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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인원 0명

안전수칙을 지키면 죽는다 · 2026.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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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차 인원 0명

마지막 잠금 표시가 빨갛게 켜지자 도윤은 손잡이를 더 누르지 않았다.

그는 문틈에 끼운 공구를 빼서 바닥 점검 덮개 쪽으로 옮겼다. 객실 문은 승객용이었다. 승객용 문이 전부 잠겼다면, 승객이 쓰지 않는 길만 남았다.

서진은 확인서 위에 시간을 적었다. 00시 17분. 전광판 아래 광고판에는 아직 성안시 생활안전 캠페인이 돌고 있었다.

공식 사망자 41명 추모 주간.

그 아래 문구는 더 밝았다. 20년 무사고 도시, 성안.

연기 경보음 사이로 광고 음성이 짧게 끊겼다. “안전은 기록에서 시작됩니다.” 문장은 끝까지 나오지 못했다.

도윤은 덮개 나사를 풀며 말했다.

“운전실까지 하부 점검 통로가 있어.”

“승객이 들어가도 됩니까.”

“승객으로 들어가면 안 되지.”

서진은 확인서의 수행 업무 칸을 보았다. 강도윤, 문 잠금 지연 및 운전실 접근 보조. 옆 칸에는 목격자 두 명이 필요했다.

고정애가 손수건 안쪽에서 종이표와 작은 영수증을 꺼냈다. 영수증에는 성안역 지하 매점, 생수 하나, 23시 42분이 찍혀 있었다. 그는 표를 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손가락 끝이 자꾸 접힌 모서리에 걸렸다.

“나는 뭘 봤다고 써요.”

서진은 답을 대신 만들지 않았다.

“본 것만 쓰세요.”

고정애는 펜을 오래 들고 있다가 천천히 적었다.

모른다. 문이 왜 잠겼는지는 모른다. 강도윤이 바닥 문을 열었다.

서진은 그 줄을 지우지 않았다. 모른다는 말이 빈칸보다 나았다.

도윤은 덮개를 들어 올렸다. 아래는 사람이 겨우 기어갈 폭이었다. 열차가 멈췄는데도 얇은 진동이 통로를 따라 올라왔다. 도윤이 먼저 내려가려 하자 서진이 손을 들었다.

“고주파 안내음 들립니까.”

도윤은 대답을 늦췄다.

“안 들려.”

박은채의 목소리가 이어폰에서 들어왔다.

“운전실 쪽에 고주파 경고가 있을 수 있어요. 도윤 씨가 못 들으면 손 신호로 끊어야 합니다. 오른쪽 빨간 선 넘으면 보조잠금 걸립니다.”

도윤은 “말로 하지 말고 손으로 해”라고 했다.

서진은 확인서 뒷면에 손 신호 세 개를 그렸다. 멈춤, 왼쪽, 뒤로. 도경은 그 그림을 찍으려다가 카메라를 내렸다.

“이건 바로 올려야 합니다. 지금 여기 위치가 묻히면 회수팀이 먼저 옵니다.”

“위치 지연 공개라고 약속했습니다.”

“약속이 아니라 임시 조건이었죠.”

도경은 녹화 화면의 업로드 예약 버튼을 눌렀다. 손가락이 취소와 게시 사이에 머물렀다. 댓글 알림은 여전히 올라왔다. 누군가는 성안선 종점을 찾고 있었고, 누군가는 막차 칸 번호를 맞히고 있었다.

“기관이 덮으면요.”

서진은 그의 휴대전화를 빼앗지 않았다.

“피해자 얼굴 제외. 위치는 지연. 검증 전 공유 금지. 셋 중 하나라도 지키세요.”

도경은 이를 악물고 영상 설정을 열었다. 자동 위치 태그를 끄고, 고정애가 찍힌 구간에 임시 블러 표시를 걸었다. 저장 버튼은 세 번 눌렀다. 업로드는 누르지 않았다.

“검증 전 공유 금지는 아직 동의 안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예약 시간을 24시간 뒤로 밀었다.

도윤은 점검 통로로 들어갔다. 서진은 바닥에 엎드려 손전등을 비췄다. 빨간 선이 통로 옆에 낮게 붙어 있었다. 선 옆 라벨에는 0번 통로라고 적혀 있었다. 오래된 테이프 위에 새 라벨을 덧붙인 흔적이 있었다.

서진은 라벨만 적었다. 의미는 적지 않았다.

운전실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 도윤은 작은 창 너머로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박은채가 메뉴 경로를 불렀다.

“운전실 비상키 확인. 직원증 접촉 필요. 직원번호 입력란이 있어요.”

유니폼 인물은 객실 앞쪽에서 잔류자 확인표를 들고 있었다. 직원증에는 여전히 이름 없이 0만 찍혀 있었다.

서진은 도경에게 손짓했다.

“직원증 숫자만. 얼굴은 찍지 마세요.”

“얼굴이 없는데요.”

“그 말도 아직 공개하지 마세요.”

도경은 렌즈를 낮춰 직원증만 찍었다. 유니폼 인물은 막지 않았다. 오히려 확인하라는 듯 몸을 돌렸다. 정상 업무 중인 직원의 자세였다.

도윤은 객실 쪽에서 보이는 숫자를 보고 운전실 패널에 입력했다. 0.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시 입력하자 보조잠금 경고등이 켜졌다.

은채가 말했다.

“직원증 0은 권한자가 아니라 미배치 값일 수 있어요.”

도윤은 짧게 욕을 삼키고, 입력을 멈췄다. 서진은 손을 접었다. 멈춤 신호였다.

그때 운전실 스피커가 먼저 켜졌다.

“대피 완료 보고가 접수되지 않았습니다. 잔류자 확인을 계속하십시오.”

오래된 음질이었다. 끝 단어가 조금 눌렸다. 도윤은 스피커 쪽을 보지 않았다. 못 들은 것이 아니라 듣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손잡이만 잡았다.

서진은 업무일지의 두 번째 장을 꺼냈다.

“각자 수행 업무를 다시 확인합니다.”

설명하지 않았다. 이름을 불렀다.

고정애는 김태후의 노트북 가방 끈을 잡고 있었다. 김태후는 고정애의 손수건과 종이표를 확인했다. 임지연은 오민석의 우산을, 오민석은 임지연의 카트를 확인했다. 박성 미확인 1자는 다음 칸 유리 안쪽에서 소화기 위치를 가리켰고, 도경은 그 손자국의 위치와 시간을 남겼다.

서진은 대피 요원 칸 옆에 새 칸을 붙였다.

개별 승인자.

원래 양식에는 없었다. 하지만 승무원 0명, 대피 요원 빈칸, 권한 지연, 문 잠금이 동시에 걸려 있었다. 어느 하나를 원인으로 쓰면 나머지가 빈칸으로 남았다.

관제는 뒤늦게 역무 책임자를 연결했다.

“현재 야간 책임자입니다. 임시 협조자 등록은 사후 승인 대상입니다.”

서진은 펜 끝으로 빈칸을 눌렀다.

“사후 승인을 위해 현재 승인을 남깁니다. 이름 말씀하세요.”

상대는 곧바로 말하지 않았다.

“책임자 성명 필요합니다.”

“성안선 운영통제실 박용규.”

서진은 이름을 적고, 옆에 응답 지연 4초라고 썼다. 칸이 채워지자 객실 전광판 숫자가 바뀌었다.

현재 대피 업무 인원 8명.

하차 인원 0명.

고정애가 전광판을 읽었다.

“내렸는데 0명이라니 이상하네요.”

서진은 업무 종료 칸을 가리켰다. 고정애는 자기 이름 옆 종료 시간에 한 번 더 서명했다. 화면의 숫자는 그대로였지만, 잔류자 확인표에서 고정애 이름이 사라졌다.

고정애는 사라진 줄을 손가락으로 확인한 뒤 표를 다시 접었다.

유니폼 인물의 확인표가 한 줄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고정애 앞에서 멈추지 않고 빈 좌석을 세었다. 빈 좌석은 여덟 개였다. 그는 빈 객실을 확인한 뒤 다음 칸으로 걸어갔다.

문 잠금 표시가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도윤은 운전실 패널을 당겼다. 이번에는 문이 열렸다. 그는 들어가자마자 자동 운행 해제 버튼을 찾았다. 버튼은 플라스틱 덮개 안쪽에 있었고, 덮개에는 사고 시 책임자 승인 필요라고 적혀 있었다.

서진은 업무일지를 유리창에 붙였다.

박용규의 이름, 승객 여덟 명, 임시 협조자 여덟 명, 하차 인원 0명.

도윤은 그 종이를 보고 버튼을 눌렀다.

열차가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승강장이 아니라 유지보수용 좁은 발판이 왼쪽 창문 아래로 다가왔다. 도윤의 오른쪽 귀 뒤에서 피가 조금 흘렀다. 그는 손등으로 닦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들립니까.”

서진이 물었다.

도윤은 왼쪽 귀를 돌렸다.

“네가 말하는 건.”

그 대답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서진은 부상 항목에 청력 이상 의심이라고 적었다.

유지보수 승강장 문은 반쯤만 열렸다. 도윤이 먼저 나가려 하자 고정애가 손수건을 접어 김태후에게 건넸다.

“이거 보고 나 지나간 거 써요. 나 표 잃어버리면 또 없던 사람 돼.”

그는 농담처럼 말하지 않았다. 김태후는 손수건과 종이표를 보고 확인서에 서명했다.

전원은 승객으로 내리지 않았다. 각자 맡은 사람의 물건과 이름을 확인하고, 업무 종료 칸에 시간을 적었다. 고정애는 마지막 글자를 두 번 고쳤다. 느린 글씨였지만 남의 이름을 대신 쓰지 않았다.

박성 미확인 1자는 유지보수 승강장에 내려서도 마지막 글자를 쓰지 못했다. 그는 자기 신분증을 찾으려고 주머니를 뒤졌지만 젖은 영수증과 접힌 약 봉투만 나왔다. 서진은 그를 재촉하지 않았다.

“기억나는 글자만 말하세요.”

“박성... 뒤가 안 보여요. 아까부터.”

그는 부끄러워하듯 고개를 숙였다. 도경은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대신 유리 손자국 사진과 현재 얼굴 없는 뒷모습을 나란히 보관했다. 서진은 업무 종료 확인서에 박성, 성명 1자 미확인, 본인 확인 대기라고 썼다.

빈칸을 성급히 채우지 않자 전광판의 하차 인원 0명 문구가 깜빡였다. 숫자는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잔류자 필요 문장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유지보수 문 밖에는 역무원 두 명과 소방대원이 서 있었다. 한 명은 사람을 세었고, 다른 한 명은 운전실 저장장치부터 찾았다.

“화재 원인은요.”

도경이 물었다.

역무원은 답하지 않고 봉인 봉투를 꺼냈다. 봉투 라벨에는 운전실 방송 저장장치, 버전 0이라고 적혀 있었다.

도경의 카메라가 다시 올라갔다.

서진은 손으로 렌즈를 가리지 않았다. 대신 고정애 쪽으로 몸을 옮겨 얼굴을 막았다.

“원본 회수부터 합니까.”

도경의 질문에 역무원은 “절차입니다”라고 했다.

노선 전체 운행중지 안내가 역 안에 퍼졌다. 귀가 지연, 대체버스 준비, 치료 대기. 승객 몇 명은 회사에 전화를 걸었고, 오민석은 무단결근 처리될 거라고 중얼거렸다. 구조가 끝나도 비용은 바로 끝나지 않았다.

고정애는 역무원이 내민 태블릿을 보다가 펜을 내려놓았다.

“여기 하차 승객이 0명이라고 되어 있어요.”

역무원은 “업무 종료 처리라서 그렇습니다”라고 했다. 고정애는 종이표를 꺼내 다시 폈다. 표에는 탑승역만 있고 하차역은 없었다. 그는 영수증까지 옆에 놓고, 느린 글씨로 민원 접수지에 적었다.

펜 끝이 종이에 오래 머물렀다.

하차는 했음. 어디 역인지는 모름.

서진은 그 문장을 보고 접수지 아래에 목격자 칸을 하나 더 그었다. 김태후가 서명했고, 임지연도 카트 손잡이를 잡은 채 이름을 썼다. 역무원은 칸이 없다며 태블릿을 내밀었지만, 서진은 종이를 먼저 사진으로 남겼다.

“칸이 없으면 스캔해서 붙이세요.”

역무원은 잠깐 멈췄다. 항의가 아니라 업무 지시처럼 들렸기 때문인지, 그는 종이를 받아 들었다.

도경은 그 장면을 찍고 있었다. 이번에는 고정애의 얼굴이 아니라 손수건 위 표와 영수증만 화면에 들어갔다. 그는 촬영 뒤 바로 파일명을 바꿨다.

현금승차_하차기록_검증전.

그래도 손은 업로드 아이콘 위에 남아 있었다.

“이런 건 빨리 나가야 바뀝니다.”

“빨리 나가면 고정애 씨 주소부터 찾는 사람이 생깁니다.”

도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화면에서 위치 정보를 한 번 더 확인하고, 공유 대상을 자기 계정이 아니라 암호화 보관함으로 바꿨다. 마지못한 순서였지만 순서는 바뀌었다.

소방대원은 승객들의 산소포화도를 재고 있었다. 김태후는 노트북 가방을 잃어버리지 않았는데도 손이 떨려 비밀번호를 틀렸다. 임지연은 카트 바퀴가 빠져 택시를 부를 수 없었다. 오민석은 회사에서 “지하철 괴담 핑계냐”는 답장을 받았다.

서진은 각각의 손해를 한 줄씩 적었다. 치료 대기, 귀가 지연, 물품 파손, 근태 불이익. 사건 보고서의 피해 항목은 사망과 부상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때 회수팀 직원 둘이 운전실 쪽으로 지나갔다. 한 명은 소방대원에게 화재 원인을 묻지 않았고, 다른 한 명은 저장장치 봉인 번호부터 불렀다.

“B0-011, 회수 우선.”

도경의 카메라가 다시 움직였다.

“왜 원인 조사보다 파일이 먼저입니까.”

직원은 카메라를 피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는 대신 대답하지 않았다. 봉인 봉투에 적힌 인수자 칸도 비어 있었다.

도경은 질문을 한 번 더 하려다 멈췄다. 대신 직원의 손, 빈 인수자 칸, 소방대원이 아직 들여다보지 못한 전기함을 같은 화면에 넣었다. 말보다 우선순위가 먼저 찍혔다.

서진은 그 빈칸을 가리켰다.

“인수자 성명 쓰세요.”

“사후 입력됩니다.”

“지금 가져가면 지금 씁니다.”

직원은 펜을 들지 않았다. 도윤이 운전실 쪽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는 끼어들지 않고, 패널 뒤에 손을 넣었다. 회수팀이 보는 저장장치 말고 다른 보조 포트가 있는지 확인하는 움직임이었다.

도윤은 봉인 봉투를 보다가 서진에게 작은 저장장치 하나를 내밀었다. 운전실 패널 뒤에 남아 있던 보조 저장장치였다.

라벨은 더 낡았다.

0번 통로 / 버전 0.

서진이 받기 전에 무전기가 울렸다. 서미란의 목소리였다.

“윤서진 씨. 그 파일은 듣지 말고 넘기세요.”

잠깐 뒤, 더 낮은 문장이 따라왔다.

“다른 보고보다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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