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계약 심판관은 왕관을 거부한다

5지키겠다는 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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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겠다는 초안

혼인계약 심판관은 왕관을 거부한다 · 2026. 5. 12.

테오른은 초안 첫 줄에 ‘내가 에이라 벨렌을 지키겠다’고 썼다.

에이라는 그 문장부터 지웠다.

공개 협약 작성실의 시계에는 여섯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 안에 협약을 발효시키지 못하면 합병 혼인 조약의 정지 사유는 북부와 에이라가 따로 싸우는 사건으로 갈라진다. 황실은 원본 보존과 닐로의 증언을 별건으로 밀어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서두르다 ‘보호’라는 이름의 새 종속을 만들 수는 없었다.

“문제가 있습니까?” 테오른이 물었다.

“지키는 사람에게 모든 판단권이 있고, 지켜지는 사람에게 해지권이 없습니다.”

“위험이 발생하면 내가 병력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 병력이 저를 가두는 위험이면요?”

테오른은 반박하려다 멈췄다. 어제 닐로에게 북부 숙소를 권한 것이 바로 같은 문장이었다. 안전했고, 빠르고, 당사자가 고르지 않은 답이었다.

에이라는 ‘보호 의무’와 ‘협조 의무’에 각각 선을 그었다. “의무의 이름을 행동으로 바꾸죠. 무엇을 막을 수 있고, 막은 사람이 무엇을 내야 하는지.”

전날 접수한 합의표가 탁자에 펼쳐졌다. 군사 대안은 열두 시간, 계약 대안은 하루 안에 인력·비용·시각을 갖춘다. 오늘 두 사람은 그 기준을 다시 토론하지 않고 실패 칸부터 채웠다. 테오른이 관문 봉쇄·징발·병력 이동의 대안을 못 내면 세습 거부권 인장을 삼십 일간 시민 보관함에 맡긴다. 에이라가 계약 정지·담보 동결의 공개 심사를 피하면 독립 판정 인장을 같은 기간 반납한다.

로벤과 민간 보급관은 비상 전투 선언의 공동 확인인으로 이름을 썼다. 테오른 혼자 전투라고 부르는 것만으로 유예를 열 수 없게 됐다. 닐로의 후배 서기들은 두 인장을 담을 빈 상자를 실제로 가져와 각자의 이름표를 붙였다. 실패 비용이 문장 밖의 물건으로 놓였다.

테오른이 작은 철제 함을 열었다. 안에는 북부 대공가의 검은 인장이 놓여 있었다. 손잡이 옆으로 오래된 금이 비스듬히 가 있었다. 접착제로 메운 흔적도, 새로 생긴 흠집도 아니었다.

“사용에 문제는 없습니까?” 에이라가 물었다.

“없습니다.”

“금이 간 원인은요?”

“협약에 필요한 정보가 아닙니다.”

에이라는 더 묻지 않았다. 금의 원인을 모른다는 사실과 실제 담보로 내놓는다는 사실만 구분해 적었다. 인장이 깨질 경우의 대체 절차도 별도 칸에 넣었다.

세라핀은 하급 서기 한 명을 탁자 앞으로 불렀다. “대공의 수송 명령을 거절하면 급료를 받습니까?”

서기는 테오른을 보고 답을 삼켰다. 문서에 거절권은 있었지만 그 뒤의 생활은 비어 있었다.

“아주 공평해 보이는 문서군요.” 세라핀이 말했다. “권력자끼리만.”

에이라는 제3자가 이동·증언·보관을 거부해도 고용, 급료, 주거, 가족 지위에 불이익을 줄 수 없다고 적었다. 테오른은 북부 명령을 거절한 사람이 실제로 급료를 잃으면 자기 인장을 맡기는 항목에 동그라미를 쳤다. 세라핀은 에이라도 제3자의 거절을 판정으로 무효화할 수 없게 하라고 요구했다. 에이라는 자기 판정 목록에 같은 제한을 넣고 빈 상자를 자신의 인장 쪽으로도 당겼다.

서기는 그제야 자기 이름으로 확인 서명을 했다. 말보다 먼저 상자의 위치가 양쪽으로 같아졌다.

시계가 네 시간을 남겼을 때, 사적 접근 조항으로 넘어갔다.

장소, 목적, 참석자, 거절 가능성, 취소 방법을 적은 초대만 유효했다. 회신하지 않는 것은 거절로 간주하고 불이익을 금지했다. 비밀 감시나 이동 결정은 즉시 협약 해지 사유가 됐다.

“즉시 해지는 너무 넓습니다.” 테오른이 말했다. “정보원이 우연히 당신 동선을 보고해도 위반이 됩니까?”

“우연한 보고를 받은 뒤 폐기하지 않고 이용하면요.”

“위험이 임박했다면?”

“기록된 경고와 두 가지 대안을 보냅니다.”

“회신할 시간이 없다면?”

“그때는 침해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대신 협약은 끝나고, 제 접근권과 북부의 공개 지지를 잃습니다. 위험을 막았다는 결과가 면책은 아닙니다.”

테오른의 턱이 굳었다. 그는 사람 하나를 살리기 위해 명령을 어기는 쪽에 익숙했다. 결과가 좋다면 권한 침해를 나중에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당신이 죽는 것보다 협약을 잃겠습니다.”

“그 선택을 하실 수 있습니다.” 에이라는 짧게 답했다. “그리고 비용도 내셔야 합니다.”

그가 장갑을 벗어 탁자에 놓고 해지 조항 옆에 자기 서명을 먼저 했다. “동의합니다.”

해지 담보는 대칭으로 정했다. 테오른이 사적 감시나 이동 결정을 대신하면 에이라는 북부 숙소·호위·비공개 자료 접근권을 즉시 회수한다. 에이라가 테오른의 개인 서신이나 치료 기록을 심판 권한으로 열람하면 테오른은 그녀에게 제공한 비공개 군사 자료를 회수하고 공개 심사를 청구한다.

누구도 몰래 유리한 문장을 넣지 않았다. 수정 이력은 세라핀이 한 줄씩 낭독했고 닐로의 후배 서기 둘이 서로 다른 사본에 옮겼다.

시계가 한 시간을 남겼을 때 다리우스가 작성실로 들어왔다. “에이라 벨렌은 가문 대표로 서명할 권한이 없다.”

에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가문 대표로 서명하지 않습니다.”

“네 상속 지분은 정지됐다. 담보가 없다.”

“제 심판관 인장과 동결된 보증금은 여전히 제 책임입니다. 가문 재산은 넣지 않았습니다.”

다리우스는 테오른을 향했다. “대공 전하, 이 아이는 벨렌의 지지를 약속할 수 없습니다.”

“요구한 적 없습니다.” 테오른이 말했다. “그녀는 내 군사 결정을 멈출 수 있는 사람으로 서명합니다.”

“그러므로 북부가 벨렌을 적으로 돌릴 셈인가?”

테오른은 의전을 과잉 지킨 목소리로 답했다. “가주께서 따님의 판정과 가문의 표를 같은 자산이라고 공식 선언하신다면, 그 문장부터 기록하겠습니다.”

다리우스는 입을 다물었다. 공개될 문장을 고르는 데는 능한 사람이었다.

황실 중앙홀에는 협약을 비밀 약혼이라고 부르는 소문이 이미 퍼져 있었다. 서명대 주변에는 귀족, 시민 서기, 북부 대표, 채권 조합 대리인이 섞여 섰다. 혼례를 연상시키는 꽃이나 천은 없었다. 중앙에 놓인 것은 두 인장과 해지 담보 목록, 공개 심사 날짜뿐이었다.

서명대에 오르기 전 두 사람은 담보를 실제로 옮겼다. 테오른은 금이 간 검은 인장을 시민 보관관에게 건넸다가, 협약 발효 전이라는 확인을 받고 다시 받았다. 상자는 서명 직후 잠길 예정이었다. 에이라는 잠정 정지된 판정 인장의 보관증을 자기 이름으로 작성했다. 다리우스의 가문 인장이나 북부의 대리 서명은 어느 칸에도 없었다.

시민 서기 대표가 먼저 손을 들었다. “대공의 명령을 거절한 하급자가 급료를 잃었는데 당사자가 보복이라고 신고할 수 없는 상태면 누가 심사를 청구합니까?”

에이라는 초안의 신고인 칸을 보았다. 협약 당사자와 피해자만 적혀 있었다. 닐로가 체포됐을 때 후배 서기들이 대신 기록을 지킨 장면이 떠올랐다.

“공동 보관인과 같은 업무 집단의 두 사람도 청구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테오른은 북부 병사 대표를 불러 그 문장을 읽게 했다. 병사는 귀족들 앞에서 더듬었지만, ‘같은 업무 집단’이 수송대와 마부에게도 적용된다는 답을 듣고 자기 확인 표식을 남겼다.

채권 조합 대리인은 에이라를 향해 물었다. “심판관이 담보를 잃으면 기존 판정까지 무효가 됩니까?”

“아닙니다. 위반 뒤 새 판정권만 정지됩니다. 과거 판정을 소급해 거래에 쓰지 못하게 하죠.”

세라핀이 그 답을 공개 문안에 추가했다. “두 분의 실패를 핑계로 제삼자의 이미 끝난 권리를 빼앗지 않는다는 뜻이군요. 관객에게도 드물게 유익한 장면입니다.”

북부 대표 한 명은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전하의 관문 봉쇄를 외부 심판관이 늦추면 병사가 죽습니다.”

테오른이 직접 답했다. “그래서 대안을 열두 시간 안에 낸다. 내 판단이 빠르다는 이유로 비용 계산을 생략해 온 것은 사실이다.”

홀 뒤편이 조용해졌다. 그 말은 에이라를 위한 고백이 아니었다. 자기 병사와 시민 앞에서 앞으로 잃을 권한을 명명한 보고였다. 에이라는 그 공개 책임이 협약의 감정적 무게라고 판단했다.

세 질문이 반영된 수정 이력을 후배 서기 둘이 서로 다른 종이에 옮겼다. 두 사본의 문장이 일치한 뒤에야 중앙홀의 시계지기가 서명 가능 신호를 올렸다.

섭정 아우렐 측 대리인이 요구했다. “북부 대공은 에이라 벨렌을 군사적으로 보호한다고 선언하십시오. 그래야 황실이 협약을 승인할 수 있습니다.”

테오른이 초안을 덮었다. “승인이 필요한 문서가 아닙니다. 두 고위 권리자가 자기 권한을 담보로 공개하면 발효됩니다.”

“보호 선언도 거부합니까?”

“예. 이 협약은 누군가를 소유하거나 호송할 권리를 만들지 않습니다.”

에이라는 자기 차례에 협약의 목적을 읽었다. “혼인, 독점, 비밀 동맹이 아닙니다. 공개 결정은 서로 보류할 수 있으나 거부자는 인력·비용·시각이 적힌 대안을 냅니다. 사적 접근은 기록된 초대로만 이루어지고, 회신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습니다. 침해는 선의나 결과로 면책되지 않으며 해지와 담보 손실이 따릅니다.”

세라핀이 관객을 향해 물었다. “심판관의 권한도 제한됩니까?”

“제 판정 역시 같은 방식으로 보류되고, 대안 없는 거부를 방치하면 제 인장을 반납합니다.”

“대공의 군사권은요?”

테오른이 답했다. “관문 봉쇄와 징발을 포함해 협약 대상입니다. 대안이 없으면 세습 거부권 인장을 시민 보관함에 맡깁니다.”

그는 금이 간 검은 인장을 들어 보였다. 홀의 빛이 균열에 걸렸다. 에이라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다만 테오른이 손상된 물건까지 감추지 않고 담보로 내놓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은 각자의 직함으로 서명했다.

계약심판관 에이라 벨렌.

북부 대공 테오른 오르단.

인장이 눌린 순간 시계의 마지막 모래가 떨어졌다. 90일 협약이 발효됐다. 에이라는 북부의 보호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 북부 군사 결정을 거부할 수 있고 그 대안을 심사받는 협약 당사자가 됐다. 테오른 역시 그녀의 판정을 막을 수 있지만, 실패하면 자기 인장을 잃는 사람이 됐다.

다리우스가 홀을 떠났고 세라핀은 첫 공개 심사 날짜를 적었다. 닐로의 후배들은 협약 사본을 시민 열람대 세 곳에 나눠 걸었다.

전령이 테오른에게 북문 보고서를 건넸다. 조약 원본을 노린 자를 막기 위해 북문 전체를 군사 봉쇄한다는 명령안이었다.

테오른은 아직 펼치지 않은 보고서를 에이라와 시민 서기들이 모두 볼 수 있는 탁자 위에 놓았다.

서명으로 얻은 지위는 곧 첫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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