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피해자
24시간마다 살인범이 바뀐다 · 2026.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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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피해자
16:40, 윤해원은 의무실 뒤 복도에서 혼자 걸음을 늦췄다.
그는 오른쪽 구두를 먼저 보았다. 그다음 점검구 손잡이를 보았다. 내가 본 순서와 같았다. 손잡이는 아직 닫혀 있었다. 정무겸의 봉인 테이프가 붙어 있었고, 강태준의 서명이 사선으로 지나갔다.
“열지 마십시오.”
내 말에 윤해원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봉인 상태를 확인하려던 겁니다.”
“혼자요.”
“혼자 확인해야 하는 경로가 있습니다.”
강태준이 내 옆에서 진술 녹음을 켰다.
“그 경로가 무엇인지 말하십시오.”
윤해원은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손가락 끝에 물기가 묻어 있었다. 복도 바닥은 마른 상태였고, 손잡이도 겉보기에는 말라 있었다.
“봉투가 누구에게 도착하는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왜 샤프트에서 확인합니까.”
그는 잠시 내 쪽을 보았다. 공손한 얼굴은 유지됐지만 눈은 대답할 사람을 고르는 중이었다.
“공식 문을 여는 사람이 바뀌면, 봉투는 다른 곳으로 갑니다. 저는 그걸 제가 만든 절차 안에서 확인하려 했습니다.”
“절차 안이면 왜 기록실이 아니라 점검구입니까.”
“공식 문 앞에는 보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 대답은 변명으로도, 고백으로도 모자랐다. 그래도 충분한 한 가지가 있었다. 그는 이 길을 알고 있었다.
정무겸이 복도 끝에서 손전등을 들고 나타났다. 그는 윤해원의 구두와 손잡이를 번갈아 봤다.
“오른발 젖었습니다.”
“아직 샤프트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내가 말하자 정무겸은 손잡이 아래를 비췄다. 작은 물방울이 하나 있었다. 손잡이에서 떨어진 것인지, 윤해원 구두에서 튄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들어가려던 사람은 맞습니다.”
윤해원은 부정하지 않았다.
“봉투 경로가 바뀌면 사망자가 바뀝니다. 서이현 씨는 이미 봤겠죠.”
그는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을 맞혔다. 루프 기억으로 맞힌 건 아니었다. 자기 절차를 아는 사람의 계산에 가까웠다. 공식 문을 먼저 여는 사람이 바뀌면 봉투가 바뀐다. 봉투가 바뀌면 사람이 움직인다. 그 정도는 설계자가 예측할 수 있다.
“그걸 알면서 혼자 들어갔습니까.”
강태준이 물었다.
“혼자 들어가야 다른 사람을 덜 움직입니다.”
“이미 움직였습니다.”
그 말에 윤해원이 처음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강태준이 봉인 상태, 물방울, 손잡이 접촉을 모두 촬영했다.
17:05, 우리는 윤해원을 샤프트 안으로 들어가게 하지 않았다.
이미 안쪽 철망이 잠기기 전이었다. 정무겸은 출구 쪽을 열어 놓고 기다렸다. 강태준은 윤해원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았다. 보호가 아니라 제지였다. 윤해원은 웃지 않았다. 불쾌함을 감추지도 않았다.
“저를 살리려는 겁니까, 제 계획을 빼앗으려는 겁니까.”
강태준이 말했다.
“둘 다일 수 있습니다.”
그 문장은 내게서 빌린 것처럼 들렸다. 윤해원도 알아차린 듯했다. 그는 나를 보았다.
“서이현 씨가 사람을 움직이는 법을 배우는군요.”
“당신이 만든 봉투보다 낫습니다.”
내 대답은 빨랐다. 빠른 대답은 보통 정확하지 않았다. 윤해원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가 반박하지 않은 것이 더 불편했다.
우리는 점검구를 다시 봉인했다. 윤해원의 오른쪽 구두는 마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샤프트 안쪽 흙을 밟지 않았다. 원래 생겼을 자국 하나가 사라졌다. 그것만으로도 입력은 바뀌었다.
보안실로 가는 동안 윤해원은 한 번도 구조됐다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는 자기 동선이 차단됐다고 말했다. 강태준은 보호 조치라고 적었다. 나는 구조라고 쓰고 싶었지만, 장부에는 `샤프트 진입 전 제지`라고 적었다. 단어를 덜 따뜻하게 쓰면 나중에 원인을 덜 왜곡한다.
보안실 유리문이 닫히자 윤해원이 물었다.
“제가 여기 있으면 첫 인증자는 누가 됩니까.”
“그걸 보려고 당신을 막은 겁니다.”
내 대답에 그는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그럼 사람을 살린 것이 아니라 실험한 겁니다.”
“둘 중 하나만 고를 수 없습니다.”
“그 대답은 위험합니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경보 버튼을 보지 않으려던 첫날의 손을 떠올렸다. 사람을 살린다는 말과 기록을 지킨다는 말은 같은 방향으로 놓일 때도 있었고, 서로를 밀어낼 때도 있었다. 이번에는 어느 쪽인지 아직 몰랐다.
18:00, 7번 문 앞에 이주완이 섰다.
윤해원은 보안실에 있었다. 강태준은 그를 의무실 뒤 복도에서 바로 격리했다. 첫 공식 문 인증자는 윤해원이 아니었다. 오세진도 아니었다. 이주완은 카드키를 대기 전에 카메라 위치부터 확인했다.
“이 문장을 기록에 남기겠습니다. 저는 재단 감사관 자격으로 절차상 필요한 접근을 합니다.”
백소명이 렌즈를 들었다.
“누가 절차를 필요로 합니까. 당신입니까, 홍 원장입니까.”
“그 질문도 기록에 남길 겁니까.”
카드 리더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프린터가 바로 울었다. 이번에는 강태준 이름도, 오세진 이름도 아니었다. 봉투 앞면에는 홍상욱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수신자는 이주완이었다.
이주완은 봉투를 바로 열지 않았다. 먼저 봉투 모서리와 프린터 시간을 촬영했다. 증거능력을 살리는 사람은 내용을 늦게 본다. 늦게 보는 동안 다른 사람은 더 많이 상상한다.
홍상욱이 복도 끝에서 걸어왔다.
“이 감사 절차는 부원장 권한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한됐으면 출력되지 않았겠죠.”
이주완은 봉투를 들었다. 홍상욱은 그걸 빼앗지 않았다. 빼앗는 장면이 카메라에 남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손을 허리 뒤로 묶었다.
윤해원은 보안실 유리 너머에서 그 장면을 보았다. 안도하지 않았다. 자기 죽음이 빠진 자리로 다른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보는 얼굴이었다.
프린터는 봉투 한 장만 뱉지 않았다. 작은 영수증 같은 줄이 뒤따랐다. 고유라가 먼저 주웠다.
“수신자 권한, 이주완. 대상자, 홍상욱. 개봉 제한, 법무 감사.”
“내용은 읽지 않습니다.” 강태준이 말했다.
이주완이 웃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그 영수증도 제 절차물입니다.”
“현장 기록물입니다.”
강태준은 영수증을 투명 봉투에 넣었다. 이주완은 봉투를 가져갔지만, 영수증은 가져가지 못했다. 그 작은 실패가 그의 얼굴에 남았다. 거래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수증을 잃는 것을 싫어한다.
홍상욱은 봉투의 이름을 보고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대신 주변 사람을 둘러봤다. 백소명의 카메라, 고유라의 단말, 강태준의 장갑, 보안실 유리 안쪽의 윤해원. 그는 볼 사람이 몇 명인지 먼저 세는 사람이었다.
“회의실에서 이야기합시다.”
“공개된 복도에서 하시죠.”
백소명이 말했다.
홍상욱은 그에게 웃어 보이지 않았다. 웃음이 남는 카메라를 아끼는 사람처럼.
20:10, 회의실 앞에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홍상욱의 목소리는 끝까지 낮았다. 그래서 더 멀리 갔다.
“기관 전체를 위해 먼저 법무 검토를 받아야 합니다.”
“기관 전체가 서명하는 문서는 없습니다. 서명자는 개인입니다.”
이주완의 대답은 봉투보다 얇았다. 하지만 베였다. 홍상욱은 손가락으로 회의실 문패를 한 번 눌렀다. 문패에는 `비공개 감사 회의`라고 적혀 있었다. 오늘 처음 붙인 종이가 아니었다. 오래된 접착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홍상욱이 물었다.
“열었으니까요.”
“그럼 그걸 들고 움직이는 위험도 알겠군요.”
“위험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겠죠.”
윤해원은 그 말에 눈을 감았다. 나는 그가 자기 설계의 부작용을 계산하는 것을 봤다. 그는 사람마다 다른 압박점을 골랐다. 이번에는 그 압박점이 칼날처럼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봉투를 회수해야 합니다.”
윤해원이 낮게 말했다.
“당신이 뿌린 겁니다.”
내 말은 공격에 가까웠다.
“그렇습니다.”
윤해원은 처음으로 바로 인정했다. 자기연민은 없었다. 인정만 있었다.
“그래서 회수해야 합니다.”
그는 보안실 안에서 손을 들어 유리문을 두드렸다. 손바닥 소리가 작았다. 열어 달라는 몸짓이 아니라 보라는 몸짓에 가까웠다. 자기가 만든 경로가 자기 손 밖으로 나갔다는 것을, 그가 처음으로 남에게 보여 주고 있었다.
오세진은 의무실 앞에서 그 장면을 피했다. 홍상욱 봉투가 출력되자 그의 오른손 떨림이 다시 보였다. 그는 의료 카트를 정리하는 척했다. 정리할 물건은 많지 않았다. 같은 서랍을 두 번 열고 닫았다.
나는 그 움직임도 적었다. 이번 피습의 답은 아닐 수 있었다. 그래도 답이 아닌 움직임을 지워 버리면, 나중에 오답이 왜 합리적이었는지 설명할 수 없어진다.
백소명은 복도 끝에서 카메라를 낮췄다. 처음이었다. 그는 보통 렌즈를 사람보다 먼저 들었다. 이번에는 윤해원의 얼굴을 찍지 않았다.
“왜 안 찍습니까.”
내가 묻자 그가 짧게 답했다.
“지금 찍으면 피해자 얼굴이 아니라 제 해석이 됩니다.”
그 말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른다. 그래도 그 순간 백소명은 특종보다 순서를 골랐다. 윤해원이 유리 안쪽에서 그 말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카메라가 내려간 뒤에야 손을 내렸다.
22:30, 짧은 소리가 회의실 쪽에서 났다.
비명이라기보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에 가까웠다. 강태준이 먼저 뛰었다. 나는 한 박자 늦었다. 늦은 한 박자를 세는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회의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홍상욱은 테이블 옆에 쓰러져 있었다. 흰 셔츠 왼쪽 아래가 젖어 있었고, 바닥의 피는 문 쪽으로 얇게 끌려 있었다. 공격 도구는 보이지 않았다.
오세진이 뒤따라 들어오려 했지만 강태준이 막았다.
“손 보이십시오. 모두.”
그는 홍상욱에게 먼저 달려가지 않았다. 손과 문과 바닥을 동시에 봤다. 원망할 수 없는 순서였다. 이미 한 사람을 살리려다 다른 입력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현장을 잃으면 다음 루프에서도 같은 질문을 다시 해야 했다.
“살아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오세진이 문턱 밖에서 대답했다.
“확인해야 합니다. 압박이 필요합니다.”
그는 치명적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 않은 말도 기록됐다.
홍상욱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강태준이 가까이 가지 못하게 손을 들었고, 오세진이 무릎을 꿇은 채 압박 위치를 잡았다. 의사와 용의자 후보가 같은 공간에 서는 순간이었다. 강태준은 오세진의 손목을 카메라 안에 두게 했다.
“말할 수 있습니까.”
오세진이 물었다.
홍상욱은 고개를 아주 조금 저었다. 거절인지 통증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의 왼손은 비어 있었다. 오른손만 무엇인가를 쥐고 있었다.
“오른손 먼저 보겠습니다.”
강태준이 말했다. 생명보다 증거를 먼저 보는 말처럼 들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오른손이 무엇을 쥐었는지 모르면, 다음 손이 누구인지도 놓친다. 그는 오세진에게 압박을 유지하게 하고, 자기는 손가락을 폈다.
강태준은 홍상욱의 오른손을 보았다. 손가락이 무엇인가를 쥐고 있었다. 피 때문에 미끄러웠다. 그는 장갑을 끼고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22:33, 금속 키가 나왔다.
내 목에 걸린 Q-13 키가 아니었다. 연구원 관리 키. 보관실에 둔 내 코트 안쪽에 있어야 할 키. 9화에서 내 코트에서 발견됐고, 이번 루프에서는 강태준이 봉인했다고 믿었던 물건.
“제 키입니다.”
말하고 나서야 문장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소유와 보유는 달랐다. 내 것이어도 내 손에 있지 않았다. 내 코트에 있었어야 해도, 지금은 홍상욱의 피 묻은 손 안에 있었다.
강태준이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보관실 봉인 확인합니다. 이현 씨는 여기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제가 넣은 게 아닙니다.”
“그 문장도 기록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다는 말은 전보다 덜 잔인했다. 그는 나를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현장을 망치지 않기 위해 말하고 있었다.
그때 고유라의 단말이 짧게 울렸다. 그는 화면을 보고 바로 소리를 껐다.
“홍 원장 계정의 00:07 보정 예약이 아직 대기 중이에요.”
“홍 원장은 의무실에 있습니다.”
강태준이 말했다.
“그래서 말하는 거예요. 사람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여도 예약은 남아 있어요. 취소 권한은 아직 안 떠요.”
고유라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예약 명령이 무엇을 할지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사람의 손과 명령의 실행 시각이 분리될 수 있다는 사실은, 홍상욱의 피 옆에서 너무 선명했다.
윤해원이 문밖에서 홍상욱을 보았다. 살아 있는 피해자가 자기 죽음을 피해 만든 자리에 다른 피가 채워지는 장면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조건도 붙이지 않았다.
홍상욱의 피 묻은 손 안에서 나온 것은, 서이현의 관리 키였다.
구출은 성공했다. 윤해원은 살아 있었다. 그런데 살아 있는 피해자 옆에서, 내 물건이 다른 사람의 피를 쥐고 있었다. 다음 루프가 아니라 다음 분부터, 나는 다시 용의자가 됐다.
살린 사람의 수와 줄어든 의심은 같은 값이 아니었다.
그 차이가 다음 조사의 출발점이었다.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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