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죽이지 않으려던 살인

24시간마다 살인범이 바뀐다 · 2026.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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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지 않으려던 살인

00:12, 오세진은 화면 속 회색 비옷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부정은 늦지 않았다. 너무 빨랐다. 그는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기 전에 자기 손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말했다. 강태준은 그 순서를 놓치지 않았다.

“누구인지 묻기 전에 본인 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세진의 오른손이 무릎 위에서 접혔다.

“제 손이 아닌 건 보입니다.”

“당신 습관은 보입니다.”

고유라가 말했다.

화면 속 비옷의 손은 카트리지를 뒤집어 표식을 안쪽으로 돌렸다. 의무실에서 오세진이 했던 방향과 같았다. 같은 습관이 같은 사람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23화에서 배웠다. 그러나 누군가 그 습관을 알고 따라 했을 가능성은 생겼다.

오세진은 화면을 보지 않았다.

“그건 습관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강태준이 물었다.

오세진은 입을 다물었다. 임상어로 위험을 줄이는 사람이 말할 단어를 잃었다. 침묵이 길어지자 윤해원이 먼저 말했다.

강태준은 그때 질문을 멈췄다.

“오세진 씨, 지금부터는 임의 진술입니다. 답하지 않을 수 있고, 답한 내용은 불리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오세진은 늦게 그를 보았다.

“갑자기 원칙적이시네요.”

“늦게 원칙적이면 기록이 죽습니다.”

강태준은 종이를 돌렸다. 진술 고지 확인란이 있었다. 오세진은 펜을 잡지 않았다. 손이 카메라 안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유라가 확인란을 화면 아래로 밀었다.

“서명은 나중에 해도 됩니다. 동의 여부를 말로 남겨 주세요.”

오세진은 잠깐 웃는 얼굴이 되려다 실패했다.

“동의합니다.”

그 한마디가 방어를 열어 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우리가 그를 몰아세워 얻은 말이라고 나중에 지워지지 않게 했다. 증거는 사람을 찢어 만든 말이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절차입니까.”

오세진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안전 표시를 가리는 방식입니다.”

그 말은 위험했다. 구체 기능을 열어서는 안 된다. 강태준이 손을 들었다.

“기능 설명 중지. 표시 방향과 행위 목적만 말하십시오.”

오세진은 숨을 고르지 않았다. 바로 말했다.

“보이게 두면 환자가 거부합니다. 안쪽으로 돌리면 확인이 늦습니다.”

“그 목적은 살인입니까.”

“제압이었습니다.”

단어 하나가 방 안에 떨어졌다. 제압. 그는 죽이지 않으려 했다고 말하고 싶어 했다. 그 말은 면죄처럼 보인다. 그러나 면죄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강태준은 바로 그 틈을 막았다.

“제압이라는 단어는 당신이 고른 겁니다.”

강태준이 말했다.

“네.”

“누가 시킨 단어입니까.”

“아닙니다. 제가 말한 겁니다.”

“그럼 그 단어의 범위를 당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오세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강태준은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친절하지 않았다. 친절하지 않아서 유효했다.

“제압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오세진이 말했다.

“죽은 사람에게는요.”

윤해원이 물었다.

“실패한 제압입니다.”

“실패한 제압이 아니라 살인 미수입니다.”

윤해원의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정확하게 들렸다. 오세진은 그 말을 고치지 않았다. 고치지 못했다.

“결과 책임과 의도를 분리해 말하는 겁니까.”

“네.”

“분리하면 결과가 사라집니까.”

“아닙니다.”

오세진의 대답은 작았다. 작지만 처음으로 빠져나가지 않았다.

00:30, 우리는 오세진을 의무실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그는 문밖 의자에 앉은 채 진술했다. 강태준은 물컵을 주지 않았다. 물을 주면 손이 움직인다. 손이 움직이면 고유라가 또 방향을 봐야 한다. 지금은 입만 필요했다.

“누구를 제압하려 했습니까.”

“윤해원 부원장.”

윤해원은 눈을 감지 않았다.

“왜.”

그가 직접 물었다.

오세진은 윤해원을 보지 못했다. 아니, 보지 않았다.

“당신이 공개하면 2019년 기록이 다시 열립니다.”

“그래서 나를 죽이려 했습니까.”

“제압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 결과로 죽었습니다.”

오세진은 더 작아지지 않았다. 사람은 때때로 몰리면 더 똑바로 앉는다. 그는 그렇게 앉았다.

“죽이려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죽을 수 있다는 걸 몰랐다고 말하면 거짓말입니다.”

그 문장 때문에 방의 공기가 아니라 기록의 줄이 바뀌었다. 의도 없음은 면죄가 아니다. 알고도 결과를 낮게 잡은 것. 그 줄은 더 길고, 더 불편했다.

고유라가 빠르게 입력했다.

`의도: 제압 주장. 결과 위험 인지: 인정.`

오세진은 그 문장을 보더니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쓰십시오.”

강태준은 바로 옆에 다른 줄을 추가했다.

`정당화 아님.`

오세진의 얼굴이 굳었다.

“그것도 씁니까.”

“당신이 그렇게 쓰라고 하지 않아도 씁니다.”

“저는 변명하려는 게 아닙니다.”

“변명인지 아닌지는 나중 문제입니다. 지금은 문장이 어디까지 가는지 막는 겁니다.”

나는 그 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오세진의 고백은 잘못 들으면 감동처럼 보인다. 그는 죽일 뜻이 없었고, 멈춰 주길 바랐으며, 구조 요청을 했다고 말하고 싶어 했다. 그런 문장들은 사람을 쉽게 흔든다. 하지만 윤해원은 실제로 죽었고, 루프가 아니라면 돌아오지 못했다. 감동은 증거보다 빨리 사람을 용서한다. 우리는 그 속도를 늦춰야 했다.

강태준이 물었다.

“붙잡히길 바랐습니까.”

오세진의 눈이 흔들렸다. 손보다 눈이 먼저 흔들렸다. 나는 그 흔들림을 감정으로 번역하지 않았다. 질문이 목적을 찔렀다는 사실만 기록했다.

“누군가는 멈춰 주길 바랐습니다.”

“누구.”

“강 팀장님.”

강태준은 반응하지 않았다. 반응하지 않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대신 질문을 바꿨다.

“그래서 18화에 제 앞에서 손을 보였습니까.”

“네.”

“자백입니까.”

“아니요. 실패한 구조 요청입니다.”

윤해원이 낮게 말했다.

“구조 요청으로 다른 사람의 약품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오세진은 이번에는 방어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그 한마디가 용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진술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는 자기 행동을 홍상욱의 압박으로만 밀지 않았다. 아직 전부는 아니지만, 자기 손을 줄 위에 올렸다.

“구조 요청이면 왜 말로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물었다.

오세진은 나를 보지 않았다.

“말로 하면 기록이 남습니다.”

“손으로 해도 남았습니다.”

“그때는 손이 기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이상하게 솔직했다. 오세진은 기록을 다루는 사람이었지만, 자기 몸이 기록이 될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의료 기록은 고칠 수 있고, 접근 로그는 밀릴 수 있고, 진술서는 단어를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반복된 손의 방향은 더 느리게, 더 고집스럽게 남았다.

고유라는 그 문장을 따로 빼냈다.

`오세진: 손이 기록이라고 생각하지 않음.`

“이건 왜요.”

오세진이 물었다.

“당신이 지금까지 뭘 숨길 수 있다고 믿었는지 보려고요.”

그 대답은 공격처럼 들렸지만, 사실에 가까웠다.

01:05, 강태준은 오세진의 개인 보관함을 열었다.

동의는 받았다. 오세진은 비밀번호를 직접 눌렀다. 보안팀 카메라는 손가락 대신 화면 아래만 찍었다. 비밀번호가 기록되면 안 된다. 필요한 것은 번호가 아니라 그 안의 파일이었다.

보관함 안에는 의료 기록 사본, 가족 사진 한 장, 낡은 USB 하나가 있었다. 강태준은 사진을 보지 않았다. 사생활은 증거가 될 때만 연다. 그는 USB만 봉투에 넣었다.

“파일 이름.”

고유라가 읽었다.

`2019_time_adjust_O.zip.`

오세진은 입술을 물지 않았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모르는 척할 힘도 없었다.

“열어도 됩니까.”

강태준이 물었다.

“열어야 합니다.”

오세진이 답했다.

파일에는 영상이 없었다. 표와 문서뿐이었다. 첫 번째 표는 2019년 사망 추정 시각 조정안이었다. 두 번째 문서는 의료 처리 지연 사유서 초안이었다. 세 번째 파일에는 짧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고유라는 파일을 바로 열지 않고 복제본부터 만들었다. 원본 USB는 투명 봉투 안에 남겼고, 해시값은 손으로 다시 읽었다. 강태준은 숫자를 두 번 확인하게 했다. 숫자는 길었고, 아무 의미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 의미 없음이 좋았다. 사람의 말보다 덜 흔들린다.

“왜 이렇게까지 합니까.”

윤해원이 물었다.

“2019년 파일은 한 번 이미 조정됐습니다.”

고유라가 답했다.

“이번에는 열람 과정 자체를 조정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오세진은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조정. 그가 가장 잘 아는 단어였다. 시간 조정, 문구 조정, 책임 조정. 조정은 항상 고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지우는 방식이다.

`현재 감사에서 부원장 진술이 공개될 경우, 2019 조정안 원본 제출.`

보낸 사람은 없었다. 받은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파일 속성에는 마지막 수정자가 남아 있었다. `HSW_admin_archive.`

홍상욱의 이름은 없었다. 그래도 방향은 남아 있었다.

첫 번째 표의 열은 네 개였다. `공식 기록`, `원본 추정`, `조정 사유`, `반영 여부.` 고유라는 의료 판단을 읽지 않았다. 읽어도 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대신 시간과 문구만 떼어 냈다. 공식 기록의 사망 시각은 원본 추정보다 13분 늦었다. 조정 사유 칸에는 `보고 체계 지연 반영`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말은 이상했다. 지연을 반영하면 늦어진 시간이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늦어진 책임이 흐려진다.

두 번째 문서는 더 조용했다. `현장 혼선`, `응급 대응 중복`, `보고 누락 가능성.` 가능성이라는 말이 세 번 나왔다. 가능성은 법정에서 자주 쓰일 수 있다. 확정하지 않으면서 의심을 옮긴다.

강태준은 그 칸에 줄을 그었다.

“이건 누가 썼습니까.”

“초안은 원장실에서 왔습니다.”

오세진이 말했다.

“검토자는.”

그는 늦게 대답했다.

“저입니다.”

이번에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놀라지 않는다고 죄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세진이 말했다.

“그 파일로 저를 눌렀습니다.”

“누가.”

“원장실.”

강태준은 바로 고쳤다.

“사람.”

오세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원장실이라는 말은 사람을 지우는 방이다. 그는 아직 그 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강태준은 질문을 낮췄다.

“목소리, 문체, 전달 방식. 셋 중 하나라도 사람으로 좁힐 수 있습니까.”

오세진은 천장을 보지 않았다. 기억을 찾을 때 사람들은 가끔 위를 본다. 그는 아래를 보았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말할지 말지 고르는 얼굴이었다.

“문체는 홍 원장님 지시문과 비슷했습니다.”

홍상욱이 없는 방인데도 이름이 방 안을 눌렀다.

“비슷하다는 말은 증거가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오세진이 답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답도 방어였다. 그러나 그 안에 사실 조각이 섞여 있었다. 직접 지시가 없으면 홍상욱은 빠진다. 직접 지시가 있다고 말하면 오세진은 거짓말을 보탠 사람이 된다. 그는 그 사이에서 더 오래 버텼다.

윤해원은 문서 첫 줄을 보았다.

“사망 시각이 다르군요.”

그 문장은 감정이 없었다. 그러나 손끝이 컵에 닿지 않았다. 그는 그 숫자를 알고 있었거나, 두려워하고 있었다.

고유라는 표의 첫 줄을 확대했다. 2019년 사망 시각. 공식 보고서와 13분 차이. 오세진이 말했던 처치 지연, 기록 지연, 책임 지연이 처음으로 문서 모양을 얻었다.

“이 사망 시각이 확정입니까.”

윤해원이 물었다.

강태준은 고유라를 보지 않았다. 직접 답했다.

“아닙니다. 문서에 적힌 조정 전후 값입니다. 의학적 사망 시각 확정이 아닙니다.”

그 선이 필요했다. 숫자가 나오면 사람들은 곧바로 답이라고 생각한다. 13분은 특히 위험했다. 너무 구체적이어서 진실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은 누군가 13분을 옮겼다는 문서다. 왜 옮겼는지, 누구를 위해 옮겼는지는 아직 비어 있다.

오세진은 그 선을 듣고도 안도하지 않았다.

“그래도 제가 검토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강태준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건 확정입니다.”

“이 파일을 누가 마지막으로 보냈습니까.”

내가 물었다.

고유라는 수신 기록을 열었다. 마지막 전송은 실패했다. 실패한 수신자 칸에는 이름이 없고, 내부 직위만 있었다.

`부원장.`

윤해원의 직위였다.

오세진은 화면을 보며 말했다.

“저는 죽이려던 게 아닙니다.”

이번에는 아무도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할 필요가 없었다. 파일 속 2019 사망 시각이 그의 문장을 대신 눌렀다. 죽이려던 게 아니라는 말은 결과를 지우지 못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누군가 알고 있었다.

그는 조금 뒤에 덧붙였다.

“그 말을 자꾸 하는 이유는, 저도 그 말이 부족하다는 걸 알아서입니다.”

강태준은 펜을 멈췄다.

“부족한 말을 반복하면 충분해집니까.”

“아니요.”

“그럼 다음 말.”

오세진은 오래 침묵했다. 이번 침묵은 질문을 피하는 침묵이 아니었다. 어떤 문장을 자기 입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고르는 침묵이었다.

“죽일 의도는 없었지만, 죽어도 된다고 낮게 잡았습니다.”

윤해원이 컵을 내려놓았다. 소리는 작았다.

“그게 나한테는 충분히 살인입니다.”

오세진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면 사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는 그 쉬운 자세를 피했다.

“알겠습니다.”

강태준은 마지막으로 2019 파일의 전송 실패 로그를 봉투에 따로 넣었다. 실패한 수신자, 내부 직위, 수정자 계정, 해시값. 네 가지가 같은 장에 놓였다. 누군가 오세진을 눌렀다. 오세진은 눌린 채 다른 사람을 눌렀다. 압박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책임은 흐름을 따라 사라지지 않는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루프는 새벽을 길게 만든다. 긴 새벽은 고백을 진실처럼 보이게 한다. 나는 그것을 경계했다. 오세진의 말은 열쇠가 아니라, 다음 문을 여는 손잡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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