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두 번 부른 이름

안전수칙을 지키면 죽는다 · 2026.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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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부른 이름

빈자리에서 난 목소리는 박민재의 입보다 늦게 사라졌다.

앞줄에 서 있던 박민재는 입술을 다물고 있었다. 맨 뒤 빈자리 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출석부에는 박민재 이름이 두 줄로 적혀 있었다. 첫 줄은 원래 필체였고, 둘째 줄은 아직 잉크가 마르지 않았다.

서진은 두 줄을 손으로 덮지 않았다. 덮으면 학생들이 못 본다. 대신 옆에 빈 종이를 붙였다.

응답자 위치: 앞줄.

두 번째 응답 위치: 빈자리.

도윤은 자동문 앞에서 학생들이 밀려오지 못하게 팔을 뻗었다.

“움직이지 마. 이름 다시 불릴 때까지.”

학생 몇 명이 바로 항의했다. “벌점 받는데요.” “엄마한테 전화해야 돼요.” “민재만 그런 거잖아요.” 말은 제각각이었지만 몸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문 쪽이었다.

감독 음성이 다시 이름을 불렀다.

“박민재.”

앞줄의 박민재가 어깨를 움찔했다. 서진은 그를 보지 않고 펜을 내려놓으라고 손짓했다. 박민재는 펜을 쥔 채 멈췄다.

빈자리 쪽에서 같은 목소리가 말했다.

“네.”

이번에는 퇴실 서명부가 움직였다. 교탁 위에 있던 서명부의 박민재 칸이 비어지고, 맨 뒤 빈자리 책상 위에 같은 칸이 나타났다. 종이가 옮겨간 것이 아니었다. 교탁 위에는 여전히 서명부가 있었다. 다만 박민재 이름 옆 서명란만 흐려졌다.

보라가 사진을 찍었다. 손이 흔들렸지만 칸이 사라지는 순서는 보였다.

“권한이 저쪽으로 간 거예요?”

서진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권한이라는 말이 맞을 수 있었지만, 맞다는 말이 수칙을 확정해 버릴 수 있었다.

“퇴실 서명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적었다.

박민재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는 귀가 알림 발송 완료가 떠 있었다. 그런데 전화기는 그의 손이 아니라 맨 뒤 빈자리 책상 위에 있었다. 박민재는 주머니를 더듬었다.

“제 폰, 방금까지 있었는데요.”

도윤이 빈자리 쪽으로 가려는 학생을 막았다.

“자리 비워 둬.”

원장은 그 말을 듣고 끼어들었다.

“학생 물건을 방치하면 분실 책임이 생깁니다.”

도윤은 원장 쪽을 보지도 않았다.

“지금 책임 얘기하면 더 늦어요.”

감독 음성은 다음 이름을 불렀다. 이번에는 두 번이었다.

“이서현. 이서현.”

왼쪽 세 번째 줄의 여학생이 첫 번째에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 보라가 먼저 책상을 두드렸다. 한 번만. 여학생은 입을 다물었다. 두 번째 호명 뒤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피커는 잠깐 끊겼다.

퇴실 서명부의 이서현 칸은 그대로 남았다. 휴대전화도 손에 있었다. 학생들이 그제야 서로를 봤다. 규칙을 지킨 학생은 안전했다. 적어도 이번 호명에서는 그랬다.

서진은 칠판에 쓰지 않았다. 칠판은 원장이 지울 수 있었다. 대신 각 학생 책상 위 포스트잇에 같은 문장을 적게 했다.

내 이름 첫 호명에만 답함.

학생들은 불만을 말하면서도 적었다. 벌점보다 눈앞의 박민재 휴대전화가 더 가까운 증거였다.

도경은 그 포스트잇을 찍고 싶어 했다. 그는 렌즈를 들었다가 학생 얼굴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카메라 각도를 낮춰 손과 포스트잇만 찍었다.

“학원명 빼고 손만.”

서진이 말하기 전에 도경이 먼저 말했다.

그는 여전히 원장을 흘끗 봤다. 학원 이름을 바로 공개하면 제보가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는 눈이었다. 하지만 파일명에는 3관_손글씨_검증전이라고 썼다.

보라는 출석부를 다시 펼쳤다. 수정액은 박민재 이름 옆에서 마른 방향과 달랐다. 오늘 칠해진 부분만 위에서 아래로 쓸렸다. 그는 자기 파일 속 사진들을 바닥에 놓고 날짜별로 배열했다.

“두 번째로 불린 애들, 다 같은 반 아니에요.”

“공통점은요.”

서진이 물었다.

보라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학생 세 명에게 이름을 물었다. 이서현은 반 변경 예정이었고, 박민재는 지난달까지 주말반이었다. 사진 속 다른 지워진 이름은 등록금 자동이체가 끊긴 학생이었다.

“야간 명단이랑 실제 자습실이 달라요.”

원장이 다가왔다.

“추측하지 마. 등록 행정은 선생님들이 처리하는 거야.”

보라는 원장의 말을 그대로 되받지 않았다. 이번에는 출석부를 앞으로 밀었다.

“그럼 여기 제 이름은 왜 젖어 있어요.”

보라 이름 옆 수정액은 아직 광택이 있었다. 오래된 줄들은 무광이었고, 보라 이름 위만 형광등을 반사했다. 서진은 손대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도경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성안선 보류 영상 관련 제보가 들어와 있었다. 그는 화면을 잠깐 보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백로학원 건은 아직 올리지 않았다.

“제보 받으려면 공개해야 하는데.”

그가 낮게 말했다.

보라가 그 말을 들었다.

“공개하면 저 내일 학교 못 가요.”

도경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휴대전화 알림을 무음으로 바꿨다.

감독 음성은 다음 명단을 읽기 전, 처음과 다른 문장을 넣었다.

“미등록 학생은 대답하지 마십시오.”

학생들이 보라를 봤다. 보라는 자리에 서 있었다. 방금까지 제보자였고, 같은 반 학생이었다. 그런데 한 학생의 휴대전화 단체방에서 보라 프로필 사진이 회색 기본 아이콘으로 바뀌었다.

보라의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는 알 수 없는 사용자라고 떴다.

보라가 그 화면을 봤다. 그는 울지 않았다. 대신 자기 파일 맨 앞장에 이름을 다시 썼다.

김보라. 3관 야간자습 제보자.

서진은 바로 옆에 시간을 적었다. 23시 07분. 목격자 윤서진. 그는 도윤에게 펜을 넘겼다. 도윤은 이름을 길게 쓰지 않았다. 강도윤, 현장 목격.

보라의 옆자리 학생이 말했다.

“보라가 우리 반이었나?”

보라는 그 학생을 봤다. 화내기보다 먼저 이름을 불렀다.

“정민아. 너 내 체육복 빌려 갔잖아.”

정민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휴대전화 단체방을 보고, 보라 얼굴을 보고, 다시 단체방을 봤다. 기록이 사람보다 빨리 바뀌면 기억은 변명처럼 약해졌다.

서진은 정민에게 물었다.

“빌린 적 있습니까.”

정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난주 목요일.”

서진은 그 말을 적고 정민에게 서명하게 했다. 정민은 손을 떨며 이름을 썼다. 보라 이름은 출석부에서 희미해졌지만, 수첩에는 세 줄로 남았다.

서진은 보라에게도 물었다.

“정민에게 빌려준 물건이 맞습니까.”

“네. 회색 체육복 상의요. 세탁 안 하고 돌려줘서 제가 뭐라고 했어요.”

정민은 얼굴이 빨개졌다.

“그건 말 안 해도 되잖아.”

“기억하려고 말하는 거야.”

보라의 말은 사과가 아니었다. 자기 존재를 잡기 위해 친구의 민망한 사실까지 끌어와야 하는 상황에 대한 짧은 항의였다. 서진은 세탁 여부를 쓰지 않았다. 회색 체육복 상의, 상호 기억 확인이라고만 적었다.

도윤은 문 쪽 학생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물었다.

“보라가 오늘 뭘 들고 왔어.”

“플라스틱 파일.”

“색은.”

“투명.”

“안에 뭐.”

“출석부 사진.”

답한 학생들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한 명이 틀리면 다른 한 명이 고쳤다. 공동 확인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았다. 조금씩 덧대는 방식이었다.

보라의 단체방 프로필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정민의 휴대전화 사진첩에서 체육복을 입은 보라 뒷모습이 남아 있었다. 얼굴은 없었다. 운동장 끝과 회색 상의, 보라가 들던 파란 물병만 보였다.

도경은 그 사진을 보며 물었다.

“이건 써도 됩니까.”

정민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우리 학교 나와요.”

도경은 입술을 다물었다. 그는 사진을 받지 않았다. 대신 사진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촬영 날짜만 자기 수첩에 적었다. 독점 증거를 확보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불만은 남아 있었지만 손은 멈췄다.

은채는 앱 로그를 다시 불렀다.

“김보라 항목이 야간 명단에서 상담 대기로 이동 중입니다. 완전 삭제는 아니고 분류 이동이에요.”

“상담 대기면 퇴실 권한은요.”

“없어요. 상담실 출입 권한만 있어요.”

보라는 자기 파일을 내려다봤다.

“저 자습하러 왔는데요.”

서진은 그 말을 출석부 옆에 적었다. 김보라 본인 진술: 자습 참여. 상담 대기 아님. 원장은 그 문장을 보더니 다시 “행정상”이라고 말하려 했다. 보라가 먼저 물었다.

“행정상으로 저 집에 못 가요?”

원장은 입을 닫았다.

감독 음성은 다시 이름을 불렀다.

이번에는 학생들이 먼저 움직였다. 첫 호명에는 손을 들고, 두 번째 호명에는 펜을 내려놓았다. 누가 시킨 순서가 아니라 바로 앞자리 학생이 뒤를 돌아보고 손가락 하나를 접는 방식이었다.

첫 호명.

펜을 든다.

두 번째 호명.

펜을 내려놓는다.

서진은 그 행동을 보며 수칙이 무조건 거짓은 아니라는 점을 적었다. 규칙 일부는 학생들을 지켰다. 문제는 그 규칙이 누구를 이미 밖으로 밀어낸 뒤에 작동하느냐였다.

박민재의 서명란은 여전히 빈자리 쪽에 있었다. 그러나 새로 두 번 불린 학생 셋의 서명란은 교탁 위 서명부에 남았다. 학생들은 그 차이를 보고 조금씩 숨을 내쉬었다.

원장은 그 틈을 이용했다.

“보셨죠. 지시대로 하면 됩니다. 괜히 외부인이 개입해서 혼란이 생긴 겁니다.”

보라가 바로 말했다.

“그럼 민재는요.”

원장은 박민재 쪽을 보지 않았다.

“예외 상황입니다.”

서진은 예외라는 단어를 적었다. 예외는 이름보다 편했다. 누군가의 자리가 빈자리로 옮겨져도 예외라고 쓰면 다음 장부에 남지 않았다.

그는 예외 옆에 학생 이름을 쓰지 않았다. 박민재라고 쓰면 예외가 사람을 덮을 수 있었다. 대신 상태를 썼다. 첫 응답 본인, 두 번째 응답 빈자리, 퇴실 서명 이동. 학생들이 그 세 줄을 보게 종이를 돌렸다.

박민재는 자기 이름이 빠진 기록을 보고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라고 쓰면 저쪽이 저 되는 거죠.”

정확한 말은 아니었지만 현장에는 맞았다. 서진은 그의 말을 그대로 쓰지 않고, 본인 동의 없이 빈자리 동일시 금지라고 적었다.

도윤은 박민재에게 물었다.

“네 서명란 보이지?”

“저쪽에요.”

“가서 쓰고 싶어?”

박민재는 고개를 저었다. 겁먹어서만은 아니었다. 가면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계산이 얼굴에 있었다. 도윤은 그 답을 듣고 빈자리 쪽으로 가려던 원장을 막았다.

“학생 대신 쓰지 마세요.”

원장은 “확인만 하려는 겁니다”라고 했다. 도윤은 “손도 대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서진은 박민재의 현재 위치를 다시 적었다. 앞줄. 본인 이동 거부. 서명란 원격 이동. 그 세 줄이 있어야, 나중에 박민재가 스스로 빈자리로 갔다고 쓰이지 않았다.

보라의 파일 표지에 붙은 이름은 더 흐려졌다. 그는 자기 이름 위에 투명 테이프를 붙이려 했다. 서진이 막았다.

“지금 붙이면 수정액도 같이 고정됩니다.”

보라는 테이프를 내려놓았다.

“그럼 뭘 해요.”

“옆에 다른 걸 붙입니다.”

서진은 보라가 들고 온 편의점 영수증 복사본을 파일 옆에 붙였다. 이름은 없지만 시간과 장소가 있었다. 22시 31분, 학원 앞 편의점. 보라는 그 영수증 아래에 자기 필체로 제보자 도착이라고 썼다.

글자는 아직 남았다.

정민은 단체방을 다시 새로고침했다. 알 수 없는 사용자는 그대로였지만, 채팅 검색에서 보라가 보낸 예전 메시지 하나가 남아 있었다.

내일 체육복 가져와.

정민이 그 화면을 보여 주었다. 보라가 말했다.

“내 말투 아니에요. 난 가져오라고 안 하고 돌려달라고 해.”

작은 차이였다. 그러나 정민은 바로 고쳤다.

“맞아. 너 돌려달라고 했어.”

서진은 예전 메시지 불일치, 친구 정정이라고 적었다. 기록은 완전하지 않았지만, 고칠 사람이 있으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보라는 그 줄 옆에 자기 글씨로 정정 확인이라고 썼다. 글자는 흐려지지 않았다. 출석부 이름보다 단체방 말투가 먼저 버텼다. 서진은 그 차이를 표시했다. 공식 명단 삭제 진행, 비공식 대화 일부 잔존.

은채가 말했다.

“공식 명단 반영 속도가 더 빨라요.”

서진은 속도 비교를 적었다. 출석부 1분 이내 흐림. 단체방 과거 메시지 일부 유지. 숫자가 생기자 보라는 파일을 더 세게 잡았다. 아직 버틸 곳이 있었다.

서진은 그 버틸 곳에 동그라미를 쳤다.

보라도 다시 봤다.

원장은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에 서명하지 마.”

보라가 이번에는 원장의 문장을 그대로 돌려줬다.

“확인했어요. 체육복.”

감독 음성은 다시 켜졌다. 스피커는 보라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더 넓은 분류를 불렀다.

“미등록 학생은 대답하지 마십시오.”

자동문 위 표시등이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보라는 눈앞에 있었다. 파일을 들고, 자기 이름을 쓴 손을 내리고 있었다.

감독 음성은 같은 말을 한 번 더 했다.

“미등록 학생은 대답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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