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한 선택을 다시 여는 장학생

2손에 든 초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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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든 초시계

포기한 선택을 다시 여는 장학생 · 2026. 3. 1.

재현실의 초시계는 벽에 걸려 있지 않았다. 태호가 손에 들고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모두가 볼 수 있지만, 손에 든 시계는 든 사람이 언제 멈출지 정한다.

도윤은 밤에 두 시간 잤다. 남은 시간에는 어제 열한 초를 순서대로 다시 세어 봤다. 왼손이 잠긴 상태로는 세는 것밖에 할 게 없었다.

“응시번호 열둘.”

“한도윤입니다.”

“열둘.” 태호는 여전히 번호를 썼다. “조건 세 개를 읽습니다. 하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사물입니다. 둘, 사용 시간은 십 초 이내입니다. 셋, 증언자가 대상이 무엇을 포기했는지 정확히 말합니다. 하나라도 어기면 중단하고 봉인을 확정합니다.”

“증언자는 누구입니까.” 도윤이 물었다.

“어제 현장에 있었고, 학생의 사용을 막았던 사람입니다.”

막았던 사람. 도윤은 그 단어의 순서를 알아들었다. 태호는 도윤을 도울 사람이 아니라 도윤을 반대할 사람을 증언대에 세운 것이다.

문이 열리고 서린이 들어왔다. 어제와 같은 제복이었지만 칼은 없었다. 검사실에 무기를 들고 들어오지 못한다는 걸 알고 온 사람의 걸음이었다.

“어제 저를 막았던 이유로 오늘은 저를 도우러 왔습니까?”

“도우러 온 게 아니야.” 서린이 벽 앞에 섰다. “증언하러 왔어. 다른 사람이 하면 틀리게 할 테니까.”

“틀리면 어떻게 되는데.”

“네가 열 범위가 넓어져.” 그녀는 초시계 쪽을 봤다. “범위가 넓어지면 대상이 더 많이 잃어. 어제처럼.”

어제처럼, 이라는 말이 벽에 부딪혔다가 돌아왔다.

검사 대상은 실기장에서 뜯어 온 발판 하나였다. 부러진 단면이 그대로 있었고, 어제 그 자리에서 누군가 밟기를 그만둔 발판이었다.

“증언 시작.” 태호가 초시계를 들었다.

서린은 발판 앞에 서서 손을 뒤로 모았다.

“어제 오전 열 시 사십이 분. 이 발판은 왼쪽 격자에 연결돼 있었고, 응시번호 삼십일이 여기를 두 번 밟었다가 세 번째에 발을 뺐어요.” 그녀는 초를 세지 않았는데도 순서가 정확했다. “그 애는 여기로 건너기를 포기했습니다. 이유는 오른쪽 이음새가 소리를 냈기 때문입니다. 저도 같은 소리를 들었고, 저도 그쪽 경로를 버렸습니다.”

“증언에 본인 판단이 섞였습니다.” 태호가 지적했다.

“섞은 게 아니라 같은 걸 들었다고 말한 겁니다. 제 책임 기록에도 넣으십시오.”

“증언자는 결과 책임을 함께 집니다. 알고 하십니까.”

“압니다. 그래서 정확히 말했습니다.”

태호는 여백에 한 줄 적었다. 도윤은 그 여백이 어제보다 좁아진 걸 봤다.

“열둘. 사용하십시오.”

봉인 잠금쇠가 풀렸다. 손목이 가벼워지는 대신 서늘해졌다.

도윤은 왼손을 발판 위에 폈다. 어제와 달랐다. 어제는 문고리를 더듬어 찾았고, 오늘은 문고리가 어디 있는지 서린이 미리 알려 준 상태였다. 포기의 자리가 좁고 선명했다. 이음새 하나, 발끝 하나, 세 번째 순간 하나.

누군가 정확히 말해 주면 열 곳이 작아진다. 작아지면 상대가 잃는 것도 작아진다. 도윤은 그 사실을 어제까지 몰랐고, 몰랐던 채로 사람을 살렸다.

열었다.

부러진 단면이 다시 붙는 대신, 그 발판이 밟혀도 되는 상태로 돌아갔다. 도윤은 그 위에 손을 얹은 채 셋을 셌다. 넷. 다섯.

그리고 왔다. 발밑이 없다는 감각. 어제 강준이 버린 두려움이 아니라 그 두려움의 잔량 같은 것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예상했으므로 놀라지 않았고, 놀라지 않았으므로 오히려 오래 붙잡고 있었다.

“종료.” 서린의 목소리였다.

도윤은 여섯을 셌다. 일곱.

“종료라고 했어.” 서린의 목소리가 더 짧아졌다.

여덟에서 손을 뗐다. 발판이 원래대로 부러진 단면으로 돌아왔고, 왼손 선 하나가 뜨거워졌다.

“칠 초 신호, 팔 초 종료. 일 초 초과.” 태호가 초시계를 눌렀다. “물리 재현은 성공입니다. 종료 반응은 지연입니다.”

“지연 이유를 적어야 합니까.”

“학생이 말하면 적습니다.” 태호는 펜을 들고 기다렸다.

도윤은 말할 수 있는 이유와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구분했다. 남의 두려움이 몸에 들어오면 자기 몸의 신호가 한 박자 늦게 도착한다. 그 말을 하면 다음 질문은 왜 그걸 이미 아느냐가 될 것이고, 그다음은 누나 이야기가 될 것이다.

“느낌이 늦게 왔습니다. 다음엔 증언자 신호를 몸보다 먼저 쓰겠습니다.”

서린이 그를 봤다. 문장의 앞쪽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챈 얼굴이었지만, 뒤쪽은 지적하지 않았다.

“조건부 해제입니다.” 태호가 잠금쇠를 반쯤 채웠다. “사람 대상은 사전 허가와 본인 동의가 있을 때만입니다.”

“사물은요.”

“증언자 동석 시 십 초 이내. 사후 보고 필수입니다.” 태호가 서린을 봤다. “유서린 학생, 증언 책임 서명하십시오.”

서린은 망설이지 않고 서명했다. 도윤은 그 서명이 자기 이름 아래 칸에 들어가는 걸 봤다. 어제 칼끝을 겨눈 사람의 이름이 오늘 자기 책임란 옆에 있었다.

도윤은 손을 폈다 접었다. 반쯤 채워진 잠금쇠는 어제보다 나았지만, 나아진 만큼 정확히 무거웠다.

그때 관찰 복도 쪽에서 유리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안전 인원이 아니라 학생이었다. 담요는 없었고, 어제 봤던 얼굴이었다.

강준은 난간 앞에 서 있었다. 이 층 복도의 난간은 허리 높이였고, 그 아래는 실기장 삼 층 높이의 빈 공간이었다.

강준은 난간 위에 팔을 얹고, 상체를 그 위로 넘기고 있었다. 뛰려는 자세가 아니었다. 아래를 보려고 몸을 기울이는 자세였다. 위험하다는 걸 계산하지 않는 사람의 자세였다.

도윤은 뛰었다.

“내려와.”

“어.” 강준이 고개만 돌렸다. “어제 그 분이죠.”

“난간에서 내려와. 지금.”

강준은 순순히 내려왔다. 그게 더 나빴다. 붙잡을 것도, 설득할 것도 없었다.

“왜 넘고 있었어?”

“밑에 뭐 있나 보려고요.” 강준이 손바닥을 털었다. “위험한가요?”

“위험해.”

“아, 그럼 안 할게요.” 대답이 너무 빨랐다.

도윤은 그 대답의 속도를 견딜 수 없었다. 어제 이 애는 이음새 소리를 듣고 발을 뺐다. 소리 하나로 자기 목숨값을 계산한 애였다. 그 계산기가 없어졌다.

되열면 된다. 어제 흐려진 걸 다시 열면. 왼손이 벌써 반쯤 올라가 있었다.

“한도윤 학생.” 태호의 목소리가 뒤에서 왔다. “사람 대상, 사전 허가, 본인 동의.”

도윤은 손을 내렸다. 손을 내리는 데 어제 열한 초보다 긴 시간이 들었다.

“강준아. 내가 어제 네 도약을 다시 열었어. 허락 안 받고.”

“들었어요.” 강준은 화내지 않았다. 화낼 이유도 흐려진 것 같았다.

“화 안 나?”

“나야 하나요?” 그 애는 진짜로 물었다. “살았는데요.”

살았는데요. 어제 도윤이 스스로에게 했던 변명과 같은 문장이었다. 그 문장을 피해자 입에서 듣는 건 처음이었다.

“지금 네가 위험을 잘 못 재는 게 그것 때문일 수 있어. 다시 열어서 되돌릴 수도 있는데, 그러면 다른 걸 또 잃을지도 몰라. 어떻게 할지 네가-”

“싫어요.” 강준이 말했다. 처음으로 빠른 대답이었다. “두 번은 싫어요. 왜인지는 설명 못 하겠는데, 싫어요.”

도윤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끄덕이면 이해한 척이 될 것 같았다.

“알았어. 안 해.”

말하고 나서 도윤은 자기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린다는 걸 알았다. 안 하겠다는 말을 하는 데 이렇게 힘이 드는 사람은, 아직 안 하기로 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그는 안전 담당자를 불렀다. 난간 앞에 사람을 세우고, 강준의 다음 일정을 물었고, 강준이 기권 서류를 들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기권 사유 칸은 비어 있었다.

“왜 비웠어?”

“쓸 말이 없어서요.” 강준이 서류를 내밀었다. “쓸 게 있어야 쓰는 거잖아요.”

“어제는 있었어. 너 이음새 소리 듣고 발 뺐잖아. 그거 네가 판단한 거야.”

“그랬어요?” 강준은 정말로 궁금해하는 얼굴이었다. “잘했네요, 그럼.”

잘했네요. 자기 판단을 남의 성적표처럼 말하는 목소리였다.

태호가 그 서류를 받았다. 그리고 어제의 기록지 두 장을 꺼내 나란히 놓았다.

“구조 한 건, 위반 한 건, 그리고 오늘 것 하나.” 태호는 세 번째 칸에 적었다. “대상 학생의 위험 판단 저하 및 기권. 원인 항목에 재개방 사용을 병기합니다.”

“사고 통계로 넘기지 않으십니까.”

“통계는 숫자만 남습니다.” 태호는 칸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에는 이 학생 한 명의 손실로 적습니다. 그게 정확합니다.”

“그거 제 기록에도 남습니까.”

“남습니다. 열람 책임 서명도 남습니다.” 태호가 펜을 내밀었다. “서명하면 이 학생의 후속 기록을 볼 수 있고, 볼 의무가 생깁니다. 합격 심사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서린이 문 앞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들어오지 않았고, 나가지도 않았다.

“유서린 학생, 이의 있습니까.”

“있습니다.” 서린이 말했다. “어제 저 사람은 사람을 하나 살렸습니다. 그건 기록에 남아야 합니다.”

“남았습니다.” 태호가 확인했다.

“그리고 허락은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남아야 합니다.” 그녀는 도윤을 보지 않고 말했다. “두 개를 하나로 합치면, 다음에 저 사람은 또 안 물어봅니다.”

도윤은 그 문장이 자기를 변호하는지 고발하는지 판단하려고 했다. 둘 다였다.

도윤은 서명했다. 이름을 다 쓰기 전에 태호가 말했다.

“열둘, 아니. 한도윤 학생.”

“예.”

“어제 저는 학생이 자기 공로만 챙기려 할 거라고 적었습니다.” 태호는 그 문장에 줄을 긋지 않고 옆에 덧붙였다. “반례를 적어 두겠습니다.”

장학 선발표는 그날 오후에 붙었다. 한도윤, 합격. 옆 칸에 도장 하나가 더 있었다.

조건부.

조건 항목은 세 줄이었고, 셋째 줄은 이랬다. 응시번호 삼십일의 후속 선택을 확인하여 보고할 것.

도윤은 그 줄을 두 번 읽었다. 확인하라는 말은 고치라는 말이 아니었다.

표 아래쪽에 수석 칸이 따로 있었다. 유서린. 그 옆에 실기 종목 하나가 남아 있다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방향 변화 미로, 내일 오전.

도윤의 이름은 그 종목 명단에도 있었다. 조건부 도장이 찍힌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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