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미래는 장학 규정을 처음부터 읽은 적이 없었다

포기한 선택을 다시 여는 장학생 · 2026.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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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장학 규정을 처음부터 읽은 적이 없었다.

입학 때 받은 책자는 사십육 페이지였고, 그중 읽은 건 지급 일정과 동결 조건이었다. 필요한 부분만 읽는 게 효율이었다.

어제 나침반 때문에 그 판단이 바뀌었다. 판을 뜯어야 서명이 나왔다.

그래서 새벽 두 시에 사십육 페이지를 처음부터 읽었다.

삼십일 페이지에 그 조항이 있었다.

제칠장 제사항. 분기 실습조 소속 장학생이 실습 과정에서 발생시킨 개별 포기 잔향은 학원의 공동 자산으로 귀속한다.

미래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개별 포기 잔향. 도윤이 능력을 쓰면 대상에게서 나오는 것. 서린이 결단을 고정할 때 소모하는 것. 그리고 실습 중에 학생들이 무언가를 그만둘 때마다 생기는 것.

공동 자산으로 귀속.

효율 계산으로는 이 조항이 나쁘지 않았다. 학원이 실습 장비와 안전 인원을 대고, 학생은 실습 중 발생한 부산물에 대한 권리를 넘긴다. 계약으로 흔한 구조였다.

미래는 그 구조를 평가할 기준을 하나 갖고 있었다. 넘기는 쪽이 나중에 되돌릴 수 있는가.

조항에는 철회 항목이 없었다. 잔향은 한 번 귀속되면 원래 사람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잔향이 뭔지는 조항이 정의하지 않았다.

정의하지 않은 대상을 영구히 귀속시키는 문장은, 계약서에서 가장 위험한 종류였다.

문제는 문구였다.

미래는 자기 가방에서 다른 종이를 꺼냈다. 사 년 전 종이였고, 아버지 서명이 있었다.

진로 계약서 제사조. 계약자가 학업 과정에서 발생시킨 개별 성과 및 부수 권리는 회사의 공동 자산으로 귀속한다.

개별. 발생시킨. 공동 자산으로 귀속.

세 부분이 같았다. 어순도, 조사도 같았다.

미래는 그 두 종이를 나란히 놓고 십 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같은 문구를 쓰는 계약서는 많다. 표준 서식이 있고, 법무 담당자들끼리 쓰던 문장을 돌려쓴다. 그건 우연일 수 있었다.

그런데 미래는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우연이라고 정리할 이유를 찾고 있었다.

새벽 세 시에 그녀는 결정했다. 조항을 문제 삼는다. 자기 계약서 얘기는 하지 않는다.

두 결정은 별개였고, 별개라고 스스로에게 두 번 말했다.

아침에 미래는 서린을 찾았다.

“공동 서명 하나 필요해요.” 미래는 인사를 생략했다.

“뭐에.” 서린은 아침 훈련 기록을 덮었다.

“장학 규정 제칠장 제사항 삭제 요구요.” 미래가 사본을 내밀었다. 형광펜이 세 군데 그어져 있었다.

서린은 조항을 읽었다. 읽는 속도가 미래보다 빨랐다.

“이거 언제부터 있었어.” 서린의 손가락이 개정 이력 칸에 멈췄다.

“개정 이력 보면 사 년 전이요.”

“사 년 전에 뭐가 있었는데.”

미래의 대답이 반 박자 늦었다. 그 반 박자를 서린이 기록했을 거라고 미래는 생각했다. 서린은 그런 걸 기록하는 사람이다.

“모르겠어요. 그것도 찾아야 해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사 년 전에 뭐가 있었는지 미래는 하나 알고 있었다. 자기 진로 계약서였다. 그게 이 개정과 관계있는지는 정말로 몰랐다.

모르는 부분을 앞에 두고 아는 부분을 뒤에 숨기는 것. 미래는 그게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계약 기술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왜 나야.”

“두 번 이긴 사람 서명이 필요해서요.” 미래는 정직하게 말했다. 그 부분은 정직해도 됐다. “제 이름만 있으면 반각돼요.”

서린은 사본을 다시 봤다. 그리고 물었다.

“이 조항이 지금 누구한테 제일 불리해?”

“한도윤이요.”

“그럼 왜 도윤이 이름이 없어.”

미래는 그 질문을 예상했다. 예상했는데도 대답이 준비되지 않았다.

“당사자가 신청하면 사적 이익으로 봅니다.”

“어제 내가 낸 신청은 당사자가 아닌 게 이유였어.” 서린이 사본을 내려놓았다. “근데 그건 내가 정한 이유고, 지금 네가 말한 건 네가 정한 이유야. 같은 문장인데 왜 네가 쓰면 이상하게 들리는지 알아?”

“…모르겠어요.”

“나는 어제 내 이익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어. 너는 지금 그 말을 안 했어.”

미래는 허공에 괄호를 그렸다. 그리고 그리는 자기 손을 봤다.

“서린 학생.”

“응.”

“제 이해관계는 이 신청과 무관하다고 말하지 않을게요.” 미래는 그 문장을 골랐다. 거짓말이 아니고, 전부도 아닌 문장. “대신 조항이 문제인 건 이해관계랑 상관없이 사실이에요. 그건 확인할 수 있어요.”

서린은 삼 초 동안 미래를 봤다. 미로에서 벽이 오는 방향을 볼 때와 같은 눈이었다.

“말 안 하는 걸로 하겠다는 거지.”

“네.”

“그럼 나도 조건 하나.” 서린이 펜을 들었다. “네 이해관계가 이 신청 결과를 바꾸는 순간이 오면, 그때는 말해. 나한테든 조 전체한테든.”

“…네.”

“그리고 그때까지는 안 물어봐.”

서린이 서명했다. 미래는 그 서명을 보면서 자기가 방금 뭘 받았는지 계산했다. 유예였다. 유예는 면제가 아니다.

신청서 접수에는 두 시간이 걸렸다. 담당자가 세 번 반각했다.

첫 번째 반각 사유는 서식이었다. 미래가 서식을 다시 썼다.

두 번째는 근거 부족이었다. 미래는 조항이 정의하지 않은 대상을 영구 귀속한다는 점을 두 줄로 적었다.

세 번째는 이랬다. 이 조항은 학원 재정 구조와 연결되어 있어 단독 삭제가 불가합니다.

“그럼 연결된 부분을 보여 주십시오.” 미래가 말했다.

“비공개입니다.”

“비공개 항목이 학생 권리를 제한하면 제한 범위는 공개여야 합니다.” 미래는 학칙 조항 번호를 댔다. 새벽에 읽은 사십육 페이지에 있었다.

담당자는 접수증을 줬다. 심사에 넘긴다는 뜻이었고, 통과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접수증 번호를 받고 나오는 길에 도윤이 물었다.

“그 조항 얘기 왜 나한테 안 했어?” 도윤이 접수증을 봤다.

미래는 그 질문이 올 걸 알고 있었다.

“학생이 당사자예요.”

“당사자면 더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알아야 해요.” 미래는 사본 하나를 그에게 줬다. “지금 드려요. 신청은 이미 접수됐어요.”

“접수 다음에 주는 건 알려 준 게 아니라 통보야.”

정확한 지적이었다. 미래는 그 정확함이 어디서 왔는지 알았다. 이 사람은 최근에 통보와 상의의 차이를 배웠다.

“맞아요. 통보예요.” 미래는 인정했다. “사과할게요. 근데 다시 해도 같이 할 거예요.”

“왜.”

“학생이 알면 학생이 뭘 할지 알아요.” 미래는 그의 왼손을 봤다. “원장한테 갈 거예요. 이 조항 삭제해 주면 트랙 받겠다고 할 거예요.”

도윤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생각은 했어.”

“그럼 제 계산이 맞았어요.”

“그건 네 계산이 맞은 거고, 나한테 물어본 건 아니야.”

미래는 그 문장을 메모지에 적었다. 조원 항의 1건. 사유, 사전 고지 누락.

“적었어요. 학생이 나중에 이걸 근거로 저한테 이의 걸 수 있어요.”

“그렇게까지 안 해.”

“하시게 만들어 놓는 게 조항이에요.”

도윤은 그 사본을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넣는 방식이 미래가 아는 방식이었다. 그는 종이를 두 번 눌러 접는다.

“미래야.”

“네.”

“이 조항 삭제되면 누가 손해 봐?”

미래는 그 질문에 두 개의 답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학원 재정이었고, 하나는 위탁 기관이었다.

“학원이요. 재정 항목이랑 연결돼 있대요.”

“그거 말고. 학원 말고 누가 또.”

“…아직 확인 안 됐어요.”

도윤은 더 묻지 않았다. 미래는 그가 안 묻는 이유를 알 것 같았고, 알 것 같다는 게 더 불편했다.

저녁에 서린이 생활관으로 왔다. 손에 종이 뭉치가 있었다.

“규정 부속서. 학사과에서 열람 신청해서 받았어.” 서린은 신발을 벗지 않고 서 있었다.

“부속서가 있었어요?”

“본문에는 목록에도 없어. 개정 이력에서 번호만 나와.” 서린이 뭉치를 놓았다. “사 년 전 개정 때 붙은 거야.”

미래는 부속서를 넘겼다. 열여덟 페이지였고, 대부분 기술 항목이었다. 저장 용량, 반출 절차, 검사 주기.

검사 주기 항목에 숫자가 있었다. 삼 년마다 전수 검사, 매주 부분 검사. 매주 부분 검사 결과는 단일 지표로 공표한다.

단일 지표. 미래는 어제 도윤이 말한 십사 점 이를 떠올렸다.

마지막 페이지에 인장이 세 개 있었다.

학원 인장. 시청 방재 부서 인장. 그리고 세 번째.

미래의 손이 멈췄다.

세 번째 인장에는 회사 이름이 있었다. 미래가 사 년 전 계약서에서 본 이름이었다.

서린은 그 인장을 보고 있었다. 미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이거 봤어?” 서린이 물었다.

미래는 대답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대신 서린이 먼저 말했다.

“대답 안 해도 돼. 아까 조건 걸었잖아.”

“…네.”

“근데 하나만.” 서린이 부속서를 미래 쪽으로 밀었다. “원본 사본은 네가 가져. 내가 들고 있으면 내가 언제 꺼낼지 내가 정하게 돼.”

미래는 그 뭉치를 받았다. 종이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서린이 나가고 나서 미래는 부속서 마지막 페이지를 다시 펼쳤다.

세 번째 인장 아래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위탁 검사 기관. 회사 이름 뒤에 사업자 번호가 붙어 있었고, 미래는 그 번호를 외우고 있었다.

아버지가 십 년 동안 다닌 회사였다. 사 년 전에 그 회사가 미래의 진로 계약서를 썼고, 같은 해에 이 부속서에 인장을 찍었다.

미래는 계산할 수 있는 것과 계산할 수 없는 것을 나눴다.

계산할 수 있는 것. 조항이 삭제되면 학원은 잔향 귀속 권한을 잃는다. 삭제되면 위탁 기관도 자료를 못 받는다. 못 받으면 계약이 흔들린다. 아버지 회사의 계약이 흔들린다.

계산할 수 없는 것. 그 흔들림이 아버지에게 어떻게 도착할지.

미래는 그 두 목록을 종이 한 장에 적었다. 적고 나서 찢지 않았다. 찢으면 다음에 다시 계산해야 하고, 다시 계산하면 결론이 바뀔 수도 있다.

대신 그 종이를 접어 계약서 사본 사이에 넣었다. 조 공동 장부가 아니라 자기 가방 안쪽이었다.

그게 오늘 미래가 한 선택이었고, 미래는 그 선택을 장부에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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