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의 편지에는 약과 담요 목록이 먼저 적혀 있었다
파산 공작령의 아이를 난로에서 꺼냈습니다 · 2026.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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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의 편지에는 약과 담요 목록이 먼저 적혀 있었다. 마지막 줄에는 ‘보호 공백’이라는 말이 세 번 반복됐다. 카시안은 편지를 접어 숨기려 했다. 노아가 먼저 물었다. “그 공백 안에는 제가 들어가요?”
열한째 날 오전, 가족 식탁 위에는 봉랍이 깨진 편지와 열지 않은 약 상자 세 개가 놓였다.
발신인은 옥타비아 리번. 노아의 전 보호자이자 카시안과 에다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북부 약재상에서 구한 해열제, 손끝 감각을 확인할 바늘, 양모 담요 열 장, 영양 분말을 보냈다. 목록에는 각 물건의 수량과 사용법이 적혀 있었다.
편지 첫 장은 다정했다. 노아의 열이 내렸는지, 손목 자국은 덧나지 않았는지, 밤에 혼자 깨지는 않는지 물었다. ‘나의 작은 불씨’라는 애칭이 두 번 나왔다.
두 번째 장부터 문장이 달라졌다.
정당한 보호자의 장기 부재. 영지 해산 절차. 집중 화로지기 중단 뒤 발생한 보호 공백. 같은 말이 조항 번호 옆에 세 번 반복됐다. 공백이 계속되면 작위 후견 심사와 국가 보호 체계 검토를 요청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카시안은 두 번째 장을 접었다.
“이건 협박입니다. 태웁니다.”
에다가 약 상자 봉인을 살폈다.
“약은 필요합니다.”
“약을 받으면 저 여자의 조건을 받은 셈이 된다.”
“상자에 후견 동의서가 붙어 있습니까?”
“편지와 같이 왔다.”
“같이 왔다고 같은 선택은 아니죠.”
에다의 목소리는 공손할수록 날카로웠다.
“카시안 리번 섭정님. 노아의 열이 오르면 당신이 편지를 태운 사실로 약을 대신할 겁니까?”
카시안의 턱이 굳었다. 세레나는 약 상자, 편지, 빈 수령서를 서로 떨어뜨려 놓았다.
“세 가지로 나눕니다. 물자 수령. 후견 주장에 대한 답변. 원문 보존.”
“받는 순간 증거로 씁니다.” 카시안이 말했다.
“그래서 조건 없이 보내진 구호 물자인지 약재상 송장을 확인합니다. 수령서에는 물자만 적고 후견 동의 문구가 있으면 지웁니다. 옥타비아 씨에게는 별도 확인서를 보내죠.”
“그 사이 약이 필요하면요?” 에다가 물었다.
“현재 의원이 성분·봉인·용량을 확인한 뒤 기존 치료와 충돌하지 않는 것만 사용합니다.”
노아는 편지 첫 장의 애칭을 손가락으로 가렸다.
“태우면 뭐라고 썼는지 없어져요?”
“없어집니다.” 세레나가 말했다.
“그럼 태우지 마세요.”
카시안이 노아를 보았다.
“네가 읽을 필요 없다.”
“제 얘기잖아요.”
“너를 데려가겠다는 말이다.”
노아의 손이 멈췄다.
세레나는 카시안을 제지했다.
“확정된 이동 명령은 아닙니다.”
“결국 그걸 하겠다는 거요.”
“위험과 확정 사실을 나눠 말해야 합니다.”
에다는 약 상자 수량표를 읽고 있었다. 손은 떨리지 않았지만 같은 줄을 두 번 읽었다.
“이 해열제는 여기 의원이 지난주 요청한 종류예요. 받아야 합니다. 대신 편지 답변에 제 이름을 보호자로 넣지 마세요.”
카시안이 말했다.
“가족 중 성인이—”
“저는 열여섯이고 학교 지원을 준비합니다. 또 자동 보호자 칸에 넣지 마세요.”
에다는 자기 입장을 두 줄로 적었다. 약 수령 찬성. 후견 동의 반대. 노아 일상 보호자 지정 거절.
카시안은 약 수령 반대, 원문 보존 반대, 후견 주장 반대라고 썼다. 세레나는 물자 조건 확인 뒤 일부 수령, 원문 봉인 보존, 후견 답변 보류라고 적었다.
노아 앞에는 빈칸이 남았다.
“제가 뭘 결정해요?”
“편지 원문을 볼지, 설명을 누구에게 들을지, 옥타비아 씨 애칭을 기록에 그대로 둘지 고를 수 있어요. 법적 답변은 확인 뒤 다시 묻겠습니다.”
노아는 ‘작은 불씨’에 선을 그었다.
“기록에는 노아라고 써요.”
그는 보호 공백 세 곳 아래에 물음표를 하나씩 그렸다.
약 상자는 의원에게 갔고 편지는 증거 상자에 들어갔다. 두 열쇠 중 하나는 공개판, 하나는 세레나가 아니라 주민 증인인 베른에게 맡겼다.
정오에 약재상 송장이 왔다. 대금은 옥타비아가 이미 지불했고 수령 조건에는 후견 문구가 없었다. 의원은 해열제 한 종류와 담요를 사용할 수 있다고 확인했다. 감각 바늘과 영양 분말은 성분 확인 전 봉인했다.
약 상자를 여는 자리에는 에다와 의원, 린이 증인으로 앉았다.
첫 담요는 노아 방으로 가지 않았다. 병동에서 가장 얇은 담요를 쓰던 요렌에게 갔다. 옥타비아가 노아를 위해 보냈다는 목록과 실제 배분이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카시안이 물었다.
“보낸 목적과 다르게 쓰면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에다가 담요 수령표를 내밀었다.
“노아가 열 장을 다 씁니까?”
노아가 먼저 답했다.
“두 장이면 돼요. 한 장은 지금 거랑 바꾸고, 한 장은 빨 때 써요.”
“나머지는 병동과 공동실에 배분해도 될까요?” 세레나가 물었다.
“옥타비아 고모가 다시 가져가요?”
“조건 없는 물자라면 가져갈 권리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배분 내역을 답장에 씁니다.”
노아는 담요 두 장을 직접 골랐다. 가장 두꺼운 것을 차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부 양보하지도 않았다. 자기 침대에 필요한 두 장을 먼저 빼고 나머지 여덟 장의 표에 병동·공동 수면실이라고 적었다.
해열제 병에는 노아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의원은 기존 약과 성분이 겹치지 않는지 대조했고, 첫 용량을 바로 먹이지 않았다. 열이 다시 오를 때 사용할 기준과 중단 반응을 써서 노아에게 읽었다.
“이 약 먹으면 기억 없어져요?”
“확인된 성분으로는 아닙니다. 어지럼과 속쓰림은 있을 수 있어요.”
“그럼 어지러우면 두 번.”
노아가 탁자를 두드렸다. 의원은 중단 신호를 약 기록에도 옮겼다.
감각 바늘 상자 하나에서는 봉인 끈 색이 송장과 달랐다. 린이 먼저 지적했다. 세레나는 상자를 열지 않고 약재상에 재확인표를 보냈다. 에다는 약이 급하다고 했지만 바늘은 치료 필수품이 아니라 검사 도구였으므로 기다리는 데 동의했다.
“받자고 한 사람이니까 더 빨리 열자고 할 줄 알았습니까?” 에다가 물었다.
“아니요.” 세레나가 답했다. “약을 받자는 것과 모든 상자를 믿자는 것도 다른 선택이죠.”
물자를 받았다고 후견권을 받은 것으로 쓰지 않는 수령서가 새로 만들어졌다. 에다가 문장을 검토하되 서명자는 되지 않았다. 서기는 약 상자 번호와 봉인 상태만 적었다.
오후 설명 자리에는 작은 나무집 세 개와 사람 모양 말 세 개가 놓였다. 집 하나는 리번 저택, 하나는 친족 집, 하나는 이름 없는 국가 보호 장소를 뜻했다. 세레나는 세 번째 집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정확한 시설과 권한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호 공백은 뭐예요?” 노아가 다시 물었다.
“아이를 법적으로 돌볼 수 있는 어른이 없거나, 국가가 그 어른들이 돌볼 수 없다고 판단할 때 다른 보호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 지금 어른이 없어요?”
“있습니다. 카시안 경이 섭정이고, 저는 응급 보호와 생활 감사 권한을 갖고 있어요. 다만 영지 해산 명령과 이전 후견 중단 때문에 누군가 공백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주장하면 바로 데려가요?”
“모릅니다.”
카시안이 의자를 밀었다.
“그런 대답을 아이에게 왜 합니까?”
“모르는 걸 괜찮다고 말하면 나중에 더 무섭습니다.” 노아가 말했다.
카시안은 말을 잃었다.
세레나는 확인된 사실을 흰 종이, 위험 가능성을 붉은 종이, 아직 모르는 것을 빈 종이에 적었다.
흰 종이. 지금 당장 이동 명령은 없다. 약 수령은 후견 동의와 분리했다. 편지 원문은 보존됐다.
붉은 종이. 옥타비아는 조항 번호를 들어 후견 심사를 요청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왕실이 실제로 어떻게 해석할지는 확인 전이다.
빈 종이. 누가 공백을 판단하는지. 노아 의견이 어느 단계에서 필요한지. 국가 보호 장소가 어디인지. 이동을 거부하거나 재심할 절차가 있는지.
에다가 조항 번호를 베껴 썼다.
“왕실 작위보호령 제18조 4항. 하지만 이 사본만으로 현행인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세레나는 번호를 보는 순간 손을 멈췄다. 문장 순서는 6화의 표준 감사 서식과 닮아 있었다. ‘승인되지 않은 생활 보조를 제외한다’는 문구 옆에 붙던 하위 조항 체계였다. 그녀는 닮았다는 사실만 적고 의미를 연결하지 않았다.
노아가 물었다.
“옥타비아 고모는 약을 주고 저를 데려가려는 거예요?”
카시안은 그렇다고 답하려 했다. 에다는 아니라고도 말하지 못했다.
세레나는 편지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사실로 보입니다. 후견 권한을 원한다는 것도 편지에 있습니다. 두 마음이 같이 있을 수 있어요. 어느 쪽도 당신이 따라야 할 이유는 아닙니다.”
“고맙다고 해야 해요?”
“물자를 받았다는 확인은 합니다. 감사나 애칭이나 만남은 당신이 고릅니다.”
노아는 세 번째 집 말을 뒤집어 빈 바닥을 보이게 했다.
“저 사람이 아닌 사람한테 설명 듣고 싶어요.”
“누구를 원하죠?”
“카시안 삼촌도 아니고 옥타비아 고모도 아니고, 세레나 감사관님도 아닌 사람.”
세레나는 순간 대답하지 못했다. 자기 설명도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독립 설명자를 요청하겠습니다. 왕실 아동법 담당이 아니라 이 사건 결정권이 없는 법률가로.”
“그 사람도 모르면요?”
“모른다고 적게 하죠.”
에다가 독립이라는 말 옆에 조건을 붙였다.
“옥타비아 씨에게 돈을 받지 않을 것. 왕실 이송 결정을 맡지 않을 것. 카시안 섭정의 부하가 아닐 것.”
노아가 하나를 더 말했다.
“저한테 말한 걸 어른들한테 먼저 고치지 않을 것.”
세레나는 마지막 조건을 그대로 적었다. 설명자는 같은 내용을 노아에게 직접 말하고, 어른이 대신 답을 정리하지 않아야 했다. 노아가 원하면 에다나 마라를 곁에 둘 수 있고, 중간에 두 번 두드리면 설명을 멈추게 했다.
카시안이 낮게 말했다.
“모르는 외부인을 아이 앞에 들이는 것도 위험합니다.”
“그래서 노아가 사람과 장소를 고릅니다.”
“저는 문 열린 식당에서 들을래요.” 노아가 말했다. “누가 들어오는지 보이게.”
그 선택도 설명 요청서에 들어갔다.
카시안은 국가 시설 이야기를 더 하지 말자고 했지만, 노아는 빈 종이를 가져갔다. 세 개 집 사이에 붙이고 ‘확인 전’이라고 썼다.
편지 답장은 그날 보내지 않았다. 약과 담요 수령 확인만 약재상에 보냈다. 옥타비아에게는 원문 보존·후견 동의 보류·독립 설명자 요청 사실을 알릴 초안만 만들었다.
노아는 자기 방으로 돌아갈 때 편지 첫 장을 가져가지 않았다. 대신 애칭을 지운 사본과 빈 종이만 들었다. 방 안쪽 낮은 고리에는 둘째 열쇠가 있었고, 지도 위 국가 보호 장소에는 아직 이름 대신 ‘확인 전’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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