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00시 07분의 관리자

24시간마다 살인범이 바뀐다 · 2026.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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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시 07분의 관리자

16:05, 홍상욱은 처음으로 회의실 문을 닫으라고 명령했다.

그는 부탁처럼 말하지 않았다. “닫읍시다”도 아니었다. “문 닫아.” 주어가 없었고 존댓말도 없었다. 보안팀원은 강태준을 보았다. 강태준은 고개를 젓지 않았다. 대신 장부에 한 줄을 썼다.

`16:05 홍상욱, 회의실 문 폐쇄 지시.`

홍상욱은 그 글씨를 보고서야 말을 고쳤다.

“회의 보안을 위해 닫아 달라는 뜻입니다.”

“수정 발언 기록.”

강태준이 말했다.

문은 열려 있었다. 그 작은 승부에서 홍상욱은 졌다. 그러나 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 했다. 그는 원장이라는 직책을 다시 입었다. 어깨를 펴고, 손을 탁자 위에 올렸다. 손이 빈 것을 보여 주는 자세였다. 손이 비어 있다고 명령도 빈 것은 아니다.

고유라는 R-3 위임표 복구본을 띄웠다.

“R-3는 한 번 쓰고 끝나는 토큰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상시 위임이에요. 원장 직무에 딸린 세 번째 원격 보정 슬롯. 평소에는 재난 안내, 중앙 방송 지연, 보정실 자동 경보 수정에 씁니다.”

홍상욱이 바로 받았다.

“그러니 악성 명령 전용이 아닙니다.”

“맞아요.”

고유라가 말했다.

홍상욱의 눈이 아주 잠깐 움직였다. 예상보다 쉬운 동의였을 것이다. 그러나 고유라는 다음 줄을 열었다.

“그래서 더 나쁩니다. 일상 승인 용도로 만든 걸 살인 시간에 썼다는 뜻이라서요.”

그 말은 기술 설명이 아니었다. 권한의 위치를 바꿨다. 위험한 것은 특별한 흉기가 아니라 모두가 지나가던 문이었다.

이주완은 팔짱을 풀었다.

“법적으로는 의도와 사용 범위를 나눠야 합니다.”

“그래서 나눕니다.”

강태준이 답했다.

그는 보드에 두 줄을 썼다.

`토큰 성격: 상시 위임 / 재난 운영.`

`00:07 사용: 예약 보정 / 실행 대상 세부는 확인 전.`

홍상욱은 두 번째 줄을 보며 말했다.

“사람을 직접 해치는 버튼이 아닙니다. 보정 안내를 예약한 겁니다.”

고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R-3는 현장을 직접 움직이는 버튼이 아니에요. 예약된 보정 안내를 남기고, 그 뒤 어느 절차가 실제 위험으로 이어졌는지는 아직 확인 전입니다.”

“그럼 살인 명령이 아니군요.”

홍상욱의 목소리가 조금 빨라졌다.

윤해원이 그때 웃지 않고 말했다.

“사람이 있는 구역의 안내 시각을 바꾸면, 현장 결과가 바뀝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조용함을 분위기로 쓰지 않았다. 누구의 손이 어디 있는지 봤다. 홍상욱의 오른손은 펜을 잡았다. 윤해원의 손은 물컵을 잡지 않았다. 강태준의 펜은 멈추지 않았다.

“윤 부원장님은 그 결과를 어떻게 알았습니까.”

홍상욱이 물었다.

처음으로 그가 방어 대신 공격을 선택했다.

윤해원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조건을 붙일 사람은 질문의 모양을 먼저 본다.

“2019년에 비슷한 지연이 있었습니다.”

“비슷한?”

문라희가 짧게 물었다.

“동일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윤해원이 답했다.

둘은 서로를 오래 보지 않았다. 오래 보면 다른 이야기가 열린다. 지금은 R-3만 다룰 차례였다.

16:40, 고유라는 예약 보정 목록을 열었다.

목록에는 00:07 명령이 하나만 있지 않았다. 23:40 사전 점검, 23:55 안내 지연 준비, 00:07 구역 보정 실행, 00:08 삭제 예약. 네 줄이었다. 누군가 00:07에 버튼을 눌러 모든 것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 전에 줄을 세워 놓았다.

“예약을 만들 수 있는 사람.”

강태준이 물었다.

“R-3 상시 위임 접근자. 원소유 홍상욱. 대리 계정군. 그리고 예약 승인은 회의실 2번 단말에서 된 흔적이 있습니다.”

“실행 취소는?”

“취소 메뉴는 있습니다. 그런데 조건 칸이 비어 있어요.”

그 말이 내 목을 눌렀다. Q-13 거래 파형의 무음이 시작된 시각이 떠올랐다. 나는 손가락을 접었다. 강태준은 봤지만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도 기록이었다. 아직 순서가 아니었다.

윤해원이 물었다.

“조건이 비었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누가 어떤 키로 취소할 수 있는지 이 화면만으로는 안 보인다는 뜻입니다.”

고유라는 정무겸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다른 현장 조치로 넘어가면 책임이 다시 넓어진다. 오늘은 R-3가 할 수 있는 것과 아직 모르는 것을 나누는 단계였다. 빈칸도 증거였다. 지금은.

홍상욱이 말했다.

“보셨습니까. 전능한 명령이 아닙니다.”

“전능하지 않아서 추적 가능합니다.”

내가 말했다.

그는 나를 봤다.

“서이현 씨는 늘 기록이 사람을 대신한다고 믿는군요.”

그 말은 나를 찔렀다. 맞는 말에 가까워서였다. 그러나 맞는 말이 질문을 지우지는 않는다.

“이번엔 사람이 기록 뒤에 숨는 걸 보고 있습니다.”

강태준은 내 문장도 적었다. 나는 잠깐 후회했다. 수사는 종종 말한 사람도 증거로 만든다.

17:10, 윤해원은 자기 봉투 설계 칸을 스스로 앞으로 당겼다.

“제 봉투는 R-3를 직접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R-3가 실행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강태준이 물었다.

윤해원은 물컵을 보았다. 마시지 않았다.

“가능성을 알았습니다.”

홍상욱이 바로 웃었다. 웃음은 길지 않았다.

“가능성이라니요. 방금 사람 있는 구역의 환기 안내가 지연될 것을 아셨다고 했습니까.”

“아니요.”

윤해원의 목소리는 낮았다.

“R-3가 제 계획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쓰일 가능성을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뭘 했습니까.”

“봉투 순서를 바꿨습니다.”

그 말은 방 안의 의자를 움직이지 않았지만, 모두의 자세를 바꿨다. 피해자가 자기 방어를 위해 정보를 움직였다. 그것은 살인 명령이 아니었다. 그러나 깨끗한 선택도 아니었다.

“누구를 향해 바꿨습니까.”

내가 물었다.

윤해원은 나를 보았다.

“당신이 R-3보다 먼저 제 2019 서명에 닿게 하려고 했습니다.”

“왜.”

“홍 원장이 원격 명령을 쓸 경우, 당신이 저를 피해자로만 보면 안 되니까요.”

홍상욱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쳤다. 소리가 작지 않았다.

“그건 자작극입니다.”

강태준이 바로 말했다.

“손 떼십시오.”

홍상욱은 손을 뗐다. 그 손바닥 자리에 물기가 남았다. 컵에서 옮은 물이었다. 노을이 있었다면 그 위치도 적었을 것이다. 나는 대신 적었다.

윤해원은 홍상욱을 보지 않았다.

“자작극이면 제가 죽지 않아야 합니다.”

“당신은 늘 죽음도 협상 카드로 쓰는 사람입니다.”

홍상욱의 말에는 주어가 있었다. 드물었다. 그만큼 방어가 무너진 것이다.

윤해원은 이번에도 바로 부정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그래서 제 책임 칸을 만들라고 한 겁니다. 하지만 R-3를 예약한 사람과 제 봉투 설계는 같은 칸이 아닙니다.”

그 문장은 우리 장부와 맞았다. 같지 않다는 말은 면죄가 아니라 분리였다.

17:45, 고유라는 00:08 삭제 예약을 열었다.

삭제 예약은 완전하지 않았다. 실사용자 이름을 지우고, 대리 세션을 마스킹하고, 원소유자만 남기는 형태였다. 원소유자 홍상욱. 발급 대리. 실행 예약. 삭제 예약. 이 네 줄이 한 번에 움직였다.

“누가 이렇게 설계했습니까.”

강태준이 물었다.

고유라는 손을 멈췄다.

“R-3에는 원래 재난 때 사람이 자리에 없어도 안내가 나가게 하는 기능이 있어요. 동시에 원소유자와 대리 실행자를 나누는 구조도 남습니다. 그런데 삭제 예약은 운영 기본값이 아닙니다. 따로 켠 겁니다.”

“켠 사람.”

“아직 안 보입니다.”

안 보인다는 말이 이번에는 실패가 아니었다. 홍상욱을 전능한 흑막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빈칸이었다. 원장 권한은 컸지만 모든 버튼은 그의 손에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권한 설계를 승인한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이주완은 그 빈칸을 보고 말했다.

“원소유자와 대리 실행자가 나뉘면 책임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계약서가 길어집니다.”

“계약서가 길면 죄도 작아집니까.”

고유라가 물었다.

“아니요. 증명할 문장이 많아집니다.”

그는 늘 감정을 비용으로 바꿨다. 이번에는 그 습관이 쓸모 있었다. 홍상욱의 이름을 한 줄로 크게 쓰면 빠르다. 원소유, 대리 발급, 예약, 삭제 예약, 취소 조건 미확정까지 나누면 느리다. 느린 만큼 빠져나갈 문장도 하나씩 닫힌다.

17:52, 고유라는 취소 절차를 검증용 사본에서 열었다.

취소 버튼은 있었지만 곧바로 누를 수 없었다. 필요한 조건 칸 세 개 중 두 개가 비어 있었다. 하나는 예약 발급 계정, 하나는 별도 확인 키, 마지막 하나는 실행 전 상태 표시였다. 고유라는 빈칸을 채우지 않았다. 채우면 검증이 아니라 추정이 된다.

“그럼 00:07 전에도 멈출 방법이 있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가능성은 있어요. 하지만 이 화면만으로는 누가, 어느 시각까지, 어떤 키로 취소할 수 있었는지 확정 못 합니다.”

홍상욱이 바로 말했다.

“그렇다면 취소하지 않은 책임도 아직 물을 수 없군요.”

“아직 확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강태준이 답했다.

“지우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고유라는 취소 화면을 캡처하지 않았다. 화면 캡처는 쉽게 조작된다. 대신 검증용 사본의 입력 로그와 결과 해시를 남겼다.

“R-3가 전능하지 않다는 것까지 증거예요.”

그가 말했다.

“전능하지 않으면 죄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가능한 행동의 경계가 생겨요. 아직 그 경계를 다 못 그렸을 뿐이고요.”

윤해원은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눈을 감았다가 떴다.

홍상욱이 물었다.

“그 경계가 있다는 걸 당신은 알고 있었습니까.”

윤해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은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하지만 충분했다. 강태준은 그 침묵도 적었다. `윤해원, R-3 취소 가능성 질문에 즉답 없음.`

18:00, 우리는 보드의 둘째 줄을 고쳤다.

`명령: R-3 상시 위임 토큰 / 홍상욱 원소유 / 대리 발급 / 예약 보정 / 삭제 예약 별도 / 취소 조건 미확정.`

줄이 길어졌다. 긴 줄은 보기 싫다. 그러나 짧게 쓰면 누군가 빠져나간다.

윤해원은 그 줄을 보고 말했다.

“명령은 실행될 겁니다.”

강태준이 펜을 멈췄다.

“앞으로의 일을 말합니까, 이미 일어난 일을 말합니까.”

윤해원은 대답하기 전에 나를 봤다. 그 눈에 부탁은 없었다. 조건이 있었다.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같은 입력을 반복하면 앞으로도 일어날 일입니다.”

“그 사실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습니까.”

윤해원은 물컵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첫 번째 사망 전부터, 가능성은 알고 있었습니다.”

가능성. 또 그 단어였다. 가능성은 책임을 흐리는 데도 쓰이고, 조기 단정을 막는 데도 쓰인다. 어느 쪽인지는 다음 질문이 결정한다.

홍상욱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보안팀원이 막지 않았다. 강태준의 말이 먼저 막았다.

“앉으십시오. 이제 윤해원 씨의 예측 경로를 묻겠습니다.”

홍상욱은 앉았다. 명령을 내리던 사람이 명령을 들었다.

그는 앉자마자 다른 명령을 꺼냈다.

“R-3 관련 단말은 지금부터 원장실 보안 절차로 봉인합니다.”

강태준은 고개를 들었다.

“봉인 주체.”

“기관장입니다.”

“수사 대상자가 자기 이름이 있는 증거를 봉인할 수는 없습니다.”

홍상욱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대신 더 낮췄다.

“기관 보안을 지켜야 합니다.”

윤해원이 말했다.

“기관 보안이라는 말로 제 산소가 늦었습니다.”

그 문장은 거칠지 않았다. 그래서 더 직접적이었다. 홍상욱은 윤해원을 보지 않았다. 방어적 명령은 다시 장부에 남았다. `18:06 홍상욱, R-3 단말 원장실 봉인 지시. 강태준 거부.` 권력이 손을 더럽히지 않는 방식은 명령이 아니라 절차처럼 생겼다.

나는 장부의 오른쪽 빈칸에 새 줄을 만들었다.

`윤해원: R-3 실행 가능성 사전 인지. 경로 확인 필요.`

두 번째 손은 유력해졌다. 하지만 손은 하나가 아니었다. 명령은 홍상욱의 이름 아래 있었고, 대리 서명으로 태어났고, 예약으로 움직였고, 삭제 예약으로 자신을 가렸다. 그리고 윤해원은 그것이 실행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고유라는 둘째 줄 옆에 작은 별표를 붙였다. `취소 조건 미확정.` 그 별표는 아직 누구에게도 죄명을 주지 않았다. 다만 모두가 나중에 그 빈칸을 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별표를 오래 보지 않았다. 오래 보면 내 줄이 먼저 열린다. 그래도 지우지 않았다.

그 사실은 그를 범인으로 만들지 않았다. 피해자로만 두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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