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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가 아니라 용의자

내가 구한 사람들 때문에 미래가 틀렸다 · 2026.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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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가 아니라 용의자

증거 봉투 스티커가 붙는 소리는 산소 경보가 멈춘 뒤에도 귀에 남았다. 임도윤은 휴대전화를 투명 봉투에 넣고 봉인 번호를 소리 내어 읽었다. 손목에 채워진 수갑보다 그 번호가 더 차갑게 느껴졌다. 번호가 생기면 물건은 내 손을 떠나 사건의 일부가 된다.

"압수 시각 07:54. 장소 하늘병원 북측 출입구. 대상 한이겸 소지 휴대전화 1대, 수첩 1권, 사망자 명단 1매."

서진이 바로 끼어들었다. "수첩 전체 압수 반대합니다. 구조 현장 기록이 섞여 있어요. 사본 범위 먼저 분리하세요."

임도윤은 그녀를 보지 않고 봉투 입구를 접었다. "이의 기록합니다. 구조 관련 부분은 사본 작성 후 반환 여부 검토."

"검토가 아니라 반환 기준."

"기준도 기록합니다."

그는 화내지 않았다. 그래서 대화가 더 느렸다. 느린 절차는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동시에 나중에 거짓말을 덜 남긴다. 나는 그 점을 싫어하면서도 봤다.

임시 조사실은 병원 행정동의 빈 상담실이었다. 유리벽에는 감염 예방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쓰지 않은 손소독제가 세 개 있었다. 임도윤은 가장 먼저 창문 블라인드를 반쯤 내렸다. 완전히 닫지 않았다. 바깥 복도에서 장유라가 보일 정도였다. 도망을 막는 것보다 기록이 먼저인 사람의 배치였다.

"한이겸 씨는 06시 49분 명진역 사고 발생 전 장유라 구조대장의 사망 가능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럼 설명하십시오. 사고 전 통화, 명진역 진입, 병원 이동, 사망자 명단. 네 항목이 모두 사고 전입니다."

그는 테이블 위에 사진을 한 장씩 놓았다. 첫 사진은 명진역 CCTV였다. 내가 유라의 이동선을 막고 귀환 서버 증거를 포기하던 장면. 두 번째는 병원 후문. 세 번째는 접힌 명단. 네 번째는 내 통화 기록이었다. 이름과 시간은 내가 봐도 나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임도윤은 사진을 붙여 하나의 선으로 만들지 않았다. 각 사진 아래에 출처와 원본 위치를 따로 적었다. 명진역 CCTV는 역무실 임시 서버 사본, 병원 후문 영상은 행정동 보안실 백업, 명단은 내 수첩에서 나온 종이, 통화 기록은 통신사 회신 전 휴대전화 내부 로그. 네 가지는 같은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하나가 틀려도 나머지가 남는다.

"첫 번째 항목." 그가 명진역 사진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장유라 대장의 사망 추정 시각보다 11분 전, 한이겸 씨는 장 대장의 이동을 막았습니다. 이유."

"사고 모델을 봤습니다."

"두 번째 항목." 병원 후문 사진. "하늘병원 산소 사고 공개 전, 병원 후문으로 이동했습니다. 이유."

"병원 설비층에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세 번째 항목." 명단. "사망자 이름 일부가 사고 전 수첩에 있었습니다. 이유."

나는 숨을 골랐다. "제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기억 출처."

대답하지 못했다. 그 빈칸이 네 항목을 묶었다. 임도윤은 내가 침묵하는 시간을 적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한 줄 더 썼다. 침묵은 녹음에 남고, 질문은 문서에 남는다.

"보고서를 봤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 문장은 유도신문처럼 들렸지만, 실제로는 출구를 막는 방식이었다. 보고서를 봤다고 하면 현재 시점에서 공개되지 않은 문서 접근 혐의가 생긴다. 내부자를 대면 내부자 이름을 대야 하고, 대지 못하면 거짓말이 된다.

"그 말은 못 합니다."

"왜입니까."

"현재 공개 전 보고서니까요."

임도윤의 눈이 아주 조금 좁아졌다. "그 사실은 어떻게 압니까."

나는 다시 막혔다. 미래에서 공개된 보고서의 표지 날짜를 기억한다고 말하면 방금 전 답과 같은 구멍으로 떨어진다. 대답을 줄일수록 나는 더 수상해졌다. 그런데 더 말하면 더 큰 거짓말처럼 보였다.

"귀환 서버 로그를 확인하면 됩니다."

말하고 바로 후회했다. 로그는 없었다. 1화에서 나는 유라를 구하려고 서버 접속 장비를 버렸다. 그 선택은 사람 하나를 살렸고, 지금은 나를 증명할 물건 하나를 없앴다. 보상과 비용이 같은 손에서 나왔다.

임도윤이 물었다. "서버 위치."

"명진역 재난모델실 임시 접속 단말. 사고 때 손상됐습니다."

"백업."

"확인 불가."

"확인 불가가 아니라 없음에 가깝습니까."

나는 수갑 찬 손을 테이블 밑으로 내렸다. "없음에 가깝습니다."

"그 장비를 버린 이유."

"장유라를 살리려고요."

"구조와 증거 보존 중 구조를 택했다는 진술입니까."

"예."

"그 선택이 지금 본인에게 불리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임도윤은 그 말에 감정을 얹지 않았다. 종이 위에 `증거 포기 사유: 구조 우선`이라고 적었다. 그 문장은 나를 선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않았고, 범죄자로 확정하지도 않았다. 사람이 살았다는 결과와 증거가 사라졌다는 비용이 같은 줄에 묶였다. 그 줄이 내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판결문처럼 보였다.

"명진역 단말의 잔해는 회수됐습니까." 서진이 물었다.

임도윤이 기술요원에게 눈짓했다.

"화재와 침수로 보드 훼손. 저장매체 일부는 회수됐지만 파일 시스템 인식 불가입니다."

"복구 시도 기록은요."

"아직 1차."

서진이 바로 받아 적었다. "그럼 없음 확정이 아니라 복구 미완료죠."

임도윤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정정합니다. 현 단계에서 증명 불가."

작은 차이였다. 그러나 작은 차이가 사람을 잡아먹는 경우가 있다. 서진은 나를 변호하지 않았다. 문장을 고쳤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편들기가 아니라, 나중에 누가 봐도 바꿀 수 없는 표현이었다.

임도윤은 그 문장을 받아 적었다. 믿지 않는다는 표정도, 이겼다는 표정도 없었다.

"회귀라고 말할 생각입니까."

서진이 숨을 짧게 들이켰다. 장유라는 유리벽 너머에서 고개를 들었다. 임도윤은 내 얼굴을 보지 않고 서류를 넘겼다. 질문을 던져 반응을 본 것이 아니라, 가능한 답안 중 하나를 미리 놓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 말을 해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습니까."

"증명 안 되는 말이 현장을 더 위험하게 만들면 보류합니다."

"보류가 반복되면 은폐입니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장유라의 증언은 제한적이었다. 그녀는 내가 병원에서 산소를 복구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빨간 문 조건을 공개했고, 산소 경보가 멈췄고, 환자 이동도 기록됐다고 했다. 그러나 정보 출처를 믿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한이겸 씨가 사람을 살린 건 사실입니다." 유라가 말했다.

임도윤이 물었다. "그래서 사전 인지 혐의가 약해집니까."

"아니요."

그 한 단어가 상담실을 눌렀다. 유라는 나를 돕고 있었다. 동시에 나를 풀어 주지는 않았다.

"다만 체포와 증거 보존이 구조를 방해하면 안 됩니다. 그 조건은 지켜졌습니다."

"한이겸 씨가 위험 정보를 숨겼다고 봅니까."

유라는 내 쪽을 봤다. "숨겼습니다."

"그럼 왜 현장 접근을 허용했습니까."

"접근을 허용한 게 아닙니다. 조건을 붙였습니다."

"어떤 조건입니까."

유라는 손가락으로 하나씩 세었다. "첫째, 한이겸 씨가 말한 위험은 제가 현장에서 독립 확인합니다. 둘째, 구조 판단은 구조대가 합니다. 셋째, 정보 출처를 말하지 못하면 출처 불명으로 기록합니다. 넷째, 출처 불명이어도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실행안이면 검토합니다."

그녀는 나를 영웅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 더 나쁘게는, 나를 예언자로 만들 생각도 없었다. 실행안이 있으면 쓴다. 출처는 나중에 따진다. 그게 유라가 병원에서 나와 협조한 방식이었다.

임도윤이 물었다. "한이겸 씨가 같은 방식으로 거짓 정보를 줬다면."

"제가 막았을 겁니다."

"근거."

"빨간 문 조건도 처음에는 바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산소 밸브, 환자 이동, 배터리 잔량을 따로 확인했습니다. 확인 가능한 것만 실행했습니다."

유라의 대답은 나를 조금 구했지만, 동시에 내 말의 권한을 낮췄다. 나는 앞으로도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고, 설득에는 믿음보다 확인 절차가 먼저 붙을 것이다. 병원에서 배운 비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서진의 녹음기 불빛이 작게 깜박였다.

"왜 협조했습니까."

"숨긴 정보가 전부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사람을 살리는 동안에는 이유를 말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임도윤은 그 문장도 적었다. 나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 바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장들만 쌓였다. 실제 기록은 늘 그렇게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서진은 변호인처럼 말하지 않았다. "제 원음은 압수 대상이 아닙니다. 사본 제출 요청서가 있으면 원본 해시와 함께 냅니다. 편집본은 안 냅니다."

"협조 거부입니까."

"원본 보존입니다."

"원본을 보존하려면 봉인 절차가 필요합니다."

"봉인 절차가 편집 권한은 아니죠."

임도윤의 펜이 멈췄다. "맞습니다."

그는 압수품 목록을 다시 나눴다. 원본, 사본, 열람권자. 서진의 원음은 언론 취재물이라 바로 압수하지 않고, 해시값과 제출 시각만 먼저 기록했다. 장유라의 구조 무전은 구조본부 서버에 남아 있어 별도 보존 요청으로 돌렸다. 내 수첩은 현장 대응 페이지와 개인 메모 페이지를 분리 촬영했다.

"왜 이렇게 느리게 합니까." 민채가 문밖에서 중얼거렸다. 유리가 소리를 조금 먹었지만 들렸다.

임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스티커 한 장을 더 붙였다. 느린 절차는 답을 늦춘다. 하지만 누군가 나중에 불리한 부분만 골라 새 파일을 만들 때, 느린 절차는 가끔 사람을 살린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내 편에 가까운 것은 빠른 믿음보다 느린 봉인이었다.

그는 서진에게 별도 증거 봉투를 건넸다. 봉투 입구에는 아직 스티커가 없었다. 서진은 스티커부터 확인했다. 같은 방식으로 서로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테이블 위에 있었다. 이상하게 그 장면이 조금 덜 위험해 보였다.

조사실 안쪽 단말에서 압수품 목록이 떴다. 내 휴대전화는 비행기 모드로 전환된 뒤 봉인 상태였다. 화면은 꺼져 있었다. 임도윤은 사진을 찍기 전에 장갑을 바꿨다. 장갑 포장지가 바스락거렸다.

"압수품 상태 확인."

그가 봉투를 들어 올리는 순간, 꺼져 있던 화면이 켜졌다. 네트워크 표시가 없었다. 알림음도 없었다. 검은 화면 가운데 흰 문장 하나가 생겼다.

방 안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췄다. 임도윤은 휴대전화를 떨어뜨리지 않았고, 화면을 더 가까이 당기지도 않았다. 먼저 자신의 손 위치를 말로 남겼다.

"봉투 외부 접촉. 화면 직접 접촉 없음."

기술요원이 본능적으로 케이블을 잡으려 하자 그가 막았다.

"연결 전 사진."

카메라 셔터음이 세 번 났다. 봉인 스티커, 화면, 봉투 모서리. 서진은 녹음기를 더 가까이 밀었다. 장유라는 문 앞에서 사람들을 물렸다. 누군가 놀라서 한 발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봉인 훼손 논란이 생긴다. 유라는 그걸 설명하지 않고 몸으로 막았다.

"비행기 모드 확인은 언제 했습니까." 서진이 물었다.

"압수 직후 07시 55분. 화면 촬영본 있습니다."

"그 이후 네트워크 차단 주머니에 넣었습니까."

기술요원이 답했다. "넣었습니다. 단말 신호 차폐 확인했습니다."

"지금도 차폐 상태입니까."

"봉투가 차폐 주머니 안에 있습니다. 화면은 투명창으로 보입니다."

서진은 질문을 멈췄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의 빈틈을 먼저 막고 있었다. 설명되지 않는 장면일수록 사람이 빠뜨린 구멍부터 남는다. 나도 그걸 원해야 했다. 내 문장이 뜬 순간, 가장 쉬운 길은 모두가 놀라는 쪽이었다. 가장 필요한 길은 아무도 쉽게 믿지 않는 쪽이었다.

사망자는 분기를 만들지 않는다.

내 손이 테이블 모서리를 눌렀다. 그 문장은 원래 시간선 마지막 통제실에서 내가 혼자 쓴 문장이었다. 피가 묻은 펜촉이 종이를 찢었고, 귀환 코어가 식어 가던 바닥에서 나는 그 문장을 지우지 못했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었다. 아직 이 시간선에서는 쓴 적도 없었다.

임도윤은 화면을 바로 만지지 않았다. 먼저 봉투 외부 사진을 찍고, 봉인 스티커 훼손 여부를 확인했다.

"발신 기록."

기술요원이 단말을 연결했다. "없습니다. 네트워크 연결도 없습니다."

서진이 녹음기를 책상 가까이 밀었다. "방금 보셨죠. 외부 발신 없다고 말한 거."

임도윤이 짧게 답했다. "기록됐습니다."

장유라는 내 얼굴을 보지 않고 화면만 봤다. 그녀는 나를 믿지 않았지만, 지금 화면을 나 혼자 만들었다고도 보지 않았다. 그래도 나를 풀어 주는 증거로 삼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더 큰 의심의 문이 열렸다.

임도윤이 말했다. "한이겸 씨."

"예."

"이 문장을 알고 있었습니까."

나는 거짓말할 수 있는 문장을 찾았다. 없었다.

"예."

"어디서 봤습니까."

나는 봉인된 휴대전화 화면을 봤다. 내 문장이 내 것이 아닌 방식으로 떠 있었다.

"제가 아직 쓰지 않은 곳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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