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마은하는 수업 시작 전에 교재를 걷었다

포기한 선택을 다시 여는 장학생 · 2026. 8. 31.

조회수 0

마은하는 수업 시작 전에 교재를 걷었다.

“오늘 교재는 안 씁니다. 앞으로 내십시오.”

열두 명이 교재를 앞으로 냈다. 열세 번째 책상에는 교재가 없었고, 마은하는 그 자리를 세지 않았다. 세지 않는 데 신경을 써야 했다.

그녀가 책상에 올려놓은 건 깨진 물건이었다.

황동 케이스, 손바닥 크기, 뚜껑이 반쯤 떨어져 있었다. 안쪽에 바늘이 두 개 있고, 두 개 다 움직이지 않았다.

“선택 나침반입니다. 누가 무엇을 포기했는지 찾으십시오. 사십 분.”

열두 명 중 아홉 명이 필기구를 들었다. 필기할 게 없는 과제인데 필기구를 드는 건 이 반의 습관이었다. 최하위 분기반 학생들은 대부분 무언가를 잘못해서 여기 왔고, 잘못한 사람은 적어 두려고 한다.

“이게 왜 깨졌는지 찾는 게 아니고요?” 미래가 물었다.

“그것도 답의 일부입니다.”

“그럼 답이 몇 개입니까.” 서린이 물었다.

“모릅니다.”

교실이 조금 움직였다. 교수가 모른다고 말하는 건 이 학원에서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진짜 모르십니까?” 미래가 확인했다.

“전부는 모릅니다.” 마은하가 말했다. “아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건 말하지 않습니다.”

“그건 시험입니까 아니면 숨기시는 겁니까.”

“둘 다입니다.”

마은하는 창가로 갔다. 창가에 서면 학생들 손이 다 보이고, 자기 얼굴은 반쯤 그림자에 들어간다. 이 자리를 쓴 게 열두 해였다.

7조가 먼저 움직였다. 서린이 케이스를 들고 무게를 봤고, 가람이 안쪽에 귀를 붙였고, 미래가 부품을 하나씩 늘어놓았다. 도윤은 늘어놓는 순서를 받아 적었다.

마은하는 그 배치를 봤다. 지난주에는 도윤이 먼저 손을 뻗었다. 오늘은 네 번째였다.

“소리 안 나.” 가람이 말했다. “아예 안 나. 죽은 거야.”

“죽은 물건에서 뭘 찾으라는 거지.” 서린이 케이스를 뒤집었다.

“죽은 게 아니라 잔향이 빠진 거예요.” 미래가 바늘 하나를 집었다. “나침반이면 누군가의 포기를 가리키게 되어 있었을 거예요. 그 포기가 회수됐으면 안 움직여요.”

“회수라니.”

“누가 가져갔다는 뜻이에요.”

“가져갈 수 있어?” 도윤이 물었다. 이번 수업에서 그가 처음 한 말이었다.

“몰라요. 그래서 가설로 적을게요.” 미래는 물음표를 붙였다.

마은하는 그 물음표를 봤다. 지난달 이 학생은 물음표를 안 썼다. 결론만 적었다.

마은하는 그 대답이 나온 시점을 기억해 뒀다. 십사 분.

그리고 미래가 케이스 안쪽 판을 뜯었다.

“교수님, 이거 뜯어도 됩니까?”

“파손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말하고 나서 마은하는 그 문장이 허가였다는 걸 알았다. 허가할 생각이 없었다면 파손 책임을 학생에게 두었을 것이다. 그녀는 열두 해 만에 스스로 문을 반쯤 열었다.

미래는 판을 뜯었다. 뜯긴 자리 아래에 글씨가 있었다.

지워진 서명이었다. 화학적으로 지운 게 아니라 긁어서 지운 것이었고, 긁은 자리에 획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

마은하는 창가에서 그 장면을 봤다. 그 판을 뜯은 학생은 열두 해 만에 처음이었다.

“글씨 있어요.” 미래가 말했다. “서명이에요. 두 명이요. 하나는 완전히 지워졌고, 하나는 앞 글자가 남았어요.”

“읽을 수 있습니까.” 서린이 물었다.

“ㅁ으로 시작해요.”

미래는 그 자모를 소리 내어 말한 다음, 아무도 보지 않고 자기 종이에 적었다.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이름을 말하면 확인 전 진술이 된다.

교실이 조용해졌다. 열두 명 중 몇 명이 창가를 봤다.

마은하는 안경을 벗지 않았다. 벗으면 이미 판단을 미뤘다는 뜻이 되고, 이 학생들은 그걸 아직 모른다.

“다음.”

“다음이요?” 미래가 되물었다.

“찾은 것을 계속 말하십시오. 사 분 남았습니다.”

미래는 판 안쪽을 더 봤다. 그리고 손끝으로 무언가를 문질렀다.

“가루가 있어요. 흰색이고, 결정이 굵어요.”

“분필입니다.” 마은하가 말했다.

“어느 분필인지도 아세요?”

“압니다.”

미래는 그다음 질문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가루를 조금 옮겼다. 그리고 교실 앞의 분필 통으로 갔다.

분필 통에는 두 종류가 있었다. 학원 표준 분필과, 마은하가 개인적으로 쓰는 굵은 결정 분필.

미래가 두 개를 나란히 놓고 종이 위 가루와 비교했다.

“이 교실 것이에요.” 미래가 말했다. “교수님 분필이요.”

“단정입니까, 관찰입니까.”

“관찰입니다. 결정 크기와 색이 같습니다.” 미래는 두 분필을 그대로 놓아 뒀다. “같은 제조사면 다른 교실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확인 안 했습니다.”

마은하는 그 마지막 문장을 오래 들었다. 확인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학생은 드물다. 그녀 자신이 열두 해 전에 하지 못한 말이었다.

마은하는 그 문장을 기다렸다. 준비한 대답이 세 개 있었다. 첫째는 부인. 둘째는 설명. 셋째는 침묵.

그녀는 세 번째를 골랐다. 늘 세 번째를 골랐다.

“사십 분 종료입니다.”

“교수님.” 미래가 물러나지 않았다. “이 나침반, 이 교실에 있었던 겁니까?”

“다음 과제를 냅니다.”

미래의 손이 멈췄다. 서린이 그 손을 봤고, 가람이 마은하의 목소리를 들었다.

마은하는 자기 목소리가 반 톤 낮아진 걸 알았다. 학생들에게 위험 동사를 말할 때 나오는 톤이었다. 지금 위험은 학생 쪽에 없었다.

“반례 실험입니다.” 그녀는 책상에서 두 번째 물건을 꺼냈다. 같은 종류의 나침반이었고, 이건 깨지지 않았다. “이건 작동합니다. 두 개를 나란히 놓고, 무엇이 다른지 관찰하십시오.”

“질문에 대답을 안 하셨습니다.” 미래가 말했다.

“대답하지 않습니다.”

“왜요.”

마은하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다. 열두 해 전에 그녀는 보관고 설계 회의에 두 번 참석했고, 두 번째에 서명했다. 그 서명은 저장 방식에 대한 것이었고, 저장 대상이 학생이 될 거라는 문장은 그때 회의록에 없었다.

회의는 세 시간이었다. 그녀는 두 번 반대했다. 반대 기록은 회의록 부속서에 있고, 부속서는 공개되지 않는다. 서명은 본문에 있다.

그게 이 일의 구조였다. 반대는 안 보이는 데 있고 동의는 보이는 데 있다.

없었다는 건 사실이고,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그 얘기를 하면 학생들은 두 가지 중 하나를 한다. 그녀를 용서하거나, 조사를 그만둔다. 둘 다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는 걸 늦춘다.

그녀는 그렇게 정리해 뒀고, 정리한 채로 열두 해를 가르쳤다. 오늘 그 정리가 처음으로 얇게 들렸다.

“관찰하십시오. 그게 오늘 수업입니다.”

두 나침반을 나란히 놓았을 때 작동하는 쪽 바늘이 움직였다.

한 방향을 가리켰다. 창밖이 아니라 바닥이었다.

“아래를 가리켜요.” 가람이 말했다.

“지하입니다.” 서린이 말했다. “이 건물 지하는 폐쇄 구역입니다.”

“왜 폐쇄됐습니까.” 도윤이 물었다.

“구조 안전 등급 미달입니다.” 마은하는 그 답을 알고 있었고, 그게 서류상의 답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서류에 그렇게 적혀 있다는 뜻이시죠.”

마은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학생은 지난주에 값을 모르고 서명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서류와 사실을 구분해서 묻는다.

그때 정오 종이 울렸다.

마은하는 종을 세지 않는 사람이었다. 열두 해 내내 세지 않았다. 오늘 세어 봤다.

열둘.

가람이 고개를 들었다.

“한 번 더 울렸어요.”

마은하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나침반을 봤다.

열두 해 전 회의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저장은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그때 그녀는 그 말을 안심하는 데 썼다.

열세 번째 울림과 동시에 작동하는 바늘이 한 칸 더 돌았다. 깨진 나침반의 바늘도 처음으로 조금 떨렸다.

같은 시각이었다.

미래가 그 두 동작을 적었다. “교수님, 이거 지금 기록해도 됩니까?”

“기록하십시오.”

“공동 장부에 올리겠습니다. 서명 사진도요.”

마은하는 그 문장에서 멈췄다.

“사진을 찍었습니까.”

“판 뜯을 때 찍었습니다.” 미래가 단말을 들었다. “파손 책임이 교수님이라고 하셔서, 원본 상태를 남겨야 했습니다.”

마은하는 손을 뻗을 수 있었다. 교수 권한으로 학생 단말의 수업 자료를 회수하는 절차가 있다. 십오 분이면 된다.

“왜 저한테 먼저 말합니까.”

“교수님이 이 교실 분필이라고 인정하셨으니까요.” 미래가 단말을 내리지 않았다. “인정한 사람한테는 먼저 말하는 게 절차입니다.”

그건 계약의 언어였다. 마은하는 그 언어를 알아들었고, 자기가 지금 이해관계 당사자로 분류됐다는 것도 알았다.

“올리십시오.”

“회수하지 않으십니까?”

“회수할 수 있습니다.” 마은하가 말했다. “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 문장 뒤에 이유를 붙이지 않았다. 붙이면 면책이 된다.

“조건 하나 걸겠습니다.” 대신 그렇게 말했다. “공동 장부는 학생들 것입니다. 제 열람 권한은 넣지 마십시오.”

“교수님을 조사 대상으로 두라는 말씀입니까.” 서린이 물었다.

“그렇게 두십시오.”

“그건 교수님한테 불리합니다.” 미래가 말했다.

“불리합니다.” 마은하가 인정했다. “유리한 조건을 제가 정하면, 학생들이 나중에 이 조사를 못 믿습니다.”

가람이 그때 처음 말했다. “교수님, 지금 목소리 엇박 없었어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진심이라는 뜻이요. 근데 진심인 거랑 다 말한 거는 달라요.”

마은하는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할 데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반례 실험의 결과를 칠판에 적지 않았다. 적으면 정답처럼 보인다. 대신 두 나침반을 그대로 책상에 두고, 다음 수업 때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말했다.

“가져가도 됩니까?” 미래가 물었다.

“두십시오. 여기 있는 게 증거입니다.”

학생들이 나가고 교실에 혼자 남았을 때, 마은하는 분필을 하나 집었다.

칠판에 뭘 쓰려던 게 아니었다. 손에 쥐고 있었을 뿐이었다.

분필이 반으로 부러졌다. 부러뜨린 건 그녀였다.

이번 화가 재미있었나요?

좋아요와 평점은 언제든 변경할 수 있습니다.

독자 평점 아직 없음

댓글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