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접수되지 않은 실종

안전수칙을 지키면 죽는다 · 2026. 10. 2.

조회수 0

접수되지 않은 실종

전광판은 윤하준의 이름을 세 번 부르지 않았다. 한 번만 부르고 멈췄다. 그게 더 나빴다. 보통 민원실 방송은 들리지 않은 사람을 위해 반복했다. 이 방송은 들은 사람을 알고 있었다.

도윤은 서진의 손에서 번호표를 빼앗지 않았다. 대신 번호표 아래에 자신의 신분증을 받쳤다. 종이가 접히지 않게 하려는 동작이었다.

“지금 움직이면 창구로 가는 겁니다.”

“가야 합니다.”

“민원인은 윤하준이라고 불렀습니다.”

서진은 대답을 늦췄다. 하준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보고도 바로 걸어가지 않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미란은 창구 쪽이 아니라 종합상황실 유리문으로 갔다. 당직자는 안쪽에서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야간 책임자를 호출해 주세요.”

“팀장님, 저 혼자입니다. 민원실은 저희 관할이 아닙니다.”

“그 말을 서면으로 남길 수 있습니까.”

당직자의 입이 닫혔다. 그는 책상 위에서 공문 양식을 찾듯 서랍을 열었다가 닫았다. 유리문은 여전히 잠긴 상태였다.

은채가 이어폰으로 말했다. “민원실 원부 접근하려면 당직 계정이 필요합니다. 미란 팀장님 권한이면 임시 열람 가능할 겁니다. 그런데 지금 원부가 두 개 떠요. 정상 원부와 미접수 원부.”

“미접수 원부가 공식 시스템에 있습니까.”

“명칭은 임시보관입니다. 내부 태그가 미접수예요. 등록 주소 불완전, 대리 신고, 미성년 단독 신고, 외국인 체류지 미확정, 노숙 추정. 이런 것들이 묶여 있습니다.”

서진은 번호표를 투명 파일에 넣었다. 파일은 학원 사건 때 보라가 준 것이었다. 겉에는 검은 펜으로 ‘확인 전’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준 사건도 그쪽입니까.”

은채가 바로 답하지 않았다. 키보드 치는 소리만 들렸다. 도윤은 그 침묵을 기다리지 않고 창구 셔터 아래를 다시 봤다. 0번 창구는 보이지 않았다. 1번 왼쪽 벽면은 안내 포스터로 막혀 있었다. 포스터에는 복지 상담, 건축 민원, 차량 등록, 실종 신고 협조 안내가 차례로 붙어 있었다. 마지막 포스터 모서리만 새로 붙인 테이프가 빛났다.

서진은 포스터를 손대지 않았다. “사진 먼저.”

도윤이 각도를 잡았다. 미란이 휴대전화 플래시를 낮췄다. 서진은 테이프 위치, 포스터 가장자리, 벽면의 도장 자국을 차례로 찍었다. 그 뒤 포스터 아래쪽만 살짝 들었다.

벽에는 창구 번호판이 있었다.

0.

번호판 아래 작은 수칙이 손글씨로 붙어 있었다.

0번 창구 이용 수칙 1. 접수 전 실종은 이름을 세 번 부르지 않는다. 2. 번호표를 가진 사람이 민원인을 대신할 수 있다. 3. 책임자 확인 전까지 원부를 닫지 않는다.

세 문장 모두 서로 다른 펜으로 적혀 있었다. 두 번째 문장에는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고, 그 위에 새 글자가 덧붙었다.

대신할 수 없다.

서진은 그 문장을 오래 보지 않았다. 의미를 확정하면 안 됐다. 사진을 찍고, 필압이 다른 지점만 표시했다.

은채가 말했다. “찾았습니다. 윤하준. 신고일 11년 전 8월 17일. 신고자 윤서진. 당시 미성년 보호자 동의 미확인. 주소지 관할 불일치. 접수 상태가 미접수로 이동.”

서진은 벽에서 손을 뗐다.

“이동 시점.”

“최초 입력 당일 00시 17분. 그 뒤 수정 이력은 읽기 제한. 오늘 23시 07분에 재열람 요청 발생.”

“누가 요청했습니까.”

“요청자 공란.”

미란이 그 말을 듣고 당직자에게 말했다. “문 열어 주세요. 이건 야간 민원 응대가 아니라 시스템 오작동입니다.”

당직자는 인터폰을 잡은 손을 바꿨다. “열면 제가 책임져야 합니까.”

그 질문은 평범했다. 그래서 로비가 잠깐 정리됐다. 이곳에는 괴물보다 먼저 책임 서류가 있었다. 서진은 유리문 앞으로 갔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왜요.”

“책임을 넘기려는 게 아닙니다. 지금 문을 열지 않은 상태도 기록해야 합니다. 성함 없이 쓰면 시스템이 공란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당직자는 이름표를 가렸다가 손을 내렸다. “민원지원과 이정배입니다. 당직 대체 근무입니다.”

“이정배 주무관님. 문을 열지 않으면 저희는 민원실 원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문을 열면 주무관님 단독 책임으로 적지 않겠습니다. 현장 책임은 특이민원3팀 윤서진, 강도윤, 서미란 세 명 공동으로 남깁니다.”

도윤이 짧게 말했다. “녹음 중입니다.”

미란이 이어 말했다. “그리고 이정배 주무관은 야간 시설 접근 협조자로만 남깁니다. 민원 판단 책임자가 아닙니다.”

그제야 유리문 잠금이 풀렸다. 문이 열리자 전광판이 다시 켜졌다.

협조자 1명 확인.

당직자는 자기 이름이 전광판에 뜨지 않은 걸 보고도 얼굴을 찡그리지 못했다. 그의 역할은 이름 대신 직무로 처리됐다. 서진은 그 차이를 기록했다.

상황실 컴퓨터는 느렸다. 은채가 원격으로 보조했고, 미란은 인증서 비밀번호를 직접 입력하지 않고 당직자에게 화면을 돌려 보이게 했다. 도윤은 문 쪽에 섰다. 번호표 0번은 투명 파일 안에서 하준의 이름을 유지했다.

미란은 정상 원부와 임시보관 원부를 나란히 띄우게 했다. 같은 이름이 두 화면에 동시에 있으면 화면이 깜박였다. 이름이 정상 원부에서 빠져 임시보관으로 옮겨진 사람은 정상 화면에서 줄 간격만 조금 넓어졌다. 빈자리는 표시되지 않았다.

“없어진 줄을 빈 줄로 남기지 않네요.” 서진이 말했다.

은채가 답했다. “맞아요. 그래서 누락인지 원래 없었는지 구분이 안 됩니다. 통계상 총량은 그대로예요. 처리 건수가 줄지 않으니까.”

“사람은 빠졌는데 숫자는 그대로.”

“다른 민원으로 보정합니다. 건축물대장 하나가 두 번 카운트됐어요.”

이정배 주무관이 작은 소리로 욕을 삼켰다. 그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서진은 그 반응을 쓰지 않았다. 대신 정상 원부 12번 처리 건수 중복, 미접수 전환 후 총량 유지라고 적었다.

화면 아래에는 검색창이 있었다. 미란은 자기 이름을 검색하지 않았다. 서진도 하준의 이름을 다시 치지 않았다. 은채가 원격으로 필터 조건만 바꿨다. 주소 불완전, 보호자 부재, 관할 불일치. 세 조건을 동시에 걸자 항목 수가 73에서 41로 줄었다. 은채가 바로 말했다.

“이 숫자 말하지 마세요. 지금 의미 붙이면 안 됩니다. 그냥 필터 결과입니다.”

“기록합니다. 필터 결과 41. 의미 미확정.”

도윤은 로비 쪽을 확인했다. 전광판은 꺼져 있었지만, 0번 창구 포스터 뒤쪽에서 종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벽 안쪽에서 목록을 넘기는 것 같았다.

“시간 끌수록 저쪽이 먼저 정리합니다.”

“그럼 열람 범위를 줄입니다.” 서진은 말했다. “하준 항목과 같은 사유 세 개, 오늘 재열람 요청, 권한 로그. 다른 항목 이름은 가립니다.”

미란은 그 선택에 바로 동의하지 않았다. “다른 항목이 피해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전부 열면 공개 범위가 터집니다. 지금은 원부가 있다는 증거와 작동 방식을 잡아야 합니다.”

미란은 서진을 보았다. 그 눈길에는 칭찬도 사과도 없었다. 그는 마우스를 놓고 말했다. “그 방식으로 처리합니다.”

이정배 주무관이 프린터 옆에서 종이를 받쳤다. 출력 버튼을 누른 사람은 은채였고, 종이를 잡은 사람은 이정배였다. 서진은 그 차이를 기록했다. 출력물의 이름 칸은 자동으로 일부 가려졌다. 그러나 하준의 항목만 가림이 풀려 있었다.

윤하준.

신고자: 윤서진. 새 민원인: 공란.

정상 원부로 돌아오자 41번 복지 상담 항목이 두 줄로 갈라져 있었다. 한 줄은 처리 완료, 다른 한 줄은 처리 대기였다. 상담 대상자 이름은 별표 처리되어 있었고, 연락처 끝자리만 보였다. 두 줄의 끝자리는 달랐다.

“중복 카운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같은 번호로 덮은 겁니다.” 은채가 말했다.

“그럼 완료된 사람은 실제로 있고, 대기 중인 사람도 있습니다.”

“네. 한 번호로 두 명을 처리한 것처럼 보이게 했어요. 통계에는 한 건, 원부에는 두 흔적.”

미란은 처리 완료 줄의 담당자 칸을 확대했다. 담당자 이름은 있었다. 대기 줄에는 없었다. 책임자 칸은 둘 다 비어 있었다.

이정배가 말했다. “복지 상담은 우리 과가 아닙니다. 복지정책과입니다.”

“그 말도 적습니다.” 서진은 답했다. “관할이 다르다는 이유로 공란이 유지된 사례.”

유리문 밖 로비 전광판이 켜졌다. 41번, 담당 과 이관 중. 문구는 공손했지만 사람 이름은 여전히 없었다. 서진은 이 장면을 하준의 사건과 분리해 적었다. 같은 원리가 다른 민원에도 작동한다는 증거일 뿐, 모든 원인을 오늘 확정할 수는 없었다.

서진은 41번 두 줄을 같은 화면에 두지 않고 각각 캡처했다. 같은 번호를 한 장에 담으면 나중에 한 줄로 합쳐질 수 있었다. 은채도 파일명을 다르게 저장했다. 041_complete, 041_pending. 영어 파일명은 임시였고, 본문 메모에는 완료 41, 대기 41로 적었다. 도윤은 그 사이에 프린터 종이 배출구를 손으로 막고 있었다. 종이가 더 나오면 어떤 항목이 새로 덮일지 알 수 없었다.

“손 치우면 바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못 치우지.”

그의 손등에 프린터 열이 올라왔다. 서진은 그 부상을 과장하지 않고 적었다. 프린터 배출 저지 중 열감 발생, 중단 시 추가 출력 가능성.

그 아래 작은 안내가 있었다.

가족이 현장에 있는 경우 공란을 보정할 수 있습니다.

도윤이 종이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이 문장 보이지 않게 해.”

서진은 빈 종이를 덮었다. 덮자마자 프린터가 같은 문장을 한 줄 더 밀어냈다.

보정 거부 시 미접수 유지.

“협박 문구입니다.” 서진이 말했다.

“행정 문구로 위장한 협박입니다.” 은채가 고쳤다. “거부하면 현 상태 유지라는 말이라 법적으로는 안내처럼 보여요.”

미란은 프린터 옆면의 자산 스티커를 찍었다. 자산 관리 부서명은 민원지원과가 아니라 기록조정실이었다. 이정배는 그 이름을 보고 손을 떼었다.

“저희 과 물건 아닙니다.”

“그래도 여기 놓여 있습니다.” 서진이 말했다. “그 차이를 남기겠습니다.”

그때 5번 창구 셔터 안쪽에서 가족관계증명서 용지가 밀려 나왔다. 아무도 신청하지 않았는데, 서진과 하준의 관계가 인쇄되어 있었다. 발급 번호는 18번이었다. 오늘 처리 완료 목록의 18번과 같았다.

서진은 그 종이를 받지 않았다. 받는 순간 가족 대리 민원인 등록으로 처리될 수 있었다. 도윤이 셔터 앞 바닥에 놓인 종이 주위로 의자를 둘러막았다.

“물건 존재만 확인.”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령하지 않음. 가족관계증명서 자동 발급 시도. 대리 등록 유도 가능성.”

전광판은 잠깐 켜졌다가 꺼졌다. 대기 인원 1명은 변하지 않았다.

정상 원부에는 오늘 접수된 민원이 차례로 있었다. 12번 건축물대장, 18번 가족관계증명, 41번 복지 상담. 그런데 임시보관 원부는 순서가 달랐다. 번호 대신 사람 이름 일부와 사유가 있었다.

주소 불명. 보호자 부재. 신고자 미성년. 관할 불일치. 대리 신고 미확인.

각 항목 오른쪽에는 처리 상태가 있었다.

미접수. 미접수. 미접수.

하준의 항목은 맨 아래가 아니었다. 중간에 끼어 있었다. 이름은 윤하□으로 표시됐다. 주민번호 앞자리도 비어 있었다. 신고자 칸에 윤서진이 있었고, 그 옆에 새 칸이 생겨 있었다.

새 민원인.

비어 있어야 할 칸이었다.

은채가 낮게 말했다. “커서가 거기에 있습니다. 누가 입력 중인 게 아니라 자동 대기입니다.”

“닫으면 어떻게 됩니까.”

“닫기 버튼이 없습니다.”

미란이 마우스를 잡으려다 손을 멈췄다. “원부를 닫지 말라는 수칙이 있습니다. 닫는 행위가 아니라, 책임자 확인 전 종료가 비용일 가능성이 큽니다.”

도윤이 말했다. “그러면 책임자를 넣어야겠네.”

“아무 이름이나 넣으면 누군가 대신합니다.”

서진은 화면을 보았다. 민원인은 하준이었다. 신고자는 과거의 자신이었다. 새 민원인 칸은 현재의 누군가를 기다렸다. 번호표 수칙은 대신할 수 없다고 수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시스템은 대신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원부 전체를 복사하지 않습니다. 해당 항목과 전후 항목, 권한 로그만 캡처합니다. 이름이 가려진 다른 사람들은 노출하지 않습니다.”

“언론 공유 금지.” 도윤이 말했다.

“도경 씨한테 보내지 않습니다.”

그 말을 끝내자 프린터가 켜졌다. 상황실 구석의 낡은 프린터였다. 아무도 출력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종이 한 장이 나왔다.

미접수 실종 신고 원부 열람 확인서.

확인자 칸에는 윤서진의 이름이 이미 인쇄되어 있었다. 주민번호 칸은 비어 있었다. 서진은 종이를 집지 않았다. 이정배 주무관이 뒤로 물러났다.

“저거 원래 안 나옵니다.”

도윤이 프린터 전원선을 뽑았다. 프린터는 한 줄을 더 인쇄했다.

새 민원인: 윤서진.

동시에 컴퓨터 화면의 빈 칸에 서진의 주민번호 앞자리가 자동으로 입력되기 시작했다.

이번 화가 재미있었나요?

좋아요와 평점은 언제든 변경할 수 있습니다.

독자 평점 아직 없음

댓글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 주세요.

안전수칙을 지키면 죽는다 22화 - 접수되지 않은 실종 | 로렌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