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자금팀 대리는 망할 회사를 살리지 않는다

3움직일 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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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일 권한

회귀한 자금팀 대리는 망할 회사를 살리지 않는다 · 2026. 4. 25.

돈은 들어왔다. 움직일 권한은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훈은 거절 도장을 찍기 전에 창구 밖을 한 번 봤다. 유리벽 너머로 한림리빙 물류차가 보였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엔진을 끄지 못하고 있었다. 출고가 취소될지, 창고로 다시 돌아갈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훈은 그 차를 보면서도 승인선을 건너지는 않았다. 한 번 잘못 풀린 이체는 트럭 한 대보다 오래 남았다. 나중에 감사실에서 묻는 것은 누가 급했는지가 아니라, 누가 누구 돈을 움직였는지였다.

그는 태경이 내민 입금 화면을 다시 밀어 주었다. 입금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사실 하나가 사용권한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수취 계좌가 어디인지, 회사가 그 돈을 납품에 쓰겠다고 승인했는지, 이미 담보로 잡힌 채권은 아닌지. 상훈에게는 셋 다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칸에 사정을 적어 넣는 순간, 그 칸은 태경의 것이 아니라 자기 몫이 된다.

이상훈은 심사석 위의 입금 내역을 한 번 보고, 윤태경 쪽으로 화면을 돌렸다. 화면 맨 위에는 ‘권한 확인 필요’가 떠 있었다. 글자는 짧았고, 그 아래에 붙은 결재선은 길었다.

“고객 예치금이 들어왔습니다.” 태경이 말했다. “동해유통 납품분으로 묶어야 합니다. 다른 채권자에게 빠지면 오늘 조건도 깨집니다.”

“묶을 권한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회사는 한림리빙이고, 저는 자금팀 대리입니다.”

“그건 직무입니다. 결재권은 아닙니다.”

상훈은 모니터 옆에 놓인 종이를 정리했다. 말투는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고르게 들려서 태경을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첫 생의 태경은 이런 사람을 무능하다고 불렀다. 눈앞의 불을 보고도 서류만 들여다보는 사람. 지금 보니 상훈의 책상 위에는 서류가 아니라, 잘못 풀었을 때 누구의 이름이 남는지가 놓여 있었다.

“급합니다.”

“급한 건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더 못 움직입니다.” 상훈이 손가락을 세 개 폈다. “첫째, 회사 위임장. 둘째, 수취 계좌와 납품 조건. 셋째, 채권이 이미 다른 곳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자료. 셋 중 하나라도 비면 제가 이체를 막는 쪽이 맞습니다.”

“지금 막으면 생산이 멈춥니다.”

“지금 풀었다가 다른 채권자 돈을 빼면, 생산보다 먼저 통제가 멈춥니다.”

태경은 반박할 말을 찾았다. 과거에는 오후 늦게 중복 양도 문제가 터졌다고, 그때는 모두가 너무 늦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은 증거가 아니었다. 상훈이 오늘 규정을 어기면, 미래를 안다는 사람 대신 이 심사역이 감사 문답을 받아야 한다.

“거절문으로 남겨 주십시오.”

상훈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구두로 끝내면 제가 나중에 부탁한 걸로 되니까요.”

“그건 맞습니다.”

도장이 종이에 찍혔다. 거절이라는 글자보다 도장 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 순간 태경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는 윤동호가 떠 있었다.

태경은 은행 비상계단으로 나갔다. 문을 닫자 복도 소음이 끊겼고, 계단 아래에서는 누군가 상자를 끌고 가는 소리만 났다.

“아버지.”

“자금팀.” 동호는 이름 대신 직무를 불렀다. “윤성정밀 외상대금. 오늘 안에 안 막으면 납품처가 공구를 가져간다.”

태경은 난간을 잡았다. 첫 생의 그 공구는 공장 바닥에 끝까지 남아 있었다. 동호가 문을 닫은 뒤에도, 누구에게도 넘기지 못한 채 녹이 슬었다.

“얼마입니까?”

“금액부터 묻지 마. 납품한 물건 값이다. 불쌍해서 달라는 게 아니야.”

“알아요. 그래서 전표가 필요해요.”

통화 너머가 조용해졌다.

“내 물건을 내가 만들었다는 전표를 아들한테 보내야 하냐?”

“한림리빙 돈을 가족한테 먼저 보내면, 그 다음엔 누구한테도 설명 못 합니다.”

“그 돈 네 돈 아니잖아.”

“그래서 더 못 합니다.”

동호가 짧게 숨을 뱉었다. 기계가 공차를 벗어났을 때 내는 소리처럼 건조했다.

“작업자 급여일도 같이 보낸다. 납기표도. 네 표에 올려. 대신 네가 못 막으면, 나도 내 방식으로 막는다.”

“아버지 방식이 뭡니까?”

“도면대로.”

동호는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작업복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못했다. 공장 한쪽에는 납품처가 회수해 갈 수 있다는 공구 상자가 있었다. 상자 위에 적힌 회사 이름은 윤성정밀이었지만, 그 안의 치공구는 작업자 셋이 각각 손에 익힌 물건이었다. 동호는 그들에게 공장 사정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 말하면 그들은 자기 월급과 다음 일감을 계산해야 한다. 아직은 자기 손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외상 전표를 찾다가 급여 달력을 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납품대금을 먼저 막는다고 작업자 월급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아들이 돈을 보내 주면 편하겠지만, 그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묻지 않은 채 받으면 다음에는 자기 공장보다 큰 구멍을 만드는 데 보태게 될지 몰랐다.

동호는 전표를 사진으로 찍었다. 일부러 가장 지저분한 장도 같이 찍었다. 납품 품목, 미지급 날짜, 검수 서명, 그리고 다음 주 급여일. 부탁처럼 보이지 않게 보내려 했지만, 자료를 보내는 손은 부탁보다 더 오래 떨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썼다. ‘못 막으면 내가 정한다.’ 그 문장은 아들을 협박하려는 말이 아니었다. 자기 공장을 언제 닫을지, 누가 도구를 가져갈지, 그것만큼은 아직 자기가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통화가 끊겼다. 태경은 화면을 내려다봤다. 멀리서 보면 가족 전화도 채권자 전화도 같았다. 누군가는 오늘 돈을 못 받으면 공구를 빼앗기고, 누군가는 작업자에게 월급을 못 준다. 차이는 그 사람이 자기 아버지라는 것뿐이었다. 그 차이를 예외로 만들면, 자기 이름으로 지키려던 첫 규칙이 하루도 못 갔다.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진 세 장. 미지급 전표, 납품한 단자판, 작업자 급여일이 적힌 달력. 동호는 자료를 보내면서도 부탁이라고 쓰지 않았다. 요청의 모양을 갖춰 왔다.

태경은 사진을 회사 채권표에 올렸다. 동해유통 예치금, 한림리빙 임금, 윤성정밀 외상대금. 한 줄씩 같은 칸에 들어갔다. 손실장부의 빈 줄이 떠올랐다. 장부는 답을 주지 않았다. 누구를 먼저 살리라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같은 돈으로 모두를 살릴 수 없다고, 영수증처럼 남길 뿐이었다.

그는 은행으로 돌아갔다.

상훈은 거절문을 봉투에 넣고 있었다.

“이걸로 끝입니까?” 태경이 물었다.

“승인은 끝입니다.”

“그럼 다음은요?”

상훈은 봉투를 닫지 않았다. 그 대신 거절문 뒤에 빈 종이 한 장을 끼웠다.

“공식 회신으로 남기겠습니다. 중복 채권 양도 확인, 원본 도장, 수취 시각, 책임자 확인서. 이 네 개가 맞으면 다시 심사할 수 있습니다.”

“부속합의서도요?”

상훈이 태경을 봤다.

“왜 그걸 아십니까?”

“결재 순서가 이상합니다.”

“이상한 순서는 많습니다. 원본이 있어야 이상이 증거가 됩니다.”

상훈은 종이 끝에 짧게 적었다. 부속합의서 원본. 글씨는 다른 항목보다 크지 않았다. 다만 태경에게는 그 줄만 유난히 선명했다.

상훈은 종이를 복사하지 않았다. 은행 도장이 찍힌 거절문은 한 부만 태경에게 건넸고, 시스템에는 첨부 목록만 남겼다. 태경이 종이를 들고 나가자 상훈은 내부 메모란을 열었다. ‘고객 예치금 유입 확인. 이체·질권 설정 미승인. 재검토 필요 자료 고지.’ 문장은 누구도 구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 심사자가 왜 멈췄는지는 알게 한다.

태경은 그 자리에서 박혜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두 번 울린 뒤, 혜린이 받았다.

“원본부터 보겠다는 메시지, 확인했습니다.”

“그 말만 믿고 자료를 가져오진 마세요.”

“가져가지 않겠습니다. 보존 요청만 올리겠습니다.”

“팀장 승인 없이요?”

“승인을 받으면 늦을 수 있어서요. 대신 누가 막았는지도 남깁니다.”

혜린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태경은 그녀가 즉시 협조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첫 생에서 그는 법무에게 ‘이건 나중에 설명할게요’라고 말한 뒤 자료를 먼저 빼냈다. 그 뒤 설명은 늘 늦었고, 원본은 늘 누군가의 서랍에서 사라졌다.

“보존 요청 범위를 보내세요.” 혜린이 말했다. “부속합의서라고 쓰지 말고, 자금확인서 관련 원본·결재 순서·수취 계좌 자료. 제가 먼저 확인할 건 제가 정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윤 대리.”

“네.”

“아는 척하지 마세요. 지금은 자료가 먼저입니다.”

태경은 통화를 끊은 뒤 그 말을 메모장에 옮겼다. 자료가 먼저. 그 짧은 문장은 은행의 네 가지 항목보다도 무거웠다. 그는 회사로 향하는 택시를 잡지 않았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며 동호의 전표, 동해유통 조건서, 은행 거절문을 같은 폴더에 넣었다. 세 문서는 서로 다른 돈을 말하고 있었지만, 모두가 누가 먼저 결정권을 가질지를 묻고 있었다.

역 개찰구 앞에서 그는 폴더 이름을 바꾸었다. ‘긴급 건’이 아니라 ‘확인 전’으로. 급한 일은 많았지만, 확인하지 않은 돈을 먼저 움직일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지만 그는 계단을 다 내려간 뒤에 받기로 했다. 지금 필요한 건 빠른 대답이 아니라, 다음 대답을 기록할 자리였다.

그 선택은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더 남겨 둘 만했다.

지금은 그뿐이었다.

아직은.

“저는 부탁을 받아서 승인하지 않습니다.” 상훈이 말했다. “대신 누구에게나 같은 자료가 오면, 같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그 질문에 답하면 돈이 움직입니까?”

“답하기 전엔 안 움직입니다.”

완전한 대답은 아니었다. 그러나 태경은 그 모호함이 특혜보다 나았다. 적어도 다음 문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게 됐다.

회사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박혜린의 메시지가 왔다.

원본부터 보겠습니다.

태경은 답장을 바로 쓰지 않았다. 먼저 상훈의 목록을 사진으로 남기고, 동호의 전표와 같은 폴더에 넣었다. 오늘 얻은 것은 돈도 권한도 아니었다. 돈을 움직이기 전에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야 하는지, 그 순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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