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환자의 이름

24시간마다 살인범이 바뀐다 · 2026.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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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이름

05:25, 문라희는 오세진의 말을 고치지 않았다.

그가 평소처럼 숫자를 바로잡았다면 나는 덜 놀랐을 것이다. 문하진. 이름은 방 안에서 오래 남았다. 문라희는 “그 기록은 다른 사람의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동명이인일 수 있다”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책상 끝에 올리고,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강태준이 말했다.

“문하진 씨를 압니까.”

“압니다.”

문라희의 대답은 짧았다.

“관계.”

“제 딸입니다.”

그 말이 감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는 감정부터 기록하지 않았다. 강태준은 보드에 `문하진 / 문라희 딸 / 2019 안전성 시험 기록`이라고 썼다. 이름이 가족에서 문서로 내려왔다. 잔인해 보일 수 있지만, 오늘 필요한 순서였다.

문라희는 그 줄을 오래 보았다.

“딸이라고 먼저 썼다가 지우셨군요.”

강태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딸`이라는 말을 먼저 쓰고, 그 앞에 `문라희`를 붙였다. 작은 순서였다. 문라희는 그 작은 순서를 보았다. 숫자의 사람답게, 감정의 틈도 순서로 읽었다.

“기록상 관계와 문서 기능을 분리해야 합니다.”

강태준이 말했다.

“그 말은 맞습니다.”

문라희가 답했다.

맞다는 말이 이렇게 차갑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 알았다.

윤해원은 자기 응급 기록 사본을 보고 있었다.

“내 기록에 왜 그 이름이 있습니까.”

오세진은 대답하기 전에 문라희를 봤다. 문라희는 보지 않았다. 그가 허락하지 않아도 파일은 열려야 했다.

고유라가 사본의 메타데이터를 불렀다.

“현재 보관함 기록은 윤해원 부원장님 명의입니다. 그런데 템플릿 원본 ID가 `MHJ_safety_trial_2019`로 남아 있어요.”

“템플릿이면 이름만 남을 수 있습니까.”

강태준이 물었다.

“가능합니다. 하지만 약품 응급 기록에 안전성 시험 템플릿을 쓰는 건 이상합니다. 목적이 달라요.”

고유라는 두 파일의 첫 화면을 나란히 띄웠다. 왼쪽은 윤해원 응급 기록. 오른쪽은 문하진 안전성 시험 기록. 화면에는 사람 사진도,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문구도 없었다. 칸과 숫자와 삭제된 필드만 있었다.

“공통 헤더부터 읽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템플릿 ID`, `생성 장치`, `보조 계정`, `필드 버전`.

네 줄이 같았다. 그러나 그 아래부터 달라졌다. 윤해원 기록에는 `응급 대응`, `카트리지 확인`, `확인자`가 있었다. 문하진 파일에는 `시험 동의`, `반응 지연`, `차단 권고`, `사후 검토`가 있었다.

“이건 이름만 남은 게 아닙니다.”

고유라가 말했다.

“구조가 남았습니다.”

구조. 그 단어는 위험하지 않으면서 충분히 무거웠다. 장치 원리를 말하지 않고도, 두 문서가 같은 뼈대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남겼다.

문라희가 처음 끼어들었다.

“안전성 시험은 약품 기록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내가 물었다.

“장치 반응 기록입니다.”

그는 거기서 멈췄다. 더 말하면 SANDGLASS의 내부로 들어간다. 지금은 그 문을 열 차례가 아니다. 그러나 문하진이라는 이름은 이미 문 앞에 서 있었다.

강태준은 그 멈춤을 기록했다.

`문라희: 안전성 시험을 장치 반응 기록으로 설명, 추가 기능 설명 보류.`

문라희는 그 문장을 보고 말했다.

“보류가 아니라 제한입니다.”

“누가 제한합니까.”

“제가.”

“그럼 그렇게 기록합니다.”

강태준은 `문라희 요청으로 제한`이라고 바꿨다가, 곧바로 다시 줄을 그었다.

“아닙니다. 수사상 기능 미확정. 그게 맞습니다.”

문라희는 처음으로 입술을 닫았다. 그가 원하는 표현이 통하지 않은 것이다. 작은 균열이었다. 그러나 그 균열을 감정으로 확대하면 안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가 말을 제한하려 했다는 사실과, 우리가 기능을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는 사실뿐이었다.

05:50, 한도경은 기록보존실에서 옛 시험 파일을 가져왔다.

그는 이번에는 열람 사유를 세 번 묻지 않았다. 대신 파일을 가져오기 전에 봉투 두 개를 준비했다. 하나는 현재 윤해원 응급 기록, 하나는 2019 문하진 안전성 시험 기록. 섞지 않기 위해서였다.

“같은 파일이 아닙니다.”

그가 먼저 말했다.

“연결된 파일입니까.”

“메타데이터가 연결됩니다. 내용은 다릅니다.”

한도경은 봉투를 열기 전에 열람 기록을 읽었다. 2019년 파일은 사고 뒤 세 번 열렸다. 첫 번째는 감사 준비. 두 번째는 기록 이관. 세 번째는 사유 없음. 세 번째 열람자 칸은 비어 있었다.

“또 빈칸입니다.”

고유라가 말했다.

“빈칸도 기록합니다.”

강태준이 답했다.

그 문장은 이제 거의 규칙이 됐다. 빈칸을 지우지 않는 것. 결측을 장식하지 않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느린 저항이었다.

윤해원 기록은 최근 열람이 많았다. 오세진, 원장실 권한군, 부원장 직위 계정, 그리고 이름 없는 임시 응급 접근. 문하진 파일은 오래 닫혀 있다가 한 번 열렸다. 그 한 번이 현재 기록과 같은 보조 계정으로 묶였다.

“보조 계정은 사람입니까.”

내가 물었다.

“사람이 쓰는 계정입니다. 사람 자체는 아닙니다.”

고유라가 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사람으로 너무 빨리 가면 안 된다.

고유라가 두 파일의 헤더를 비교했다. 동일한 것은 세 가지였다. 템플릿 ID, 생성 장치, 기록자 보조 계정. 다른 것은 환자명, 용도, 접근 권한. 문하진 파일은 안전성 시험, 윤해원 파일은 응급 기록. 둘 사이에 누군가 다리를 놓았다.

“다리 놓은 사람.”

강태준이 물었다.

고유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안 보입니다. 다만 복사된 흔적이 있어요. 완전 복사가 아니라 필드 일부만 옮긴 것.”

그는 비교표를 확대했다. 빠진 필드는 세 개였고, 남은 필드는 다섯 개였다. 남은 쪽에는 이름, 확인자, 장치 ID, 대응 시각, 상태값이 있었다. 빠진 쪽에는 동의 범위, 지연 경고, 차단 권고가 있었다.

“누군가 안전장치를 뺀 겁니까.”

내가 물었다.

“문서상으로는 경고 필드가 빠진 겁니다.”

강태준이 고쳤다.

“안전장치라고 쓰지 마십시오.”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단어 하나가 기능을 확정할 수 있다. 지금은 경고 필드다. 그 이상은 아직 아니다.

문라희가 조용히 말했다.

“그 세 줄은 단순 경고가 아닙니다.”

모두가 그를 보았다.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 말만으로도 충분히 문이 열렸다. 그러나 열린 문 너머를 보려면 다음 증거가 필요했다.

오세진이 말했다.

“그래서 제가 이상하다고 한 겁니다.”

윤해원이 바로 물었다.

“언제 알았습니까.”

오세진은 대답을 늦췄다.

“현재 기록을 처음 봤을 때.”

“왜 말하지 않았습니까.”

“말하면 2019 파일도 열립니다.”

그 말은 또 자기 방어였다. 동시에 사실일 수 있다. 우리는 둘 중 하나만 고르면 안 된다.

“2019 파일이 열리면 누가 다칩니까.”

윤해원이 물었다.

오세진은 문라희를 보지 않으려 했다. 보지 않으려는 행동은 이미 보는 행동의 반대편이다.

“여러 사람입니다.”

강태준이 바로 말했다.

“사람을 흐리지 마십시오.”

오세진은 숨을 들이마셨다.

“문라희 박사님. 저. 원장실. 그리고 문하진 씨가 남긴 기록.”

마지막 항목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문라희의 손이 그때 움직였다. 그는 문하진을 사람으로만 지키려는 것이 아니었다. 문하진이 남긴 기록까지 지키려 했다. 또는 없애려 했다. 아직 둘 중 어느 쪽인지 말할 수 없었다.

문라희는 파일명을 보며 말했다.

“하진의 기록은 현재 사건 증거가 아닙니다.”

“연결 흔적이 있습니다.”

고유라가 답했다.

“흔적과 증거는 다릅니다.”

“그래서 비교합니다.”

고유라의 목소리는 작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문라희가 존경한 설계자라는 사실은 이 순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존경은 파일을 닫는 권한이 아니다.

06:25, 문하진 파일의 첫 페이지가 열렸다.

사진은 없었다. 유족을 흔드는 장치도 없었다. 시험 번호, 장치 반응 시간, 안전성 검토 의견. 문하진은 이름이 아니라 작성자였다. 그 점이 중요했다. 죽은 딸이 아니라, 기록을 남긴 연구자. 문라희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기억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첫 문장은 건조했다.

`복구 절차는 피험자의 사전 동의 범위를 벗어나면 안 된다.`

문라희의 손가락이 멈췄다.

강태준은 그 문장을 읽지 않았다. 소리 내면 감정 장면이 된다. 그는 고유라에게 헤더 비교만 계속하라고 했다. 고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윤해원 기록은 이 안전성 시험 파일에서 경고 필드만 빠져 있어요.”

“경고 필드.”

“동의 범위, 반응 지연, 응급 차단 권고. 세 줄이 없습니다.”

고유라는 빠진 세 줄을 빨간색으로 표시하지 않았다. 빨간색은 너무 감정적이었다. 그는 빈 회색 칸으로 두었다. 비어 있다는 사실만 보이게 했다.

“빠진 칸이 윤 부원장님 이름으로 덮였습니다.”

그가 말했다.

윤해원은 그 말을 듣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내 이름이 지우개로 쓰였군요.”

그 문장은 조용했다. 조용해서 오래 남았다. 사람 이름은 증명에도 쓰이고 은폐에도 쓰인다. 이번에는 은폐 쪽이었다. 그러나 누가 지웠는지는 아직 비어 있다.

문라희는 낮게 말했다.

“하진은 지우개가 아닙니다.”

“그렇게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강태준이 답했다.

“그런 식으로 읽히게 하지 마십시오.”

문라희의 목소리가 조금 흔들렸다. 처음이었다. 그는 문하진을 눈물로 만들지 않으려 했고, 우리도 그러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이름은 이미 문서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윤해원이 물었다.

“그 세 줄이 내 응급 카트리지와 관련 있습니까.”

“아직은 템플릿 관련입니다. 기능 관련으로 쓰면 안 됩니다.”

고유라는 먼저 선을 그었다. 24화에서 배운 방식이었다. 기능을 확정하기 전에 필드와 이름만 기록한다.

강태준은 그 선을 보드에 옮겼다.

`문서 연결 확정. 기능 연결 미확정.`

이 짧은 문장이 오늘의 방어선이었다. 문서가 연결됐다고 해서 곧바로 살인의 방식이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문하진의 이름이 나왔다고 해서 문라희의 동기가 확정되는 것도 아니다. 확정되지 않은 것들을 확정하지 않는 일은 느리다. 그러나 느려야 이 기록이 나중에 살아남는다.

문라희는 그때 파일 봉투에 손을 댔다.

“이 파일은 폐기 대상입니다.”

강태준이 물었다.

“누가 정했습니까.”

“2019년 사고 뒤 안전성 시험 원본은 폐기 목록으로 넘어갔습니다.”

한도경이 조용히 말했다.

“그 목록에는 없습니다.”

문라희가 그를 보았다. 처음으로 시선이 흔들렸다. 아주 작았다. 그러나 문라희에게는 큰 균열이었다.

“제가 기억합니다.”

“기록은 다릅니다.”

한도경의 말은 짧았다. 기록 관리자답게 잔인했다.

“폐기 목록 원본은 어디 있습니까.”

강태준이 물었다.

한도경은 두 번째 봉투를 들어 보였다.

“여기 사본이 있습니다. 원본은 기록보존실 금고입니다.”

문라희가 말했다.

“그 금고 접근 권한은 제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사본을 봉인합니다.”

강태준의 대답은 빨랐다. 문라희의 눈이 더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림이 멈춘 것이 더 위험했다. 흔들림 뒤에는 결심이 오는 경우가 있다.

06:50, 우리는 파일을 세 봉투로 나눴다.

첫째, 윤해원 현재 응급 기록. 둘째, 문하진 2019 안전성 시험 기록. 셋째, 두 파일 사이의 헤더 비교표. 고유라는 세 번째 봉투에 `연결 흔적, 기능 미확정`이라고 썼다. 그 문구가 중요했다. 문하진 이름이 나왔다고 해서 곧바로 문라희의 동기나 장치 원리를 열면 안 된다.

윤해원은 자기 이름이 붙은 기록을 보며 말했다.

“내 응급 기록이 누군가의 안전성 시험에서 잘린 필드로 만들어졌다는 뜻입니까.”

“아직은 그 가능성입니다.”

강태준이 답했다.

“가능성으로 사람이 죽었습니다.”

윤해원의 말은 조용했다. 그는 자기 몸을 다시 문서로 보고 있었다. 피해자이자 설계자였던 사람이,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기록 위에 덧씌워진 이름이 됐다.

문라희가 파일 봉투를 들었다.

“하진의 기록은 여기 남기면 안 됩니다.”

“놓으십시오.”

강태준의 말이 짧아졌다.

문라희는 놓지 않았다. 손가락이 봉투 모서리를 눌렀다. 찢기지는 않았다. 아직은. 그는 평소처럼 오차를 고치거나 용어를 바로잡지 않았다. 폐기라는 말만 붙잡았다.

“박사님.”

고유라가 작게 불렀다.

문라희는 그를 보지 않았다.

“그 파일을 없애면 문하진 씨가 남긴 경고도 같이 없어집니다.”

그 말에 문라희의 손가락이 멈췄다. 감정에 호소하는 말처럼 들렸지만, 정확히는 문서 기능에 대한 말이었다. 경고 필드. 동의 범위. 차단 권고. 문하진이 누구였든, 그 파일에는 지워지면 안 되는 문장이 있었다.

문라희는 아주 낮게 말했다.

“그 경고 때문에 죽었습니다.”

아무도 바로 묻지 않았다. 묻고 싶었다. 누가, 어떻게, 왜. 질문은 목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지금 물으면 그는 봉투를 찢을지도 모른다. 강태준은 한 발만 앞으로 갔다.

“그 말은 별도 진술로 받겠습니다. 지금은 봉투를 내려놓으십시오.”

나는 그 손을 보았다. 처음으로 문라희가 숫자보다 이름에 먼저 반응했다. 그 반응을 악역의 균열로 쓰면 쉬울 것이다. 쉬운 쪽은 틀릴 때가 많다. 지금 기록할 것은 하나뿐이었다.

`문라희, 문하진 파일 폐기 시도.`

강태준은 그 줄을 쓰고 다시 말했다.

“봉투 내려놓으십시오.”

문라희는 봉투를 들고 한 걸음 물러났다. 파일은 아직 열려 있었다. 문하진이라는 이름도 닫히지 않았다.

그가 물러난 쪽에는 분쇄기가 있었다. 기록보존실에서 쓰는 작은 장비였다. 아무도 그 위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문라희는 신경 썼다. 그는 방 구조를 이미 알고 있었다.

강태준이 움직이기 전에 한도경이 먼저 분쇄기 전원을 뽑았다. 기록 관리자의 손은 느려 보였지만, 이번에는 빨랐다.

문라희는 그제야 한도경을 보았다.

“도경 씨.”

“기록은 다릅니다.”

한도경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번에는 더 잔인하게 들리지 않았다. 필요한 말이었다.

문라희의 손에서 봉투 모서리가 조금 구겨졌다. 찢어지지는 않았다. 그 작은 차이가 이번 새벽 전체를 버티게 했다.

파일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문라희가 그것을 없애려 했다는 사실은 이미 기록됐다. 문하진이라는 이름은 환자의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끝에는 경고를 남긴 사람의 이름이 됐다. 그리고 그 경고를 누가 잘라냈는지는 아직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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