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없는 층에서 인원수를 묻는다

안전수칙을 지키면 죽는다 · 2026. 5. 11.

조회수 9

없는 층에서 인원수를 묻는다

00:06의 관리사무소는 불을 절반만 켜 두었다.

복사기 위에는 야간 점검표가 아직 따뜻했고, 윤서진은 종이 끝에 찍힌 다온생활안전 로고보다 빈칸을 먼저 봤다.

위험수당 서명란.

이름을 적는 줄은 있는데 금액이 없었다.

백기준 부장은 현장에는 없고 전화로만 말했다.

“서진 씨, 첫날이라도 절차는 같아요. 사인부터.” 서진은 펜을 들었다가 금액 칸을 검지로 짚었다. “금액이 빠졌습니다.” 전화 저편에서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현장 종료 뒤 산정.” “종료 조건은요.” 답은 오지 않았다.

강도윤이 문 옆에서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회색 테이프로 밀봉된 얇은 카드였다.

“그건 나중에 따져.”

서진은 봉투를 받으며 도윤의 이름표를 봤다.

강도윤, 특이민원3팀 선임.

이름표 옆 금속 클립은 오래 써서 모서리가 벗겨져 있었다. 그는 새벽 작업반이 쓰는 공구 가방을 한쪽 어깨에만 걸고 있었다.

무전기에서 서미란 팀장의 목소리가 흘렀다.

“404동 1호기. 현장 인원부터 확정하세요. 보고는 수동으로 남깁니다.” 서진은 무전기를 향해 물었다. “현장 인원의 범위가 어디까지입니까. 탑승자, 관리 인력, 원격 지원 중 어느 쪽입니까.” 미란은 잠깐 멈췄다가 말했다. “현장에서 질문을 받는 사람.” 도윤이 테이프를 손톱으로 끊었다.

카드에는 한 줄뿐이었다.

질문을 받으면 한 명 적게 답할 것.

아래쪽 개정 일자는 비어 있었다.

엘리베이터 호출음이 울렸다.

서진은 카드 뒷면을 보려 했지만 도윤이 먼저 문을 열었다. “지금은 타.” “개정 일자가 없습니다.” “없어도 작동해.” 그는 설명하지 않았다.

서진은 수첩 첫 장에 시간부터 적었다.

00:17 직전 투입.

펜촉이 종이에 걸리는 동안 관리사무소의 전등 하나가 꺼졌다가 켜졌다.

아무도 그쪽을 보지 않았다.

경비반장 장명수가 모자를 눌러 쓰고 뛰어왔다.

“아이고, 오늘 첫날이라면서요. 404동은 원래 조용합니다. 괜히 일 키울 건 없고.”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낡은 열쇠 꾸러미를 손에 쥐고 있었다.

1호기 앞에는 이미 세 사람이 있었다.

배달 가방을 멘 한수아가 닫힘 버튼 쪽에 발을 두고 있었다. “사진만 찍고 내려가면 되는데 왜 사람을 잡아요. 앱 시간이 넘어가면 제가 물어요.” 중학생 최민규는 교복 셔츠 위에 후드집업을 걸치고 휴대전화를 양손으로 잡았다. 장명수는 “민규야, 집에 전화했냐”라고 묻고는 곧 서진 쪽을 봤다.

도윤이 손가락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서진, 탑승자.” 서진은 순서대로 물었다. “성명, 목적 층.” 수아가 눈썹을 올렸다. “배달도 이름 대야 해요?” “지워지면 찾을 기준이 이름입니다.” 수아는 한 박자 늦게 답했다.

“한수아. 1102호 완료 사진.” 장명수는 “장명수, 순찰.” 민규는 “최민규, 8층이요.” 도윤은 자기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서진이 수첩에 강도윤, 현장처리관이라고 적자 그가 짧게 혀를 찼다.

문이 닫혔다.

1, 2, 3이 평소 속도로 지나갔다.

수아는 배달 완료 화면을 열어 사진을 찍으려 했고, 민규는 단체 채팅방을 확인했다. 장명수는 “12층 위는 기계실뿐입니다. 옥상 문도 잠겨 있고요”라고 말했다.

서진은 그 말을 수첩 아래에 적었다.

12층 위 기계실.

도윤은 11이 켜졌을 때 닫힘 버튼에서 손을 뗐다.

12가 켜지고 엘리베이터가 멈추지 않았다.

표시창이 한 칸 더 올라갔다.

13.

숫자는 빨간색이 아니라 평소와 같은 초록색이었다.

그래서 더 늦게 알아차렸다.

민규가 먼저 말했다.

“우리 동 13층 없는데요.”

문이 열렸다.

밖은 복도였다.

같은 회색 타일, 같은 우편함 냄새, 같은 비상등.

다른 것은 문패뿐이었다.

왼쪽 첫 문도 1304호, 오른쪽 끝 문도 1304호였다. 호수 스티커가 새것처럼 반듯했고, 각 문 앞 신발장은 비어 있었다.

수아가 발을 안으로 당겼다.

“여기 어디예요. 1102호 사진 올려야 하는데.” 장명수는 열쇠 꾸러미에서 아무 열쇠도 고르지 못했다. 도윤이 문 닫힘을 눌렀지만 문은 사람 손을 기다리는 자동문처럼 열린 채 있었다.

복도 천장 스피커가 켜지는 소리가 났다.

아이 목소리였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안내문을 읽는 목소리.

“현재 몇 분이 탑승하셨습니까?” 도윤이 바로 답하려 했다. “네 명.” 서진은 그의 팔목을 잡았다.

그때 다섯 사람의 휴대전화가 거의 동시에 울렸다.

주민 단체 채팅방에 투표창이 떠 있었다.

404동 1호기 탑승자 확인.

참여 가능 인원 4.

서진, 도윤, 장명수, 최민규의 화면에는 버튼이 있었다.

한수아의 화면에는 채팅방 자체가 없었다.

수아가 자기 화면을 흔들었다.

“저 여기 탔잖아요.” 민규가 수아를 보다가 다시 화면을 봤다.

“근데 왜 누나 이름이 없어요.”

도윤은 낮게 말했다.

“카드대로 해.” “카드에는 한 명 적게 답하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누구를 빼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래서 한 명 적게야.” “이미 빠진 사람이 정해졌습니다.” 서진은 수첩을 펼쳤다.

도윤이 다시 문 닫힘을 눌렀다.

복도 스피커가 같은 문장을 반복했다.

“현재 몇 분이 탑승하셨습니까?” 말투는 재촉하지 않았다.

그 점이 사람을 더 늦게 움직이게 했다.

장명수가 “일단 네 명이라 하고 내려가서 확인합시다. 그게 말이지, 이런 건 보고서가 중요해서”라고 했다.

수아가 바로 받았다.

“보고서에 제가 없는데 무슨 확인을 해요.”

서진은 카드 문구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감열지 같은 표면이 손가락 아래에서 조금 미끄러웠다.

개정 일자가 없는 빈칸이 눈에 들어왔다.

이 문구를 누가 언제 고쳤는지 모른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는 사람은 알 수 있었다.

그는 수첩에 적힌 줄을 하나씩 읽었다.

“윤서진.” 도윤이 “하지 마”라고 했다. “강도윤.” 수아가 가방 끈을 움켜쥐었다. “한수아.” 장명수가 모자를 벗었다.

“장명수.” 민규가 휴대전화를 가슴에 붙였다.

“최민규. 다섯 명입니다.”

복도 쪽 문패의 1304 숫자가 동시에 꺼졌다.

도윤이 문 사이로 어깨를 넣고 닫힘 버튼을 길게 눌렀다.

문은 이번에는 닫혔다.

닫히는 사이로 복도 안쪽에서 누군가 이름을 따라 읽었다.

윤서진.

강도윤.

한수아.

장명수.

최민규.

발음은 틀리지 않았다.

마지막 이름 뒤에 엘리베이터 내부등이 모두 꺼졌다.

비상등만 바닥 가까이 남았다.

표시창 숫자는 13에서 12로 내려가지 않았다.

-1이 켜졌다.

서진은 문 밖으로 한 발도 내딛지 않았다.

대신 문턱의 홈을 봤다.

먼지가 쌓인 방향이 안쪽과 바깥쪽에서 달랐다.

안쪽 홈에는 엘리베이터 바퀴 자국처럼 검은 선이 있었고, 바깥쪽 홈에는 발자국이 없었다. 사람을 기다리는 복도라면 문 앞에 신발 먼지라도 남아야 했다.

도윤이 그 시선을 따라왔다.

“나가지 마.” “나갈 생각 없습니다. 다만 바닥이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그런 걸 지금 봐?” “어느 쪽이 기록인지 봅니다.” 수아가 휴대전화를 들어 복도를 찍었다. 사진 앱은 저장을 끝냈다고 했지만 갤러리에는 검은 화면만 생겼다.

그는 욕을 하려다 민규를 보고 입을 닫았다.

주민 단체 채팅방은 투표창 아래에 댓글을 열었다.

1304호가 여러 개 보인다는 말은 아무도 쓰지 않았다. 대신 누가 엘리베이터를 오래 잡고 있느냐, 배달기사가 왜 새벽에 들어왔느냐, 경비반장이 확인을 했느냐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참여 가능 인원 4라는 숫자는 댓글 위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서진은 화면을 캡처하려 했다.

캡처음은 났지만 저장 목록에는 파일명이 없었다.

은채에게 보내기 전부터 지워지고 있었다.

도윤이 말했다.

“화면 믿지 마.” 서진은 수첩을 들어 보였다. “그래서 손으로 씁니다.” 민규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손으로 쓰면 괜찮아요?” 서진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괜찮은지는 모릅니다. 다만 아직 안 지워졌습니다.”

복도 목소리는 세 번째 질문을 했다.

이번에는 문장 끝에 ‘확인 후 이동하겠습니다’가 붙었다.

공공기관 안내문처럼 정중했다.

장명수는 그 말에 흔들렸다.

“확인하고 내려보내 준다는데.” 도윤이 그를 보지 않고 말했다. “내려보내 주는 쪽은 인원부터 줄여.” 장명수는 입을 다물었다.

수아가 자기 이름이 빠진 투표창을 다시 확인했다.

“제가 누락이면 네 명이 편해지는 거네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서진은 그 침묵이 대답으로 굳기 전에 말했다.

“편한 숫자와 실제 사람은 다릅니다.” 도윤이 낮게 경고했다. “주제문 말하지 마.” 서진은 입을 닫고 이름을 다시 세었다.

말보다 이름이 덜 미끄러웠다.

엘리베이터 내부 카메라 아래에는 비상 안내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화재 시 엘리베이터 사용 금지.

구조 요청 시 현재 위치와 인원수 고지.

인원수라는 단어가 새 카드 문구와 같은 위치에 걸렸다.

서진은 스티커 제조 연도를 봤다.

2017년.

카드에는 연도가 없었다.

장명수는 12층 위 기계실이라고 말한 뒤에도 천장 쪽을 훔쳐봤다. 그가 아는 건물이 조금씩 자기 손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민규의 휴대전화 배터리는 17퍼센트였다.

수아가 보조 배터리를 꺼내려다 자기 가방을 보았다.

음식 냄새가 봉투 안에서 식고 있었다.

생활의 작은 손해들이 먼저 말을 걸었다.

그 손해 때문에 모두가 빨리 끝내고 싶어졌다.

도윤은 네 명이라고 답하려던 입을 다물고 문틈에 명함 한 장을 끼웠다.

명함은 반쯤 들어가다 멈췄다.

복도 쪽에서 누가 잡아당기지 않았는데도 더 들어가지 않았다. “물리 틈 없음.” 그가 말했다.

서진은 그 말도 적었다.

목소리는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숫자는 사람보다 설득력이 커졌다.

네 명이면 문이 닫힐 것 같고, 다섯 명이면 이 이상한 복도가 더 오래 이름을 씹을 것 같았다.

서진은 그 느낌을 적지 않았다.

대신 탑승 위치를 그렸다.

왼쪽 벽 서진, 조작반 도윤, 문 앞 수아, 중앙 장명수, 뒤쪽 민규.

다섯 점이 있어야 엘리베이터 안의 공간이 맞았다.

미란의 무전이 다시 들어왔다.

“윤서진, 현재 상태를 열 단어 안으로 보고하세요.” 서진은 복도와 투표창과 카드 중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골랐다.

열 단어 안에는 사람 이름이 다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규칙을 어겼다.

“없는 13층, 실제 다섯 명, 시스템 네 명, 한수아 누락.” 무전기 저편에서 미란이 바로 답하지 않았다.

도윤이 서진을 봤다.

“팀장 지시도 세어?” “지시에 빠진 이름이 있어서요.” 수아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서진을 그냥 신입이 아니라 자기 쪽의 기록자로 봤다.

신뢰라기보다 임시 보관함에 가까운 시선이었다.

관리사무소 문서함에서 자동으로 사고 접수번호가 생성됐다. 은채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으므로 번호는 무전으로만 들렸다.

접수번호 끝자리는 004였다.

서진은 엘리베이터 안 사람 수와 같은 숫자라는 것을 적었다.

우연일 수 있었다.

그래도 적었다.

장명수는 “접수번호는 원래 순서대로 붙습니다”라고 했다가, 오늘 새벽 접수된 사건이 이것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입을 닫았다. 민규는 자기 이름이 접수번호에 들어가지 않는지 물었다. 서진은 “아직은 안 들어갑니다”라고 했다.

아직이라는 말이 아이에게 어떤 모양으로 들릴지 몰라, 그는 곧바로 이름을 다시 읽었다. “최민규, 8층.” 민규가 작게 “네”라고 답했다.

수아의 배달 완료 사진은 계속 실패했다.

카메라 화면에는 1304호 문패가 잡혔지만 셔터를 누르면 위치 정보가 1102호로 돌아갔다.

사진 속 문패는 흐려지고 영수증 번호만 선명했다.

수아는 “일은 했는데 장소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장명수는 열쇠 꾸러미를 더 세게 쥐었다.

건물을 아는 사람에게 장소가 없다는 말은 욕처럼 들렸다. 서진은 수아의 사진 실패를 적고, 목적 층 옆에 완료 증빙 불일치를 붙였다.

누락은 이름만 지우지 않았다.

일을 한 흔적도 엉뚱한 칸으로 밀고 있었다.

민규가 울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수아는 배달 가방에서 보조 배터리를 꺼내 휴대전화에 꽂았다. 장명수는 “기계 오류면 제가 수동으로”라고 말하다가 열쇠를 떨어뜨렸다.

도윤은 바닥을 더듬어 비상전화함을 열었다.

수화기는 걸려 있었다.

그런데 벨이 울렸다.

복도 밖이 아니었다.

관리사무소도 아니었다.

엘리베이터 천장 안쪽, 점검구 너머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도윤이 수화기를 들지 않고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잡음 뒤로 아까 그 안내 음성이 말했다.

“한 명이 남았습니다.”

이번 화가 재미있었나요?

좋아요와 평점은 언제든 변경할 수 있습니다.

독자 평점 8.8 (4)

댓글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