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새벽 네 시 삼 분의 알림은 회색실의 불을 모두 켜 놓았다

증거분석관은 빠진 말을 듣는다 · 2026.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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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 삼 분의 알림은 회색실의 불을 모두 켜 놓았다. 배송 플랫폼에서 보낸 사진에는 빈집 현관과 바닥에 놓인 냉장 약품 상자만 찍혀 있었다. 사람은 없었고, 문은 닫혀 있었다. 사진 아래에는 ‘정상 배송 완료’가 적혀 있었지만, 같은 시각에 취소된 토큰 하나가 별도 목록에 남아 있었다.

서진은 화면을 확대하지 않고 원본 보존 버튼부터 눌렀다. 사진을 확대하면 앱이 새 미리보기를 만들 수 있었다. 민우가 출동 차량 키를 집어 들었고, 여름은 플랫폼에 원본 로그와 배송기사 바디캠 파일을 동시에 보존 요청했다.

“빈집이라는 단어부터 사건표에 넣을까요?” 민우가 물었다.

“사진에 사람이 없는 것과 빈집이라는 상태는 다릅니다.”

서진은 ‘사람 미확인 현관 사진’이라고 적었다. 배송 대상은 냉장 약품이었고, 배송 완료 시각은 04:03:17로 기록됐다. 취소 토큰은 04:03:17.4에 발급됐다. 소수점 이하의 차이는 시스템 시계 오차일 수 있었지만, 두 토큰이 같은 시각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그대로 보존해야 했다.

다빈은 새 사건 알림을 받은 뒤에도 즉시 회색실로 오지 않았다. 보호기관에 선택지를 먼저 보내 달라고 요청했고, 서진은 사건 개요에서 미성년 제보자 관련 자료를 분리한 뒤 필요한 부분만 전달했다. 첫 사건의 규칙이 다음 사건의 첫 절차가 되었다.

오전 다섯 시, 팀은 배송 플랫폼의 냉장 물류창고로 향했다. 약사는 문세림이었다. 창고 직원이 발견했을 때 그녀는 냉장 구역 안쪽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약품 상자 하나가 사라져 있었다. 사고인지 실종인지 분류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망했지만, 사건표에는 ‘사망’보다 먼저 ‘배송 완료 사진과 시신 위치의 불일치’가 적혀 있었다.

창고의 냉장 구역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안쪽 바닥에는 물기가 얼었다 녹은 자국이 있었고, 문 옆 벽에는 손바닥 높이의 긁힘이 남아 있었다. 서진은 사진을 찍기 전에 관찰자와 시각을 확인했다.

“05:22, 최초 발견자 박현우. 문은 20센티미터 열린 상태.”

창고 직원은 자신이 문을 더 열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우는 시신 쪽으로 다가갔지만 서진이 먼저 바닥의 바퀴 자국을 가리켰다. 냉장 약품 상자와 비슷한 폭의 자국이 창고 안쪽에서 문 쪽으로 이어졌다가 끊겼다. 자국이 사라진 지점에는 물기와 검은 고무 조각이 섞여 있었다.

“사람이 상자를 끌고 나간 흔적일까요?”

“아직은 냉장 장비의 이동 흔적일 수도 있습니다.”

송주혁은 창고 관리자였다. 그는 회색실이 도착하자 출입기록과 냉장구역 온도표를 먼저 꺼냈다. 서진이 바디캠 원본을 요청하자, 그는 보안팀에서 보관한다고 답했다.

“배송기사 이름과 기기 번호를 먼저 확인하죠.”

“원본을 확인해야 합니다.”

“원본은 회사 보안 절차를 거쳐야 나갑니다.”

송주혁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문장 끝마다 자료의 주인을 바꾸고 있었다. 서진은 그가 거짓말한다고 적지 않았다. ‘원본 소유권을 회사 절차로 제한하려 함’이라고 기록했다.

민우가 관리자에게 물었다. “배송기사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퇴근했을 겁니다.”

“바디캠은요?”

“업로드 중일 수 있습니다.”

“완료 사진은 이미 올라왔는데요.”

송주혁은 대답하지 않고 온도표를 넘겼다. 그 표에는 03:58부터 04:06까지 냉장 구역 온도가 두 번 튀어 오른 기록이 있었다. 정상적인 문 열림으로도 생길 수 있는 변화였지만, 배송 완료 시각과 겹쳤다.

서진은 현장 사진과 앱 사진의 각도를 비교했다. 앱 사진은 현관 왼쪽 아래에서 위로 찍혀 있었고, 배송기사 바디캠의 마지막 프레임은 아직 받지 못했다. 현관 바닥에는 물기 자국이 없었다. 창고에서 약품 상자를 옮겼다면 물기가 남았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냉장팩의 상태를 확인하지 전에는 결론을 낼 수 없었다.

오전 일곱 시, 배송 플랫폼이 보존 요청에 답했다. 완료 알림의 원본 이벤트는 존재하지만, 바디캠 원음 파일은 ‘동기화 대기’ 상태였다. 앱에는 배송 완료 사진과 토큰 두 개가 있었고, 두 번째 토큰의 생성 주체는 표시되지 않았다.

민우가 화면을 노려봤다. “누가 토큰을 만들었는지 모른다고요?”

플랫폼 담당자는 시스템 오류일 수 있다고 했다. 취소된 토큰은 정상 토큰을 무효화하지 않았고, 두 이벤트 모두 서버에 남아 있었다. 서진은 질문을 바꿨다.

“두 토큰이 같은 기기에서 나왔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까?”

“기기 식별자는 요청해야 합니다.”

“요청할 시간을 기록해 주세요.”

서진은 요청 시각과 담당자의 이름을 적었다. 누락은 사라진 자료만을 뜻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무엇을 요청했고, 어떤 답을 받지 못했는지도 사건의 일부였다.

송주혁은 그 기록을 보고 입술을 다물었다. 그는 배송기사가 약사 문세림에게 약품을 직접 전달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새벽 배송은 현관 앞에 두는 방식이고, 문세림은 창고 근무일에는 집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 주소는 왜 문세림 씨 집입니까?”

“배송지가 그렇게 입력됐으니까요.”

“누가 입력했죠?”

송주혁은 주문관리팀을 가리켰다. 하지만 주문서 원본은 보안 사유로 바로 보여 주지 않았다. 서진은 그 말도 그대로 기록했다. 관리자는 사망한 약사의 집 주소를 알고 있었고, 배송지가 그곳으로 지정된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오전 아홉 시, 법의학팀이 창고의 시신을 확인했다. 저체온과 머리 뒤쪽 외상이 함께 있었고, 냉장 구역 안에 오래 있었던 것만으로 외상이 생겼다고 보기 어려웠다. 서진은 사망 원인을 먼저 확정하지 않고, 시신 주변의 물기와 바퀴 자국을 별도 보존했다.

문세림의 사물함에서는 배송용 스캐너와 찢어진 라벨이 발견됐다. 라벨에는 약품 코드만 남았고, 수령인 이름은 떨어져 나갔다. 송주혁은 라벨이 배송 과정에서 찢어졌다고 했지만, 서진은 찢긴 방향이 손으로 벗긴 것인지 기계에 걸린 것인지 확인하기 전까지 적지 않았다.

민우가 말했다. “집에는 약품이 있고, 약사는 창고에서 죽었습니다. 누군가 시체와 배송을 분리한 겁니까?”

“그 질문은 좋습니다. 하지만 아직 누군가가 분리했다고 쓰지는 마세요.”

서진은 사건표의 첫 줄을 고쳤다.

‘배송 완료 사진이 찍힌 빈 현관에는 약품이 있었고, 약사는 같은 시간 창고 냉장구역에서 사망했다. 바디캠 원음과 완료 알림 원본의 결손을 확인한다.’

송주혁은 그 문장을 읽고 말했다. “회사는 아직 실종 사건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 분류가 바뀌면, 원본 보존 범위도 바뀌나요?”

“절차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은 어떤 자료를 보존하고 있습니까?”

송주혁은 답 대신 냉장 구역의 온도표를 가리켰다. 서진은 그가 사건 질문보다 회사의 분류를 먼저 지키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인상은 증거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료 공개 순서에 이견’이라고만 적었다.

오전 열한 시, 배송기사 박현우가 창고로 돌아왔다. 그는 03:50부터 04:12까지의 바디캠이 자동 업로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카메라에는 배송 완료 사진을 찍은 순간의 영상이 남아 있지만, 원음은 비어 있었다. 박현우는 그 시간에 누군가와 통화하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사진을 찍고 상자를 놓았습니다.”

“문 앞에 사람이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집 안에서 소리가 나지는 않았고요?”

박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말끝을 흐리다가, 배송 앱에서 사진을 찍은 뒤 취소 토큰이 하나 더 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토큰을 누른 기억은 없었다.

서진은 바디캠 원음 파일이 비어 있는 구간을 보고 능력을 떠올렸다. 누락된 말이 있다면 무엇이 사라졌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원본의 보존 상태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금 사용하면 오염된 사본을 듣고도 원본이라고 착각할 수 있었다.

그녀는 능력 사용 칸을 비워 두고, 바디캠 원본과 앱 이벤트의 보존 담당자를 먼저 적었다. 사건은 충격적인 시신보다 기록의 결손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밤이 되자 송주혁은 회색실에 보안 각서를 내밀었다. 바디캠 파일과 주문 기록은 회사 동의 없이 외부로 나갈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서진은 각서를 읽고도 서명하지 않았다.

“자료의 소유권과 증거의 보존 의무는 같은 문장으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송주혁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는 냉장 구역에서 사라진 약품 상자의 코드와 문세림의 개인 주문 기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내일 오전까지 법무 검토를 기다리라고 했다.

서진은 보존 시한을 계산했다. 앱 이벤트는 이미 원본 요청이 걸렸지만, 바디캠 원음은 동기화 대기였다. 새벽 네 시의 기록이 다음 날 같은 시각에 자동 삭제될 수 있었다.

민우가 외투를 입었다.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면 늦습니다.”

“오늘 밤 안에 원본이 원본인지 확인해야 해요.”

서진은 창고 밖으로 나와 차가운 공기를 마셨다. 파란 삼각형이 찍힌 영수증과 중복 배송 토큰은 같은 도구의 흔적일 수도 있었지만, 아직은 표면이 닮았을 뿐이었다. 그녀는 윤준호의 이름을 사건표에 쓰지 않았다.

대신 첫 질문을 크게 적었다.

‘배송 완료 사진이 찍힌 빈집에는 왜 냉장 약품도 사람도 없었고, 약사는 같은 시간 창고에서 죽어 있었는가?’

그 아래에 두 번째 줄을 붙였다.

‘04:03:17의 완료 토큰과 04:03:17.4의 취소 토큰은 같은 행동의 두 기록인가.’

서진은 저장 버튼을 눌렀다. 화면의 보존 요청 상태가 아직 ‘대기’로 남아 있었다. 차 안에서 민우가 배송기사의 진술서를 다시 읽었다. 박현우는 사진을 찍은 뒤 현관에서 세 걸음 물러났다고 적었지만, 바디캠의 마지막 프레임에는 네 걸음 뒤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한 걸음의 차이는 측정 오차일 수 있었다. 서진은 그 차이도 다음 검증 질문으로 옮겼다.

“사람이 있었는지보다 먼저, 카메라가 무엇을 보았는지 확인하죠.”

보존 요청 상태가 그때 ‘접수’로 바뀌었다. 원본이 확보된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 요청을 받았다는 흔적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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