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사람 없는 현금표

회귀한 자금팀 대리는 망할 회사를 살리지 않는다 · 2026.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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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표에는 사람 이름이 없었다.

‘인건비 3억.’ ‘성과급 2억.’ ‘원재료 미지급.’

윤태경은 긴급 데스크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각 항목 앞의 체크를 전부 해제했다. 아직 누구에게도 돈을 주지 않았는데 회의실은 이미 그가 지급을 막았다고 소란스러웠다. 재무담당 임원은 성과급 줄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건 확정 보수입니다. 계약서에 적힌 돈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알면 왜 보류합니까?”

“계약서에 적힌 돈이 이번 주에 어떤 일을 멈추는지도 적어야 해서요.”

임원은 짧게 웃었다. “돈이 사람을 멈추죠. 그걸 이제 와서 설명합니까?”

“누가 멈추는지는 다릅니다.”

태경은 새 열을 만들었다. 미지급 시 중단 대상. 성과급 옆에는 임원 개인 수취, 다음 분기 성과평가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인건비 옆에는 공란이 남았다. 자료를 보낸 인사팀 직원은 열여덟 명이라고 적어 놓았지만, 그 숫자가 어느 라인을 돌리는지, 누가 안전교육을 받았는지, 오늘 출근할 의사가 있는지는 없었다.

“이름이 오기 전까지 결재는 못 합니다.” 태경이 말했다.

“대리님은 일을 모릅니다. 교대표를 받아도 사람이 급여일까지 버티는지 어떻게 압니까?”

“그래서 현장 사람이 적어야죠.”

회의실 문이 열렸다. 오지석이 두꺼운 교대표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종이 가장자리에는 기름 얼룩이 있었고, 이름 옆에는 연필선이 여러 번 지워져 있었다. 그는 숫자부터 보지 않았다. 비어 있는 인건비 칸을 가리켰다.

“이건 인건비가 아닙니다.”

“그럼 뭡니까?” 임원이 물었다.

“오늘 밤에 라인을 세울 사람들 이름이죠.”

지석은 한 장씩 넘겼다. 2번 라인은 스물두 명, 포장 라인은 다섯 명, 필수 납품 확인은 두 명. 합치면 스물아홉 명이었지만, 야간조 두 명은 연속 근무를 거부했다. 아픈 사람이 아니라, 어제도 밤을 새웠으니 오늘은 기계 앞에 서지 않겠다고 서명한 사람들이었다.

“본사 표에는 최소 열여덟 명이라고 돼 있습니다.” 태경이 말했다.

“그건 기계가 멈추기 직전 숫자입니다. 사람 안 다치고 돌리는 숫자는 스물두 명이에요.”

“생산량은?”

“줄어듭니다.”

임원이 팔짱을 꼈다. “그럼 고객 납기는 누가 책임집니까?”

지석은 태경을 보지 않고 대답했다. “못 지킬 납기를 적은 사람이요. 저는 오늘 사람 갈아 넣고 내일 사고 난 뒤에 책임질 생각 없습니다.”

그 말은 태경의 계획을 바로 고쳤다. 첫 생의 기억에는 이 라인이 이 시간까지 돌아갔다. 그러나 기억 속에서 돌아간 라인은 야간조가 쓰러진 다음의 숫자였다. 그 숫자를 지금의 답으로 가져오면, 과거를 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거절을 지우게 된다.

“스물두 명 기준으로 다시 계산합시다.” 태경이 말했다.

“돈이 더 듭니다.” 재무담당 임원이 말했다.

“그렇겠죠.”

“그럼 성과급도, 원재료도, 임금도 다 못 맞춥니다.”

“그래서 순서를 정하는 겁니다.”

지석은 교대표의 빈 야간조 칸을 펜 끝으로 눌렀다. “이 칸은 돈으로도 오늘 못 채웁니다. 대신 백 개를 약속한 만큼은 보낼 수 있어요. 더 쓰면 안전표부터 거짓말입니다.”

태경은 그 말을 현금표에 옮겼다. ‘생산량 감소, 필수 인원 22명, 야간 대체 불가.’ 숫자가 줄자 임금 잠금액은 오히려 늘었다. 적게 만들더라도, 만들 사람의 월급과 안전을 먼저 확보해야 했다.

오후 두 시, 긴급 데스크 결재석에는 세 장의 문서가 나란히 놓였다. 임원 성과급 보류서, 임금 링펜스 지정서, 필수 원재료 계정 잠금 요청서. 링펜스는 직원 월급으로 쓸 돈을 다른 빚이나 보수에 쓰지 못하게 묶는 일이다. 월급이 바로 입금되는 건 아니었다. 다만 다른 손이 먼저 가져갈 길을 막는 일이었다.

박혜린은 지정서의 금액을 읽고 말했다. “잠금액이 늘었습니다.”

“최소 인원이 늘었습니다.”

“그렇다고 현금이 늘지는 않아요.”

“압니다.”

그는 성과급 줄을 화면에 띄웠다. 개인보증 협조를 하겠다던 임원 두 명의 이름도 그 옆에 있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성과급을 막으면 저는 보증서에 사인 못 합니다. 제 가족 돈까지 걸라는 건데, 회사가 약속한 보수도 못 받는다면요.”

태경은 그 말을 쉽게 탐욕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개인보증은 회사가 무너지면 집으로도 들어오는 책임이었다. 다만 지금 그 조건을 받아들이면, 성과급은 임금보다 먼저 나가는 통로가 된다.

“사인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태경이 말했다.

임원의 얼굴이 굳었다.

“대신 성과급은 보류합니다. 임금과 필수 납품이 잠기기 전에는 어느 쪽도 먼저 집행하지 않습니다. 보증 협조는 다른 조건으로 기록하죠.”

“네가 그걸 결정해?”

태경은 지명서를 뒤집어 보였다. 계좌 열람, 지급 보류, 기록 의무. 실제 이체에는 법무와 재무의 칸이 남아 있었다.

“제가 혼자 지급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보류 사유는 제가 적습니다.”

혜린이 문장을 받았다. “그리고 이의가 있으면 지금 회의록에 남기세요. 구두로 나중에 바꾸는 건 안 됩니다.”

임원은 회의록에 ‘성과급 보류에 반대하며 개인보증 협조 재검토’라고 적었다. 반대는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누구의 조건인지가 남았다.

태경은 임금 계정과 필수 원재료 계정에 잠금 표시를 눌렀다. 시스템이 두 번 확인을 요구했다. 첫 번째에는 법무 사전검토, 두 번째에는 재무 이중 승인. 혜린은 원본 보존 조항 번호를 확인했고, 재무팀 직원은 계좌 목적 코드를 맞췄다.

잠금 완료.

노란 알림이 두 줄 떴다. ‘임금 용도 외 집행 제한.’ ‘필수 납품 외 집행 제한.’

직원들 돈은 아직 계좌에 들어가지 않았다. 원재료도 아직 트럭에 실리지 않았다. 하지만 성과급이나 가족회사 외상대금이 그 돈을 먼저 가져갈 수는 없게 됐다.

태경은 윤성정밀 전표를 현금표에서 지우지 않았다. 우선순위 아래로 내렸을 뿐이었다. 아버지 공장에는 오늘도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 사실이 표에서 사라지면, 나중에는 자신이 무엇을 밀어냈는지도 잊게 된다.

회의가 끝난 뒤 지석은 교대표를 챙기며 말했다.

“사람 이름 적으니까 계산이 더 나빠졌죠?”

“네.”

“그래도 그게 실제입니다.”

“알아요. 그래서 이름을 지우지 않겠습니다.”

지석은 대답 대신 야간조 빈칸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현장으로 돌아가서도 그 칸을 채울 사람을 설득하지 않을 것이다. 거부한 사람이 거부한 채로 남아야, 다음 교대가 안전해진다.

태경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윤서윤이었다.

추천서랑 돈을 같이 보내지 마.

태경은 화면을 오래 봤다. 누나의 학비 지원은 아직 송금하지 못했다. 임금과 납품을 잠근 뒤에는 개인 계좌에서 급히 빼 줄 현금도 없었다. 하지만 서윤의 문장은 돈이 늦어서 온 원망이 아니었다. 추천서와 돈을 한 봉투에 넣으면, 도움도 거절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먼저 현금표에 다음 항목을 추가했다. ‘개인 지원 요청: 회사 현금과 분리. 별도 확인.’

그 줄은 누구에게도 보내지지 않았다. 다만 오늘 잠근 돈이 누구의 선택을 대신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자기 화면에 남겨 두었다.

회의실을 나가려던 재무팀 직원이 잠금 알림을 다시 확인했다. “이제 임금은 바로 나갑니까?”

“아니요.” 태경이 말했다. “지급 대상, 계좌, 근무 확인이 맞아야 합니다.”

직원은 조금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이 태경을 붙잡았다. 임금 우선은 버튼 하나를 누르는 일이 아니었다. 버튼을 누르고도 아직 돈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 왜 더 확인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일이었다.

지석이 문턱에서 돌아섰다. “작업자들한테 뭐라고 말합니까? 돈 묶었다고 하면, 다 들어온 줄 압니다.”

“들어온다고 말하지 마세요. 다른 데로 못 빠지게 했다고만 말해요.”

“그 말을 믿겠습니까?”

“안 믿어도 됩니다. 내일 확인할 자료를 같이 보여 주세요.”

지석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약속보다 먼저 식판값과 교통비가 떨어진다. 서류상 목적 코드가 바뀌었다고 작업자들의 오늘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설명이 아니라 입금 시각일 것이다.

“오후 교대 전에 이름별 계좌 확인표를 받겠습니다.” 태경이 말했다. “없는 사람은 제외하지 말고, 왜 비었는지 적어 주세요. 급해서 빠진 이름이 있으면 나중에 더 큰 구멍이 됩니다.”

“그럼 표가 늦습니다.”

“늦은 이유도 남겨야 합니다.”

지석은 교대표를 다시 펼쳤다. 맨 뒤쪽에 작업자 한 명의 이름이 연필로 덧붙어 있었다. 배관 밸브를 볼 수 있는 사람인데, 지난달 임금이 늦어 다음 주까지만 일하겠다고 했다는 메모였다. 본사 인건비 합계에는 그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없으면 2번 라인의 냉각수 점검을 외주로 불러야 한다.

“이 사람도 돈 먼저 줘야 합니까?” 지석이 물었다.

태경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개인을 먼저 넣는 순간 표는 다시 부탁의 목록이 된다. 그렇다고 이름을 지우면 라인은 돌아가지 않는다.

“필수 작업인지, 계약상 임금인지,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지 세 칸으로 나눠 주세요. 세 칸을 채우면 같은 기준으로 올립니다.”

“사람 이름을 또 칸으로 나누는 거네요.”

“사람을 숫자로 지우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지석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연필을 들었다. 그래도 자기 이름은 가장 불편한 야간 점검 칸에 적었다. 태경은 그 줄을 보고, 이 선택이 누구의 선의에 기대면 안 된다는 생각을 더 분명히 했다. 지석이 밤을 서겠다고 해서 임금 표가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거절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그 거절의 비용을 보게 해야 한다.

혜린은 회의록 파일을 닫으며 말했다. “성과급 근거 파일의 전송 시각이 부속합의서 묶음과 가깝습니다.”

태경은 화면을 보았다. 같은 오후, 몇 분 차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자료가 한꺼번에 움직인 날, 누군가는 보수와 채권을 같은 방식으로 숨기려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추정으로 적지 마세요.” 그가 말했다.

“안 적었습니다.” 혜린은 빨간 표시만 남긴 화면을 돌려 보였다. “확인 시각만 남겼죠.”

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의 현금표도 그 정도면 충분했다. 누가 옳은지보다, 누구의 돈이 어디로 빠질 수 없는지를 먼저 남기는 것.

휴대전화에는 서윤의 메시지가 계속 떠 있었다. 그는 추천서 파일을 따로 열어 두었다. 돈과 묶지 않은 도움은, 거절당해도 상대의 길을 막지 않는다. 태경은 그 사실을 배우는 데 너무 오래 걸렸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답장 대신 확인 시각을 하나 더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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