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투 신청서는 서린의 이름이 아니라 도윤의 이름으로 왔다
포기한 선택을 다시 여는 장학생 · 2026. 9. 18.
조회수 0
결투 신청서는 서린의 이름이 아니라 도윤의 이름으로 왔다.
신청자는 분기 2조. 상위권이었고, 조장은 삼 학년 하태윤이었다. 신청 사유 칸에 두 줄이 있었다.
최하위반 임시 항목의 실효성 검증. 패배 시 해당 항목 폐기 및 점수 이관.
서린은 그 두 번째 줄을 두 번 읽었다.
점수 이관. 남겨 둔 선택 항목은 아직 점수가 없다. 없는 점수를 이관한다는 건, 학기말 검증에서 점수가 붙을 경우 그 값을 미리 가져간다는 뜻이었다.
미래가 규정집을 확인했다. “가능해요. 조건부 이관 조항이 있어요. 이거 쓰는 사람 거의 없는데.”
“왜 없어.” 가람이 규정집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없는 점수를 걸어야 하니까요. 보통은 이길 자신이 있어도 안 걸어요.”
“그럼 저쪽은 왜 걸었어요?”
미래가 대답하지 않았다. 서린이 대답했다.
“자기들 순위가 걸려 있어서.”
어제 상위 분기조 게시판의 글을 서린도 봤다. 표시가 나중에 점수가 되면 우리 순위는 어떻게 됩니까. 그 질문은 조롱이 아니었다. 계산이었다.
남겨 둔 선택 항목이 점수가 되면, 화력으로 올라간 상위권의 순위가 재산정된다. 2조는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이 결투를 신청했다.
정당한 이유였다. 서린은 그게 정당하다는 점이 이 상황의 어려운 부분이라고 정리했다.
“내 이름으로 받을게.” 서린이 신청서를 자기 앞으로 가져왔다.
세 사람이 서린을 봤다.
“신청서에는 내 이름 있어.” 도윤이 말했다.
“바꿀 수 있어. 조 대표 지명 조항.” 서린이 규정 번호를 댔다. “미래야, 확인해.”
미래가 확인했다. “가능해요. 근데 왜요?”
“도윤이 나가면 저쪽이 원하는 그림이 돼.”
“무슨 그림.”
“능력 대 능력.” 서린이 말했다. “도윤이 이기면 개인 능력으로 이긴 거고, 지면 항목이 쓸모없는 거야. 둘 다 저쪽 이야기야.”
도윤이 그 논리를 따라왔다. “네가 나가면?”
“나는 그 항목으로 점수 받은 적 없어. 종료 시각 관리 한 줄이야.” 서린은 자기 기록을 보여 주지 않았다. “나는 화력으로 두 번 이겼어. 저쪽이 인정하는 방식으로 이겼어.”
“그래서?”
“그 방식으로 이긴 사람이 그 방식의 한계를 말하면, 저쪽이 반박할 근거가 줄어.”
“그럼 네가 지면?” 도윤이 물었다.
“지면 항목이 폐기돼.”
“그건 내가 물어본 게 아니야. 네가 지면 네 순위는 어떻게 되냐고.”
서린은 그 질문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지난주까지 이 사람은 이런 걸 안 물었다.
“수석 자격 재심이야.”
“그걸 걸어?”
“걸어.” 서린은 신청서에 서명했다. “안 걸면 저쪽이 안 받아.”
가람이 그때 손바닥을 들었다. 거부 신호는 아니었고, 말하겠다는 신호였다.
“서린아. 그 항목에 내 이름 있어.”
“알아.”
“그럼 나도 물어볼 권리 있어.” 가람은 문장 끝을 삼키지 않았다. “너 이거 나 때문에 하는 거야?”
“아니야.” 서린이 대답했다. “나 때문에 해. 나는 화력으로 이겼고, 화력만으로 순위를 정하는 게 틀렸다고 생각해. 그건 네가 없어도 내 생각이야.”
가람은 삼 초 들었다. 그리고 손을 내렸다.
“엇박 없어.”
결투는 다음 날 오후, 제3연무장이었다.
하태윤의 능력은 압축 도약이었다. 포기한 이동 경로를 연료로 삼아 짧은 거리를 순간적으로 접는 방식이었고, 화력 순위 사 위였다.
서린은 결단 고정검 하나만 들고 나왔다. 원장이 보낸 상자는 반납한 지 엿새째였다.
“장구 안 씁니까.” 심판이 장비 목록을 두 번 봤다.
“안 씁니다.”
“유서린 학생, 상대는 사 위입니다.”
“압니다.”
시작 신호.
하태윤이 먼저 접었다. 십오 미터가 이 미터가 됐고, 서린의 왼쪽에서 나타났다.
서린은 그 자리에 없었다. 시작 신호 직전에 왼쪽을 버린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선언하면 값을 낸다. 오른쪽 어깨가 시큰했다. 서린은 그 값을 오늘 열 번까지 계산해 뒀다.
두 번째 도약. 세 번째. 하태윤은 빨랐고, 서린은 매번 버릴 쪽을 먼저 말했다.
세 번째에서 관중이 알아챘다. 서린이 말한 쪽으로 하태윤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접기는 포기한 경로를 쓴다. 서린이 왼쪽을 버린다고 선언하면 그 선언이 연무장에 남고, 남은 선언은 하태윤의 연료 후보에서 빠진다. 남이 이미 버린 경로는 그가 버린 게 아니어서 쓸 수 없다.
네 번째에서 하태윤의 도약 거리가 짧아졌다. 쓸 수 있는 경로가 줄어든 것이다.
서린은 그 계산을 삼 년 전부터 갖고 있었다. 이 학원의 화력 상위권 열 명 중 여섯 명이 포기를 연료로 쓴다. 그들과 싸우려면 자기가 먼저 버려서 연료를 태워 없애면 된다.
대신 값을 낸다. 상대의 연료를 태우는 데 자기 어깨를 쓴다.
다섯 번째에서 하태윤이 방식을 바꿨다. 도약하지 않고 서린의 선언을 기다렸다.
“유서린. 오른쪽 버린다고 말해 봐.” 하태윤의 숨이 고르지 않았다.
서린은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으면 값을 안 낸다. 대신 상대가 어디로 올지 모른다.
그녀는 십 초를 기다렸다. 십 초 동안 아무 선언도 하지 않았고, 하태윤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서린이 말했다.
“아무것도 안 버려.”
하태윤이 웃었다. “그럼 네 검은 안 켜져.”
“안 켜져.”
서린이 칼을 던졌다.
칼은 능력이 아니었다. 검을 켜지 않으면 그건 금속 막대기고, 금속 막대기는 던질 수 있다.
하태윤이 그 궤적을 보고 도약했다. 칼을 피하는 방향으로. 십오 미터가 이 미터로 접혔다.
접힌 자리에 서린이 있었다.
그녀는 칼을 던진 직후에 그 자리로 걸어갔다. 걸어서. 하태윤의 도약은 자기가 포기한 경로를 연료로 쓴다. 피하려면 피할 방향을 먼저 정해야 하고, 정하면 나머지를 포기한다.
서린은 그 나머지 중 하나에 서 있었다.
하태윤이 나타난 순간 서린의 손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검은 없었고, 능력도 없었다.
“항복.” 심판이 선언했다. “유서린 승.”
하태윤은 손목을 빼지 않았다. 빼려면 다시 접어야 하고, 접을 경로가 남아 있지 않았다.
“너 이거 준비했지.” 그가 말했다.
“삼 년 했습니다.”
“왜 지금 써.”
“지금까지는 필요 없었습니다.” 서린이 손을 놓았다. “화력으로 이길 수 있었으니까요.”
연무장이 조용했다. 화력 사 위가 능력 없는 학생에게 손목을 잡혔다.
서린은 칼을 주우러 갔다. 주우면서 칼집 안쪽을 봤다.
다섯 칸이었다.
오늘 그녀는 선언을 네 번 했고, 철회는 한 번도 안 했고,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안 버렸다. 그런데 금은 늘었다.
세 번째였다. 서린은 그 사실을 종이에 적을 필요가 없었다. 이제 외우고 있었다.
시상 절차에서 심판이 재대결 권한을 제시했다.
“승자는 동일 조건 재대결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조건부 이관 조항이 두 배로 적용됩니다.”
두 배. 2조의 점수 일부를 7조가 가져올 수 있었다. 미래가 계산기를 두 번 두드렸다.
“유서린 학생, 이거 하면 우리 순위 열두 계단 올라가요.” 미래의 목소리가 빨라졌다.
서린은 신청서를 받았다. 그리고 이의 신청서도 함께 받았다.
“이의 신청합니다.”
심판이 멈췄다. “뭘요.”
“조건부 이관 조항입니다.” 서린이 규정집을 펼쳤다. “이 조항은 아직 점수가 확정되지 않은 항목을 걸게 합니다.”
“그건 신청자 자유입니다.”
“자유입니다. 다만 걸린 항목이 다른 사람 기여인 경우가 문제입니다.” 서린은 남겨 둔 선택 항목을 짚었다. “이 항목에는 이가람 학생의 기록이 있습니다. 이가람 학생은 이 결투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미래가 그 순간 서린이 뭘 하는지 알았다. 미래의 손이 멈췄다.
“제가 이겼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겨서 이가람 학생의 항목이 지켜지는 구조라면, 다음에 제가 지면 그 항목이 사라집니다.” 서린은 신청서를 내려놓았다. “그건 이가람 학생 기록이 제 승패에 묶인다는 뜻입니다.”
“재대결을 포기하겠다는 겁니까.”
“포기합니다. 대신 이 조항에서 제삼자 기여 항목을 제외해 주십시오.”
심판이 규정집을 봤다. “그건 학사위원회 안건입니다.”
“올려 주십시오.”
하태윤이 그때 앞으로 나왔다.
“저도 같은 이의 냅니다.” 그의 손목에는 아직 자국이 있었다.
심판이 그를 봤다. “패자가 왜요.”
“제 조에도 조원 셋이 있습니다.” 하태윤이 말했다. “오늘 제가 걸었던 게 제 점수만이 아니었다는 걸 아까 알았습니다.”
미래가 그 발언을 적었다. 서린은 적지 않았다.
그 대신 하태윤에게 말했다. “선배 이의는 선배 이름으로 내십시오. 제 이름 밑에 넣지 마십시오.”
“왜.”
“두 사람이 따로 내면 두 건입니다. 같이 내면 한 건입니다.”
연무장을 나올 때 도윤이 옆에 왔다.
“열두 계단.”
“알아.”
“그거 포기한 거 알지.”
“알아.” 서린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도윤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한 게 있었다. 시상대 앞에서 학생들이 다 듣게 한 문장을 말했다.
유서린 학생이 오늘 능력을 안 쓰고 이겼고, 재대결을 포기했습니다. 이유는 제 조원 기록을 자기 승패에 걸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서린은 그 문장에 끼어들지 않았다. 자기 승리를 남이 설명하는 걸 견디는 게 오늘 두 번째 어려운 일이었다.
생활관 문에 서류 봉투가 있었다.
후계 면담 자료. 원장실 발신. 첫 장 제목이 이랬다. 유서린 후계 적합성 평가 — 결정 안정성 항목.
서린은 봉투를 열지 않고 책상에 놓았다. 반납한 장구 상자가 있던 자리였다.
대신 칼집을 꺼내 안쪽을 다시 봤다. 다섯 칸.
오늘 그녀가 한 것 중에 미로와 결단 평가와 공통되는 게 하나 있었다. 정해진 답을 따르지 않은 것.
미로에서는 미로가 정한 방향을 안 따랐다. 결단 평가에서는 설계자가 정한 정답 경로를 안 따랐다. 오늘은 화력으로 이기는 방식을 안 따랐다.
세 번 다 금이 늘었다.
가설이 하나 남았고, 서린은 그 가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검이 측정하는 게 결단의 강도가 아니라면, 원장이 후계 적합성 항목에 결정 안정성을 쓴 이유도 다시 읽어야 한다.
그녀는 봉투를 열지 않은 채로 잠들었다.
이번 화가 재미있었나요?
좋아요와 평점은 언제든 변경할 수 있습니다.
독자 평점 아직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