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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법무팀은 케이스가 아니라 계약서를 들고 왔다

증거분석관은 빠진 말을 듣는다 · 2026.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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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법무팀은 케이스가 아니라 계약서를 들고 왔다.

“시설업체 소유 장비입니다. 계약이 종료됐으니 오늘 자정까지 회수하겠습니다.”

한여름은 케이스의 봉인 번호를 보며 말했다.

“내용물은 열람하지 않습니다. 바퀴와 외부 표면, 일련번호만 사건 관련 물성으로 보존하겠습니다.”

“케이스 안에는 다른 고객의 저장장치가 있습니다. 표면 채취를 허용하면 영업비밀과 개인정보가 노출됩니다.”

“그럼 공동 봉인합시다. 회사가 지정한 제삼 창고에 보관하고, 양측 입회 아래 외부 상태만 확인하겠습니다.”

법무팀 변호사는 계약서를 한 장 넘겼다.

“소유권은 회사에 있습니다. 회수 자체를 막을 권한은 회색실에 없습니다.”

민우가 끼어들었다.

“회수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회수 전에 상태를 바꾸지 말라는 겁니다.”

“그 둘은 같은 결과를 만듭니다.”

“다릅니다. 장비를 옮길 수는 있지만, 봉인을 바꾸거나 세척하면 안 됩니다.”

서진은 변호사의 말이 완전히 틀리지 않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케이스 안에는 사건과 무관한 자료가 있을 수 있었다. 회색실이 모든 것을 가져가면 수사 편의는 올라가지만, 증거가 아니라 침해 자료가 될 수도 있었다.

여름은 공동 봉인 합의서를 내밀었다. 회사 지정 창고, 외부 촬영, 일련번호 확인, 내부 열람 금지, 봉인 교체 금지. 법무팀은 내부 열람 금지에는 동의했지만, 표면 채취 조항은 거부했다.

“형광 입자는 표면에 있습니다.” 서진이 말했다.

“그 입자가 고객 장비에서 나온 것인지, 다른 현장에서 묻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채취가 필요합니다.”

“채취하면 원상 복구가 안 됩니다.”

여름이 서진을 보았다. 서진은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법무팀의 거부가 부당해 보여도, 불법 복제로 넘으면 확보한 자료 전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표면 채취 없이 공동 봉인만 하는 건 받아들이겠습니다.” 여름이 말했다.

서진은 그녀를 보았다.

“그럼 핵심 비교 권한을 잃습니다.”

“잃는 증거를 문서에 적겠습니다. 그리고 잃기 전에 긴급 채취 상당성을 따로 신청하겠습니다.”

서진은 여름의 순서가 느리다고 생각했다. 회의록의 반대 의견 칸에 적었다.

오후 7시, 케이스 회수 지시서가 작성된 시각이 확인됐다. 사건 다음 날 오전이 아니라, 사건 당일 09시 12분. 서버 원본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기 전부터 회수 계획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민우가 지시서를 들었다.

“이건 회사가 장비를 정기 회수한 증거입니까?”

“정기 회수 문서로 보입니다.” 변호사가 말했다.

“그런데 왜 출력 시각이 사건 뒤입니까?”

변호사는 즉시 답하지 못했다.

“출력은 나중에 할 수 있습니다.”

“작성은요?”

“확인해야 합니다.”

서진은 회수 지시서의 문서번호를 촬영했다. 종이 자체는 범행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과 무관한 정기 작업이라는 설명과 작성 시각 사이에 틈이 생겼다.

그날 밤, 오나리는 익명 통화용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원격 서비스 업체의 실무자였다. 고객번호도, 파일명도, 회사 이름도 말하지 않겠다는 조건이었다.

“누구 파일인지 묻지 않겠습니다.” 나리가 말했다. “예약된 파기 시각이 수동으로 바뀐 적이 있는지만 확인해 주세요.”

상대는 한참 침묵했다.

“정기 파기입니다.”

“예약 시각은요?”

“자정 전후입니다.”

“기본 정책입니까, 이번 세션에만 적용된 값입니까?”

숨소리가 흔들렸다.

“파란 표시 건만 당겨졌어요.”

나리는 더 묻지 않았다. 통화 기록을 원본 채널에 보존하고, 실무자의 신원은 따로 적지 않았다.

“수동 변경입니까?”

“네. 밤 23시 30분으로 예약된 걸 봤습니다.”

“누가 바꿨는지는요?”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책 화면의 해시만 확인해 주세요.”

실무자는 정책 화면을 캡처하지 않고 해시값만 보내 왔다. 캡처를 넘기면 회사 내부 계정과 이름이 노출될 수 있었다. 나리는 그 한계를 받아들였다.

“이걸 법원에 제출하면, 익명 확인으로 보존 명령을 받을 수 있습니까?” 여름이 물었다.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삭제 시각이 앞당겨졌다는 정황과 정책 해시가 있으면 긴급성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민우가 손목시계를 보았다. 자정까지 두 시간 반. 케이스 회수와 원격 로그 삭제가 같은 밤에 예정돼 있었다.

“범위를 넓혀야 합니다.”

“범위를 넓히면 신청 전체가 기각될 수 있습니다.” 여름이 말했다.

“좁히면 두 증거를 모두 잃습니다.”

“두 항목을 분리해서 신청합시다. 케이스 외부 미세입자 채취와 사건 고객번호의 변경 이벤트 보존. 하나가 기각되어도 다른 하나는 살아야 합니다.”

민우는 반박하려다 멈췄다. 그는 최대 범위가 아니라 살아남을 범위를 선택해야 했다.

밤 9시 30분, 당직 법원 원격심문이 시작됐다. 판사는 케이스 안에 다른 고객 자료가 있는지, 표면 채취가 오염을 만들 가능성은 없는지, 익명 실무자 진술을 어떤 수준으로 믿을 수 있는지 차례로 물었다.

여름은 먼저 케이스 내부 열람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금 필요한 건 외부 표면의 미세입자와 일련번호입니다. 내용물과 고객명은 범위에서 제외합니다.”

민우는 변경 이벤트 신청을 별도 항목으로 설명했다.

“원격 로그의 원문이 아니라, 사건 고객번호와 해당 장치의 접속·변경·삭제 예약 시각만 보존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판사가 물었다.

“익명 실무자가 말한 23시 30분은 어떻게 확인합니까?”

나리가 원본 채널 보존 확인서와 정책 화면 해시를 제출했다. 이름은 가려져 있었지만, 통화 시각과 해시 생성 시각은 남아 있었다.

판사는 잠시 문서를 검토했다.

“두 신청을 분리하겠습니다. 케이스 외부 채취는 공동 입회, 내부 열람 금지, 채취량 최소 조건. 변경 이벤트는 사건 고객번호와 장치 일련번호, 24시간 범위, 삭제·변경 유형으로 제한합니다.”

민우가 숨을 내쉬었다. 두 항목 모두 살아남았지만, 실행까지 남은 시간은 70분이었다.

법원에서 나오는 복도에서 여름이 서진에게 말했다.

“아까 제가 너무 늦춘다고 생각했죠.”

“네.”

“그 생각을 회의록에 적은 것도 봤습니다.”

“틀렸습니까?”

“아니요. 다만 제가 늦추는 이유를 당신이 대신 결정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서진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당신은 제가 능력으로 당사자 뜻을 대신 읽는 걸 막고 싶어 하죠.”

“맞아요.”

“그럼 나도 당신이 법적 위험을 대신 계산하는 걸 막겠습니다.”

여름은 고개를 끄덕였다. 관계의 온도는 올라가지 않았지만, 서로의 권한을 감시하는 방식은 선명해졌다.

밤 11시 10분, 공동 봉인 창고에 도착하자 CCTV에 회사 차량이 먼저 들어오는 장면이 찍혔다. 백상호가 탄 차량이었다.

민우가 무전기를 들었다.

“회수팀보다 먼저 도착했습니다. 현장 집행 시작.”

서진은 창고 안을 보았다. 봉인된 케이스 옆으로, 똑같은 크기의 두 번째 케이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두 케이스의 일련번호는 달랐다. 그러나 바퀴 폭은 같았다.

자정까지 49분.

두 번째 케이스는 회사 차량의 뒤쪽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백상호는 자신이 교체 대상 장비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정기 교체는 내일입니다.” 민우가 말했다.

“계약상 긴급 교체도 가능합니다.”

“지금은 긴급 보존 집행 중입니다.”

백상호는 새 케이스의 일련번호를 보여 주었다. 회사 법무팀은 두 케이스를 교체하면 영업비밀과 고객 자료가 보존된다고 주장했다. 서진은 두 케이스의 바퀴와 손잡이를 비교했다. 외형은 같았지만, 새 케이스의 오른쪽 바퀴에는 회색 가루가 없었다.

“교체하면 기존 케이스의 표면 상태가 사라집니다.”

“새 케이스에 저장장치를 옮기면 자료는 보존됩니다.”

“자료와 표면은 같은 증거가 아닙니다.”

여름은 법원 명령문을 읽었다.

“기존 케이스 외부 채취 전 이동·세척·봉인 교체 금지입니다. 회사가 새 케이스를 가져오는 것 자체는 막지 않지만, 기존 케이스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백상호의 표정이 굳었다.

민우는 창고 CCTV를 가리켰다.

“차량이 왜 먼저 왔는지부터 기록합니다.”

“회수 명령을 수행하려고요.”

“명령서는 20시 42분 작성. 차량 출발은 20시 31분입니다.”

백상호가 입을 다물었다. 정기 회수 설명과 실제 차량 이동 사이에 또 다른 시간이 생겼다.

서진은 기존 케이스의 외부 봉인 번호를 확인했다. 번호는 바뀌지 않았지만, 봉인표 모서리가 습기에 눌려 있었다. 그녀는 표면을 문지르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도현이 최소 채취 도구를 준비했다. 케이스의 형광 입자는 손잡이에서 한 번, 바퀴 가장자리에서 한 번만 채취하기로 했다. 채취 위치와 담당자, 시각이 서류에 적혔다.

“채취량이 너무 적으면 비교가 안 될 수 있습니다.” 백상호가 말했다.

“그래도 먼저 상태를 보존해야 합니다.” 서진이 답했다.

“결과가 안 나오면 누가 책임집니까?”

“결과가 안 나왔다는 사실까지 포함해 기록합니다.”

채취가 시작되기 직전, 원격 서비스 업체에서 새 알림이 왔다. 삭제 예약 시각이 23시 30분에서 23시 12분으로 다시 당겨졌다는 통지였다.

오나리가 바로 실무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민우가 법원 명령문을 들고 서버 접속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삭제 예약 변경 이벤트를 보존하라.”

응답은 6분 뒤에 왔다. 변경은 자동화가 아니라 관리자 계정으로 실행됐다. 계정 이름은 공개할 수 없지만, 접속 IP는 시설업체 본사망과 달랐다.

서진은 두 케이스의 일련번호와 IP 기록을 같은 표에 넣었다. 두 행동의 주체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회사가 단순히 장비를 회수하려 했다는 설명은 약해졌다. 자정은 계약 종료 시각이 아니라, 기록을 없애기 위한 시각일 수 있었다.

23시 18분, 형광 입자 채취가 끝났다. 케이스는 다시 공동 봉인됐고, 내부 저장장치는 열리지 않았다. 도현은 채취 도구 봉투에 두 개의 위치를 따로 적었다.

여름은 보존 범위 밖 자료가 들어가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민우는 차량과 창고의 이동 기록을 봉인했다.

백상호가 먼저 도착한 이유와 두 번째 케이스의 필요는 합쳐지지 않았다. 기존 케이스의 표면을 없애려 했을 가능성은 남았다.

자정까지 12분.

서진은 마지막으로 실무자의 해시 확인서를 봉인했다. 이름 없는 사람이 상급자 지시를 어기고 남긴 것은 범인의 이름이 아니라 삭제 시각이었다. 그 시각이 있었기 때문에 회색실은 불법 복제 대신 긴급 보존을 얻을 수 있었다.

창고 문이 닫혔다. 케이스 두 개는 나란히 서 있었고, 어느 쪽이 사건의 물건인지 아직 결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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