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혁은 회색실에 출석하라는 연락을 받고도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
증거분석관은 빠진 말을 듣는다 · 2026.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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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혁은 회색실에 출석하라는 연락을 받고도 바로 들어가지 않았다. 복도 끝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한참 보았다. 전날 공개된 정정문에는 그의 이름이 오판 피해자로 적혀 있었지만, 그 문장만으로 손상된 신뢰가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숨긴 이유를 말할 수 있었고, 말하지 않을 이유도 있었다.
서진이 문을 열었다.
“안 들어오실 겁니까?”
“들어가겠습니다. 다만 녹음은 하지 마십시오.”
서진은 휴대전화 녹음기를 꺼내 테이블 위에 보이게 놓았다. 그리고 전원을 끄고 화면을 돌려 보였다.
“기록은 제가 직접 적겠습니다. 검토할 권리는 송주혁 씨에게 있습니다.”
송주혁은 그제야 안으로 들어왔다. 민우는 이미 질문표를 펼쳐 놓았고, 여름은 출입기록과 테스트폰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서진은 그가 앉기 전에 먼저 물었다.
“어떤 부분을 말할 수 있습니까?”
“제가 새벽에 빈집 앞까지 갔다는 것.”
민우가 바로 몸을 세웠다. 송주혁은 그 반응을 보고도 말을 이어 갔다.
“배송을 대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회사 등록 명단에는 없는 사람입니다.”
“미등록 노동자입니까?”
“그 단어를 기록하지 마십시오.”
“그럼 이름도 기록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존재를 확인할 독립 단서는 필요합니다.” 서진이 말했다.
송주혁은 한동안 침묵했다. 그는 약품 배송을 맡았던 이주노동자에게 회사가 정식 계약을 약속했지만, 사고가 나면 책임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배송기기의 사용법을 알고 있었고, 송주혁은 새벽 배송 한 건을 대신 맡겼다. 빈집 앞까지 간 것은 그 사람을 차에서 내리게 하기 위해서였다.
“왜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민우가 물었다.
“그 사람이 잡혀갈까 봐서요.”
“그 거짓말 때문에 우리 팀은 당신을 범인으로 봤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문세림 씨는 죽었습니다.”
송주혁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눌렀다. “그래서 제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제 책임과 그 사람의 신분을 한꺼번에 넘길 수는 없습니다.”
서진은 그의 말을 두 줄로 나눠 적었다. 보호 목적의 거짓말과, 그 거짓말이 만든 수사 비용. 보호는 면죄부가 아니었고, 비용은 공개를 강제하는 이유도 아니었다.
송주혁은 새벽 네 시의 동선을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차량을 창고 뒤편에 두고, 운영실에서 테스트폰의 상태를 확인했다. 배송기기는 등록 배송기사 박현우가 사용했고, 송주혁은 빈집 앞까지 가서 약품 상자를 받으려 했다. 그러나 현관 앞에서 사진이 찍힌 것을 확인하지 못했고, 테스트폰의 잠금번호를 윤혜진에게 알려 준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럼 사진은 누가 찍었습니까?”
“모릅니다.”
“두 번째 취소 토큰은요?”
“제가 만들지 않았습니다.”
송주혁은 진술을 하면서도 보호 대상의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서진은 이름을 묻지 않고 독립 단서를 요구했다. 창고의 냉장 구역 온도 변화, 차량의 도어 개폐 기록, 배송기기의 블루투스 접속, 테스트폰의 사진 생성 시각. 네 가지는 사람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였다.
민우는 송주혁이 제출한 차량 기록을 복제했다. 03:58부터 04:06까지 차량 뒷문이 한 번 열렸고, 차량과 배송기기의 연결은 04:01에 끊겼다가 04:05에 돌아왔다. 송주혁이 차를 떠났다는 사실은 확인됐지만, 그가 어디에 갔는지는 차량 기록만으로 알 수 없었다.
“이 기록을 왜 처음부터 주지 않았습니까?”
“처음부터 주면, 같이 차에 탄 사람까지 찾으실 테니까요.”
“그 사람을 보호하려고요?”
“네.”
“그럼 그 사람이 창고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요?”
송주혁은 시선을 내렸다. “모릅니다. 제가 아는 건 배송을 대신했다는 것과, 회사가 그 사람에게 안전한 계약을 주지 않았다는 것뿐입니다.”
서진은 그 답을 믿음으로 처리하지 않았다. ‘보호 대상에 관한 주장, 독립 검증 필요’라고 적었다. 송주혁은 그 기록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적으세요. 제가 말한 이유가 사실이라는 것도 자료로 확인해야 합니다.”
이후 팀은 사람의 신원을 묻지 않고 물류 흐름을 복원했다. 냉장 약품의 포장 무게가 출고 때와 배송 완료 사진에서 달랐고, 창고 냉장 구역의 온도는 문세림이 발견되기 전 두 번 상승했다. 차량 뒷문이 열린 시각은 그중 첫 번째 상승과 겹쳤다. 테스트폰의 사진은 그 뒤에 생성됐다.
송주혁의 보호 대상이 현장에 있었을 가능성은 올라갔지만, 문세림의 사망과 연결되는 증거는 없었다. 송주혁은 자신이 배송을 대신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문세림을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가 그녀를 봤다면 말했을 겁니다.”
“지금까지는 많은 걸 말하지 않았죠.”
송주혁은 서진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제가 틀렸다는 겁니다. 말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고 해서, 말하지 않은 비용이 없어지지는 않으니까요.”
그 말은 회의실에 오래 남았다. 민우는 문세림의 사망을 확인한 보고서를 다시 열었다. 외상 시각은 배송 완료 사진과 정확히 겹치지 않았고, 약품 상자가 사라진 시각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보호 대상의 존재는 사람에 대한 부분 해답이었지만, 범행의 구조는 여전히 빈칸이었다.
오후에 송주혁은 아딜이라는 이름을 말하려다 멈췄다. 서진은 그 멈춤을 보고도 이름을 묻지 않았다.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그 사람이 스스로 진술을 원할 때 접근할 수 있는 보호 절차를 알려 주세요.”
“그 절차를 믿을 수 있습니까?”
“믿으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담당자, 권한, 보관 범위를 문서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서진은 보호기관과 노동 상담기관의 연락처를 적었다. 송주혁은 그 종이를 접지 않고 테이블 위에 두었다. 그는 신원을 넘기지 않는 조건으로 물류 기록을 추가 제공하기로 했다. 단, 접근 로그와 진술은 독립 검토자가 확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저녁에 송주혁의 진술 일부가 정정문에 추가됐다. 그는 빈집 앞까지 갔지만, 배송 완료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했다. 이 사실은 그를 무죄로 만들지 않았고, 사진 생성 경로를 다시 좁혔다. 송주혁이 보호한 사람이 누구인지 공개하지 않은 채, 차량 도어 기록과 테스트폰 일련번호만 사건표에 남았다.
민우가 말했다. “당신이 아딜을 보호하는 동안, 누군가 그 이름을 이용해 도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럼 독립 자료로 찾으십시오. 제 입에서 이름을 빼내어 해결하지 말고.”
서진은 그 말이 오만하게 들리는지 스스로 확인했다. 송주혁은 의심받는 사람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보호 대상의 선택권을 대신 행사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통제적이었고, 그 통제는 누군가에게 실제 위험을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위험 가능성이 곧 공개 권한은 아니었다.
밤이 되자 송주혁은 회사의 미등록 계약 기록을 보존 요청했다. 계약서 원본에는 이름이 없고, 근무 시간과 지급 방식만 남아 있었다. 그는 문서를 건네면서 말했다.
“이 자료를 보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호기관에 먼저 보내 주세요.”
서진은 문서를 봉인하고, 보호기관과 외부 검토자에게 동시에 해시만 전달했다. 이름이 없는 자료도 사람을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는 절차로 반영했다.
송주혁은 회의실을 나가기 전 서진에게 물었다.
“제가 거짓말한 이유를 이제 이해합니까?”
“일부는요. 이해한다고 해서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 대답이면 됩니다.”
서진은 그가 떠난 뒤 사건표에 문장을 적었다.
‘송주혁의 거짓말에는 보호 목적의 일부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보호 대상의 신원과 범행 사실은 분리해 검증한다. 차량·온도·토큰·사진의 물리 기록으로 핵심 구조를 세운다.’
사람의 이유가 드러났지만, 사건은 더 복잡해졌다. 보호받는 사람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도 누가 약품을 옮겼는지, 문세림은 어디에서 다쳤는지 확인해야 했다. 서진은 그 복잡함을 줄이지 않고 다음 보존 요청을 열었다. 다음 날 아침, 보호기관 담당자는 송주혁이 전달한 계약 기록을 검토했다. 이름은 없었지만 근무 시간, 지급 계좌의 일부, 창고 출입시각이 있었다. 담당자는 이 자료만으로 아딜의 신원을 확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본인이 안전하다고 판단할 때 연락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송주혁은 그 통로의 연락처를 받은 뒤에도 바로 아딜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전달 방식과 보관 기간을 확인했다. 서진은 그 느린 태도가 또 다른 통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호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오래 결정하면, 보호받는 사람은 선택할 시간을 잃습니다.”
송주혁은 그 말을 듣고 계약 기록의 봉인권한을 보호기관으로 넘겼다. 자신이 중간에서 모든 연락을 통제하지 않겠다는 선택이었다. 다만 아딜이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회색실이 찾지 않기로 했다.
민우는 냉장 구역의 온도 그래프를 확대했다. 차량 뒷문이 열린 시각과 창고 냉장 문이 열린 시각 사이에는 네 분의 간격이 있었다. 약품을 옮긴 사람이 있었다면, 배송 완료 사진을 찍은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 별도로 확인해야 했다. 송주혁의 차량 기록은 그 네 분을 설명했지만, 사진 생성 경로는 설명하지 못했다.
서진은 테스트폰의 손목 밴드 사진과 창고 CCTV의 흐릿한 팔목을 대조했다. 같은 색으로 보였지만 조명 차이가 컸다. 그녀는 ‘동일 밴드 가능성’이라고만 적고, 사람 이름을 넣지 않았다.
송주혁은 그 기록을 보며 말했다. “당신들은 이제 제가 말한 것보다 제가 말하지 않은 것을 더 오래 봅니다.”
“말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이유가 있다고 사실이 되는 건 아니고요.”
그는 대답 대신 보호기관이 보관한 계약 기록의 해시를 확인했다. 신뢰는 더 많은 정보를 넘기는 일이 아니라, 넘긴 정보가 어디에서 멈추는지 합의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날의 기록에는 이름 대신 보존번호가 남았다. 아직 말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사건의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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