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11분 전

내가 구한 사람들 때문에 미래가 틀렸다 · 2026.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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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전

흰 화면에 02:17이 번졌다. 천장 패널이 한 장씩 내려앉고, 탄 절연체 냄새가 목 안쪽에 눌어붙었다. 손바닥에는 사망자 명단이 붙어 있었다.

나지원의 목소리는 잡음에 잘려 한 단어만 남았다.

“한 번뿐입니다.”

레버는 젖어 있었다. 피인지 냉각수인지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엄지로 명단 맨 위를 눌렀다. 종이가 접히며 이름 하나가 손금 사이에 들어왔다. 장유라. D-27 명진역. 06:53.

통제실 바닥이 기울었다. 서버 랙의 흰 불빛이 모두 같은 숫자로 묶였다. 02:17. 02:17. 02:17. 나는 레버를 끝까지 당겼다.

압력음이 귀 안쪽을 찢었다.

다음 소리는 지하철 도착 안내음이었다.

나는 승강장 기둥에 어깨를 부딪친 채 서 있었다. 전광판에는 06:42가 떠 있었다. 휴대전화 날짜는 재난 27일 전. 오른손은 빈 주머니를 뒤졌고, 왼손은 아직 없는 명단을 쥐려 했다.

바닥이 멀쩡했다. 공기에는 커피와 먼지 냄새가 섞여 있었다. 원래의 마지막 냄새와 겹치자 위가 뒤집혔다. 나는 벽면 시계를 봤다. 초침은 제대로 움직였다.

살아 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데 쓸 시간은 없었다.

나는 역무실 방향으로 뛰었다. 머릿속에는 새 정보가 뜨지 않았다. 이미 지나간 하루의 조각이 현재 위에 겹쳤다. 06:53, 정비 구역 호이스트 추락. 장유라 사망. 06:55, 역무 서버 로그 롤오버. 귀환 증거가 남아 있다면 그 서버였다.

서버를 확보하면 내가 미친 게 아니라는 증거를 만들 수 있었다. 재난 전체를 막을 실마리도 남을 수 있었다. 장유라에게 가면 증거는 날아갈 가능성이 컸다. 경보와 전원 차단이 먼저 들어가야 했다.

내 발은 서버실 쪽에서 멈췄다.

유리문 안쪽 랙에 녹색 불이 깜박였다. 손잡이 옆에는 카드 리더기가 있었다. 나는 해울시 재난모델실 직원증을 갖고 있었지만 역무 서버 권한은 없었다. 2분이면 우회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2분은 사람 하나가 케이블 밑에 깔리기에 충분했다.

비상벨 커버를 주먹으로 깼다.

경보음이 승강장을 긁었다. 역무원이 뛰어나오며 내 팔을 잡았다.

“뭐 하시는 겁니까?”

“정비 구역 전원 끊어야 합니다. 06:53에 호이스트 내려앉습니다.”

“누구세요?”

“전원부터요.”

나는 주어를 삼켰다. 이유를 말하면 붙잡힌다. 역무원의 손을 비틀어 떼고 통로로 뛰었다. 뒤에서 욕설과 무전음이 따라왔다. 경보는 사람들을 움직였지만 정비 구역 문은 닫히지 않았다. 자동 절차가 아직 늦었다.

정비 구역 입구에는 노란 안전줄이 반쯤 내려와 있었다. 안쪽에서 금속이 비틀리는 소리가 났다. 기억 속 사고 지점은 세 번째 기둥이었다. 나는 그쪽으로 뛰다 멈췄다. 호이스트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시각은 06:48이었다.

네 분 빠르다.

“나오세요!”

여자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주황색 구조복 어깨에 흰 먼지가 묻어 있었다. 장유라. 사진으로 본 얼굴보다 턱선이 더 굳어 있었다. 그녀는 쓰러진 정비공의 허리를 잡고 있었고, 내 쪽으로 물러서지 않았다.

“누구세요. 여긴 통제 구역입니다.”

“그 케이블 끊깁니다. 오른쪽 차단기 내리고 사람부터 밀어내요.”

“이유부터.”

천장 레일에서 짧은 쇳소리가 났다. 장유라는 내 얼굴을 보지 않고 케이블 장력을 확인했다. 모르는 사람의 말을 믿지 않겠다는 몸이었다. 나는 벽면 차단기 쪽으로 뛰었다.

“왼쪽 말고 오른쪽입니다!”

“왼쪽이 조명이에요. 나도 알아요.”

그녀가 정비공의 팔을 자기 어깨에 걸었다. 정비공은 발을 질질 끌었다. 나는 차단기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는 잠금핀이 걸려 있었다. 원래 보고서에는 핀 얘기가 없었다. 내가 직접 본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록은 사망자 수와 사고 시각만 남겼다.

나는 안전핀을 뽑았다. 손톱이 갈라졌다. 차단기를 내리자 호이스트가 멈춘 게 아니라 힘을 잃고 내려앉기 시작했다.

“밀어요!”

장유라는 정비공을 밀었다. 동시에 자기 몸을 뒤로 던지지 않았다. 그녀는 케이블 고리를 발로 걷어차며 정비공 다리를 빼냈다. 나는 뛰어들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장유라는 내 손을 뿌리치고 정비공의 헬멧부터 밀어냈다.

금속 덩어리가 바닥을 찍었다. 압력파가 무릎을 때렸다. 조명 세 줄이 꺼지고, 어둠이 정비 구역을 절반으로 접었다.

“통로!” 장유라가 외쳤다.

나는 정비공의 어깨를 받쳤다. 장유라는 앞에서 케이블을 치웠다. 그녀의 장갑에 피가 묻었지만 어느 손에서 난 피인지 보이지 않았다. 뒤쪽 천장에서 작은 볼트들이 비처럼 떨어졌다.

입구까지 세 걸음 남았을 때 자동 방화문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 기억의 순서보다 빨랐다. 나는 정비공을 밀고 문턱에 몸을 끼웠다. 장유라가 반대편에서 문 아래 받침대를 밀어 넣었다.

“빼요!”

“먼저 지나가요.”

“지시하지 말고 같이 들어요.”

우리는 같은 손잡이를 잡았다. 정비공이 문밖으로 굴러 나갔다. 받침대가 갈라졌다. 장유라가 내 어깨를 밀었다. 나는 문턱을 넘어졌고 그녀는 마지막에 몸을 낮춰 빠져나왔다. 문이 등 뒤에서 닫히며 먼지를 토했다.

승강장에는 사람들이 엎드려 있었다. 경보가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역무원 둘이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한 명은 나를 붙잡으려다 정비공의 다리를 보고 멈췄다.

장유라는 무릎을 꿇고 정비공의 호흡을 확인했다. 내게 고맙다는 말은 없었다.

“이름.”

“한이겸입니다.”

“소속.”

“해울시 재난모델실.”

“왜 사고 시각을 알았어요?”

원격 서버실 쪽 조명이 꺼졌다. 역무실 안쪽에서 장비 재부팅음이 났다. 녹색 불빛이 한꺼번에 죽는 것이 유리문에 비쳤다. 서버 로그. 귀환 증거. 내가 포기한 가능성이 전력 차단과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역무 방송이 갈라진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명진역 정비 구역 사고 발생. 현재 시각 오전 6시 49분. 모든 승객은 역무원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십시오.”

장유라가 내 손목을 잡았다. 구조 장갑의 고무가 피 묻은 손등을 눌렀다.

“아까는 06:53이라고 했죠.”

나는 승강장 시계를 봤다. 초침은 계속 앞으로 갔다.

정비공이 기침을 했다. 장유라는 내 손목을 놓지 않은 채 다른 손으로 그의 턱을 들었다. 움직임이 빨랐다. 손가락 두 개가 목 옆을 짚고, 다음에는 허벅지 쪽 출혈을 눌렀다. 명령은 나에게가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 갔다.

“압박할 사람 하나. 들것 말고 문짝 가져와요. 금속 들것은 케이블 밑으로 못 들어갑니다.”

역무원이 멈칫했다. 장유라는 그의 이름표를 읽었다.

“김 선임님. 문짝. 지금.”

그 한마디에 사람이 움직였다. 원래 명단의 사망자 줄에 있던 사람은 지시를 기다리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녀는 살아 있는 동안 주변의 동선을 바꿨다.

나는 서버실 유리문을 다시 봤다. 재부팅 화면이 흰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역무용 백업 장비가 순서대로 올라오며 마지막 로그를 밀어냈다. 06:55 롤오버 전이면 건질 수 있었던 흔적이 06:49 사고 대응 절차와 함께 덮였다. 내 선택은 사람 하나를 살렸고, 내 증거를 태웠다.

장유라는 구급 가위로 내 소매 끝을 잘랐다. 손목에 묻은 피가 내 것인지 확인하려는 동작이었다.

“다친 데.”

“손톱.”

“숨은요.”

“괜찮습니다.”

“괜찮다는 말은 환자한테 금지예요. 숫자로 말해요.”

나는 호흡을 세었다. 여섯 번. 떨림은 줄지 않았다. 숫자는 거짓말을 덜 했다. 나는 서버실을 가리키고 싶었지만 그녀의 손이 먼저 내 손목을 뒤로 꺾었다. 케이블 타이가 어디서 나왔는지 보지 못했다. 딸깍 소리와 함께 양손이 묶였다.

“구조 방해 혐의로 잡는 건 아니에요. 도망 못 가게 묶는 겁니다.”

“한 사람 더 죽습니다. 07:08.”

말은 나가고 나서야 위험했다. 장유라의 눈이 내 입이 아니라 승강장 시계를 향했다. 그녀는 믿지 않았다. 대신 시간을 확인했다. 그 차이가 중요했다.

“어디서요.”

나는 머릿속의 보고서 제목을 붙잡았다. 2차 가스 점화. 명진역 환기 제어실 B구. 하지만 이미 첫 시각이 틀렸다. 장유라가 살아 있는 순간부터 원래 보고서의 조건은 낮아졌다.

“환기 쪽입니다. 위치는 확인해야 합니다.”

“방금은 확정처럼 말했죠.”

“확정이 아니게 됐습니다.”

그녀의 손이 케이블 타이를 한 번 더 조였다. 벌로 조이는 힘은 아니었다. 도망치지 말라는 조건이었다.

“그럼 확인해요. 틀리면 당신 먼저 끌고 나갑니다.”

무전에서 잡음이 튀었다. 역무 방송은 같은 문장을 반복하다가 사고 기록 시각을 다시 말했다. 06:49. 현장 시계, 방송 서버, 내 휴대전화가 모두 그 숫자를 가리켰다. 한 기기의 오류로 돌릴 수 없었다. 원래 시간선의 장면이 흐려진 게 아니라 현재의 장비가 먼저 움직였다.

나는 묶인 손으로 주머니 안쪽을 눌렀다. 사망자 명단은 아직 없었다. 대신 빈 종이 조각 하나가 잡혔다. 영수증 뒷면이었다. 나는 손톱 끝으로 종이를 긁었다.

A. 직접 본 것. 장유라 사망 위치.

B. 기록으로 읽은 것. 사고 시각 06:53, 서버 롤오버 06:55.

첫 줄은 살아남은 장유라 앞에서 흔들렸고, 둘째 줄은 방송 앞에서 깨졌다. 나는 영수증을 접었다. 아직 등급 이름은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미래 지식은 방금 한 번 사용됐고, 사용한 만큼 닳았다.

역무 지휘관이 뒤늦게 도착했다. 그는 내 직원증을 빼앗아 사진과 얼굴을 번갈아 봤다. 재난모델실이라는 글자가 그에게 어떤 권한도 주지 못했다. 오늘의 나는 아직 백색 정전 보고서를 쓰지 않은 직원이었다.

“한이겸 씨. 경보를 임의로 작동시킨 이유를 진술해야 합니다.”

“진술은 나중에 하겠습니다. 환기구 수치부터 보셔야 합니다.”

“당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원래 시간선에서 나는 결정권자가 아니었고, 마지막 통제실에서도 결정권을 가진 척하다 죽었다. 여기서는 더 낮은 권한으로 더 빠른 사고를 상대해야 했다.

장유라가 정비공의 손목에 붕대를 감으며 끼어들었다.

“이 사람 말이 전부 맞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고 지점과 차단기는 맞혔어요. 틀린 건 시각입니다.”

“장 대장, 외부인 편을 드는 겁니까?”

“편이 아니라 조건을 보는 겁니다. 지금 통제실 공기 냄새 맡아 보셨어요?”

지휘관은 대답하지 못했다. 경보 사이로 약한 가스 냄새가 올라왔다. 원래라면 07:08 직전에 보고됐던 냄새였다. 빠른 건 시각뿐이 아니었다. 냄새의 위치도 달랐다. B구가 아니라 더 낮은 곳에서 올라왔다.

나는 묶인 손을 들어 승강장 바닥 배수구를 가리켰다.

“공기가 밑에서 올라옵니다. B구만 막으면 늦습니다.”

장유라는 내 말을 그대로 받지 않았다. 그녀는 바닥에 손등을 대고 흐름을 확인했다. 그 뒤 역무원에게 물었다.

“환기 제어실까지 가장 짧은 길.”

“정비 통로는 방금 닫혔습니다.”

“다른 길.”

“직원 화장실 뒤 점검문이 있습니다. 카드가 필요합니다.”

장유라가 지휘관의 목에 걸린 카드를 봤다. 말은 하지 않았다. 지휘관은 욕을 삼키고 카드를 빼냈다. 구조가 끝난 뒤에도 살아남은 사람의 선택이 계속 동선을 바꿨다. 장유라가 없었다면 나는 서버실 앞이나 경찰 대기석에서 시간을 잃었을 것이다.

그녀가 내 케이블 타이를 완전히 풀지는 않았다. 가운데만 잘라 두 손이 앞쪽으로 오게 했다.

“도망가면 다시 묶습니다.”

“도망갈 이유 없습니다.”

“이유를 숨기는 사람 말은 그렇게 믿지 않아요.”

나는 대답 대신 영수증을 접어 주머니 안쪽에 넣었다. 장유라 사망, 서버 로그, 사고 시각. 세 줄 모두 한 번에 틀어졌다. 그렇다고 아무 쓸모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위치의 일부, 위험의 종류, 장비의 순서는 남아 있었다. 남은 조각으로 다음 사람을 살려야 했다.

우리는 점검문으로 뛰었다. 통로 끝에서 환기 팬이 낮게 울었다. 소리는 기억보다 거칠고, 방향은 기억과 달랐다. 나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첫 구조는 성공했지만 첫 예측은 이미 손상됐다. 그 손상된 정보를 들고 다음 문을 열어야 했다.

점검문 손잡이는 뜨거웠다. 나는 손등으로 금속 온도를 재고 장유라에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바로 소화전함 유리를 깨고 젖은 수건을 꺼냈다. 설명하지 않아도 행동이 이어졌다. 방금 전까지 내 말을 의심하던 사람이, 확인한 조건 안에서는 가장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기록은 깨졌고, 사람은 남았다.

사고 발생 시각, 오전 6시 49분.

내 기억은 6시 53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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