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전수좌

멸문한 대사형은 문규부터 고친다 · 2026.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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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산 대전의 공기는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로 가득했다. 연호는 굳게 닫힌 문을 등지고 서서 서은설을 기다렸다. 감사 시한은 사흘이었고, 서은설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대전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보폭은 일정했고, 품 안에서 꺼낸 낡은 장부는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은설은 그것을 탁자에 내려놓는 대신 옆구리에 단단히 끼운 채, 빈 좌석 하나를 턱으로 가리켰다. 연호는 서늘한 시선으로 그 방석을 보았다. 본산의 위계질서를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전수좌였다.

“이 종이는 그 자리 값입니다. 본산의 보호 아래 굶어 죽는 것보다, 스스로 책임을 지고 전수권을 쥐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연호는 붓을 들어 먹을 갈았다. 왼손 엄지가 미세하게 떨렸다. 반진의 후유증으로 붓대를 쥘 때마다 관절 사이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는 억지로 힘을 빼고 획을 그었다. 열람, 복사, 좌석 심사. 한 줄을 적을 때마다 문파의 책임이 묵직하게 늘어났다.

“조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원본은 내놓지 않습니다. 여기서 열람만 하십시오.”

은설이 단호하게 내뱉었다. 연호는 붓을 멈추고 그녀의 눈을 보았다. 객석 뒤편에서 장로들이 웅성거렸다. 연호는 서명란을 비워둔 채 종이를 내밀었다. 즉시 승인할 수는 없었다. 문주의 허락과 전수장로들의 동의가 필요한 영역이었다. 하지만 그는 조건을 묵살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그 자리는 귀하의 것이 됩니다. 단, 분원 제자들의 명단과 반진 기록이 본산의 규정과 일치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미령이 다가와 장부를 건네받았다. 그녀는 익숙하게 책장을 넘기며 숫자를 읊었다. 정산일마다 소모된 약재비와 어린 제자들의 이름이 빼곡했다. 겸이 팔짱을 낀 채 삐딱하게 물었다.

“차 대사형, 이게 정말 필요한 겁니까? 분원의 일은 분원주가 알아서 하게 두는 게 관례 아닙니까? 왜 우리 문파의 내부 정치를 이리 복잡하게 만드느냐는 말입니다.”

겸의 목소리에는 날 선 불만이 섞여 있었다. 연호는 대답 대신 미령이 가리키는 페이지를 보았다. 약재 반출량은 본산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했다. 하지만 수령자의 이름이 문제였다. 본산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들이, 분원 장부의 약재 수령인란에 적혀 있었다.

“보십시오. 약재는 나갔지만, 이를 받은 아이들의 이름은 명부에 없습니다.”

미령이 냉정하게 말했다. 그녀는 아이의 이름 옆에 찍힌 작은 점 두 개를 짚었다. 이 표식은 소빈의 손끝 통증과 정산식의 피해 기록에서 보았던 것과 흡사했다. 기록 위조가 본산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방 거점인 분원까지 침투한 조직적인 행태였다. 연호는 왼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관절이 굳어지는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연호가 은설을 보며 물었다. 은설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그저 아이들이 아프다는 뜻입니다. 출처 없는 약재가 어디서 왔는지, 그 대가로 아이들이 무엇을 대신해야 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단지 그들이 버려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저녁이 되자 본산 장로가 은설의 숙소 앞을 가로막았다. 장로는 은설에게 충성 서약을 요구하며 장부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은설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두 손가락을 접어 보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본산의 명령입니까, 아니면 제자들의 생존입니까? 둘 중 하나를 택하십시오. 장부를 가져가시려거든, 먼저 이 빈 좌석에 앉을 자격부터 증명하십시오.”

장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감히 대사형의 허락도 없이 조건부 거래를 내건 은설을 비난하려 했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이 집중되자 쉽게 손을 뻗지 못했다. 연호는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은설은 조연이 아닌, 스스로 판을 흔드는 주체로 서 있었다.

겸이 연호의 옆으로 와 나지막이 속삭였다.

“당신이 키운 괴물이군요. 저렇게 대담할 줄은 몰랐습니다.”

“괴물이 아니라, 생존자입니다.”

연호는 짧게 답했다. 그는 다시 장부를 확인했다. 아이 이름 옆에 남겨진 작은 점 두 개. 그것은 문파가 아이들을 인질로 삼아 유지해 온 은밀한 계보 거래의 흔적이었다. 만약 본산의 기록고를 다시 열 수 있다면, 더 큰 진실이 드러날 터였다.

그 순간, 연호는 왼쪽 손목에 강한 통증을 느꼈다. 어제 무리하게 반진을 받아낸 대가였다. 그는 통증을 억누르며 다시 붓을 들었다. 이제는 은설이 제시한 조건을 공식 의제로 올릴 차례였다.

“내일 아침, 전수장로 회의를 소집하십시오. 분원의 좌석 권한과 약재비 출처에 대한 전면 재조사를 시작합니다.”

연호의 명령에 전수장로들이 당황한 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것은 규율서기로서의 권한을 넘어선, 문파의 전수권을 흔드는 행위였다. 겸은 비웃음을 흘리며 주먹마디를 꺾었다.

“결국 분란의 중심에 서기로 하셨군요. 좋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함께하겠습니다. 내 승리가 거짓이 아님을, 저 아이들의 증언을 통해 증명해 보이죠.”

겸의 말에는 도발이 섞여 있었지만, 그 눈빛만은 진지했다. 연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깊었다. 연호는 기록고 앞을 서성였다. 낮에 은설이 가져온 사본과 대조할 원본 장부가 저 안에 있었다. 연호는 열쇠 대신 자신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호흡을 고르고 벽면을 짚었다.

그때, 기록고 내부에서 슥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주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연호는 자세를 낮췄다. 발뒤꿈치에 무게를 싣고 바닥의 상태를 살폈다. 흙먼지가 약간 흩어져 있었다. 누군가 방금 전 침입했다는 증거였다. 연호는 조심스럽게 문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손끝에 걸리는 것은 차가운 쇠붙이가 아니라, 찢겨 나간 종이 조각이었다.

그는 조각을 집어 들었다. 장부의 일부였다. 불빛에 비추어 보니 분원 장부와 같은 필체로, 약재비 항목이 지워져 있었다. 그 옆에는 소금이 밴 흔적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 장부를 훔쳐내며 흘린 소금기 섞인 혈흔이었다.

연호는 굳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기록고의 봉인은 닫혀 있었다. 내부의 누군가가 장부를 빼돌리고 있었다. 그는 조각을 품에 넣고 다시 대전으로 향했다.

대전 입구에는 최율이 서 있었다. 그는 연호의 손에 든 종이 조각을 보더니,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사형, 문주님께서 사흘 감사권은 여기까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록고의 장부는 내일 아침,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폐기될 예정입니다.”

연호는 멈추지 않고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은설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연호가 가져온 종이 조각을 보자마자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둘 중 하나입니다. 지금 이 조각을 공개해 본산 전체를 뒤집거나, 아니면 이 조각을 미끼로 삼아 기록고 안의 범인을 잡거나.”

연호는 아무 말 없이 탁자 위에 종이 조각을 놓았다. 은설이 요구한 좌석이 그 옆에 있었다. 연호는 그 좌석에 앉아 있던 방석을 집어 들어 그녀에게 건넸다.

“범인을 잡는 쪽을 택하겠소. 당신의 분원 제자들, 그리고 소빈의 손끝. 그 모든 이유를 이 장부 조각 안에 다 담아내겠소.”

은설은 방석을 받아들지 않았다. 대신 연호의 왼손을 잡고, 자신의 찻잔을 들어 그 위에 놓았다.

“그럼, 이제 대사형의 왼손은 제 겁니다. 사흘 동안은 말이죠.”

그녀의 서늘한 농담에 연호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전 밖에서 수십 개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집법제자들이었다. 최율이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차연호, 당장 장부를 내놓으시오. 지금 즉시 문주님의 명령으로 당신의 권한을 박탈합니다!”

상황은 급변했다. 연호는 고립될 위기에 처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증이 느껴지는 왼손을 가슴팍에 붙이고, 최율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는 최율의 어깨 너머로, 어둠 속에서 나타난 의원 어르신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소빈의 손끝 통증을 멈출 수 있는 약재를 든 노인이었다. 하지만 그 약을 얻으려면, 지금 당장 최율에게 사과하고 감사권을 스스로 포기해야 했다.

연호의 시선이 소빈을 향했다. 그녀는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연호는 다시 왼손을 꽉 쥐었다.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최 장로, 이 장부 조각이 본산의 기록보다 먼저라는 사실을 증명할 기회를 주십시오. 그게 내가 이 자리에서 당신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예우입니다.”

연호의 단호한 거절에 대전 안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최율은 칼자루를 쥐었다. 그 순간, 서은설이 장부를 탁자에 거칠게 내리치며 일어섰다. 장부의 페이지가 펄럭이며 펼쳐졌다. 그곳에는 오늘 아침까지 기록되지 않았던, 새로운 제자의 이름과 함께 작은 점 두 개가 선명하게 찍혔다. 그것은 회류문이 숨겨온 가장 오래된 부채였다.

연호는 그 이름을 보았다. 기억 속에 있던, 그러나 사소한 오차로 인해 잊고 있었던 이름이었다. 그는 숨을 멈추고 그 이름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 아이가 왜 여기에 기록되어 있지?”

연호의 물음에 은설은 대답 대신 문밖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낡은 표식이 새겨진 짐 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본산의 깊은 지하에서 올라온 물건이었다. 짐 꾸러미 위에 놓인 문서에는, 회류문의 전수권을 감사 기한까지 제한하고 내일 해시까지 비공개 시정을 하라는 문주대리인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연호는 문서를 품에 넣었다. 소빈의 고통받는 숨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그는 미령을 바라보았다. 미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에는 연호가 아까 기록고에서 가져온 장부 조각이 들려 있었다.

연호는 대전의 문을 열고 나갔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눈앞에는 집법제자들이 횃불을 들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록을 지우려면, 나부터 베고 가십시오. 나는 회류문의 대사형이자, 이 문파의 마지막 규율서기로서 책임을 묻겠소.”

연호는 횃불 하나를 뺏어 들고 자신의 앞에 줄을 그었다.

“이 선을 넘는 자는, 나와 함께 반진의 값을 치르게 될 것이오.”

대전의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낡은 기록고의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그 안에서 어둠이 쏟아져 나왔다. 연호는 그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은설이 뒤를 따랐다.

“차 대사형, 이제 진짜 시작입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값을 계산할 시간이죠.”

연호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왼손을 꽉 쥐었다. 손바닥 안에서, 아까 품에 넣었던 장부 조각이 바스락거렸다. 그것은 내일 아침, 문파 전체를 뒤흔들 증거였다. 진무결이 한 칸 옆에 비스듬히 앉아 차가운 눈으로 연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소매를 펴며 연호의 다음 결정을 기다릴 뿐이었다. 낡은 회류문 헌장의 사본이 탁자 위에서 펄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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