
채소영은 내 말을 칭찬처럼 받지 않았다. 오히려 바로 조건을 붙였다. "운영권이면 규칙을 어긴 사람을 내보낼 권한도 있습니까?"
"내보내면 위험합니다."
"그럼 내보내지 않고 멈출 권한. 무장 요원도 포함해서요."
요원이 얼굴을 굳혔다. 장유라가 그에게 말했다. "현장 안전 규칙입니다. 따르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함합니다. 단, 생명 구조 판단은 장유라 씨와 공유."
"좋습니다."
협상은 그렇게 끝났다. 따뜻한 합의가 아니라 작동 가능한 경계였다. 채소영은 요원에게 팔찌형 번호표를 나눠 주게 했다. 요원의 표정은 나빴지만, 손은 움직였다. 권한을 빼앗긴 사람도 할 일이 생기면 덜 위험해진다.
벽 균열 근처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딱, 하고 타일 아래 빈 곳이 울리는 소리. 아이 둘이 테이프 반원 안으로 공을 굴렸다. 채소영이 먼저 달려갔다. 그녀는 아이를 야단치지 않고 공을 집어 들었다.
"이 공은 지금 선생님이 보관합니다. 이유는 벽 때문이에요. 벽은 무서워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가지 말라고 표시한 겁니다."
아이 하나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등이 아주 잠깐 굳었다. 물이 차오르는 공간에서 판단이 늦어진다는 character card의 문장을 나는 아직 몰랐다. source를 읽은 사람인 지금은 알지만, 한이겸인 나는 관찰만 할 수 있었다. 그녀는 굳은 손을 출석부 모서리에 대고 다시 움직였다. 멈추지 않는 것으로 충분했다.
체육관 입구에 있던 남자가 그 틈을 타 안쪽으로 들어오려 했다. 그는 아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내 조카 파란 점인지 빨간 점인지 확인만"이라고 말했다. 말은 합리적이었지만 발은 선을 넘었다.
채소영은 그의 팔을 잡지 않았다. 몸으로 막지도 않았다. 출석부를 닫고 물었다. "조카가 약을 먹습니까?"
"아니요."
"다쳤습니까?"
"그건 아닌데..."
"그럼 지금 확인 순서가 아닙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들어오면, 선생님 둘이 아이들 줄을 버리고 당신을 막아야 합니다. 그 사이 약 먹는 아이가 늦어집니다."
남자는 얼굴을 붉혔지만 물러났다. 장유라가 작게 말했다. "좋은 제압이네요."
"제압 아니에요. 순서 설명입니다."
그 차이를 나는 보드에 적었다. 대피소 규칙은 사람을 밀어내는 벽이 아니라, 다음 사람이 다치지 않게 하는 순서였다.
관리실에서 임도윤의 무전이 왔다. "본부 위성 중계 단말 인증 재시도 창이 열립니다. 5분 미만입니다. 외부 통신 가능하면 어떤 자료부터 보냅니까?"
보낼 것이 너무 많았다. 수문 카운트다운, 체육관 인원, 셀 1 일부 정전, YS 로그, 7C 예약. 예전 같으면 노트 원본을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이번에는 체육관 보드를 봤다. 아이 이름이 가려진 위치 명단, 약품 온도표, 화장실 규칙, 균열 반원.
감독관은 단말 가방을 책상에 올리며 보안 봉인을 뜯지 않았다. "본부 보고 양식이 있습니다. 시설 상태, 사망자 예측, 우선 통제 지점 순으로 올려야 합니다."
"사망자 예측은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귀하가 가진 미래 자료가..."
"현재 배급에 쓰지 않습니다. 원본은 보관 중이고, 실무 기준에서 제외했습니다."
감독관의 시선이 내 주머니 쪽으로 내려갔다. 노트가 거기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권태묵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노트 전체가 아니라, 노트를 근거로 본부가 먼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임도윤이 사이에 섰다. "한이겸 씨의 원본 기억 자료는 현재 압수나 제출 상태가 아닙니다. 긴급 송신은 현장 생명 보호 자료로 제한합니다."
"그 판단을 누가 승인합니까?"
장유라가 체육관 입구에서 돌아섰다. 헬멧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다. "여기서 숨 쉬는 사람들이요. 창 닫히기 전에 보낼 겁니까, 승인 싸움 할 겁니까?"
감독관은 입술을 눌렀다. 그는 악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절차에 매달린 사람의 얼굴이었다. 절차가 사람을 살릴 때도 있고, 통신 창을 먹어 버릴 때도 있다. 지금은 후자였다.
채소영은 체육관 보드에서 아이 이름이 있는 장을 한 장 떼어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개인명 빠진 위치표만 보내세요. 보호자 확인표는 안 됩니다."
"밖에 보호자가 있으면 찾아야 하지 않습니까." 감독관이 말했다.
"밖이 열려 있을 때 찾습니다. 지금 보내면 문으로 몰립니다."
그녀는 한 아이의 신발 끈을 묶어 주며 말했다. 시선은 아이 발에 있었고, 판단은 통신실에 있었다. 그게 이 대피소에서 그녀의 권한이었다.
"체류 인원과 운영 규칙부터." 내가 말했다. "그 다음 수문 카운트다운. 개인 명단은 보내지 않습니다."
채소영이 나를 봤다. 처음으로 방어가 조금 풀린 얼굴이었다. "사람을 세는 방식부터 보내 주세요. 그래야 밖에서도 우리를 숫자로만 못 봅니다."
서진이 방송실에서 답했다. "자료 압축합니다. 외부 송신 성공 여부는 확인 전까지 방송하지 않습니다."
체육관 스피커가 두 번 끊겼다. 네트워크 창이 열릴 때마다 흰 잡음이 먼저 들어왔다. 민채가 오프라인 시계를 들어 올렸다.
"현실 시각 10:34. 외부 통신 창, 예상 3분 뒤 종료."
나는 보드의 마지막 빈칸에 썼다. `송신 우선순위: 체류 방식 / 수문 / 자원.` 글자를 다 쓰기도 전에 단말 화면의 흰 줄이 얇아졌다.
외부 통신 창이 3분 뒤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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