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0번 창구

안전수칙을 지키면 죽는다 · 2026.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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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번 창구

구청 별관 자동문은 밤 열한 시에도 열렸다. 문 위에는 민원실 운영 종료 안내가 붙어 있었고, 안내 아래 작은 종이가 하나 더 있었다.

야간 접수는 번호표를 뽑은 민원인에 한해 가능합니다.

서진은 그 문장을 사진으로 남겼다. 도윤은 자동문 사이에 접힌 고무 매트를 발로 눌렀다. 문이 다시 닫히려다 멈췄다.

“한 명씩 들어가면 안 됩니다.”

미란이 뒤에서 말했다. 그는 학원에서 들고 나온 봉투를 품에 안고 있었다. 봉투 입구는 세 번 접혔고, 접힌 부분마다 서진과 도윤의 서명이 있었다.

“이 문자는 하준 번호에서 왔습니다. 그래도 발신자는 미확인입니다.”

서진이 말했다.

“그렇게 기록하십시오.”

미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말에 주어를 붙이지 않았다. 서진은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 두 번째 문자는 아직 그대로였다.

0번 창구로 와.

별관 로비에는 조명이 절반만 켜져 있었다. 오른쪽 벽에는 성안시 통합민원 표어가 붙어 있었다. 시민 한 분의 불편도 접수하겠습니다. 그 아래 접수 번호 전광판은 꺼져 있었다. 접수창구는 1번부터 6번까지 있었고, 셔터가 내려간 창구마다 플라스틱 안내판이 걸렸다.

오늘 접수 마감.

책임자란은 비어 있었다.

은채는 현장에 오지 않았다. 대신 이어폰 너머로 별관 평면도를 읽었다. “구청 별관 민원동은 주간에만 운영. 야간 당직은 종합상황실 한 명, 시설직 한 명. 민원실 담당자는 없습니다. 그런데 전산에는 0번 창구가 있어요. 폐쇄 코드가 아니라 숨김 코드입니다.”

“숨김 코드면 누가 열 수 있습니까.”

“권한자 이름이 비어 있습니다.”

서진은 벽 안내판을 한 번 더 찍었다. 도윤은 창구 셔터 아래 틈을 손전등으로 훑었다. 안쪽에는 의자가 있었지만 사람 그림자는 없었다. 복사기 전원등만 녹색으로 깜박였다.

번호표 기계는 로비 한가운데 있었다. 화면에는 검은 대기 화면이 떠 있었다. 기계 옆에는 오래된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1. 번호표를 뽑으십시오. 2. 호명 전까지 자리를 떠나지 마십시오. 3. 접수되지 않은 민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 줄만 흰 스티커 위에 다시 인쇄되어 있었다. 원래 문장은 스티커 아래에서 조금 비쳤다. 서진은 각도를 바꿔 사진을 찍었다. 비친 글자 중 읽히는 것은 두 단어뿐이었다.

책임자는 누구.

“팀장님.”

미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진이 다시 불렀다.

“서미란 팀장님. 이 문구 아십니까.”

“민원실 표준 문구는 아닙니다.”

“표준 문구가 아닌 건 알겠습니다. 아는 문구인지 묻고 있습니다.”

미란은 봉투를 고쳐 잡았다. “비슷한 문구를 본 적은 있습니다. 오래된 접수 원장 쪽에서.”

도윤이 번호표 기계 옆면을 열어 보려 했지만 잠겨 있었다. 그는 손을 뗐다. “부수면 접수로 치겠지.”

“그 전에 권한자 로그부터요.”

서진은 기계 화면 아래 작은 버튼을 눌렀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두 번째로 누르자 화면이 켜졌다. 민원 분류가 떠야 할 자리에 빈 네모 여섯 개가 나란히 있었다. 빈칸 아래에는 선택지가 하나뿐이었다.

미접수 확인.

서진은 누르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녹화했다. 도윤이 옆에서 시간을 불렀다.

“23시 07분. 윤서진 단독 조작 아님. 강도윤 목격.”

미란이 한 박자 늦게 말했다. “서미란 목격.”

그 이름이 들어가자 화면 맨 아래 줄이 바뀌었다.

목격자 2명 확인. 민원인 1명 대기.

서진은 손을 멈췄다. “민원인이 누구인지 표시되지 않습니다.”

은채가 이어폰 너머에서 말했다. “화면 캡처 들어왔습니다. 민원인 정보 필드가 비어 있는데 대기 인원만 1명으로 잡혀요. 누군가를 먼저 세고 이름은 나중에 붙이는 방식입니다.”

“붙일 이름을 고르게 하겠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미란이 처음으로 주어가 있는 문장을 말했다. 서진은 그 말을 기록했다. 도윤은 별관 안쪽 복도를 보았다. 종합상황실 방향의 유리문은 잠겨 있었고, 안에는 야간 당직으로 보이는 남자가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그는 서진 일행을 보면서도 문을 열지 않았다. 책상 앞에는 퇴근하지 못한 얼굴이 놓여 있었다.

서진은 그를 향해 신분증을 들어 보였다.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유리문 옆 인터폰이 울렸다.

“민원실은 업무 종료입니다. 사고 접수는 120으로 하세요.”

“특이민원3팀 윤서진입니다. 0번 창구 권한자와 야간 책임자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 창구 없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번호표 기계가 종이를 뱉었다. 소리는 작았다. 마트 영수증이 나올 때와 비슷했다.

도윤이 먼저 손을 뻗지 않았다. 서진도 바로 집지 않았다. 미란이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고 휴대전화로 기계와 종이를 한 화면에 담았다.

“세 명 목격. 물건 확인 후 집습니다.”

서진은 종이 끝을 두 손가락으로 잡았다. 번호표에는 굵은 숫자 하나가 찍혀 있었다.

0.

아래에는 이름 대신 민원 분류가 있었다.

실종. 접수 전.

발급 시간은 23시 07분이었다. 담당자 칸은 빈칸이었다. 책임자 칸도 빈칸이었다. 다만 오른쪽 아래에 작은 질문이 찍혀 있었다.

책임자는 누구입니까?

유리문 너머 당직자가 다시 말했다. “그 기계 전원 뽑힌 지 오래됐습니다.”

도윤이 기계 뒤를 확인했다. 전원선은 콘센트에 꽂혀 있지 않았다. 바닥에 빠진 플러그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런데 기계 화면은 켜져 있었다.

“나가죠.” 도윤이 말했다.

“번호표를 들고 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나가자는 겁니다. 여기 안에서만 통하는 규칙이면 문에서 반응할 겁니다.”

서진은 번호표를 지갑에 넣지 않았다. 휴대전화 케이스 안에도 넣지 않았다. 손바닥 위에 올리고, 다른 손으로 촬영했다. 미란은 봉투를 다시 들었다. 그 순간 로비 전광판이 켜졌다.

대기번호 12번, 3번 창구로 오십시오.

로비에는 다른 민원인이 없었다. 3번 창구 셔터는 내려가 있었다. 전광판은 다시 꺼졌다가 켜졌다.

대기번호 18번, 5번 창구로 오십시오.

은채가 말했다. “오늘 주간 대기번호 기록입니다. 12번은 건축물대장, 18번은 가족관계증명. 둘 다 정상 처리.”

전광판은 처리된 사람들을 한 번씩 다시 불렀다.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번호와 창구만 있었다. 서진은 번호표 0번을 바닥에 내려놓지 않았다. 도윤은 자동문 쪽을 등지고 섰다.

미란이 낮게 말했다. “처리된 민원을 다시 부르는 건 완료 확인입니다. 완료되지 않은 민원이 끼어 있으면 순서가 뒤틀립니다.”

“그걸 왜 지금 말씀하십니까.”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저를 여기 데려오신 겁니까.”

“혼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서진은 더 묻지 않았다. 전광판의 숫자가 41에서 멈췄다. 화면 아래 담당자 칸이 생겼고, 그 칸은 비어 있었다. 도윤이 미란을 보았다. 미란은 전광판을 보지 않고 로비 바닥의 콘센트를 보고 있었다.

그 전에 로비 왼쪽에서 작은 프린터가 켜졌다. 번호표 기계가 아니었다. 민원 만족도 조사함 아래 숨어 있던 영수증 프린터였다. 도윤이 손전등을 비추자 프린터 위에는 테이프로 붙인 메모가 있었다.

야간 민원은 만족도 조사 대상에서 제외.

프린터는 설문지가 아니라 오늘 처리 완료 목록을 뱉었다. 이름은 없고 번호와 창구, 처리 시간이 있었다. 12번, 18번, 41번. 41번 옆에는 처리 시간이 00시 17분으로 찍혀 있었다. 오늘 날짜의 민원인데 아직 자정이 되지 않았다.

“미래 시간이네.” 도윤이 말했다.

은채가 화면을 받았다. “오늘 41번 복지 상담은 오후 3시에 끝났습니다. 저 00시 17분은 원본 시간이 아니에요. 덮어쓴 값입니다.”

서진은 41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붙이지 않았다. 대신 처리 시간 불일치라고 적었다. 미란은 출력물 아래쪽을 보았다. 아주 작은 글씨로 작성자 칸이 있었다. 거기에도 이름은 없었다.

작성자: 당직. 책임자: 공란.

“당직자가 처리한 게 아닙니다.” 이정배가 유리문 너머에서 말했다. “저는 저 프린터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모른다고 적겠습니다. 알고 있었는지는 나중에 로그로 확인합니다.”

서진이 답하자 이정배는 불쾌한 얼굴을 했다가,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모른다는 말도 이름과 함께 남는 순간 책임 회피만은 아니게 됐다.

번호표 기계 화면은 다시 바뀌었다. 미접수 확인 아래 두 번째 선택지가 생겼다.

대리 민원인 등록.

서진은 손을 뒤로 뺐다. 도윤이 바로 말했다. “누르지 마.”

“안 누릅니다.”

“말로도 대답하지 마. 대리라는 단어에 반응할 수 있어.”

미란이 로비 의자 하나를 끌어와 기계와 서진 사이에 놓았다. “물리적 거리 확보. 선택 의사 없음.”

그 말은 미란답지 않게 직접적이었다. 화면의 두 번째 선택지가 회색으로 흐려졌다. 대신 상단에 안내문이 떴다.

민원인이 응답하지 않으면 가족이 대신할 수 있습니다.

서진은 입술을 열었다가 닫았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자신을 향해 있었다. 하준의 가족은 여기서 서진뿐이었다. 하지만 하준 본인이 지금 응답하지 못하는지, 응답하지 않는지, 애초에 이 창구의 민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가족 관계 증명서가 필요하다고 할 겁니다.” 은채가 말했다.

“뗄 수 있습니까.”

“이 건물 5번 창구가 가족관계증명입니다. 아까 18번 처리 완료 목록에 있었죠.”

5번 창구 셔터 안쪽에서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친절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도윤은 5번 창구 앞에 서서 셔터를 발로 눌렀다. 열리려던 셔터가 멈췄다.

“서류 떼러 온 거 아닙니다.”

그의 말에 방송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전광판 아래 작은 스피커에서 안내음이 한 번 더 났다.

서진은 번호표를 들고 자동문 쪽으로 세 걸음 물러났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들어올 때는 열렸던 문이었다. 유리문에 비친 로비 안 인원은 네 명으로 보였다. 서진, 도윤, 미란, 유리문 너머 이정배. 하지만 반사된 번호표 기계 화면에는 대기 인원이 1명으로만 남아 있었다.

“사람을 세는 게 아닙니다.” 서진은 말했다. “민원인으로 등록된 사람만 셉니다.”

미란이 조용히 덧붙였다. “그래서 접수되지 않은 사람은 두 번 사라집니다.”

서진은 그 말을 적지 않았다. 설명이 아니라 판단이었다. 대신 자동문 미개방, 등록 기준 인원 1명, 현장 실제 인원 4명이라고 적었다.

유리문 안쪽 이정배가 결국 열쇠함을 열었다. 그는 열쇠를 꺼내지 않고 번호만 읽었다. 민원실 예비키 1번, 3번, 5번. 0번은 없었다. 열쇠함 맨 아래 빈 고리에 라벨만 남아 있었다.

0번 창구: 반납 필요.

“누가 가져갔습니까.” 서진이 물었다.

“장부에는 반납 완료로 돼 있습니다.”

“고리는 비어 있습니다.”

이정배는 대답 대신 열쇠 반납 장부를 유리문에 붙였다. 반납자 칸은 공란이었다. 반납 시간은 오늘 23시 07분. 서진은 같은 시간을 세 번째로 기록했다. 번호표 발급, 재열람 요청, 열쇠 반납. 모두 같은 분이었다.

미란은 그 장부를 보고 말했다. “이건 문을 열었다는 뜻이 아니라, 열 수 있는 책임을 없앴다는 뜻입니다.”

“해석은 나중에요.”

서진이 선을 그었다. 미란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정배에게 장부 사진 촬영 동의를 구했다. 이정배는 동의서 대신 자기 메모장에 적었다. 촬영 동의, 이정배. 공란 옆에 이름을 남기려는 손이 조금씩 늘고 있었다.

서진은 로비 시계를 찍었다. 벽시계는 23시 08분이었고, 휴대전화는 23시 07분이었다. 1분 차이는 흔한 오차일 수 있었다. 하지만 번호표와 반납 장부는 모두 23시 07분을 고집했다. 서진은 벽시계를 고장으로 단정하지 않았다. 현장 장치 시간 불일치, 기준 시간 미확정이라고 썼다.

미란은 그 메모 아래에 자기 펜으로 한 줄을 더했다. 원부 시간 기준 확인 필요. 서진은 그 필적도 찍었다. 미란이 기록에 직접 개입한 첫 줄이었다.

방송 스피커가 켜졌다. 오래된 안내음이 한 번 울렸다. 직원이 말하는 높낮이가 아니었다. 공공기관 자동 안내처럼 문장이 끊어졌다.

“미접수 민원은 대기 상태로 전환됩니다.”

번호표 0번의 아래쪽에 새 줄이 인쇄되었다. 종이가 접히지도 않았는데 글자가 생겼다.

윤하준.

서진은 번호표를 떨어뜨리지 않았다. 엄지에 힘이 들어가 종이 끝이 구겨졌다. 도윤이 손목을 잡아 눌렀다.

“답하지 마.”

“호명은 아직 안 됐습니다.”

서진은 그렇게 말했다. 말이 끝나자 전광판이 다시 켜졌다. 이번에는 번호가 아니었다.

윤하준 민원인, 0번 창구로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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