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마사연이 책상 위에 놓은 서류는 서늘할 정도로 빳빳했다

멸문한 대사형은 문규부터 고친다 · 2026.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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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연이 책상 위에 놓은 서류는 서늘할 정도로 빳빳했다. 닥나무 껍질을 찧어 풀을 먹인 종이 위로 구곡 수문의 채권을 넘기는 조건이 검은 먹으로 단호하게 적혀 있었다. 회류문의 향후 십 년간 통행 수익 절반과 문주 인장의 사본. 제안을 수락하면 당장의 자금난은 해결된다. 하지만 문건에 도장을 찍는 순간 회류문의 행정권과 재정은 고스란히 상단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나는 왼손 엄지로 손바닥의 흉터를 꾹 눌렀다. 어제 수문턱을 올리며 강제로 힘을 돌릴 때 발생한 반진이 뼈마디를 타고 어깨까지 저릿하게 긁어내렸다. 손끝에 남은 신경의 마비가 붓을 잡는 감각을 둔하게 만들었다.

"차 대사형,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당장 일꾼들에게 줄 품삯이 없어 식량길까지 막히고, 분원 장로들마저 등을 돌리는 마당에. 이 종이 한 장이면 그 모든 비명 소리를 잠재울 수 있습니다."

마사연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여유롭게 웃었다. 그는 찻잔 속에서 일렁이는 찻물을 보며 덧붙였다.

"회류문의 기와가 내려앉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장부의 빈칸을 채우는 건 명분이 아니라 금전입니다. 서명하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나는 대답 대신 붓을 들어 장부를 펼쳤다. 장부에는 어제 일꾼들이 교대하며 밧줄을 당겼던 네 박자의 구령이 빽빽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마사연이 내민 서류의 인장란을 손가락 끝으로 툭 쳤다.

"상단의 지원을 받는 대가로 문파의 문규를 넘길 수는 없습니다. 일꾼들의 임금과 안전에 관한 결정권은 회류문의 마지막 자존심입니다. 이 서류에 찍힌 인장이 말라붙은 핏자국보다 더 끈적거린다는 걸, 마 상단주는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마사연은 내 거절이 예상 밖이라는 듯, 얇은 종이를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밖에서는 도겸이 철문관의 남규한과 마주 서 있었다. 남규한은 입구에 발을 들이기 전 바닥의 마감 상태를 훑으며 혀를 찼다. 도겸이 검손을 꽉 쥐고 앞으로 나섰다. 나는 도겸의 어깨를 잡아 제지했다.

"사제, 지금은 칼을 뽑을 때가 아닙니다. 수문 보호권은 우리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입찰에 부칠 겁니다. 누구든 노동자의 임금을 우선하고, 안전을 보장하는 곳이라면 그게 상단이든 철문관이든 상관없습니다."

도겸이 나를 돌아보았다. 남규한 역시 웃음을 터뜨리며 팔짱을 꼈다.

"공개 입찰이라니, 회류문이 제 손으로 밥그릇을 걷어차겠다는 소리로 들리는군. 차연호, 자네가 그 정도 결단력을 가졌을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입찰에 참여할 자격은 누가 정하지? 자네들처럼 곪아 터진 문파가 내건 조건 따위를 누가 믿겠나."

석무안이 일꾼들의 명부를 들고 걸어 나왔다.

"차 서기님, 공개 입찰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다만, 이번 입찰 조건에 임금 우선 변제와 안전 중단권을 명시하십시오. 우리 일꾼들의 몫이 뒤로 밀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무림인이 칼을 휘두를 때, 우리는 밧줄을 잡고 버텼습니다. 그 밧줄의 무게를 무시하는 자에게는 수문의 통행권을 단 한 치도 내어주지 않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사연이 두고 간 서류를 반으로 찢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것은 조작된 계약서라는 증거였다. 나는 그 종이를 주워 따로 소매에 챙겼다.

"오늘 정오, 구곡 수문 광장에서 입찰을 시작합니다. 철문관이든 상단이든, 일꾼들의 노동 조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곳에 수문 보호권을 넘기겠습니다. 조건은 명확합니다. 임금 체불 금지, 그리고 현장 안전 책임자의 거부권 행사입니다."

도겸이 나를 밀치고 앞으로 나왔다. 그는 철문관의 남규한을 향해 검 대신 수문 수리 도구인 굵은 밧줄을 들었다.

"남규한, 너희 철문관이 수문을 지킬 능력이 있는지 확인해 보자. 칼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적은 반진으로 수문턱을 1촌 더 올리는지 내기다. 진 쪽이 입찰에서 발을 빼는 거다. 겁나나?"

남규한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으나 거절하지 않았다. 밧줄이 팽팽해지는 순간, 나는 왼손의 통증을 억누르며 두 사람의 발끝을 주시했다. 석무안이 호각을 불었다.

"하나, 둘, 셋, 당겨!"

도겸이 구령에 맞춰 몸을 뒤로 젖혔다.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남규한은 반대 방향에서 밀려오는 물살의 저항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뚝, 하는 소리와 함께 남규한의 어깨가 뒤틀렸다. 결국 그는 밧줄을 놓치고 말았다.

"이게 무슨 짓인가, 도겸. 수문 수리는 무림인의 비무가 아니다. 일꾼들의 생계가 걸린 작업이다. 힘을 함부로 쓰지 마라."

내가 차갑게 말했다. 남규한은 어깨를 부여잡고 광장을 떠났다. 나는 주머니에서 영수증 사본을 꺼내 석무안에게 건넸다.

"이것을 기록고의 장부와 대조하십시오. 삭제된 반진 수치와 일꾼들의 품삯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사연이 남긴 흔적은 생각보다 얕습니다."

상류에서 둔탁한 진동이 울렸다. 수문턱이 물살을 버티지 못하고 삐걱거렸다. 안소빈이 달려와 다급하게 외쳤다.

"대사형, 수문의 밧줄이 터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서은설 장로님이 보낸 장부를 보니, 수문 보수 자재가 모두 불량품으로 대체되어 있었습니다! 이대로 두면 둑이 무너집니다!"

나는 즉시 광장으로 달려 나갔다. 흙탕물이 둑을 넘어 쏟아져 들어왔다.

"석무안, 인원들을 배치해라. 박자를 맞춰라. 도겸, 너는 수문턱의 중심을 잡고 힘을 분산시켜라. 인원 전체가 나누어 받아라! 밧줄을 놓치지 마!"

제자들은 나의 호령에 따라 밧줄을 잡았다. 나는 장부를 모든 제자들 앞에서 펼쳤다.

"이것이 우리가 지키려던 회류문의 권위다. 장부 한 줄에 일꾼들의 목숨과 우리 동문의 부상이 팔려 나갔다. 지금 이 수문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무공이 아니라, 이 장부의 거짓을 바로잡는 노동이다. 무공은 그저 이 무거운 밧줄을 당기기 위한 보조일 뿐이다!"

나는 왼손의 통증을 잊은 채 수문턱의 중심을 향해 뛰어올랐다. 광장 입구에서 문주 진무결이 집법제자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진무결은 흙탕물이 튀는 광장 한복판으로 걸어왔다.

"연호야, 너의 방식은 훌륭했다. 하지만 문파의 재건은 감상적인 노동이 아니라, 냉혹한 거래로 완성되는 법이다. 수문을 상단에 넘기기로 했다. 당장 밧줄을 놓아라."

"사부님, 이것이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는 문파의 재건입니까. 일꾼들의 땀방울을 상단의 채권과 맞바꾸는 것이, 회류문의 권위입니까? 저는 회류문의 제자로서 이 수문을 지키는 것이지, 상단의 노예가 되기 위해 검을 잡은 것이 아닙니다."

진무결은 대답 대신 품 안에서 문주 직권 징계 통지서를 던졌다. 나는 봉투를 뜯지도 않고 바닥에 떨어뜨렸다. 마사연이 나에게 다가왔다.

"차연호, 너는 승리했다고 믿었겠지만, 회류문의 장부는 이미 우리 손에 있다. 이제 나가라. 너의 그 노동자 놀음도 여기서 끝이다."

석무안이 일꾼들에게 나눠주려던 임금 지급 명부를 진무결의 발밑에 던졌다.

"우리는 회류문의 제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명부에 적힌 이름들은 모두 이곳 수문을 함께 고쳤던 사람들입니다. 대사형, 당신이 우리에게 약속한 박자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장부를 보지만, 우리는 물길을 봅니다."

석무안이 내민 것은 통행세의 진짜 내역서였다. 기록에는 내가 회귀하기 전, 멸문을 맞이했던 그날 밤의 기록이 적혀 있었다. 진무결은 장부를 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 뒷걸음질 쳤다.

"네놈이 감히!" 진무결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가 휘두른 소매 자락에 진흙이 튀었다. "이건 조작이다! 감히 문주의 권위를 이런 쓰레기 같은 종이 뭉치로 흔들려 하다니!"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한 걸음 다가갔다.

"이게 쓰레기라면, 지난 멸문의 밤에 사부님께서 태우지 못한 것은 무엇입니까? 연기 냄새가 아직도 이 장부 사이에 배어 있는데, 도대체 누구를 속이려 하십니까?"

석무안이 진무결의 앞을 가로막으며 차갑게 웃었다.

"문주님, 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 장부에 적힌 통행세의 흐름은 우리 일꾼들의 굳은살과 핏자국으로 검증되었습니다. 당신들이 펜 끝으로 농락한 그 숫자들이, 지금 우리 손에 쥐어진 밧줄의 무게보다 가볍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바닥에 떨어진 징계 통지서를 발로 밟아 뭉갰다.

"이 징계는 무효입니다. 노동의 가치를 모르는 자는 수문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으니까요."

나는 장부를 높이 들어 올렸다. 광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 장부를 보았다. 빗줄기가 굵어지며 광장의 먼지를 씻어내고 있었다.

"결정하십시오, 사부님. 회류문의 이름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그 안에 곪아 터진 빚을 갚을 것인지. 저는 오늘 이 수문을 지키기로 맹세했습니다. 회류문의 무공이 아니라, 이 밧줄을 잡은 사람들과 함께 말입니다."

나는 광장을 가로질러 빗속으로 걸어 나갔다. 도겸과 안소빈, 석무안이 내 뒤를 따랐다. 철문관의 남규한은 당황했으나 일꾼들의 벽 앞에 가로막혔다. 나는 빗줄기 속에서 왼손의 통증을 잊었다. 회류문의 무너져가는 기와 위로 빗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나는 밧줄을 움켜쥐었다. 거친 삼베가 손바닥의 흉터를 짓눌렀지만, 나는 고통을 즐기듯 입꼬리를 올렸다. 우리는 문파의 제자가 아니라, 무너진 수문을 다시 세우기 위해 모인 동료들이었다. 나는 빗속에서 외쳤다.

"박자를 맞춰라! 여기서 멈추면 우리 모두가 휩쓸린다! 셋, 넷! 다시 당겨!"

나의 외침에 제자들과 일꾼들이 일제히 밧줄을 당겼다.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수문턱이 완벽한 수평을 이루었다. 이때, 전수장로 임복진이 급하게 다가와 내 손에 낡은 서찰 하나를 쥐여주었다. 정산관 장로가 보낸, 중앙 오로계보원의 감사 통보서였다. 감사단이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사흘이었다. 나는 도겸을 보았다. 사흘 안에 수문의 보수를 끝내고, 모든 노동자의 임금을 정산해야 한다. 나는 빗속에서 서찰을 꽉 쥐었다. 우리는 구곡 수문의 빗물을 뚫고 새로운 문규를 적어 내려갈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임복진이 건네준 봉인된 감사 통보서의 붉은 칠을 손톱으로 긁어 뜯었다. 젖은 종이 너머로 검은 먹물이 번져 나갔다. 이제 회류문의 장부는 다시 쓰여야 했다. 우리들의 손으로,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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