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의 작은 화로
파산 공작령의 아이를 난로에서 꺼냈습니다 · 2026. 3. 24.
리번의 가장 값비싼 은 촛대는 왕실 경매에 가지 않았다. 열두 개로 나눌 작업 가운데 첫 네 받침만 손잡이 달린 작은 화로가 되었다. 그중 하나는 병동 수프 냄비 아래에서 타고 있었다. 노아는 수프를 두 숟갈 먹고 물었다. “두 번째 집 표는요?”
그 질문을 듣기 열 시간 전, 촛대는 아직 연회장 벽에 매달려 있었다.
사람 키보다 높은 은 가지마다 공작가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겨울 무도회가 열리면 촛불 백 개를 받치던 물건이었다. 지금 연회장 바닥에는 긁어모은 재와 식은 배관 물만 남았다. 카시안이 끈 난로는 밤새 금속 우는 소리를 냈다.
세레나는 촛대 아래 놓인 경매 목록을 접었다.
“녹이는 데 얼마나 걸리죠?”
대장장이가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밤새 병동 화로 받침을 고친 사람의 눈이었다.
“용광로 올리는 데 반나절. 은에 섞인 납을 빼려면 더 걸립니다. 급히 하면 연기가 안 좋고요.”
“오늘 필요한 건 은화가 아니라 불을 담을 그릇입니다.”
“통째로 녹일 필요 없습니다.”
연회장 문가에 서 있던 마리 벨이 앞치마의 물기를 닦았다. 세레나는 전날 병동에서 붕대 삶는 법을 가르치던 리사와 닮은 손부터 보았다. 손톱 사이에 검댕이 끼고 손목은 부어 있었다.
“받침을 떼고 가지를 자르면 열반사판으로 쓸 수 있어요. 대신 손잡이는 새로 달아야 합니다. 뜨거운 걸 하인 치마로 들라는 소리는 하지 마시고.”
카시안이 경매 목록을 집었다.
“분해하면 담보 가치는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경매 상단은 닷새 뒤에 옵니다.” 세레나가 말했다.
“그때 석탄을 살 자금이 된다.”
“오늘 밤 병동 불은 누가 삽니까?”
카시안의 입이 닫혔다. 마리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촛대 가지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저거 한 개면 작은 화로 셋 받칩니다. 열두 개 만들겠다고 밤새우면 대장장이부터 눕고요. 오늘 넷, 내일 쉬고 넷. 나머지는 모레.”
대장장이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 넷도 혼자는 못 합니다.”
“혼자 하라고 한 사람 없어요.” 마리가 말했다. “대신 아무 손이나 붙이지도 마세요. 망치질 모르는 사람 붙이면 손 하나 줄어듭니다.”
세레나는 작업을 세 칸으로 나눴다. 촛대 분해는 대장장이와 견습 한 명. 손잡이 목재는 수리조에서 남는 자투리를 쓰되 별도 담당. 완성품 운반은 연료 교대를 마친 병사 둘. 각 칸 끝에는 중단 시각과 다음 담당을 적었다.
“네 개가 완성되면 멈춥니다.”
카시안이 물었다.
“방벽이 더 떨어져도?”
“대장장이 손이 떨리면 다섯 번째는 불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사고 원인이 됩니다.”
“손실을 감수하겠다는 말이군.”
“어느 손실을 감수하는지 적겠다는 말입니다.”
대장장이는 경매용 봉인을 떼기 전 자기 휴식 시각부터 적었다. 마리는 그 아래 품삯을 적었다. 비상 작업이라는 이유로 숫자를 비우지 않았다.
“공작가 물건을 공작가 사람이 옮기면 명분은 남습니다.” 카시안이 말했다.
마리가 웃지도 않고 받았다.
“그 명분이 손 두 개 더 만들어 줍니까?”
카시안은 대답 대신 가장 아래 달린 은 받침의 나사를 풀었다. 장갑 낀 손으로는 작은 나사가 잘 잡히지 않았다. 그는 세 번 미끄러지고 나서야 대장장이에게 공구를 넘겼다.
“내가 할 일은?”
“완성품을 주방으로 옮기세요. 뜨거워진 뒤 말고 지금.”
세레나는 그 짧은 문답을 기록하지 않았다. 대신 카시안의 이름을 운반 칸 첫 줄에 썼다. 말보다 다음 사람이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중요했다.
연회장 문장이 새겨진 받침은 분해되면서도 문장 자체는 남았다. 대장장이는 금속을 녹이지 않고 가장자리를 접어 숯이 튀지 않을 판으로 만들었다. 견습은 손잡이 구멍을 두 번 잘못 뚫었다. 첫 판은 기울었고 두 번째는 손잡이가 헐거웠다.
카시안이 세 번째 판을 기다리며 물었다.
“불량 둘은 버리나?”
“하나는 부품으로, 하나는 식힌 재받이로 씁니다.”
실패한 물건도 용도가 바뀌었다. 사람을 실패로 버리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정오 전에 네 개가 완성됐다. 대장장이는 다섯 번째 촛대 앞에서 망치를 내려놓았다. 마리가 작업대 위 숯가루를 손가락으로 긁어 그의 손 떨림을 확인했다.
세레나는 남은 여덟 개를 완성품으로 세지 않았다. 벽에 작업표를 붙여 다섯째부터 여덟째는 대장장이가 하루 쉰 뒤, 아홉째부터 열두째는 견습이 첫 네 개를 수리 없이 하루 운용한 결과를 확인한 뒤 시작하도록 적었다. 금속이 갈라지거나 손잡이가 풀리면 뒤 작업은 멈추는 조건도 붙였다.
카시안은 담보 목록의 촛대 수량 옆에 ‘분해 진행 중’이라고 썼다. 완성되지 않은 화로까지 성공으로 기록하면 경매 가치도, 병동이 실제 쓸 수 있는 수량도 모두 거짓이 됐다.
“나머지 여덟 개가 끝나기 전에 상단이 오면?” 그가 물었다.
“완성된 네 개와 남은 부품을 따로 평가받죠.”
“값이 더 떨어질 겁니다.”
“그 손실도 오늘 네 개로 데운 방 옆에 씁니다.”
마리는 작업표 아래에 대장장이의 다음 근무 시각과 견습의 점검 담당을 적었다. 누구도 ‘열두 개 제작’이라는 말로 오늘 밤 여덟 개의 노동을 미리 가져가지 못했다.
“끝.”
“하나만 더 하면 식당까지-”
“내일 손이 있으면 내일 하나 더 합니다.”
그녀는 공구함 열쇠를 자기 허리에 찼다. 쉬라고 주장하면서 가장 중요한 열쇠를 놓지는 않았다. 세레나는 그 모순도 보았다. 오늘 해결할 일은 아니었지만 기억해 둘 일이었다.
첫 화로는 병동 수프 냄비 아래로 갔다. 두 번째는 공동 식당 가운데, 세 번째는 젖은 장갑과 붕대를 말리는 벽 쪽에 놓였다. 네 번째는 예비로 식혀 두었다. 카시안은 공작가 문장이 붙은 받침을 두 팔로 들고 주방 문턱을 넘었다.
“거꾸로예요.” 주방 아이가 말했다.
카시안이 받침을 돌려 들었다.
“문장은 위로 와야 해요.”
“불은 아래인데?”
“그러니까 공작님이 불을 받치는 거죠.”
아이의 말에 몇 사람이 웃었다. 카시안도 입꼬리를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러나 받침을 내려놓은 뒤에는 웃음보다 먼저 운반 교대 종료 시각을 적었다.
마리는 수프 솥 앞에서 인원을 셌다. 환자 스물셋, 공동실에서 온 아이 일곱, 노인 열하나, 조리 인력 네 명. 귀족용 접시는 쓰지 않았다. 크기가 다른 그릇은 한 국자 양이 달라 싸움이 났다. 같은 깊이의 나무 그릇을 모으고, 모자란 사람은 두 번째 줄에 이름을 올렸다.
“한 번에 다 주면 솥 바닥부터 탄다.”
“물이 더 있습니다.” 세레나가 말했다.
“물은 수프가 아니죠. 콩과 뿌리채소가 남은 만큼만 사람을 부르세요.”
세레나는 배식 인원을 줄이자는 뜻인지 물었다.
“아뇨. 줄을 둘로 나누자는 겁니다. 먼저 먹는 사람, 화로 옆에서 기다리는 사람. 기다린 시간도 교대에 넣고요.”
식당은 시장처럼 시끄러워졌다. 누군가는 귀족 은 받침을 손으로 만졌고, 누군가는 자기 집 장작을 가져왔으니 먼저 달라고 했다. 마리는 가져온 장작 무게와 받을 수프 양을 바꾸지 않았다.
“수프는 장작값이 아니라 오늘 한 끼입니다. 장작 품삯은 장부에서 따로 받으세요.”
한 그릇이 경제를 고치지는 않았다. 다만 장작을 가져온 사람과 가져오지 못한 사람을 같은 줄에 세웠다. 그 차이를 갚는 방식은 내일 장부에서 싸워야 했다.
노아는 저녁이 되어서야 식당 문가에 나타났다. 의원이 담요를 둘렀고 세레나는 걸을지 의자에 앉을지 묻었다.
“침대에서 먹을래요.”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자 노아는 한 걸음 물러났다.
“여기서 먹으면 다 봐요.”
마리가 곧바로 수프를 작은 냄비에 옮겼다.
“그럼 방으로 갑니다. 그릇 돌려주는 사람 이름만 정해요.”
노아는 자기가 돌려주겠다고 했다. 세레나는 내일 몸이 괜찮으면 직접, 아니면 문밖에 내놓는 것으로 정했다. 감사하다는 말은 요구하지 않았다.
임시 침실에는 연통의 미지근한 열이 남아 있었다. 난로석처럼 등이 뜨겁지도, 손끝이 얼지도 않았다. 노아는 침대에 앉아 수프를 한 숟갈 먹었다. 콩 껍질을 오래 씹었다. 두 번째 숟갈 뒤에는 그릇을 내려놓았다.
의원이 더 먹으라고 했다.
“남겨도 돼요.” 세레나가 말했다.
“배고프면 밤에 다시 데울 수 있습니까?” 노아가 물었다.
카시안이 예비 화로를 가져오겠다고 했지만 노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다른 방 거잖아요.”
세레나는 수프 냄비의 잔열을 쓰고, 식으면 차갑게 먹거나 아침까지 기다리는 선택지를 설명했다. 노아는 지금 반을 먹고 반을 남기기로 했다.
“두 번째 집 표는요?”
세레나는 접어 온 기록지를 펼쳤다. 성 안 노동자 숙소는 기준선 위였다. 베른의 집은 아직 덧문 수리 중이었고 야간 기록 칸 하나가 비어 있었다.
“누가 비었어요?”
“자원자를 기다리는 칸이에요.”
“그럼 아직 시작 안 한 거네요.”
“맞아요.”
카시안은 방벽 수치가 조금 올랐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노아가 물은 것은 방벽이 아니라 빈 이름이었다.
“내일 제가 베른 씨 집을 볼래요.”
“의원이 허락하면.” 카시안이 말했다.
노아의 입술이 굳었다.
세레나가 고쳤다.
“몸 상태와 이동 방법을 같이 확인한 뒤 당신이 결정해요. 중간에 돌아올 수도 있고요.”
노아는 기록지 빈칸 위에 손가락을 놓았다. 동의하지도, 거절하지도 않았다.
잠들기 전 세레나는 수프 그릇을 탁자에 덮어 두었다. 카시안은 창문 걸쇠를 확인하되 문은 잠그지 않았다. 의원은 야간 체온 확인 시각을 적고 나갔다.
노아는 이불 속에서 발을 조금씩 폈다. 난로석에서는 발목 고리가 당겨 무릎을 굽혀야 했다. 여기서는 발끝이 침대 끝에 닿지 않았다.
“표는 여기 두세요.”
세레나는 빈 야간 칸이 보이는 쪽으로 종이를 놓았다.
노아는 그 빈칸을 손가락으로 한 번 누른 뒤 눈을 감았다. 두 집의 밤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 밤, 난로가 아닌 침대에서 잠드는 아이의 이름만큼은 비어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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