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시 출석
안전수칙을 지키면 죽는다 · 2026.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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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시 출석
김보라는 학원 앞 편의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교복 위에 후드 집업을 입었고, 손에는 플라스틱 파일이 들려 있었다. 파일 표지에는 백로학원 3관 야간자습 출석부라고 적힌 사진 여러 장이 끼워져 있었다.
보라는 서진이 이름을 묻기 전에 말했다.
“김보라요. 제보한 사람.”
그는 어른처럼 악수하지 않았다. 대신 편의점 영수증 뒷면에 적은 시간을 보여 주었다. 22시 31분. 학원 앞 도착.
“친구가 매일 아침 집에 갔다고 했어요. 엄마한테도 그렇게 말했고요. 그런데 퇴실 기록은 없어요.”
서진은 파일을 받지 않고 먼저 물었다.
“친구 이름을 공개해도 됩니까.”
보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요. 엄마가 몰라요.”
도경은 뒤에서 카메라 가방 끈을 고쳐 잡았다. 카메라는 꺼져 있었지만 렌즈 덮개는 빠져 있었다.
“학원 이름은요.”
“제보자 동의 전 공개 금지.”
서진이 말하자 도경은 짧게 웃었다.
“비공개 요청이 전부 보호는 아닙니다.”
보라가 도경을 봤다.
“학원 이름 나가면 내일 저희 반 애들부터 불려요. 원장님이 아니라 저희가요.”
도경은 렌즈 덮개를 다시 끼웠다. 마지못한 손길이었다.
보라는 사진을 펼쳤다. 출석부 이름 몇 개가 수정액으로 가려져 있었다. 수정액 방향이 사진마다 달랐다. 어떤 날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어떤 날은 위에서 아래로 발라져 있었다.
“같은 사람이 고친 게 아니거나, 같은 사람이 매일 다른 방향으로 고친 거예요.”
보라는 정답처럼 말하지 않았다. 관찰한 차이만 말했다.
서진은 사진 순서를 바꾸지 않았다.
“퇴실 기록 없는 학생은 몇 명입니까.”
“확실한 건 한 명. 의심은 셋.”
그는 셋을 강조하지 않았다. 확실한 한 명의 이름도 말하지 않았다.
백로학원 입구에는 입시 실적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의대 합격자 수와 경찰대 합격자 수가 줄줄이 적혀 있고, 그 아래 작은 안내문이 있었다.
야간자습 중 외부인 출입 금지. 퇴실 서명 전 이동 금지. 소란 시 자습권 침해로 처리.
성안선에서 본 안내문보다 덜 무서운 문장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이 더 쉽게 따를 수 있었다.
원장은 3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신고를 받은 사람보다 손님을 맞는 사람처럼 명찰을 바로 세웠다.
“학생들이 예민한 시기입니다. 민원은 상담실에서 조용히 처리하시죠.”
서진은 명함을 내밀었다.
“야간자습 출석 기록과 퇴실 서명부 확인하겠습니다.”
“경찰도 아니신데요.”
“학생이 실종 가능성을 제보했습니다.”
원장은 보라를 보았다. 보라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보라야, 네 성적표는 내일 상담하기로 했지.”
그 말에 보라의 손이 파일을 더 세게 잡았다. 성적표는 협박처럼 들리지 않았다. 실제 협박보다 더 잘 통하는 물건이었다.
도윤은 학원 자동문 옆을 확인했다. 문 상단 센서와 비상해제 버튼, 그리고 잠금 예약 시간이 붙은 작은 패널을 차례로 봤다.
“23시 자동잠금.”
은채는 통화로 말했다.
“학원 출결 앱은 학부모 알림이랑 연결돼 있어요. 퇴실 서명 없으면 귀가 알림이 안 갑니다.”
서진은 보라에게 물었다.
“친구 부모님은 알림을 받았습니까.”
“네. 매일 받았대요. 근데 퇴실부에는 없어요.”
서진은 앱 알림 시각과 종이 퇴실부의 빈 줄을 같은 칸에 적었다. 두 기록은 같은 학생을 다르게 처리하고 있었다.
자습실 문에는 카드가 붙어 있었다. 손글씨가 아니라 학원 양식지였다.
두 번 불린 이름에는 한 번만 답할 것.
빈자리는 비워 둘 것.
퇴실 서명 전 이동 금지.
세 줄뿐이었다. 원장은 카드를 떼려 했다. 도윤이 손목을 잡지 않고 카드 아래를 가리켰다.
“사진 먼저.”
도경은 렌즈를 들었다. 이번에는 학생 얼굴이 없는 문만 찍었다. 그는 사진을 찍고도 바로 공유하지 않았다. 파일명에 백로학원 대신 3관_규칙카드라고 썼다.
“이 정도면 됩니까.”
“검증 전 공유 금지.”
“압니다.”
말은 짧았지만 불만은 남아 있었다.
자습실 안에는 학생 스물여섯 명이 앉아 있었다. 책상은 여섯 줄이었고, 맨 뒤 오른쪽 두 자리는 비어 있었다. 빈자리에는 가방도 책도 없었다. 그런데 좌석표에는 그 칸 자체가 없었다.
보라는 그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어제까지 여기 줄이 하나 짧았어요.”
서진은 좌석표를 벽에서 떼지 않았다. 떼면 원래 위치를 잃는다. 사진을 찍고, 테이프 방향을 적었다. 왼쪽 위 투명 테이프 새것, 오른쪽 아래 누런 테이프 오래됨.
학생들은 문제집을 펴고 있었다. 몇 명은 서진 일행을 보다가 바로 고개를 숙였다. 수능까지 남은 일수가 칠판에 적혀 있었다. 83일.
원장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들어오시면 애들 집중이 깨집니다.”
보라가 원장의 문장을 그대로 되받았다.
“퇴실 기록 없는 건 집중이랑 상관없잖아요.”
원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진은 상담실로 가지 않았다. 상담실로 들어가면 출석부와 학생들이 분리된다. 그는 자습실 문 옆 작은 책상에 임시 확인란을 만들었다. 출석부 원본 위치, 퇴실부 위치, 앱 알림 수신자, 문 잠금 예약 시간.
원장은 불편한 얼굴로 볼펜을 내려놓았다.
“그런 양식은 우리 학원에 없습니다.”
“그래서 임시로 만듭니다.”
“학생 개인정보입니다.”
“학생이 사라졌을 가능성도 개인정보입니까.”
원장은 다시 보라를 보았다. 보라는 이번에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파일에서 사진 한 장을 더 꺼냈다. 출석부 모서리에 찍힌 날짜가 오늘 날짜와 달랐다.
“이건 어제 건데 오늘 수정액이 묻어 있어요.”
보라의 말은 길지 않았다. 서진은 사진을 받으며 물었다.
“이 사진을 누가 찍었습니까.”
“저요.”
“친구들이 압니까.”
“한 명만요.”
“그 학생 이름은 지금 쓰지 않겠습니다.”
보라는 그제야 어깨를 조금 내렸다. 특별한 제보자가 되고 싶은 아이의 얼굴과, 친구 이름을 팔고 싶지 않은 얼굴이 같이 있었다.
도경은 그 장면을 찍지 않았다. 하지만 메모는 했다. 제보자 단독 아님. 또래 목격자 1명. 이름 비공개.
은채는 통화 너머에서 학원 앱 화면을 불러왔다.
“퇴실 알림은 23시 03분에 일괄 발송됩니다. 그런데 서버 로그는 23시 00분 이후 접근 기록이 없어요.”
“그럼 알림은 누가 보냅니까.”
“예약 발송일 수 있어요. 아니면 앱이 퇴실부 없이도 정상 귀가로 처리하는 겁니다.”
서진은 둘 중 하나를 고르지 않았다. 앱 알림과 종이 퇴실부 불일치라고만 적었다.
22시 50분이 되자 천장 스피커가 켜졌다. 사람 목소리가 아니라 녹음된 감독 음성이었다.
“야간자습 출석을 시작합니다.”
학생들이 익숙하게 펜을 들었다. 출석부는 앞자리 학생에게서 뒤로 넘어갔다. 이름이 불리면 학생이 대답하고, 옆 사람이 표시하는 방식이었다.
첫 번째 이름은 정상적으로 지나갔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서진은 학생 이름을 전부 적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불일치였다.
도윤은 문 앞에서 손가락 두 개를 들었다. 잠금까지 남은 시간 표시였다. 서진은 고개만 끄덕였다. 출석을 멈추면 학생들이 흩어지고, 그대로 두면 이름 하나가 더 불릴 수 있었다. 그는 감독 음성을 끄지 않고 출석부 옆에 빈 종이를 붙였다.
보라는 출석부가 넘어가는 방향을 보고 있었다. 앞줄에서 뒤줄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사진 속 수정액 방향과 반대였다. 그는 그 차이를 말하려다 멈추고, 자기 손등에 화살표를 그렸다.
“왜 손에 써요.”
도경이 낮게 물었다.
“종이는 걷어 가니까요.”
보라의 답은 짧았다. 그는 겁먹은 학생처럼 보이지 않았다. 대신 많이 혼나 본 학생처럼, 뺏기지 않을 기록 위치를 알고 있었다.
서진은 그 손등을 찍지 않았다. 보라가 먼저 파일 위에 같은 화살표를 그린 뒤에야 사진으로 남겼다.
열네 번째 이름에서 스피커가 말했다.
“이주호.”
출석부에는 그 이름이 없었다.
왼쪽 두 번째 줄의 남학생이 습관적으로 대답했다.
“네.”
대답은 너무 빨랐다. 자기가 불린 줄 아는 사람의 속도였다.
보라가 바로 출석부를 펼쳤다. 이주호라는 이름은 없었다. 남학생의 실제 이름은 박민재였다. 그의 책상 위 문제집에도 박민재라고 적혀 있었다.
학생 한 명이 작게 말했다.
“주호 오늘 안 왔잖아.”
옆 학생이 바로 물었다.
“이주호가 누구야?”
기억이 서로 부딪혔다. 한 명은 반 친구처럼 말했고, 한 명은 처음 듣는 이름처럼 되물었다. 박민재는 자기가 대답했다는 사실을 늦게 알아차린 사람처럼 펜을 놓았다.
서진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두 번째로 불리면 대답하지 마세요.”
원장은 끼어들었다.
“아이들 겁주지 마세요.”
서진은 원장을 보지 않고 출석부 여백에 칸을 하나 그렸다. 이름 없음. 응답자 박민재. 목격자 김보라, 윤서진.
보라는 자기 이름 옆에 시간을 적었다. 22시 53분.
그때 박민재의 책상이 한 칸 옆으로 밀렸다.
소리는 작았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정도였다. 하지만 학생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박민재가 밀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무릎은 책상 아래 그대로 있었다.
빈자리였던 맨 뒤 오른쪽에 새 칸이 생겼다. 좌석표에는 아직 없던 네모가 흐리게 찍혔다. 수정액이 마르기 전처럼 하얀 테두리였다.
도윤이 자동문 쪽으로 갔다.
“잠금 7분 전.”
은채가 말했다.
“출결 앱에 박민재가 두 명으로 뜹니다. 하나는 입실, 하나는 미퇴실.”
서진은 설명하지 않았다. 박민재에게 물었다.
“지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까.”
박민재는 일어나려 했다. 의자가 뒤로 밀렸지만 발이 문 쪽으로 가지 않았다. 책상 다리 사이에 걸린 것처럼 움직임이 끊겼다.
보라가 바로 빈자리 쪽으로 가려 했다. 서진이 손을 들었다.
“빈자리는 비워 둡니다.”
보라는 멈췄다. 멈춘 뒤에야 자기 발이 빈칸 선을 밟기 직전이었다는 걸 봤다.
원장은 학생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문제 풀어. 이건 외부 소란이야.”
몇 명은 펜을 다시 들었다. 성적표와 부모 연락과 자습권이라는 말은 문 잠금보다 빠르게 학생들을 앉혔다.
서진은 원장의 말을 기록했다. 외부 소란 처리 지시. 학생 착석 유지.
23시가 되었다.
퇴실 서명부가 교탁 위에 놓였다. 학생들은 줄을 서려 했지만 자동문이 먼저 잠겼다. 잠금음은 지하철 문보다 가벼웠다. 그래서 더 늦게 위험으로 들렸다.
학생 몇 명은 바로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연결됐지만, 휴대전화 화면에는 이미 귀가 알림 발송 완료가 떠 있었다.
엄마, 아직 학원인데.
한 학생의 말이 자습실 앞줄에서 끊겼다. 상대편에서는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았지만 학생은 더 설명하지 못했다. 귀가 알림이 먼저 도착한 아이의 말은 변명처럼 들리기 쉬웠다.
원장은 학생들에게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라고 했다.
“학부모님들 불안하게 하지 마.”
보라가 다시 물었다.
“불안한 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알림이 틀렸잖아요.”
그는 원장의 말을 따라 하면서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서진은 보라가 서 있는 위치를 봤다. 그는 빈자리에서 두 걸음 떨어져 있었고, 문과도 멀었다. 직접 해결하려고 뛰어들지는 않았다.
서진은 퇴실부 첫 줄에 자기 이름을 쓰지 않았다. 학생 기록에 외부인 이름이 들어가면 수칙이 어떻게 읽을지 알 수 없었다. 대신 퇴실부 옆 종이에 외부 목격자란을 따로 만들었다.
윤서진, 강도윤, 이도경, 김보라.
보라는 자기 이름 옆에 학생이라고 쓰려다가 멈췄다. 서진이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는 제보자라고 고쳐 썼다.
원장은 그 종이를 빼앗으려 했다.
“미성년자 이름을 외부 문서에 쓰시면 안 됩니다.”
보라가 종이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
“제 이름은 제가 썼어요.”
서진은 원장의 손과 종이 사이에 볼펜을 내려놓았다. 막은 것이 아니라 서명할 칸을 만든 모양이 됐다.
“열람 제한 동의 칸입니다. 원장님도 쓰세요.”
원장은 펜을 잡지 않았다. 자동문 잠금등은 그 사이 초록에서 노랑으로 바뀌었다.
박민재만 문턱 앞에서 멈췄다. 다른 학생들은 문 앞까지 갈 수 있었지만 열리지 않았다. 박민재는 문턱까지도 가지 못했다.
출석부의 빈 칸에 이름이 생겼다.
박민재.
그 아래 같은 이름이 한 번 더 적혔다.
박민재.
보라는 입술을 깨물고도 울지 않았다. 대신 사진을 찍었다. 손이 조금 흔들렸지만 이름 두 줄은 보였다.
“두 번 적혔어요.”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만 답했는데 두 번 기록됐습니다.”
천장 스피커가 다시 켜졌다.
“재출석을 시작합니다.”
첫 이름이 불렸다. 학생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원장이 대답하라고 하려는 순간, 맨 뒤 빈자리 쪽에서 박민재의 목소리가 났다.
“네.”
박민재는 앞줄에 서 있었다. 입을 열지 않았다.
빈자리에는 아직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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