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빠진 단어

증거분석관은 빠진 말을 듣는다 · 2026.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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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호는 렌치를 들고 관리실에 들어왔다.

정기 교체라고 적힌 작업지시는 사건이 난 뒤 출력돼 있었다. 종이의 잉크는 새로웠고, 서버 랙의 바퀴에는 아직 지하 바닥의 먼지가 묻어 있었다.

“장비를 옮기면 안 됩니다.” 민우가 출입문 앞을 막았다.

“안전점검 계약이 있습니다. 건물주 서명도 있고요.”

백상호가 내민 서류에는 건물주 법인 도장이 찍혀 있었다. 서류만 보면 그가 서버를 옮길 권한이 있었다. 서진은 도장을 보면서도 서버 랙 아래의 바퀴 간격을 먼저 봤다. 전날 찍은 압흔과 같은 폭이었다.

“계약서가 진짜인지와 지금 이 장비를 옮겨도 되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여름이 말했다.

“그럼 전원이 꺼집니다. 원격 백업도 끊깁니다.”

“전원은 유지합니다.” 민우가 현장 사진을 찍으며 말했다. “장치 일련번호를 봉인하고, 변경 금지 요청을 걸겠습니다.”

백상호는 렌치를 내려놓지 않았다.

“영장 없이 서버를 묶을 수 있습니까?”

“전체를 압수하지는 않습니다. 현재 상태를 바꾸지 말라는 요청입니다.”

“업체가 거부하면요?”

“거부 사실까지 기록합니다.”

민우는 장치 세 개의 일련번호를 읽었다. 서진은 각 번호 옆에 담당자를 적었다. 민우가 현장 상태를 촬영했고, 도현이 전원 표시를 확인했으며, 여름이 보존 범위를 건물주에게 다시 설명했다.

한경민은 관리실 안쪽에서 건물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처음에는 존댓말을 유지했지만, 두 번째 통화에서는 “지금 취소해 달라”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경민의 어깨가 내려가는 것을 서진은 보았다.

“건물주가 교체 동의를 철회했습니다.” 경민이 말했다. “다만 원격 유지보수 권한은 업체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백상호의 얼굴이 굳었다.

“원격 권한은 계약상 제 회사가 가집니다.”

“그래서 그 로그를 보존해야 합니다.” 여름이 말했다.

“원격 로그는 클라우드 사업자 소유입니다.”

“그럼 서버 전체가 아니라 사건 시각 전후의 접속·변경 이벤트만 얼리겠습니다.”

“고객번호를 모르면 범위를 정할 수 없습니다.”

서진은 폐지통에서 발견한 영수증 사진을 열었다. 파란 삼각형 아래 고객번호 네 자리가 남아 있었다. 영수증 전체를 공개하지 않고도 사건 계정을 좁힐 수 있는 숫자였다.

“장치 일련번호와 고객번호 일부, 05시 전후 24시간, 변경 이벤트 유형만 먼저 보존합시다.”

여름이 서진을 보았다.

“내용 열람은요?”

“보존과 열람을 분리합니다.”

“그렇게 하면 삭제 주체는 좁힐 수 있지만, 무엇을 삭제했는지는 나중으로 밀립니다.”

“지금 원문을 가져오면 다빈 씨가 보호한 사람의 정보까지 같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여름은 잠시 서진의 문장을 고치려다 멈췄다. 대신 그대로 인용했다.

“원문을 가져오면 보호 대상의 정보가 섞일 수 있다.”

서진은 여름이 자신의 말을 고치지 않은 것을 알아차렸다. 그 작은 멈춤이 신뢰의 표시처럼 느껴졌지만, 그녀는 그것을 감정란에 적지 않았다.

오후 1시 10분, 클라우드 사업자는 보존 요청을 접수했다. 내용은 동결하지 않고, 접속 시각·IP·고객번호·변경 이벤트만 보존한다는 조건이었다. 회색실이 모든 것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대신 당사자 정보가 섞인 원문을 무리하게 가져오지 않아도 삭제를 막을 수 있었다.

그때 사업자 담당자가 말했다.

“원격 로그 중 세션 만료 기록은 24시간 뒤 자동 삭제됩니다.”

“정확히 언제입니까?” 민우가 물었다.

“내일 정오입니다.”

민우가 시계를 보았다. 23시간도 남지 않았다.

백상호의 노트북이 짧게 울렸다. 화면 상단에 작은 알림이 떴다.

‘세션 자동삭제 23:58:41.’

서진은 알림을 보았지만, 화면을 촬영하지 않았다. 백상호의 노트북은 개인 장치였고, 그 알림만으로는 수사 기록에 넣을 수 없었다.

“누가 원격 세션을 열었습니까?”

“계정 소유자는 본사입니다.” 백상호가 말했다.

“사용자는요?”

“저는 모릅니다.”

그는 계정과 사용자를 분리해 말했다. 기술적으로 맞을 수 있었다.

서진은 한경민을 돌아보았다.

“영수증 원본을 제출할 수 있습니까?”

경민은 바로 거절하지 않았다.

“저는 그 종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제출 여부를 묻는 겁니다.”

“관리실 폐지통에서 나온 물건입니다. 주민 개인정보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럼 제삼 수탁기관에 맡길 수 있습니다. 소장님은 보관만 하고, 회색실은 봉투를 열람하지 않는 조건으로요.”

경민은 영수증 사진을 보았다. 파란 삼각형 아래 숫자가 자신의 관리실에서 나온 물건이라는 사실이 그를 다시 책임의 자리로 밀어 넣었다.

“원본은 제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발견 장소와 시간만 확인해 주십시오.”

“새벽 6시 8분, 서버 옆 폐지통입니다. 제가 직접 봤고, 손대지는 않았습니다.”

민우가 물었다.

“왜 그때 바로 말하지 않았습니까?”

경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름이 대신 묻지 않고 기다렸다.

“파란 표식이 업체와 연결될까 봐서요.” 경민이 말했다. “연결되면 건물의 불법 재하청도 드러납니다.”

“그 불법 재하청이 한재희의 죽음과 관련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모른다는 이유로도 숨겼습니다.”

서진은 그 문장을 그대로 적었다. 모르는 채 숨긴 것과 아는 채 숨긴 것은 달랐지만, 둘 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남길 수 있었다.

오후 3시, 관리실 폐기물 보관함에서 영수증 원본이 나왔다. 경민은 봉투를 닫은 채 제삼 수탁기관으로 보내는 데 동의했다. 서진은 접힌 방향과 열전사 자국을 촬영했고, 영수증에 손을 대지 않았다.

종이는 전날 밤 22시 48분에 출력된 것으로 보였다. 영수증 아래쪽의 압흔은 서버 랙 바닥 케이스의 모서리와 같은 간격을 가졌다. 같은 물건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영수증이 서버 장비 근처에 놓였을 가능성이 하나 더 생겼다는 뜻이었다.

파란 삼각형 아래에 흐릿한 숫자 ‘17’이 보였다. 서진은 숫자를 확대하지 않았다. 숫자가 오빠 사건의 17초와 연결된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지만, 그것은 자신의 기억이지 물리 증거가 아니었다.

“안 보시겠습니까?” 민우가 물었다.

“보존만 합니다. 해석은 다음 기록과 맞춰야 합니다.”

여름이 봉인표에 서명했고, 경민은 보관자로 이름을 적었다. 민우는 현장 상태 변경 금지를 확인했다.

저녁 6시, 서버 랙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원격 로그의 시한은 줄어들고 있었다. 회색실은 장비를 가져오지 못했고, 모든 고객 정보를 열람하지도 못했다.

대신 무엇을 보지 않을지 정한 뒤, 무엇이 사라지면 안 되는지를 고정했다.

서진은 파란 삼각형 영수증 봉투의 봉인 번호를 수첩에 적었다. 숫자 17은 아직 질문이었다. 이번에는 오빠의 결손보다, 서버 랙 아래에 남은 압흔이 먼저 그 질문을 붙잡고 있었다.

밤 8시가 되자 백상호는 다시 관리실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렌치 대신 노트북을 들고 있었다.

“원격 유지보수 세션을 닫으러 왔습니다.”

민우가 입구에 섰다.

“세션을 닫으면 로그가 사라집니까?”

“로그는 클라우드에 남습니다. 세션이 살아 있으면 자동 삭제 시각이 갱신될 수도 있습니다.”

여름이 노트북을 보지 않고 말했다.

“그 작업은 보존 요청과 충돌합니다. 어떤 변경이 발생하는지 먼저 제출해 주세요.”

“그럼 서버가 불안정해집니다.”

“불안정하다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백상호는 부품 번호를 말하려다 멈췄다. 그가 기술 설명으로 사람의 질문을 밀어내려 한다는 것을 서진은 알아차렸지만, 그 전략 자체가 범행의 증거는 아니었다.

“세션을 닫지 않고 상태만 확인할 수 있습니까?” 서진이 물었다.

“가능합니다.”

“작업 화면을 보지 않고, 시스템이 남기는 변경 이벤트만 확인할 수 있나요?”

백상호는 그녀를 보았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고칠 수 없습니다.”

“지금 고치는 게 아니라, 누가 무엇을 바꾸려 했는지 보존하는 중입니다.”

그는 결국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화면은 열지 않고, 연결 케이블만 봉인했다. 서진은 케이블 끝의 라벨을 사진으로 남겼다. 라벨에는 서버 랙 번호와 다른 장비번호가 적혀 있었다.

도현이 말했다.

“이 케이블은 원격 콘솔용이 아니라 현장 진단용입니다.”

“그럼 서버에 직접 접근할 수 있습니까?” 민우가 물었다.

“접근할 수는 있지만, 지금 누가 연결했는지는 이 케이블만으로 모릅니다.”

서진은 케이블의 접촉면에 회색 먼지와 파란 페인트 가루가 묻은 위치를 기록했다. 랙 아래 압흔과 연결될 수도 있었지만, 여러 현장을 다닌 장비일 수 있었다.

“이것도 수탁기관으로 보내겠습니다.”

한경민이 반대했다.

“장비를 계속 맡기면 관리실에 남는 게 없습니다.”

“남아야 하는 건 장비가 아니라 변경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여름이 말했다.

경민은 여름을 보았다.

“그 말은 이해하지만, 나중에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하면 누가 책임집니까?”

“범위를 줄인 결정의 책임은 제가 기록합니다.”

서진은 그 문장을 들으며 여름의 이름 옆에 ‘최소 범위 보존 결정’이라고 적었다. 여름은 기록을 보고 지우라고 하지 않았다.

오후 11시 58분, 클라우드 사업자에서 첫 보존 확인이 도착했다. 고객번호 일부와 장치 일련번호에 연결된 변경 이벤트가 동결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원문 내용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민우가 화면을 읽었다.

“삭제 세션이 하나 있습니다. 계정은 본사 소유, 접속 IP는 외주업체 망.”

“사용자는 확정됐습니까?”

“아닙니다.”

서진은 영수증 봉투의 압흔 사진과 로그의 장치번호를 나란히 놓았다. 두 개는 아직 한 사슬이 아니었다. 하지만 영수증은 사건 후 쓰레기가 아니라, 전날 밤 장비와 함께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는 물건으로 지위가 바뀌었다.

백상호가 문가에서 물었다.

“이제 제가 협조한 걸로 적습니까?”

“협조라는 평가는 적지 않습니다.”

“그럼 뭘 적습니까?”

“노트북을 가져왔고, 케이블 상태를 확인했고, 원격 세션 변경을 요청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한참 동안 서진을 보았다.

“사람은 기계보다 복잡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선택을 로그와 분리해 기록하는 겁니다.”

백상호는 대답하지 않고 노트북을 봉인했다. 나가기 전, 그는 서버 랙을 한 번 돌아보았다. 그 시선을 본 사람은 민우였지만, 누구도 그 시선의 의미를 사실처럼 적지 않았다.

자동 삭제 시한은 다음 날 정오였다. 서버는 그 자리에 있었고, 원격 로그 일부도 얼어 있었다. 그러나 제한 범위 밖 기록은 여전히 삭제될 수 있었다.

서진은 회색표에 새 질문을 적었다. 삭제된 세션의 계정이 아니라, 누가 삭제되기 전에 어떤 범위만 남기려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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