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분석관은 빠진 말을 듣는다

1사라진 1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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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17초

증거분석관은 빠진 말을 듣는다 · 2026. 5. 17.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한재희는 벽에 기대 선 사람처럼 보였다.

무릎이 접혀 있었고, 오른손은 층수 표시기 아래에 닿아 있었다. 피가 많지 않았다. 승강기 바닥에도, 문턱에도, 벽면의 손잡이에도 추락한 사람이 남길 만한 흔적은 없었다. 그런데 목은 한쪽으로 꺾여 있었다.

윤서진은 시신을 보면서도 먼저 층수 표시기를 봤다. 8층에서 내려온 뒤 1층에 도착한 시간은 05시 39분 12초. 관리실 모니터에 찍힌 도착 시간은 05시 39분 29초였다.

17초.

“사고로 분류하겠습니다.” 현장 형사가 말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발견됐고, 외부 추락성 손상입니다.”

“외부에서 떨어졌다면 차 안에 떨어진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서진이 대답하자 남자는 미간을 좁혔다. 설명을 들으려는 표정이 아니라, 설명을 더 붙이면 현장이 복잡해진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지금 뭘 하자는 겁니까?”

“청소를 멈춰 주세요. 문턱부터요.”

그때 강민우가 들어왔다. 검은 점퍼의 소매에 빗물이 묻어 있었다. 그는 시신을 한 번 보고, 서진이 가리킨 문턱을 봤다.

“분석관.”

“문턱에 흰 가루가 있습니다. 형광 분말인지, 계단 도료인지 아직 모릅니다. 현장 이동을 먼저 막아야 합니다.”

“사망 원인은?”

“모릅니다.”

민우가 잠깐 멈췄다. 서진은 이 대답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을 보려고 했지만, 민우는 이미 장갑을 갈아 끼우고 있었다.

“좋습니다. 모른다는 이유로 뭘 보존해야 하는지 말해 보죠.”

서진은 대답 대신 바닥에 붙은 투명 테이프의 끝을 가리켰다. 테이프는 문턱에서 3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끊겨 있었다. 누군가 급하게 발을 빼며 붙인 흔적처럼 보였지만, 청소업체가 현장선을 다시 붙였을 가능성도 있었다.

“테이프가 아니라 문턱 흠집, 형광 분말, 층수 표시기의 시간입니다. 셋을 같은 사진 안에 넣어 주세요.”

민우는 현장 형사에게 손짓했다.

“청소 중지. 사진 순서는 분석관 말대로.”

그 명령이 떨어지는 동안 서진은 시신의 오른쪽 구두를 보았다. 밑창 홈 사이에 회색 알갱이가 끼어 있었다. 엘리베이터 바닥의 먼지와는 색이 달랐다. 알갱이 하나가 발끝에서 떨어져 문턱 안쪽에 굴렀다.

“저건 제가 채취하겠습니다.”

“시신은?”

“이동하지 않습니다.”

민우가 이번에는 현장 형사에게 직접 말했다.

엘리베이터는 멈춘 적이 없었다. 운행 로그에는 8층 정차, 1층 도착, 다시 1층 대기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한재희의 목 뒤 손상과 구두 밑창의 회색 알갱이는 다른 장소를 가리켰다.

사고라는 말이 벽에 붙기 전에, 서진은 그 말을 떼어 냈다.

“비상계단을 확인해야 합니다.”

“잠겨 있었다고 합니다.” 민우가 말했다.

“그 말도 기록하죠.”

민우가 관리실 쪽을 돌아보았다. 관리소장 한경민이 유리문 밖에 서 있었다. 그는 잠깐 서진과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문고리로 옮겼다.

“비상계단은 밤새 잠겨 있었습니다.” 경민이 말했다. “마스터키는 제 사무실에 있고요.”

“누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습니까?”

“제가요.”

“몇 시에요?”

경민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셔츠 소매를 한 번 접었다.

“자정 전입니다.”

“자정 전 몇 시입니까?”

“그건 확인해 봐야 합니다.”

민우가 메모를 덮었다.

“계단 문부터 보죠.”

8층 비상계단 앞의 도어클로저는 완전히 닫히지 않고 4센티미터 열린 상태였다. 문 아래쪽에는 회색 도료가 벗겨진 자국이 있었다. 서진은 손가락을 대지 않고 촬영했다. 도어클로저의 팔에는 역방향으로 눌린 긁힘이 두 줄 있었다.

“문이 안에서 밀린 흔적입니다.” 민우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누가 나갈 때 밀었거나, 바람에 닫히다 걸렸을 수도 있어요.”

“분석관은 항상 두 가지씩 말합니까?”

“두 가지로 부족하면 세 가지도 말합니다.”

민우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럼 세 번째는?”

서진은 도어클로저 아래의 먼지를 보았다. 문이 열린 동안 바깥에서 안쪽으로 끌린 작은 자국이 있었다. 사람의 발뒤꿈치가 아니라, 무거운 물건의 모서리처럼 직선으로 끊겨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 문을 통과했을 가능성.”

“시신?”

“아직은 모릅니다.”

이번에는 민우가 그 말을 받아 적었다.

지하 관리실에는 모니터 네 대가 켜져 있었다. 한경민은 USB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원본입니다. 경찰이 보기 편하게 뽑아 둔 겁니다.”

서진은 USB를 받지 않고 파일 목록만 촬영했다. 파일 생성 시각은 06시 08분. 사건 발생 시각보다 29분 뒤였다.

“저장장치 원본을 확인해야 합니다.”

“외주업체가 관리합니다.”

“그럼 외주업체를 부르세요.”

“지금 연락 중입니다.”

한경민은 전화 화면을 보여 주지 않았다. 서진은 모니터에 재생된 영상을 보았다. 05시 39분 12초,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17초 동안 화면이 검게 변했다. 다음 화면에는 한재희가 이미 벽에 기대어 있었다.

검은 화면의 앞뒤 프레임에는 같은 픽셀 깨짐이 있었다. 단순한 신호 끊김이 아니라, 새 키프레임이 시작되기 직전의 재인코딩 흔적이었다.

“이건 원본이 아닙니다.”

“파일은 서버에서 바로 뽑았습니다.”

“파일이 서버에 있었다는 말과, 서버가 기록한 원본이라는 말은 다릅니다.”

서진이 화면을 확대하자 영상 오른쪽 아래의 시간이 05시 39분 29초로 튀었다. 관리실 인터폰 원음에서도 같은 구간이 잘려 있었다. 두 기록의 공백은 정확히 같았다.

민우가 화면을 보며 물었다.

“17초가 누가 만든 건지는 아직 모르는 거죠?”

“네. 하지만 제출본이 원본이 아니라는 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때 서버 옆 폐지통에서 종이 한 장이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서진은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종이에는 파란 삼각형이 찍혀 있었고, 아래쪽 고객번호 일부만 보였다.

“저것도 보존하죠.”

한경민이 먼저 움직였다.

“그건 쓰레기입니다.”

“그래서 손대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경민은 손을 멈췄다. 얼굴이 굳은 건 놀라서인지, 자신이 버린 종이가 다시 사건이 되어서인지 알 수 없었다.

서진은 기록지에 네 줄을 적었다.

승강기 안에서 치명상이 생겼다는 증거는 없음. 비상계단에 외부 손상과 연결될 수 있는 도료 흔적 있음. 제출 영상과 인터폰 원음에 동일한 17초 공백 있음. 파란 삼각형 표식의 출처 미확인.

그 아래에는 질문을 하나만 적었다.

한재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죽은 것인가, 누군가 계단에서 벌어진 일을 17초 안에 접어 넣은 것인가.

민우가 기록지를 보았다.

“범인 이름은 없네요.”

“아직 넣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건으로 등록하자는 겁니까?”

“사고로 등록하면 원본을 보존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관리실의 냉각팬이 돌아가는 소리와 서버의 작은 경고음이 겹쳤다.

민우는 전화기를 들었다.

“회색실 임시 사건으로 올립니다. 원본 저장장치와 비상계단 접근 기록 보존부터.”

한경민이 고개를 들었다.

“저는 협조하겠습니다. 다만 주민 개인정보까지 전부 가져가면 안 됩니다.”

“필요한 범위만 가져갑니다.” 서진이 말했다. “대신 그 범위를 정할 사람은 소장님이 아니라 기록을 실제로 관리한 담당자여야 합니다.”

경민은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주머니에서 낡은 열쇠고리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열쇠 세 개 중 하나에는 시설업체 약자인 B.S.H.가 적혀 있었다.

“이건 제가 가진 마스터키입니다. 오늘 오전까지는 보관하겠습니다.”

“제출하겠다는 뜻입니까?” 민우가 물었다.

“아닙니다. 보존하겠다는 뜻입니다. 제출 여부는 제가 정하겠습니다.”

민우가 그를 보았다. 서진은 경민의 말이 수사를 돕기 위한 것인지, 자기에게 남은 권한을 확인하는 것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두 해석 모두 기록할 가치가 있었다.

서진은 마지막으로 서버 화면의 시간을 다시 촬영했다. 자동 순환 저장까지 남은 시간은 51분이었다.

한여름이 관리실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아직 봉인하지 않은 개인정보 열람 목록이 들려 있었다.

“승강기 이용자 전체 명단을 달라고 하면 서버를 지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재희와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사건에 묶이죠.”

“맞아요. 그래서 오늘은 시간대와 층수, 출입 장치 번호만 보존 신청서에 넣겠습니다.”

민우가 물었다.

“그 정도로 원본이 남습니까?”

“남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요. 다만 포괄적으로 가져가서 증거로 못 쓰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서진은 여름이 내민 목록을 읽었다. 05시 20분부터 05시 50분까지, 8층 비상계단 도어센서와 승강기 호출 기록, 관리실 인터폰의 원음 보존. 사람 이름은 없었다.

“이 목록에 한경민 소장의 마스터키 보관 기록을 추가해 주세요.”

경민이 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건 제 개인 기록입니다.”

“개인 기록이 계단 잠금 상태를 설명한다면 사건 기록이 됩니다.”

“제가 범인이라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래서 기록이 필요한 겁니다.”

경민은 한참 동안 열쇠고리를 내려다보았다. B.S.H.라는 세 글자가 형광등 아래에서 번들거렸다.

“보존만 하세요. 가져가지는 마십시오.”

여름은 목록의 문장을 바꿨다. ‘마스터키 제출’이 아니라 ‘마스터키 보관·사용 이력의 변경 금지’였다.

민우가 조용히 웃었다.

“문 하나 여는 데도 협상이 길군요.”

“문은 열면 닫히지만, 기록은 한 번 가져가면 누가 봤는지 남겨야 하니까요.”

서진은 그 말을 수첩에 옮기지 않았다. 대신 봉인 신청서 아래에 담당자 세 명의 이름을 나란히 적었다. 누가 원본에 접근했고, 누가 범위를 줄였고, 누가 거부권을 행사했는지 다음 사람이 다시 볼 수 있게.

서버 경고음이 한 번 더 울렸다. 자동 순환 저장까지 남은 시간은 49분으로 줄어 있었다.

17초가 사건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17초를 누가 지웠는지는 아직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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