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재고보다 한 명 많다

안전수칙을 지키면 죽는다 · 2026.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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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보다 한 명 많다

다음 교대조 출근 벨은 창고 안에서만 울렸다. 바깥 휴게실에는 벨소리가 들리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 김문식의 손목 단말기와 한수아의 임시참관 앱이 동시에 진동했다.

출근 확인 필요.

한수아는 화면을 보자마자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저는 일 안 해요. 참관이라면서요.”

백기준이 말했다. “참관 등록도 현장 출입이라 근태 코드가 잡힐 수 있습니다.”

“돈은 0원인데 출근은 잡혀요?”

“그게 문제인 건 압니다.”

“알면 꺼요.”

백기준은 바로 끄지 못했다. 관리자 화면에는 B조 퇴근 대기와 다음 교대 출근이 동시에 떠 있었다. 두 조가 같은 창고 안에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시스템은 안쪽 인원을 12명으로 유지했다. 실제 명단은 13명으로 보인다는 오승필의 말이 남아 있었다.

도윤은 방화문 작은 창으로 안을 봤다. 냉장창고 안에는 형광등이 줄지어 켜져 있었다. 작업자들이 컨베이어 옆에 서 있었다. 움직임은 느렸다. 누군가는 박스를 들고 같은 위치로 돌아갔다. 지게차는 멈춰 있었다.

“문 열면 안쪽 인원부터 세야 합니다.” 서진이 말했다. “명단, 실제, 스캐너 수량을 분리합니다.”

은채가 재고 스캐너 로그를 열었다. 냉장 3번 라인 오늘 출고 예정 수량은 480개였다. 현재 스캔 수량은 479개. 미스캔 1개. 그런데 작업자 위치 태그는 13개였다.

“상품 하나가 부족한데 사람이 하나 많습니다.”

“상품으로 보정할 수 있다는 뜻입니까.”

“가능성입니다. 확정하지 마세요.”

백기준은 관리자 카드로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완전히 열지 않았다. 도윤이 먼저 들어가고, 서진은 문턱 바깥에서 기록했다. 한수아는 안으로 들어가려다 도윤에게 막혔다.

“수아 씨는 등록이 이상합니다. 문 밖에서 목격.”

“사람 세는데 저 빠지면 또 한 명 적게 되잖아요.”

“그래서 문 밖 목격으로 세는 겁니다.” 서진이 말했다.

한수아는 불만이 얼굴에 남았지만 물러섰다. 그는 문틀에 붙어 작업자 이름을 하나씩 따라 적었다. 발음이 틀리면 당사자에게 다시 물었다. 라만은 자기 이름의 받침 없는 발음을 천천히 말했다. 응우옌 티란은 성과 이름 순서를 바꾸지 말라고 했다. 서진은 그 요구를 그대로 반영했다.

냉장창고 안쪽 스캐너는 사람을 향해 삑 소리를 냈다. 원래 상품 바코드만 읽어야 했다. 도윤이 작업자와 스캐너 사이를 막자 화면에 오류가 떴다.

상품 아님.

그 다음 라만의 조끼에 붙은 임시 QR을 읽었다.

빈 팔레트 1.

라만은 자기 조끼를 내려다봤다. “팔레트 아니에요.”

“압니다.” 서진이 말했다. “본인 진술 기록합니다.”

스캐너는 박선영의 장갑을 읽고 빈 팔레트 1, 응우옌 티란의 모자를 읽고 빈 팔레트 1을 띄웠다. 모두 같은 라벨이었다. 초과 인원을 하나의 빈 팔레트로 묶는 방식이었다.

백기준이 스캐너를 빼앗으려 했다. “이 장비 불량입니다.”

한수아가 문 밖에서 말했다. “불량이면 왜 일용직만 읽어요?”

오승필은 정규직 사번을 보여 주었다. 스캐너는 그를 작업자 08로 읽었다. 김문식은 빈 팔레트 1이었다. 라만도 빈 팔레트 1이었다. 박선영도, 티란도 같은 값이었다.

은채가 말했다. “한 사람으로 합치는 게 아니라, 빈 물건 하나로 합칩니다. 사람을 초과 재고가 아니라 결손 재고로 처리해요.”

“그래서 상품 수량이 맞아지는 겁니까.”

“네. 미스캔 상품 1개가 빈 팔레트 1로 대체됩니다. 팔레트는 출고할 수 있으니까요.”

서진은 창고 바닥을 보았다. 빈 팔레트들이 벽 쪽에 세워져 있었다. 그중 하나에 라벨이 붙어 있었다. 빈 팔레트 1. 바코드는 흐릿했지만 숫자는 읽혔다. 000-47-1.

백기준이 낮게 말했다. “그건 회수용 팔레트입니다. 사람하고 상관없습니다.”

“그럼 라만 씨 조끼가 왜 같은 번호로 읽힙니까.”

백기준은 답하지 못했다.

서진은 빈 팔레트 1을 바로 지우려 하지 않았다. 라벨이 잘못됐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했다. 이곳의 시스템은 잘못된 라벨도 출고할 수 있었다. 필요한 것은 다른 분류였다.

“작업자와 팔레트가 동시에 찍힌 기록을 분리해야 합니다.”

은채가 스캐너 로그를 복사했다. 상품 코드, 작업자 태그, 위치 태그, 시간. 네 값 중 사람 이름은 없었다. 모두 코드였다. 정규직 오승필만 사번으로 남아 있었고, 나머지는 임시 QR이었다.

“임시 QR은 재사용됩니까.”

백기준은 대답을 망설였다. “업체가 다음 사람에게 다시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럼 지난달 최미정 씨 QR이 지금 다른 사람에게 붙을 수도 있습니까.”

“원칙상 안 됩니다.”

“실제로는요.” 한수아가 물었다.

백기준은 창고 벽의 빈 팔레트를 보았다.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이 나오자 스캐너 화면의 빈 팔레트 1 아래에 작은 줄이 생겼다.

재사용 가능.

한수아가 말했다. “기계가 부장님 말을 듣네요.”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이미 있던 설정이 뜬 겁니다.” 은채가 말했다. “인정 발화가 조건일 수는 있지만, 설정 자체가 있었어요.”

서진은 은채의 문장을 줄였다. 관리자 발화 후 숨은 설정 표시. 원인 미확정.

라만은 자기 조끼 QR을 떼어 바닥에 놓으려 했다. 도윤이 막았다. “바닥에 두면 물건 됩니다.”

“그럼 어디 둬요.”

“본인이 들고, 이름표를 따로 붙입니다.”

서진은 종이 이름표를 만들었다. 라만, 박선영, 응우옌 티란, 김문식. 각자 자기 이름을 확인하고, 다른 한 사람이 목격 서명했다. 이름표는 조끼가 아니라 손목 위에 끈으로 묶었다. QR과 몸을 분리하되, 사람의 이름을 몸에서 떼어 놓지 않는 방식이었다.

스캐너를 다시 통과시키자 결과가 조금 달라졌다. 라만은 빈 팔레트 1 / 이름표 라만 충돌. 박선영도 충돌. 티란도 충돌. 충돌이라는 단어가 뜨자 벨트가 3초 멈췄다.

“충돌이 나면 멈춥니다.” 은채가 말했다.

“그럼 멈추게 해야 합니다.” 한수아가 말했다.

백기준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라인이 계속 멈추면 냉장품 폐기입니다.”

“사람 폐기는요.”

이번에는 아무도 바로 말하지 않았다. 서진은 그 대사를 기록하지 않았다. 너무 잘 정리된 말은 나중에 장면을 가릴 수 있었다. 대신 벨트 3초 정지, 충돌 표시, 폐기 비용 논쟁이라고 적었다.

오승필은 정규직 사번 카드를 내밀었다. “제 카드로 저 사람들 퇴근시킬 수 있습니까?”

은채가 말했다. “하지 마세요. 정규직 사번으로 일용직 퇴근을 덮으면 오승필 씨가 대체 작업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승필은 카드를 천천히 내렸다. 그는 도와주고 싶었지만, 방법이 사람 하나를 다시 넣는 방식이면 안 됐다.

한수아의 임시참관 앱은 계속 켜졌다. 화면에는 계약서 보기 버튼이 생겼다. 그는 누르려다 서진을 봤다.

“눌러도 돼요?”

“혼자 누르지 마세요. 화면 녹화, 목격자 두 명, 그리고 동의 전 문구 확인.”

한수아는 입술을 비틀었다. “원래 앱 가입할 때 이렇게 했으면 여기 안 왔죠.”

계약서에는 참관이 아니라 임시지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임금은 협의 후 지급. 협의 주체는 공란. 한수아는 자기 이름으로 된 무급 출근 가능성을 확인했다. 스캐너가 그를 빈 팔레트 1로 읽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그는 등록은 되었지만 임금·업체·책임자가 비어 있었다.

서진은 그 빈칸을 모두 적었다. 빈칸이 많을수록 시스템은 사람을 물건으로 밀었다.

스캐너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한수아의 휴대전화였다. 문 밖에 있는데도 임시참관 앱의 QR이 켜져 있었다. 한수아는 화면을 끄려고 했지만, 앱이 다시 열렸다.

참관자 구분 불완전. 재고 보정 대기.

서진이 말했다. “휴대전화 내려놓으세요. 화면 보이지 않게.”

한수아는 휴대전화를 바닥에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스캐너는 그를 향해 다시 삑 소리를 냈다. 문 밖, 작업 라인 바깥, 조끼 등판의 임시상하차 글자 위로 빨간 빛이 지나갔다.

한수아가 빈 팔레트 1로 읽힌 뒤, 그는 일부러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스캐너 빛은 따라왔다. 문 밖, 안전선 밖, 작업자 명단 밖. 그래도 임시참관 QR이 켜져 있는 동안에는 분류가 따라왔다.

“앱 삭제하면요?”

은채가 바로 막았다. “삭제하면 로그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로그가 사라지면 방금 등록이 없던 일이 됩니다.”

한수아는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이런 앱 하나로 사람이 물건이 되는데, 탈퇴도 마음대로 못 해요?”

서진은 탈퇴 불가라고 쓰지 않았다. 로그 보전 전 삭제 위험이라고 적었다. 한수아는 그 차이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화가 나도 기록 문장을 망치지는 않았다.

백기준은 업체 관리자 화면에서 QR 발급 이력을 열었다. 최미정이라는 이름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대신 같은 QR 묶음이 지난달 ‘M-17’에게 배정됐고, 이번 달 라만에게 재배정된 기록이 있었다. M-17은 이름이 아니라 임시 코드였다.

“이 M-17이 최미정 씨입니까.” 서진이 물었다.

“모릅니다.” 백기준은 이번에는 모른다고 했다. “업체가 이름을 안 넘기면 저희는 코드만 봅니다.”

“그럼 모른 채로 출고시킨 겁니다.” 한수아가 말했다.

백기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QR 발급 이력을 닫지 않았다. 닫으면 다시 공란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었다.

스캐너 로그에는 재사용 가능 옆에 재사용 사유가 있었다. 미회수 장비 보정. 사람의 QR이 장비 보정 사유로 넘어가 있었다. 라만은 자기 조끼를 손으로 잡았다.

“나는 장비 아니에요.”

서진은 대답했다. “그 문장도 기록합니다.”

그 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그러나 라만의 이름표가 스캐너 충돌 목록에서 사라지지 않게 했다. 사람의 자기 진술이 물건 분류와 같은 화면에서 버텼다.

스캐너 충돌 목록은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30초가 지나면 자동으로 사라졌다. 은채가 화면 녹화를 하고 있었지만, 현장 화면에서 사라지면 작업자들은 다시 불안해했다. 서진은 충돌 결과를 종이에 옮겨 적고 각자에게 확인하게 했다.

라만은 자기 이름 옆에 서명 대신 엄지표식을 찍으려 했다. 그는 한글 서명이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서진은 서명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름 확인 방식: 본인 발음 확인, 로마자 대조, 엄지표식. 박선영은 서명했고, 티란은 베트남어 성명 순서로 썼다.

백기준은 그 종이를 보고 말했다. “나중에 법무가 형식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형식 차이를 적습니다.”

서진은 각 이름 옆에 확인 방식까지 붙였다. 같은 양식으로 밀어 넣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이곳의 이상은 형식에 안 맞는 사람을 빈 물건으로 밀었다. 형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편이 나았다.

스캐너가 종이를 읽으려 했지만 바코드가 없어서 실패했다. 실패음은 처음으로 안전한 소리처럼 들렸다. 서진은 그렇게 쓰지 않고, 바코드 없음, 자동 분류 실패라고 적었다.

백기준은 임시 QR 재사용을 막기 위해 업체 앱에서 해당 묶음을 정지하려 했다. 정지 버튼을 누르기 전, 은채가 화면을 멈췄다. “정지하면 현재 작업자 기록도 같이 사라질 수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폐기 말고 동결. 읽기 전용으로 묶어야 합니다.”

백기준은 메뉴를 찾지 못했다. 앱에는 동결이라는 말이 없었다. 대신 사용중지, 삭제, 재발급만 있었다. 모두 위험했다. 서진은 그 화면을 찍었다. 안전한 선택지가 없는 시스템도 단서였다.

한수아가 말했다. “삭제하지 말고 못 쓰게 해야 하는데, 버튼은 삭제밖에 없네요.”

결국 백기준은 업체 대표에게 동결 요청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요청 시간과 수신자는 남았다. 스캐너 화면의 재사용 가능 문구는 유지됐지만, 그 아래에 관리자 조치 대기라는 줄이 붙었다.

동결 요청을 보낸 뒤에도 스캐너는 한수아를 따라왔다. 도윤은 스캐너와 한수아 사이에 빈 종이 상자를 세웠다. 상자는 상품으로 읽혔지만, 사람 이름은 읽히지 않았다. 상자 화면에는 미스캔이라고 떴다.

“차라리 상자가 방패네요.” 한수아가 말했다.

서진은 상자를 해결책으로 쓰지 않았다. 임시 차폐물, 상품 오인 위험이라고 적었다. 물건으로 사람을 가리는 방식은 오래 쓰면 다른 비용이 생길 수 있었다.

빈 상자 차폐는 10초밖에 버티지 못했다. 스캐너는 곧 상자를 미스캔 상품으로 등록하려 했다. 도윤이 상자를 치우자 한수아가 다시 잡혔다. 서진은 차폐 실패까지 적었다. 실패한 방법도 다음 사람이 반복하지 않게 남겨야 했다.

스캐너 화면에 이름 대신 새 라벨이 떴다.

빈 팔레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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