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는 제목을 먼저 정하는 사람이었다
포기한 선택을 다시 여는 장학생 · 2026.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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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는 제목을 먼저 정하는 사람이었다.
유령 신입생. 존재하지 않는 학생의 책상이 3층에 있다.
제목을 정하면 기사는 알아서 써진다. 사진 두 장, 목격자 인용 하나, 그리고 물음표로 끝나는 마지막 문단. 조회수는 여덟백 정도. 동아리 폐부 심사에 필요한 활동 실적은 삼백부터니까 충분했다.
선택 잔향 동아리는 부원이 둘이었다. 연우와, 이름만 올려 준 삼 학년 하나. 폐부 심사는 다음 달이었고, 심사에서 떨어지면 자료실 상자 서른 개가 학원 창고로 간다. 창고로 가면 삼 년 안에 폐기된다.
사진은 어제 밤에 찍었다. 3층 뒤편 교실은 잠기지 않았다.
연우가 게시판에 올리기 십 분 전에 문이 열렸다.
“임연우 학생.” 미래가 먼저 이름을 불렀다.
넷이 들어왔다. 연우는 그 넷을 알고 있었다. 최하위 분기반, 분기 7조. 조건부 도장 하나, 무장구 우승 하나, 조항 네 개, 그리고 소리 듣는 애.
제목 후보가 즉시 하나 더 생겼다. 7조가 유령을 감추려 한다.
“기사 내리세요.” 미래가 단말 화면을 가리켰다.
“왜요?” 연우는 단말을 뒤로 돌리지 않았다. “제보 받았고, 사진 제가 찍었고, 그 교실 잠겨 있지도 않았어요.”
“증거 오염이요.”
“오염?” 연우가 손으로 따옴표를 만들었다. “저는 사진만 찍었어요. 만지지도 않았어요.”
“사진 게시가 오염이에요.” 미래가 조항처럼 말했다. “올리면 사람들이 그 교실에 가요. 어제 열여덟 명이 그 복도를 지났어요. 오늘 게시하면 백 명이 가요.”
연우는 그 계산이 맞다는 걸 알았다. 알면서 대답했다.
“그럼 학원에 신고하면 되잖아요. 신고했어요?”
미래가 대답하지 않았다.
“신고 안 했죠.” 연우가 말했다. “왜냐면 학원이 그 이름을 지우고 있으니까. 맞죠?”
연우는 그 문장을 던지고 반응을 봤다. 빈칸에 가능한 이야기를 던져 반응을 끌어내는 건 그의 방식이었다. 세 개를 준비했고, 이게 두 번째였다.
넷의 표정이 각자 달랐다. 서린은 안 변했고, 미래는 펜을 쥐었고, 도윤은 앞으로 반 걸음 왔다. 가람은 연우를 보지 않고 천장을 봤다.
연우는 그 반응을 다 읽었다. 읽는 게 직업이었다.
“제목 바꿀게요. 학원이 학생을 지운다. 이게 더 세요.”
“그건 아직 확인 안 됐어요.” 미래가 말했다.
“확인 안 된 게 기사가 안 되는 건 아니에요. 물음표 붙이면 돼요.”
“물음표 붙인 기사는 물음표로 안 읽혀요.”
연우는 그 문장에서 잠깐 멈췄다. 반박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 문장을 작년에도 들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연우는 실습 사고 기사를 썼다. 제목에 물음표를 붙였다. 사고 원인이 장비 결함인가? 라고 썼고, 실제 원인은 학생 실수였다. 그 학생은 두 달 뒤에 자퇴했다.
정확히는 실수도 아니었다. 그 학생은 규정대로 했고, 규정 자체가 낡았다. 하지만 기사가 장비 결함을 물었으니 사람들은 장비를 봤고, 장비가 정상이라고 밝혀지자 남은 답은 사람이었다.
연우는 그 순서를 자기가 만들었다는 것을 안다. 물음표를 어디에 붙이냐가 다음에 누가 의심받을지 정한다.
연우는 정정문을 올렸다. 정정문 조회수는 사십일이었다. 원문은 이천이 넘었다.
그 학생 이름은 정정문에서 지웠다. 원문에서는 이미 언급하지 않았으니 지울 것도 없었다. 그게 더 나빴다. 이름 없이도 학과 사람들은 누군지 알았다.
“기사 하나 물어볼게요.” 도윤이 그때 말했다. “작년 실습 사고 기사, 쓰신 분이죠?”
연우의 손이 멈췄다.
“그거 왜.”
“정정문 아직 게시판에 있어요. 원문 아래에.” 도윤이 말했다. “보통 정정문은 내리는데.”
“…안 내렸어요.”
“왜요?”
연우는 대답을 골랐다. 진지할 때 수식어를 지우는 습관이 나왔다.
“내리면 없던 일이 돼서요.”
가람이 그때 천장에서 시선을 내렸다.
“지금 엇박 없었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진심이라는 뜻이에요.” 미래가 통역했다. “가람 학생 감각이고, 증거는 아니에요.”
연우는 그 셋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가 정확했다. 이 애들은 자기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해서 말한다. 연우는 그걸 잘 못한다.
“조건 걸게요.” 연우가 말했다.
“말하세요.” 미래가 펜을 들었다.
“기사 보류할게요. 대신 저도 조사에 넣어 줘요.” 연우가 가입서를 꺼냈다. 동아리 가입서였다. “정확히는, 우리 동아리가 이 조사의 보존 담당이 되는 거예요.”
“보존이요?” 미래가 되물었다.
“원본 보관. 사진, 시각, 목격 진술.” 연우는 종이를 밀었다. “저는 접근권을 갖고, 여러분은 제가 공개 전에 여러분한테 먼저 보여 준다는 조항을 갖는 거예요.”
미래가 그 종이를 읽었다.
“공개 시점은요.”
“피해자 신원 확인 뒤예요.” 연우가 말했다. “그리고 확인되면 그 사람이 익명을 원하는지 먼저 물어요.”
서린이 처음 말했다. “그 조항 어디서 배웠어.”
“작년에요.”
넷이 조용해졌다.
“작년에 뭐가 있었는지 물어봐도 돼요?” 도윤이 물었다.
“기사 하나 잘못 썼어요.”
“그게 다예요?”
“한 명 자퇴했어요.” 연우는 그 문장을 짧게 말했다. 짧게 말하는 게 오늘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었다. “제 기사 때문인지 아닌지는 확인 안 됐어요. 근데 저는 확인 안 됐다는 말을 방패로 쓰고 싶지 않아요.”
미래의 펜이 멈췄다. 그리고 다시 움직였다. 연우는 자기 문장이 조항이 되는 걸 봤다.
미래가 가입서에 조건을 두 줄 더 썼다. 하나는 보존 자료의 사본 위치였고, 하나는 위반 시 접근권 즉시 소멸이었다.
“이거 서명하면 우리도 조건이 하나 있어요.” 미래가 말했다. “동아리 자료실 열어 주세요. 분실물 목록이요.”
“분실물은 왜요?”
“지워지는 학생이 있으면, 그 학생 물건이 남아 있을 거예요.”
연우는 그 논리를 즉시 이해했다. 그리고 자기가 삼 년 동안 그 목록을 갖고 있으면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해했다.
“…있어요. 원본 목록이요.”
자료실은 옛 인쇄실이었다. 상자가 벽까지 쌓여 있었고, 연우는 그중 하나를 꺼냈다.
분실물 원본 목록. 삼십일 년 치.
“이거 왜 이렇게 오래된 것까지 있어요?” 도윤이 상자 옆면의 연도를 봤다.
“우리 동아리가 원래 분실물 보관이었어요. 소문은 나중에 붙은 거고요.”
가람이 그때 상자 하나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열지 않았다.
“여기 소리 나.”
“소리?”
“아니, 정확히는 안 나. 다른 상자는 종이 소리가 나는데 이건 금속이야.”
“열어도 돼요?” 연우가 물었다.
“사진 먼저요.” 미래가 단말을 들었다. “여는 순서도 남겨요.”
연우는 그 절차가 답답했다. 답답한데, 답답한 절차 하나가 작년에 있었으면 그 학생은 자퇴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연우가 그 상자를 열었다. 목록 사이에 봉투가 하나 끼워져 있었다.
봉투 안에는 졸업 배지가 있었다. 오래된 것이었고, 도금이 벗겨져 있었다.
이름 칸이 긁혀 있었다. 긁힌 방식이 나침반 안쪽 서명과 같았다.
“이거랑 같은 거 어제 봤어요.” 미래가 말했다. “교수님 나침반 안쪽이요.”
“같은 사람이 긁었다는 거예요?”
“같은 방식이라는 거예요. 같은 사람인지는 몰라요.”
미래가 그 배지를 사진으로 찍었다. 만지지 않았다.
“연우 학생. 이 봉투에 반납 기록 있어요?”
연우가 목록을 확인했다. 봉투에 딸린 반납 카드가 있었다.
반납 시각이 적혀 있었다.
“…이거 지난주예요.”
“지난주 언제요?”
연우는 카드를 창가로 들었다. 손이 조금 떨렸고, 떨리는 걸 숨기려고 목소리를 크게 냈다.
“화요일. 열두 시 이 분.”
“그때 누가 반납했는지도 적혀 있어요?” 서린이 물었다.
연우가 카드 뒷면을 봤다. 반납자 칸이 있었다.
비어 있었다.
“반납자 없이 반납 시각이 적히는 경우가 있어요?”
“없어요.” 연우가 말했다. “이 카드는 제가 삼 년 동안 썼어요. 시각은 접수자가 적어요. 접수자가 저예요.”
“연우 학생이 적었어요?”
연우는 자기 글씨를 봤다. 화요일 열두 시 이 분. 자기 글씨였다.
“…기억이 안 나요.”
가람이 고개를 들었다. 정오 종이 끝나고 열세 번째가 울린 시각과 같은 분이었다.
가람이 그때 봉투를 만지지 않고 얼굴을 가까이 댔다.
“이 배지, 소리가 하나 더 있어.”
“금속 소리요?”
“아니. 사람 목소리 같은 건 아니고.” 가람이 단어를 찾았다. “최근에 누가 오래 쥐고 있었던 소리야. 손 소리가 남아 있어.”
“그것도 증거 아니에요?” 연우가 물었다.
“아니야. 내 감각이야.” 가람은 물러섰다. “근데 쥐고 있었으면 지문이 남았을 수도 있어.”
미래가 그 문장을 적었다. 확인 가능한 항목 하나가 늘었다.
연우는 그 사실을 제목으로 만들 수 있었다. 삼십일 년 전 배지가 지난주에 반납됐다. 좋은 제목이었다.
그는 단말을 열었다. 그리고 임시 저장을 눌렀다.
“공개 안 해요.” 연우가 말했다. “대신 이거 보존 1번으로 등록할게요.”
미래가 그 등록번호를 조 장부에 적었다. 보존 1번, 관리 임연우, 사본 위치 두 곳.
“사본을 왜 두 군데 둬요?” 연우가 물었다.
“한 군데면 그 사람이 언제 꺼낼지 그 사람이 정하니까요.”
연우는 그 말이 자기를 못 믿는다는 뜻이라는 걸 알았다. 알면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작년에는 아무도 그를 못 믿는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 그냥 안 읽었다.
“하나 물어봐도 돼요?” 연우가 넷을 봤다. “이거 왜 조사해요? 여러분 성적하고 상관없죠?”
“상관없어요.” 미래가 말했다.
“그럼 왜요.”
가람이 대답했다. “내가 들었어. 그래서 확인해야 해.”
“그게 이유가 돼요?”
“나한테는 돼.” 가람은 손바닥을 상자에 붙였다. “다른 사람한테도 되게 만들려고 지금 기록하는 거야.”
연우는 그 문장을 제목으로 만들어 보려고 했다. 만들어지지 않았다. 좋은 문장은 대개 제목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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