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진의 거짓말
24시간마다 살인범이 바뀐다 · 2026.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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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진의 거짓말
03:40, 강태준은 오세진 앞에 세 개의 빈 상자를 놓았다.
약품은 없었다. 해로운 물건도 없었다. 같은 크기의 투명 상자, 흰색 라벨, 방향 표시만 있었다. 고유라는 상자 바닥에 작은 점을 찍었다. 점은 기능이 없었다. 방향을 확인하기 위한 기준이었다.
“안전한 물건 교체 테스트입니다.”
강태준이 말했다.
오세진은 상자를 보며 물었다.
“제가 범인이라서 하는 겁니까.”
“증언자로도 필요해서 합니다.”
그 대답은 그를 잠깐 멈추게 했다. 범인이라고 부르면 방어가 나온다. 증언자라고 부르면 책임이 사라지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강태준은 둘 다 피했다. 범인보다 증언자. 그러나 범인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었다.
강태준은 상자 앞에 종이 한 장을 더 놓았다.
`유도 조건 없음.`
“이게 왜 필요합니까.”
오세진이 물었다.
“우리가 당신 습관을 만들었다고 주장하지 못하게 하려고요.”
고유라가 답했다.
그는 상자 사이의 거리를 자로 쟀다. 너무 가까우면 손이 한 번에 닿고, 너무 멀면 의식적으로 움직인다. 의식과 습관 사이의 간격을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지저분했다. 강태준은 지저분한 부분을 숨기지 않았다.
“테스트 실패 조건도 읽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오세진 씨가 설명을 요구하면 테스트 중지. 우리가 특정 방향을 암시하면 테스트 중지. 손이 닿기 전에 질문하면 테스트 중지.”
나는 마지막 조건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질문도 유도입니까.”
“때로는요.”
강태준이 말했다.
“특히 당신 질문은.”
나는 반박하지 않았다. 내가 질문으로 사람을 움직인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첫 번째 상자는 라벨이 바깥쪽이었다. 두 번째는 안쪽이었다. 세 번째는 라벨이 위를 향했다. 오세진은 설명을 듣지 않았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두 번째 상자를 바깥쪽으로 돌렸다가, 곧바로 다시 안쪽으로 돌렸다.
고유라가 말했다.
“방금 왜 되돌렸어요?”
오세진은 손을 멈췄다.
“보기 편한 방향으로.”
“누구에게요.”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강태준은 그 침묵을 적었다. 침묵은 늘 같은 의미가 아니다. 이번 침묵은 습관이 설명보다 먼저 나온 순간이었다.
“다시 합니다.”
강태준이 말했다.
오세진이 눈을 들었다.
“방금 했습니다.”
“방금은 당신이 첫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순서를 바꿉니다.”
고유라는 상자를 치우고 같은 크기의 카드 세 장을 놓았다. 빨간색, 회색, 흰색. 라벨은 없었다. 기능도 없었다. 방향 표시도 없었다. 오세진은 이번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왜 멈췄습니까.”
강태준이 물었다.
“의미가 없어서요.”
“상자에는 의미가 있었습니까.”
“라벨이 있었습니다.”
고유라가 바로 적었다.
`방향 습관은 라벨이 있을 때 강해짐. 무라벨 카드 반응 없음.`
그 문장은 오세진에게 불리하면서도, 우리 가설에도 제한을 걸었다. 습관은 손 전체에 붙은 마법이 아니라, 특정 표시를 만났을 때 나오는 반응이었다. 이 제한이 없으면 우리는 모든 방향을 오세진에게 갖다 붙일 수 있다.
03:55, 두 번째 테스트는 진술과 함께 진행했다.
오세진은 18화에서 카트리지를 돌린 이유를 “확인”이라고 말했다. 27화에서는 “제압”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보기 편한 방향”이라고 했다. 세 문장은 같은 손을 가리키면서 서로 다른 목적을 달았다.
강태준은 세 문장을 순서대로 읽지 않았다. 순서를 섞었다. `보기 편한 방향`, `제압`, `확인.` 사람은 순서대로 들으면 앞말에 맞춰 뒷말을 고친다. 섞어 들으면 의미가 더 드러난다.
“이 중 거짓말은 무엇입니까.”
오세진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하나만 고르라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전부 참일 수도 있고, 전부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오세진의 얼굴이 조금 무너졌다. 사람은 보통 하나의 거짓을 골라 나머지를 살리고 싶어 한다. 강태준은 그 길을 막았다.
“어느 문장이 맞습니까.”
강태준이 물었다.
“상황이 달랐습니다.”
“상황을 말하십시오.”
“18화는 확인. 원래 시간선은 제압. 지금 테스트는 습관.”
“그럼 5화의 시신 소지품 방향은?”
오세진의 눈이 처음으로 나를 향했다. 5화의 왼쪽 주머니. 윤해원의 관리 키가 평소와 다른 곳에 있던 일. 우리는 그때 손을 보지 못했다. 방향만 봤다.
“저는 시신을 옮기지 않았습니다.”
“소지품은.”
그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정리했습니다.”
강태준은 그 말을 받아 적었다.
“정리와 이동은 다릅니까.”
“다릅니다.”
“결과는?”
오세진은 눈을 감지 않았다.
“같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면죄는 없었다. 그는 단어를 나눴지만 결과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게 진전인지 방어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정리한 시각.”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과 말할 수 없다는 말은 다릅니다.”
오세진은 그 문장에 반응했다. 아주 작게 목이 움직였다.
“말할 수 없습니다.”
강태준은 기다렸다.
“왜.”
“그 시각을 말하면, 제가 그 전에 뭘 봤는지도 말해야 합니다.”
방 안의 공기가 다시 얇아졌다. 그는 소지품을 정리한 사람이 아니라, 정리하기 전에 무언가를 본 사람이었다. 그러나 강태준은 바로 묻지 않았다.
“그건 다음 질문입니다. 지금 질문은 소지품입니다.”
그가 선을 그었다. 한 번에 많은 문을 열면 오세진은 그중 가장 좁은 문으로 도망갈 것이다.
04:20, 고유라는 테스트 영상을 세 칸으로 나눴다.
첫 칸은 18화 카트리지. 둘째 칸은 오늘 상자. 셋째 칸은 5화 시신 소지품 기록. 모두 방향만 남겼다. 사람 얼굴은 가렸다. 얼굴이 있으면 우리는 표정을 읽으려 한다. 표정은 지금 필요하지 않았다.
“패턴은 있습니다.”
고유라가 말했다.
“거짓말 탐지기는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질문을 붙여야 해요.”
고유라는 화면 아래에 검은 줄을 넣었다.
`패턴은 질문 생성용. 유죄 판단용 아님.`
그는 그 문장을 일부러 크게 띄웠다. 방 안의 모두에게 보이도록. 홍상욱이 있었다면 비웃었을 문장이다. 그러나 그런 문장이 없으면, 우리는 나중에 비웃음보다 더 큰 대가를 치른다.
“방향이 같은 사람은 많습니다.”
고유라가 이어 말했다.
“회색 비옷도 같은 방향이었고요.”
오세진은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고유라를 똑바로 봤다.
“누가 따라 했다는 뜻입니까.”
“그 가능성을 지우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 대답은 오세진을 구하지도, 몰지도 않았다. 가능성은 편한 단어가 아니다. 정확히 쓰면 양쪽을 모두 불편하게 만든다.
강태준은 질문을 붙였다.
`방향을 바꾼 목적을 매번 다르게 말한 이유.`
그 질문은 오세진을 몰아붙였지만, 그를 망가뜨리지는 않았다. 그는 완전히 무너진 사람이 아니었다. 아직 자기에게 유리한 문장을 고를 힘이 있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했다.
“증언자로 묻겠습니다.”
강태준이 말했다.
“범인으로 묻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오세진의 목소리가 조금 거칠어졌다.
“범인으로 물으면 당신은 방어합니다. 증언자로 물으면 당신이 본 것을 먼저 말해야 합니다.”
“제가 한 일은요.”
“그 뒤에 묻습니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세진은 그 순서를 믿지 않는 눈이었다. 그러나 강태준은 순서를 바꾸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오세진은 지금 우리가 가진 유일한 내부 손이다. 그 손이 더럽다고 해서 손이 가리키는 방향까지 버릴 수는 없다.
윤해원은 낮게 말했다.
“증언자 자리가 당신에게 은신처가 되면 안 됩니다.”
“알고 있습니다.”
강태준이 답했다.
그는 오세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04:45, 오세진은 세 번째 상자를 들었다.
“제가 한 거짓말은 의도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아무도 끼어들지 않았다.
“의도는 있었습니다. 죽일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어서, 의도 자체가 없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윤해원은 그 말을 듣고 물컵을 들었다. 마시지 않았다. 컵 손잡이가 오른쪽을 향했다. 노을이 있었다면 기억했을 방향이었다.
“무슨 의도였습니까.”
“멈추게 하는 것.”
“무엇을.”
“공개를.”
윤해원은 이번에 물을 마셨다. 한 모금뿐이었다.
“그러면 나를 멈추게 하려 했군요.”
“네.”
오세진은 처음으로 윤해원을 똑바로 봤다.
“당신을 멈추게 하려 했습니다. 죽이지 않으려 했다는 말로 그걸 지우려고 했습니다.”
강태준은 `오세진의 거짓말: 의도 없음`이라고 적었다. 그 문장은 제목처럼 보였지만, 판결은 아니었다. 거짓말 하나가 밝혀졌다고 전체 진실이 끝나지는 않는다.
“또 하나 있습니다.”
오세진이 말했다.
강태준은 펜을 들었지만 쓰지 않았다.
“말하십시오.”
“저는 제가 홍 원장에게만 밀렸다고 말했습니다.”
“거짓입니까.”
“반만 진실입니다.”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자신을 불리하게 만드는 말에 익숙해지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2019 파일 때문에 밀린 건 맞습니다. 그런데 윤 부원장님이 공개를 준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도 먼저 막고 싶었습니다. 누가 시켜서만은 아닙니다.”
윤해원은 그 말을 듣고 웃지 않았다.
“나를 무서워한 게 아니라, 내가 여는 파일을 무서워했군요.”
“네.”
오세진의 대답은 이번에도 짧았다.
강태준은 `외부 압박 + 자발적 은폐 욕구`라고 적었다. 두 항목 사이에 더하기 기호를 넣지 않았다. 더하기는 너무 단순하다. 압박과 욕구는 서로를 키우기도 하고, 서로 뒤에 숨기도 한다.
05:10, 테스트가 끝났다.
고유라는 상자 세 개를 다시 원래 방향으로 돌리지 않았다. 움직인 상태 그대로 봉투에 넣었다. 증거는 예쁘게 정리하면 안 된다. 정리하는 손이 또 하나의 입력이 된다.
그 말을 하기 직전, 오세진은 상자 봉투의 라벨을 보고 있었다. 라벨은 움직인 방향 그대로 붙어 있었다. 오세진은 그 방향을 고치지 않았다. 고치지 않는 것도 선택이었다. 아마 그는 방금 처음으로 자기 손이 남긴 어긋남을 그대로 두는 법을 배웠다. 그 어긋남이 다음 말을 밀어냈다.
오세진은 봉투를 보며 말했다.
“윤 부원장 응급 기록은 원본이 아닙니다.”
방 안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그는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았다.
“무슨 뜻입니까.”
강태준이 물었다.
“제가 본 기록과 지금 보관함의 기록이 다릅니다.”
“어느 쪽이 가짜입니까.”
“지금 있는 쪽입니다.”
윤해원이 낮게 말했다.
“내 응급 기록이 가짜라고요?”
오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제가 2019년에 본 서식은 아닙니다.”
2019년. 다시 그 숫자였다. 현재의 카트리지는 과거의 서식으로 이어졌다. 작은 방향 테스트가 큰 문을 열었다. 강태준은 상자를 봉인한 손 그대로 새 봉투를 꺼냈다.
`윤해원 응급 기록 원본성 확인.`
“서식이 다르면 가짜입니까.”
고유라가 물었다.
“항상은 아닙니다.”
오세진이 답했다.
“그럼 왜 가짜라고 했습니까.”
“빠진 칸이 있습니다.”
그는 손을 들지 않았다. 손으로 설명하면 또 방향이 생긴다. 이번에는 말로 했다.
“응급 카트리지 기록에는 환자명, 대응 시각, 확인자만 있으면 안 됩니다. 원래는 사전 동의 범위와 차단 권고가 붙어 있었습니다. 제가 본 2019 서식에는요.”
강태준은 바로 멈췄다.
“기능 설명은 하지 마십시오. 필드명까지만.”
“알겠습니다.”
오세진은 덧붙였다.
“환자 이름도 다릅니다.”
“누구 이름입니까.”
그는 바로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말하면 문라희가 들을 것을 알고 있었다.
문라희는 방 끝에서 처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세진은 그를 보지 않고 말했다.
“문하진.”
문라희의 의자가 바닥을 긁었다. 소리는 짧았지만, 모두가 들었다. 그는 평소처럼 “정확히 말하면”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더 정확했다.
윤해원은 오세진을 보고 있었다.
“내 기록에 다른 환자 이름이 있었다는 겁니까.”
“환자였는지도 모릅니다.”
오세진이 말했다.
“그럼 이름만 말한 겁니까.”
“기록상 이름입니다.”
강태준은 그 차이를 바로 적었다.
`문하진: 환자 여부 미확정, 기록상 이름.`
문라희는 그 문장을 보고 한 걸음 앞으로 왔다.
“그 이름을 그렇게 쓰지 마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분노보다 먼저 온 것은 정정 욕구였다. 그러나 이번 정정은 숫자 때문이 아니었다. 이름 때문이었다.
강태준은 지우지 않았다.
“지우면 기록이 아닙니다.”
문라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세진의 거짓말은 의도 없음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에 꺼낸 이름은, 윤해원의 응급 기록을 다른 사람의 과거와 묶고 있었다. 습관 테스트는 거짓말을 잡은 것이 아니라, 거짓말 뒤에 숨은 서식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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